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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썼다. 改葬의 服制 등 喪禮에 관한 2개 항목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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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夢叟(巖淳)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巖淳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忌日 제사의 방법 등과 관련한 3개 항목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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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夢叟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巖淳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4년(정조 18)에 썼다. 張栻이 朱子에게 “술이 거나해 기분이 좋아져 슬픈 노래를 부르며 비분강개한다고 혈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한 말을 되새기며 자신의 편벽된 氣質을 고쳐줄 수 있는 朋友가 필요한 현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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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비록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함께 四勿三貴를 위주로 修鍊하며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을 과제로 동반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희망하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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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白玉은 티를 없애는 연마를 거듭해야 빛나기 마련이고 좋은 쇠는 앙금을 없애는 단련을 거듭해야 순수해지듯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마와 단련에는 힘을 기울이지 않고 時事에 관여하는 것을 비판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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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外面을 덮고 內心을 위해 힘쓰는 가운데 행동이 강철을 진 듯이 무겁고 말이 산과 같이 신중해야 세상을 이끌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당부하면서, 陶山書院의 光明室 뒤에 煥章庋龕을 별도로 건립하겠다는 계획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別紙에는 殮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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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別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한 心喪을 3년이 아닌 15개월로 할 수 있는지 여부와 아버지 묘가 좁으면 어머니의 묘에 합장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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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이사를 하는 와중에 高山書堂에서 토론한 問目을 필사한 것을 분실한데 대해 송구한 마음을 표시하면서, 다행이 季父가 필사한 수백 장이 남아있어 經傳을 숙독하며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다 제대로 이해가 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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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朱子가 “前賢의 遺跡은 人事와는 무관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하고 愛慕하여 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고 했던 말을 상기하며 先生의 발자취를 따라 강에서 풍류를 즐겼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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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夢叟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巖淳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朱子書講錄』에 語錄을 합쳐서 편찬하려는 시도는 자칫 산만해질 우려가 있으니 規例를 정해 체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당부하면서, 喪中 改葬할 때의 喪服에 대한 질문에 斬衰의 경우 首絰은 緦麻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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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적막한 가운데 갑자기 결실을 얻으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뜻을 확고하게 굳힘과 동시에 사물과의 부단히 접촉하면서 用工處를 얻는 편이 적절한 공부의 방법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喪中 改葬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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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夢叟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巖淳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 1795년(정조 19)에 쓴 것으로 보인다. 『心經講錄刊補』는 李宗洙·柳長遠과 함께 교감을 거친데 이어 茅山書堂에서 다시 7일간 머물며 교정한 다음 正本을 위한 필사작업이 진행 중임을 전하면서, 수정을 제기한 몇 가지 부분을 적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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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西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正學을 倡明하는 일이 급선무라 지적하면서, 「紫雲詩帖」에 표현이 적절하지 않거나 典據가 없는 부분들을 지적하며 수정을 바라는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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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朱子書講錄』의 수정을 요청한 데 대해, “종일 글자를 베끼면서 한번이라도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끝내 분별이 없어지게 된다.”고 한 朱子의 말을 인용하며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지적한 내용이다. 別紙에는 忌祭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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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人心과 道心을 분리해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舜이 禹에게 “人心은 위험하고 道心은 미미하다….”고 한 것이나 주자가 “도심은 性命에 근원하고 인심은 形氣에서 생긴다.”고 한 것 등을 근거로 분리해 파악하는 관점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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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道心과 人心을 각각 道·器로 간주하는 주장에 대해, 道·器는 義理·事物, 形而上·形而下를 구분하는 개념이지 性·情의 體·用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비판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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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의 人心道心說을 수용해 준데 대해 만족감을 표시함과 동시에 中正仁義說에 있어 靜은 ‘無欲’을 의미하지 佛家의 ‘寂滅’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는 한편, 道器危微說은 理·氣로 설명하려는 의도를 모르고 人心·道心으로 파악한 것이 아닌가 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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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主靜’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名目을 적용하는 것은 혼란만 불러올 뿐이라 지적하며 ‘敬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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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別紙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부모를 合祀하는 祫祭의 방법에 대해 자문한 내용이다. 