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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651

    答柳叔遠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茅山書堂에서 『大山集』의 重校를 병행하다보니 『心經講錄刊補』의 교정의 진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전하면서, 예정된 高山書堂에서의 약속도 미루어지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652

    與李學甫(宗洙)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后山 李宗洙(1722~1797)에게 보낸 편지로, 1779년(정조 3)에 썼다. 『退陶書行錄』을 읽고 소감을 피력한 내용이다. 年譜를 참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送別이나 營造에 대한 기사보다는 講學한 사실을 부각하고, 言行·出處 등의 큰 항목을 설정해 주관한 사람을 적시
    출처 : 유교넷
  • 360653

    與李學甫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李滉과 함께 爾蓮臺에서 詩會를 열었을 때 참여했던 ‘金氏 三公’의 題名을 고증한 결과를 전한 내용이다. 이황의 文集을 비롯해 守拙堂 金益濟의 墨藏 등에 누가 首題를 했는지 등에 대해 기록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출처 : 유교넷
  • 360654

    答李學甫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4년(정조 8)에 썼다. 『退陶書行錄』의 편찬을 완료한 다음 師門의 遺蹟을 고증해 정리한다(『師門敍述』)는 소식에 찬사를 보내면서, 자신의 소견의 일단을 전한 내용이다. 凡例가 근거가 있고 記述도 법도에 맞아 더 이상 말을 할 여
    출처 : 유교넷
  • 360655

    答李學甫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大山集』의 교정에 참여하기 어렵게 된 사정을 전한 내용이다. 지난번 遺集을 필사하는 동안 보람을 느꼈던 일을 회고하면서, 그 길로 병을 얻어 지금은 제대로 운신도 못할 형편인데다 氣質마저 얕아져 應接하는 것도 가벼워져 遺集을 읽어도
    출처 : 유교넷
  • 360656

    答李學甫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性과 道의 관계를 통한 ‘率性’의 해석과 관련한 질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性은 體이고 道는 用이다.”는 것은 道의 行用 이전에 性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行用은 道의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性이 道의 形體라는
    출처 : 유교넷
  • 360657

    答李學甫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率性’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보완한 내용이다. 道는 사람을 거치지 않고도 존재하지만 用으로 드러나자면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점과 性을 위주로 말하면 性이 體이고 情이 用이며 道를 위주로 말하면 靜이 體이고 動이 用이 되는 점,
    출처 : 유교넷
  • 360658

    擬與李學甫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이다. 陶山書院에서 『心經講錄刊補』를 간행할 것을 약속하는 과정에서 간행의 주체를 적시하면서도 참여한 사람의 이름은 제외하고 글만 싣기로 결정한 것에 의혹을 제기하며 판단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659

    與李學甫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로, 1789년(정조 13)에 썼다. 申義慶이 저술하고 金長生·金集이 교정한 『喪禮備要』를 읽고 소감을 피력한 내용으로,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別紙에는 李滉이 李天牖의 질문에 답한 내용 가운데 性의 動靜에 관한 자신의 해석을
    출처 : 유교넷
  • 360660

    答李學甫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만년에 학문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고자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 내용이다. 새로운 결심을 다짐하는 長文의 편지를 읽고 추구하는 道를 日新하여 儒學을 주도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며 소감을 밝힌 다
    출처 : 유교넷
  • 360661

    答李學甫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0년(정조 14)에 썼다. 『大山集校整標識記簿』의 편집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전한 내용이다. 집안의 잇따른 喪事 등으로 인해 경황이 없는데다 心弱하기조차 하여 지속적으로 교감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전하면서, 완벽한 교정을 위해서
    출처 : 유교넷
  • 360662

    答李學甫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大山集』의 교정대상을 정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해석상 문제의 질문에 응답한 내용이다. 학문에 대한 자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새로이 공부하는 신진이나 다를 바가 없는 자신이 질문해야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질문을 받게 된데
    출처 : 유교넷
  • 360663

    與李學甫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象靖의 위패를 봉안하는 書院건립 청원운동을 유보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의향이 어떠한 지를 물은 내용이다. 서원건립을 청원하기 위한 제반 준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다시 道內儒生들이 洛峰에 모여 四先生(西厓 柳成龍‧鶴峯 金誠一‧寒岡 鄭逑‧
    출처 : 유교넷
  • 360664

    答李學甫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썼다. 『大山集』의 교정본의 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부탁한 내용이다. 교정에 참여하고 있는 趙述道·李秉運·柳長源이 모두 겨울 전에 간행이 어려
    출처 : 유교넷
  • 360665

    與李學甫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孔子의 本旨를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朱子가 편찬한 『大學』의 소략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그 사례를 지적하며 講說을 제안한 내용이다. 공자가 말한 ‘篤信好學’이나 ‘尊德性 道問學’은 다
    출처 : 유교넷
  • 360666

    答李學甫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大學』의 補略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전한 내용이다. 「誠意章」 아래의 설명도 經文의 11개 항목을 취한 傳文을 朱子가 전하지 않음으로써 적절한 해석이 이루어지지 않아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그 같은 사례는 『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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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67

