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701
答申子長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思悼世子의 伸寃을 위해 俛庵 李㙖(1739~1810)가 疏頭가 되어 추진하고 있던 영남유림의 萬人疏의 疏文의 검토를 요청받고 사절한 내용이다. 모든 사람의 公議에 의해 작성된 것을 자신이 간섭하는 것은출처 : 유교넷 -
360702
答申子長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4년(정조 18)에 썼다. 詩會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데 대해, 아들의 병간호 때문에 어려운 처지를 전하면서 다음을 기약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03
答申子長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申體仁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쓴 것으로 보인다. 東巖 柳長源(1724~1796)의 죽음에 슬픈 마음이 앞을 가려 온산이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광경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애통한 심정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04
答李善述(述靖)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述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뱃노래를 읊은 歌詞를 평가하면서 보완을 위한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가사가 전반적으로 파도소리와 같아 귓가에 묻은 먼지와 근심을 깨끗이 씻어주듯 하지만, 처음부터 단순히 山川의 경치만을 묘사할 뿐 道에출처 : 유교넷 -
360705
答李善述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述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6년(정조 10)에 썼다. 仙界를 읊은 詩는 인간들로 하여금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게 하고 동봉한 편지는 自省을 통해 세속의 利害를 없애려 노력하는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했다며 칭찬한 다음, 『大山集』의 跋文에 성명과 날짜가출처 : 유교넷 -
360706
答李善述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述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7년(정조 11)에 썼다. 다리에 생긴 질병으로 인해 새장 안에 있는 것처럼 집에서만 지내고 있기 때문에 詩會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사정을 전하는 한편, 부탁한 序文은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양하는 것을출처 : 유교넷 -
360707
答李善述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述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8년(정조 12)에 썼다. 序文을 부탁한데 대해 재차 사양한 내용이다. 비록 사모하는 정이 두텁고 간략하게 쓸 것을 바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설명했다출처 : 유교넷 -
360708
答李善述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述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序文을 쓰는 것을 다시 사양한 내용이다. 자신이 몇 번이고 苦心해봐도 중대한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스스로 오만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배려해줄 것을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360709
答李聖有(鎭九)別紙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鎭九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廬墓에 관한 질문에 자문한 내용이다. 아침저녁으로 上食할 때 반드시 촛불을 밝혀야 한다는 법은 없고 油燈도 무방하며, 새벽에 묘 앞에서 곡을 하지 않는 것이 禮法이라 설명했다출처 : 유교넷 -
360710
答李德而(萬運)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萬運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3년(정조 17)에 썼다. 仁說에 관해 설명한 것에 전혀 이의가 없음을 밝히면서 자신의 견해의 일단을 피력한 내용이다. 비바람에 몸을 말리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통해 바깥의 소식을 듣는 처지에서 편지를 받은 것에 반가움을 표시출처 : 유교넷 -
360711
答鄭中玉(璞)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璞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30년 동안 입안에 삼키고 있던 말을 上疏로 해소한 것에 대해(思悼世子의 伸寃을 위한 萬人疏를 말하는 듯) 통쾌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이 건립한 孺子亭의 記文을 부탁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12
與鄭中玉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璞에게 보낸 편지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아들 金慶進의 장례를 마치고 난 다음 輓詞들을 보면서 느낀 감회를 전함과 동시에 父子가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긴 내용이다. 부자가 朋友나 다를 바 없이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했음을 회고하면서, 정박이 지은출처 : 유교넷 -
360713
與鄭中玉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璞에게 보낸 편지로, 重陽節 국화꽃이 만발한 계절을 맞아 黃于村에서 함께 막걸리로 즐거움을 나눌 것을 제안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14
與李仲章(天燮)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天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모든 준비를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宣城(禮安)으로 행로를 바꾼 것에 대해 허망한 마음을 전하면서, 곁가지에 불과한데다 한번 빠져들며 경박한 습관을 가질 수도 있는 詩를 짓는데 관심을 갖기보다 經傳에 심취출처 : 유교넷 -
360715
答李仲章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天燮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보내준 글 전반이 處身에 있어 忠信·著實의 뜻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성에 젖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혹평하면서, 만약 이러한 자세를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도 결코 성공을 보장하지출처 : 유교넷 -
360716
與鄭文則(檖)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檖에게 보낸 편지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지난번 편지에서 스스로 一新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겸양으로 스스로를 억제하고 물러나 남에게 양보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내면에서부터 두드러진 공부의 정도를 은연중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평가하면서, 부지런히출처 : 유교넷 -
360717