正祭의 달을 넘겨 행하되 祝文에는 ‘配’字 위에 반드시 ‘將’字를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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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出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孟子』에 “禮로써 나아가고 義로써 물러난다.”고 한 말을 환기시키면서, 禮는 세 번 사양한 다음 나아가는 것이고 義는 한 번에 사직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難進而易退”가 독서하는 자들이 강구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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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朋友의 사이는 신뢰가 있어야 하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편지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고 과장된 주장으로 마음을 상하게 한데 대해 사과하면서, 前賢들에게서 大義를 듣고도 제대로 밝혀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한계에 자괴감을 표시한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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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動靜에 대한 자신의 소회의 일단을 피력한 내용이다. 靜일 때에는 持守의 功을 쌓고 動할 때에는 體驗의 實을 더해야 일상생활이 크고 넓게 펼쳐질 수 있는 법이지만, 체험의 결실을 얻으려는 已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맑고 깨끗한 근원이자 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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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에게 보낸 편지로, 남을 동정하기보다 자신을 알기 위한 涵養의 방법에 대한 소회의 일단을 전한 내용이다. 天道와 性命을 깨닫기 위해서는 일상의 강론을 통해 그 핵심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고 선현들은 가르치고 있지만 실천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면서, 安身立命의 자세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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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健之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에게 보낸 편지로, 『退溪集』을 읽으면서 느낀 감회를 전한 내용이다. 이 문집은 주자의 논지를 집성하여 道學의 진정한 義理를 밝힌 것이자 經傳과 後學을 연결해주는 교량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旨訣을 찾아 깊이 살피기 위해 그 名目을 끊임없이 講說하지 않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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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健之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野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李滉이 가르친 三省·三貴·四勿의 실천에 대한 견해의 일단을 전한 내용이다. 이황의 가르침은 함양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는 본원이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天理로서 性命에 근원하는 道心과 人欲으로 形氣에서 생기는 人心을 명확히 구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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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章彦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1755~1820)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句讀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에 대해 그 가운데에서도 深遠함을 얻을 수 있다고 위로함과 동시에 李秉運이 관직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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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章彦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大山集』을 교정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주장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있다며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홀로 독서를 하며 사유하면서 얻은 眞實에는 협잡이 섞일 수 있기 때문에 강론으로 연마하는 자세를 갖도록 권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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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君澤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1755~1813)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젊은 사람들의 책을 읽는 소리가 깊은 생각 없이 뇌까리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상을 개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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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君澤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편지마다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의도를 잘 전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다소곳이 책을 읊조리는 자세에서 탈피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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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燁如(晦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寒坪 柳晦文(1758~1818)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아들의 사망을 위로해 준 편지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金聖鐸(1684~1747)이 伸寃된 것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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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燁如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晦文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禮經』에 나오는 昆弟의 ‘昆’은 兄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에 親兄弟를 지칭하는 것이라 설명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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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舜叟(熙奮)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白山 金熙奮(1760~1822)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心經講錄刊補』에 관한 의혹은 참여한 사람들의 논증을 거쳤음을 전제로 제기된 의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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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舜叟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金熙奮에게 보낸 편지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心經講錄刊補』에서 人心道心說에 관해 지적한 의혹은 최종 교정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착오가 빚어진 것이라며 해명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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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希彦(世賢)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朴世賢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8년(정조 12)에 썼다. 