    答李學甫別紙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3년(정조 17)에 썼다. 『大學』‧『中庸』 등의 字句 해석과 관련한 4개 항목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668

    答李學甫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학문에 대한 자신의 소회의 일단을 밝히면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옛사람들의 긴밀하고 절실한 공부는 文義를 깊이 파악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보며 성찰하는데 있었으며, 극도로 깊이 추적한 것도 분석하여 교감하는 것에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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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69

    與李學甫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이다. 節度·知行과 『中庸』의 「鬼神章」 및 困知勉行, 間斷, 四勿三貴 등에 관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여 답변한 내용이다. 節度와 知行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공부의 요체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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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0

    答李學甫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5년 (정조 19)에 썼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道義조차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한 자신의 고민을 토로한 내용이다. 아들의 교육을 부탁받고 함께 강론해보니 논리가 치밀하여 氣度와 精力에 전혀 결함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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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1

    答李學甫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말년에 『論語』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에 대한 솔깃한 심정을 표시하면서, 權榘(1672~1749)의 저술인 『屛谷集』의 교정을 위해 읽은 소회를 밝힌 내용이다. 선생의 문장·학문이 하나같이 진실하고 결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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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2

    與李學甫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에게 보낸 편지이다. 『書經』의 「康誥章」의 해석에 관한 보완설명을 한 내용이다. 원래 曾子가 康誥를 인용할 때에는 백성을 나의 자식과 다르게 본 것은 아니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곧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일치시킨 것이 아니었는데, 뒤에 그것이 오해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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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3

    答李學甫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에서 가르침을 준 것들이 논지가 명쾌하여 익숙한 것을 더욱 익숙하게 하고 알고 있는 것도 더욱 밝게 하는 것이라 찬사를 보내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別紙에는 『大學章句』의 ‘虛靈不昧’, ‘人心道心說’, 『大學』의 「如保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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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4

    答李學甫 4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講論으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이해의 혼란을 경계한 내용이다. 의리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尊丈들의 가르침을 듣고 스스로 아는 바를 독자적으로 행하면 되는 것으로 구태여 合一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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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5

    答李學甫 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老患으로 인해 기동조차 어려운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뒷일을 부탁한 내용이다. 점차 靈藥이 필요 없을 정도로 性情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면서, 오로지 古人들의 가르침을 온축한 가운데 고요하게 앉아 天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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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6

    答李學甫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湖上의 일을 걱정한 내용이다. 금년 여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증세가 반복되는 현상이 스스로를 깨닫게 하고 있다면서, 선생 李象靖의 손자 李秉運(1766~1841)이 관직에 제수된 것은 기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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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7

    答權之國(以肅)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權以肅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4년(정조 8)에 썼다. 李象靖 서원건립 청원운동을 침착하게 추진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다른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이 있다고 하여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삼가면서 차분하게 公論化할 수 있도록 기다리되 李宗洙에게 자신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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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8

    答權之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權以肅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6년(정조 10)에 썼다. 집안의 우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를 버리지 않는 자세를 칭찬한 내용이다. 누구나 난감한 일을 겪지 않는 경우가 없는 법이라며 위로를 전하는 한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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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79

    答金天用(龍燦)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耕讀齋 金龍燦(1724~1787)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李象靖의 文集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지적한 내용이다. 선생이 작성한 上疏의 草案 中正本을 莊陵藏本과 비교한 결과 “後世之學 旣法聖王之制”의 ‘法’은 앞뒤의 문맥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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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0

    答金定之(鎭東)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素巖 金鎭東(1727~1807)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홍수로 인해 편지가 늦게 도착함에 따라 답장이 늦어진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 辨正한 내용을 보고 沈潛을 통해 절실한 부분을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別紙에는 “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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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1

    答金定之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鎭東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心知와 物理를 內·外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致知를 窮理로 이끌면 內·外가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格物을 接物로 이끌 경우 心이 理를 곧바로 만나려 하기 때문에 本末이 허구가 되고 한번 접하고는
    출처 : 유교넷
  • 360682

    與金定之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鎭東에게 보낸 편지로, 1793년(정조 17)에 썼다. 內·外, 本·末을 설명한 가운데 利·害와 연관된 부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다. 格物·致知를 內·外와 本·末로 연결시킨 것은 납득이 되지만 그것을 利·害에 결부시킨 예는 찾지 못했다며 과연 사사로움을 막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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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3

    與金定之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鎭東에게 보낸 편지이다. 학문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文句가 불분명한데도 註解가 없는 것은 전승된 의혹을 그대로 전하는 예에 따라 처리하고, 절실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은 제외해 버리며, 방해 또는 피해를 끼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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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4

    答金定之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鎭東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周敦頤의 『太極圖說』 「主靜條」 가운데 ‘不自棄’의 글이 들어가게 된 사정을 설명한 내용이다. 그것이 朱子에 의해 추가된 것인지 아니면 뒷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인지 확인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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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5