答任公弼(伊輔)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任伊輔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3년(정조 7)에 썼다. 喪祭에서 次子의 變服에 관한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次子가 병에 걸리게 되면 병이 나은 다음 상복으로 바꾸어 입어야 하지만, 主婦가 홍역을 앓고 있는 아이를 간호하고 있을 경우 세수나 청소를출처 : 유교넷 -
360718
與任公弼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任伊輔에게 보낸 편지로, 大·小祥과 禫祭 때의 喪服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내용이다. 祥祀 때에는 白衣冠을 갖추되 제사가 끝난 다음 吉服을 착용해야 하지만 禫祭에서도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360719
答李穉春(㙖)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俛菴 李㙖(1739~1810)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0년(정조 14)에 썼다. 부인의 상을 당한데 대해 위로의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살아생전 초상화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정신을 수습하여 슬픔을 딛고 일어서 마음을 굳게 다지는 것출처 : 유교넷 -
360720
答李穉春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輓詞 등의 글을 짓는 방법과 독서를 하는 자세에 대해 조언한 내용이다. 독서를 할 때에는 진실을 體得함과 동시에 曲折을 주의 깊게 살피려는 자세를 전제로 다른 사람들과 講論을 통해 해답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되, 가슴 속에 막힌 것이 없이출처 : 유교넷 -
360721
與李穉春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에게 보낸 편지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思悼世子의 伸寃을 청원하기 위한 영남유림 萬人疏의 疏頭로 참여했다가 무사히 귀향하게 된 것을 축하한 내용이다. 이 일을 계기로 義理의 주도권이 영남으로 넘어오게 됨으로써 앞으로 군주와 조정뿐만 아니라 천하가 영남출처 : 유교넷 -
360722
答李穉春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옛사람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이 文句와 義理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말만 앞세우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갖지 못할 경우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처신에 의혹이 없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23
答李穉春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3년(정조 17)에 썼다. 『中庸章句』에서 存心은 致知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換形說에 입각해 본다면 資質과 功績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두 가지의 분리된 관계가 아닌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출처 : 유교넷 -
360724
答李穉春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中庸章句』의 存心과 致知의 관계에 대해 고심했지만, 『大山集』 등을 통해 분석해 볼 때 결국 致知의 자질이 存心에 있는 것이지 存心의 자질이 致知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25
答李穉春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이 기거하는 孺子亭에 가을 국화가 반쯤 핀 가운데 매화가 꽃망울을 맺는 기이한 광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음을 전하면서, 편지에서 자신처럼 늙은이를 천하의 의리에 관한 것들을 논의할 同志로 인정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출처 : 유교넷 -
360726
答李穉春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周敦頤의 『太極圖說』 ‘中正仁義’와 ‘主靜’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主靜이 中正仁義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中正仁義가 정해진 다음 主靜의 공부로 근본을 세운다출처 : 유교넷 -
360727
答李穉春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周敦頤의 『太極圖說』 ‘中正仁義’와 ‘主靜’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내용이다. 첫째, “聖人은 中正仁義를 정한다.”는 주장에 대해 성인도 靜을 위주로 하는 만큼 공부를 위주로 해야 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저절로 정해지는 것으출처 : 유교넷 -
360728
擬與李稚春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에게 보낸 편지로, 周敦頤의 『太極圖說』 ‘中正仁義’와 ‘主靜’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보강한 내용이다. 靜을 밝게 한다는 것은 無欲으로 깨끗하고 분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듯이 主靜도 中正仁義의 범주 속에서 無欲을 잡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360729
答李穉春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靑城書院에서 『太極圖說』을 강독한 일을 칭찬하면서, 학자들이 공부할 때 靜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전제로 靜에 戒懼가 있어야 體를 보존할 수 있고 움직임에 審察을 갖추어야 靜을 잃지 않는 것이 主靜의출처 : 유교넷 -
360730
答李穉春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師門의 통일된 논리는 “戒懼는 動靜을 겸하여 포함하고 있고, 愼獨은 오로지 動處만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장황한 주장은 오히려 논지를 번잡하게 하여 大義를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31
與李致道(埦)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艮谷 李埦(1740~1789)에게 보낸 편지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大山集』의 초본교감과 관련하여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날씨도 무더워지는데 날마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 교감하는 것보다는 교정본을 등사하여 각자에게 나누어 교감하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출처 : 유교넷 -
360732
與李致道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이다. 『大山集』의 편집에 있어 編次의 조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과거 陶山書院에서 『退溪集』을 교정할 때 5가지 색으로 표시하며 단계적으로 진척시킨 예를 상기시키면서, 서둘러 편차를 정하려 할 경우 시행착오가 예상되기 때문에 먼저 초본을출처 : 유교넷 -
360733
與李致道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로, 1783년(정조 7)에 썼다. 喪을 당한 슬픔이 지나친 나머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데 대해 위로를 전한 내용이다. 비통한 심정을 억제할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을 강하게 가지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몸의 원기를 보강할 수 있도록 할 것을 당부하는출처 : 유교넷 -
360734