스스로 일상에서 放過를 없애면서 戒懼를 게을리하지 않고, 義·利의 분별을 분명히 한 가운데 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첩경임을 강조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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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希彦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朴世賢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각종 제기되는 오해에 대응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을 연마하며 행동을 경계하면 浮言은 가라앉을 것이라며 충고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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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希彦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朴世賢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고로 선비는 속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스스로를 믿고 獨行할 경우 ‘有改無勉’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知行을 병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自省하는 가운데 衣冠뿐만 아니라 言語·應接에 정당한 자세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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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希彦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朴世賢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4년(정조 18)에 썼다. 朋友에게 과실이 있으면 서로 규제하고 의혹이 있으면 질문해야 은연중 갈고 닦는 가운데 학문적 발전을 이루는 동반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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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夢叟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巖淳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3년(정조 17)에 썼다. 교감을 부탁한 글을 받으니 마치 「陶山記」를 얻은 것 같은 감흥을 느꼈다고 전하면서, 글의 전반적인 면모가 孔子의 家法과 程·朱의 門路를 이으면서 光風霽月의 자세로 正道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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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必奎)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魯庵 鄭必奎(1760~1831)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내면적 성찰을 깊게 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항상 義理를 安身立命에 두고 옛사람들의 방식을 찾아 독서를 하면서 마음을 공고하게 함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체득하되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의혹을 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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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공부를 위해 講論을 위주로 할 경우 口耳의 학문으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하면서, 存心을 위한 修行의 方法과 節度를 찾을 것을 촉구한 내용이다. 먼저 『小學』과 四書를 숙독하면서 일상의 체험을 통해 門路를 밝게 하고 基本을 세운 다음, 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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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공부에 있어 독실함이 결여되면 사업의 전말이 뒤바뀌어 버림으로써 하나의 기본을 확립하려 해도 온갖 방해가 나타날 수 있지만, 독실하지 않은 것을 끊도록 독실함을 촉진하고 뒤바뀌는 것을 막도록 審愼을 가져다주는 ‘主敬’을 우선하는 자세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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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썼다. 本原의 공부에 깊이 침잠한다면 보는 것이 날로 밝아지고 마음의 영역도 날로 구축되는 법이라 전제하면서, 보내준 글의 곳곳에 그러한 功力이 보이기는 하지만 더욱 간절하고 독실한 자세를 갖춘 다음 체계적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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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日用의 공부를 위해 『小學』에 전념하고 있다는데 대해 세속적인 口耳의 학문과 차별화된 적절한 선택이라 칭찬하면서, 의문을 제기한 것들을 반드시 辨析에만 의지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그 의미를 습득하려 노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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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깊이 침잠한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겨나면 하나씩 풀어나가되 그것들을 기록해두고 반복해서 살피는 것을 그치지 않은 다음 朋友들과 공유할 때 공부의 묘미를 음미할 수 있다고 설명한 내용이다. 別紙에는 ‘立地’ 등을 비롯한 17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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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問目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가 季母喪을 당한 것을 계기로 질문한 喪禮에 관한 3개 항목에 답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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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喪禮에 관한 질문에 답변한 내용으로, 6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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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 가득 뜻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다짐한 소회를 보고 앞으로 명성을 날릴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겠다며 기대감을 표시하면서, 京鄕의 得失이나 사소한 일에 관심을 갖지도 않고 입에 담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할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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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鄭必奎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朋友와 교유를 끊은 채 홀로 사유에만 매진할 경우 自得·自喜의 묘미를 만끽할 수는 있겠지만 文理가 막히고 말이 두서가 없어질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交友들과 우의를 돈독히 하면서 情意가 약해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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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子皜(漢皜)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誠齋 南漢皜(1760~1821)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辨析에 편중됨이 없고 집착을 버려야 門戶가 바르게 되고 規模가 제대로 서게 될 뿐만 아니라, 日用과 性情을 근본으로 삼으면서 평이하고도 명백한 것에 힘을 쏟아 謹愼과 節度를 얻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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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淸如(活)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邁埜 徐活(1761~1838)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뜻은 크고 용기가 왕성하면서도 구태의연한 자세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大學』에서 말한 正心을 위해 私意를 버리고 反己의 공부를 위해 매진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