    與金定之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鎭東에게 보낸 편지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유장원이 사망한 뒤 후사를 정하는 일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한 내용이다. 修撰君이 완벽하고 후덕한 인물로서 집안을 바로 세워 영남의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지만, 후사를 거부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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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6

    與金中立(道行)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雨皐 金道行(1728~1812)에게 보낸 편지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李玄逸의 伸寃疏를 올렸다가 죄를 얻어 유배지 光陽에서 사망한 霽山 金聖鐸(1684~1747)이 伸寃된 것을 축하하면서 祭祀에 참여하기 어려운 처지를 전한 내용이다. 柳長源에게 斟酌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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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7

    答李大馨(宜白)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梧溪 李宜白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5寸 이내 친척의 喪禮에 관해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각종 禮가 논의를 통해 입증되면 따르도록 노력해야지 새로운 禮法을 창출하려 하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다음, 5촌 이내가 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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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8

    與申子長(體仁)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晦屛 申體仁(1731~1812)에게 보낸 편지로, 1756년(영조 32)에 썼다. 義城縣令이 천거를 위해 『周易』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단계적인 독서의 필요성을 제기한 내용이다. 성인들이 말한 이치는 얕고 깊은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見識의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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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89

    答申子長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1년(영조 47)에 썼다. 학문의 성취를 위한 자세의 일단을 전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다 의혹이 생겨 토론할 일이 있으면 言語로 표현하되 그것으로 부족하면 글로 의사를 전달하고 그래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으면 師門에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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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0

    答申子長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4년(영조 50)에 썼다. 知行에 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힌 내용이다. 講學은 아는 것을 더욱 밝아지도록 하고 지키는 것을 더욱 공고해지도록 하여 踐履의 결실을 얻도록 하지만,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며 행동은 멋대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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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1

    答申子長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8년(정조 2)에 썼다. 집안의 울안에 핀 노란 국화를 보면서 느낀 감회의 일단을 전하며, 유람의 제안을 고사한 내용이다. 수시로 몰아치는 심한 비바람에도 찬연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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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2

    答申子長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9년(정조 3)에 썼다. 名利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한 학문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한 내용이다. 대저 학자들의 성공을 위한 비결은 용기를 내어 전진하되 초월하는 법이 없고 힘써 성찰하되 서두르지 않는데 있는 것임을 전제로 하면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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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3

    答申子長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5년(정조 9)에 썼다. 『中庸』 23章의 ‘致曲’에 관해 해설한 내용이다. 작년에 두 가지 학설로 논쟁을 벌였지만 다시 생각해본 결과 새로운 의미가 떠올랐으며 조만간 글로써 제시할 계획임을 전하면서, ‘致’는 좌·우, 종·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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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4

    答申子長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의 ‘致曲’說에 관한 의혹에 대해 보완 설명한 내용이다. 致曲과 致知는 의미는 다를 수 있어도 極을 이루어 聖人의 至誠과 天道의 自然에 도달하는 이치는 같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약 四端이 각각 極을 만들지 않고 함께 만든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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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5

    擬與申子長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에게 보낸 편지로, 1786년(정조 10)에 썼다. ‘致曲’에 대한 異說에 반론을 제기한 내용이다. 推致를 기다리는 衆曲에 집착하는 이유는 致曲을 ‘致中’과의 관계에서만 파악할 뿐 ‘致中和’와의 관계에서 이해하지 않으려는데 따른 것으로, 그 결과 致와 曲이 어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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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6

    與申子長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에게 보낸 편지이다. 虞祭에서의 進饌에 관한 禮說을 고증한 내용이다. 우제가 四時祭와는 큰 희생을 잡아야 하는 분별이 있기는 하지만 주인이 목욕하고 제상을 차리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 제상을 갖추는 것이 朝奠과 다를 바가 없다는 河西 金麟
    출처 : 유교넷
  • 360697

    答申子長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7년(정조 11)에 썼다. 『心經講錄刊補』의 교정이 완료되어 淨寫의 과정에 있음을 전하면서, ‘致曲’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수용해준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자신의 논리가 전적으로 완벽하다고는 믿지 않으며 앞으로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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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8

    答申子長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9년(정조 13)에 썼다. 늙어가면서 근력도 약해지고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同志들의 참신한 학설은 혼미한 마음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연마할 마음을 갖도록 한다면서, 『心經講錄刊補』 교정본을 돌려보면서 검토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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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699

    答申子長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0년(정조 14)에 썼다. 『心經講錄刊補』의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한데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책의 항목을 세분하도록 수정을 제안한 것은 그만큼 심사숙고를 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名理를 강구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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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700

    答申子長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썼다. 앞서 사망한 동생 金宗敬(1732~1785)의 문집인 『苟齋遺稿』를 간행한 것을 축하하며 위로를 보낸데 대해 자신의 심정을 전한 내용이다. 슬픈 감정을 묻어두고 현실에 순응할 것을 권유한 것에 고마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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