答李致道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직접 만나 글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려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사가 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率性’에 관한 異論을 제기한 李頷의 주장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것이니 만큼 일단 존중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哀錄」의 저술은 일부출처 : 유교넷 -
360735
與李致道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로, 1784년(정조 8)에 썼다. 『大山集』이 다시 정리되어 등사가 되었는지 등 진척상황을 물으면서, 각종 사정으로 인해 편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先賢들의 문집의 예에 따라 別集 또는 續集으로 발간할 것을 제안함과 동시에 문집을 읽는 사람들이 체출처 : 유교넷 -
360736
答李致道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다리와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대산집』을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모임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왕복한 편지에 보낸 사람의 성명이 적시되지 않은 것 등 보완해야 할 부분을 지적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37
與李致道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로, 1785년(정조 9)에 썼다. 『大山集』의 ‘率性’에 관한 논설에 대한 李頷의 異論에 반론을 제기한 내용이다. 그동안 異說이 제기되어도 듣기만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자제해 왔지만 그것이 도를 구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반출처 : 유교넷 -
360738
與李致道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의 性·道가 어떻게 만물의 性·道에 영향을 끼치며 만물의 性·道가 어떻게 나의 性·道를 따르는지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鳥獸도 그들의 性을 얻었기 때문에 그 性을 따라 날거나 달리는 道가 있는 것이고, 草木도 그들의 性을 얻었기 때출처 : 유교넷 -
360739
與李致道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차례에 걸쳐 교환한 ‘率性’에 관한 논설도 仁에서부터 義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橫說만 주장하며 竪說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李頷의 자세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40
與李致道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로, 1786년(정조 10)에 썼다. 碣文의 교감과 관련한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문장의 전반적인 핵심이 ‘道學體用’에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는 4개 항목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출처 : 유교넷 -
360741
答李致道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8년(정조 12)에 썼다. 만나지 못한 지가 10년이 되었고 글자 하나라도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화롯불이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각자 감추어 두었던 信符를 합하듯이 정열과 신의를 갖되 서로 신랄한 비판을 삼갈 것을 촉구한 내출처 : 유교넷 -
360742
與李致道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이다. ‘率性’에 관한 논쟁이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점을 아쉬워하면서, 서로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니 검토해 볼 것을 주문한 내용이다. 別紙에는 “道는 사물에 있는 理이고, 性은 자기에게 있는 理이다.”고 한 朱子출처 : 유교넷 -
360743
答李致道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10여 년에 걸쳐 ‘循性’에 대한 견해를 교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을 답답해하면서, 서로가 깊이 사유를 하는 가운데에도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도록 노력할 것을 제안하며 질문에 응답한 내용이다. 別紙에출처 : 유교넷 -
360744
答李致道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흉중에 있는 것들을 일관되고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함으로써 大目과 細節이 서로 통하지 않는 데다 本旨마저 흐트러지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힐난을 받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논설에 의혹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 보완 설명한출처 : 유교넷 -
360745
答李致道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率性’ 등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0746
答李致道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견해차이가 좁혀져 가고 있는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을 표시하면서, 새로운 학설을 만들지 않는 가운데 논리의 앞뒤가 일치하여 난잡한 혐의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 다음 “마음에서 갖추어진 것이 性이 되고, 사출처 : 유교넷 -
360747
答李致道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학문의 방법에 대한 소회를 밝힌 내용이다. 옛 것에 힘쓰되 새로운 방책을 마련하게 되면 더욱 정밀하게 살피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의거해서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서울의 학자들이 영남의 유생들을 이해하려는 자세를출처 : 유교넷 -
360748
擬與李致道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埦에게 보낸 편지로, 1789년(정조 13)에 썼다. 무릇 經傳을 해석함에 있어 곧장 바른 의리를 추구하는 방법과 두루 융합해 활용하여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먼저 正義를 분석한 뒤라야 융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순리라 전제한 다음, 正義를 분석하는 차원에서 문제를출처 : 유교넷 -
360749
答鄭士仰(宗魯)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立齋 鄭宗魯(1738~1816)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공부에 대한 자성의 마음을 담은 소회의 일단을 전한 내용이다. 일찍부터 세상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채 爲己의 공부에만 집착한 때문에 사람들의 견해를 수용하며 和平을 유지하는 자세가 결여되기에 이른 자신을 돌이켜보출처 : 유교넷 -
360750
答鄭士仰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宗魯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李象靖의 장례를 끝낸 湖上의 적막한 분위기를 전하면서, 뒤늦게 답장을 보내게 된 점을 사과함과 동시에 사람을 보내 위로의 말을 전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