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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951

    與直甫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敬에게 보낸 편지로, 辭職하겠다는 뜻에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世俗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義理를 말하며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공부가 갖는 묘미를 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2

    與直甫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敬에게 보낸 편지로, 마음에 근원하는 仁·義·禮·智로 스스로의 풍모와 언동을 수립할 것을 주문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3

    答直甫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敬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3년(정조 7)에 썼다. 유례없는 흉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齋舍의 享祀를 위한 재물을 내기가 어려운 처지에 대해 하소연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4

    答直甫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敬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大山集』의 교정을 위해 매일 遺稿를 읽는 한편 틈틈이 『朱子書節要』와 『退溪書節要』도 읽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5

    與直甫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敬에게 보낸 편지로, 『心經講錄刊補』를 監營에서 교감하도록 하라는 慶尙監司의 요구를 거절해줄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校正文字는 비록 林下의 평범한 사람이 記述한 것이라 할지라도 교감과 정리의 일은 가벼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經筵에서 강의한 것을 유생이 모여 논평하
    출처 : 유교넷
  • 360956

    與族弟天成(宗九)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族弟 金宗九에게 보낸 편지로, 1759년(영조 35)에 썼다. 式年試 大科에 합격한 것에 축하의 마음을 전하면서 볼 것이나 보아서는 안될 것 말할 것이나 말해서는 안될 것 등을 가려 처신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7

    與天成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九에게 보낸 편지로, 1768년(영조 44)에 썼다. 모함으로 곤욕을 치룬 뒤 죄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의 마음을 전하면서 모든 일을 곧게 행하면 낭패를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외의 일에도 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8

    與天成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九에게 보낸 편지로, 여름에 한번 들를 기회가 없는지를 묻고 숲속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59

    與景蘊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容淵 金宗發(1740~1812)에게 보낸 편지로, 1777년(정조 1)에 썼다. 增廣試 大科에 합격한 것에 축하의 마음을 표시하면서, 동생 金宗敬도 귀향해 있는 터이니 빨리 만나 함께 술잔을 나누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0

    答景蘊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發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9년(정조 3)에 썼다. ‘簡潔詳審’이 居官者가 명심해야 할 바임을 당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1

    與景蘊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發에게 보낸 편지로, 1780년(정조 4)에 썼다. 次韻을 요청하는 시를 제때 보내지 못한 점에 양해를 구하면서 山澤에서 감흥을 얻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전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2

    答景蘊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發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편지에 ‘平安’의 두 글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음을 전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반드시 한번 거쳐 가리라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시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3

    與景蘊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發에게 보낸 편지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편지를 쓸 여가를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사정은 알고 있지만, 動하여 흘러가는데 靜이 없다면 사물은 통할 수가 없다면서 소식을 전해주기를 희망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4

    答景蘊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宗發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잇달아 두 통의 편지를 보낸데 대해 반가운 마음을 표시하면서 왕을 보필하는 兵曹에 근무하는 동안 왕의 근황이 어떤 지를 물은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5

    與從弟凝之(宗駿)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從弟 金宗駿에게 보낸 편지로, 1794년(정조 18)에 썼다. 비가 올 때 李象靖의 서원건립을 청원하기 위한 疏行을 떠나게 되어 병을 얻지 않았는지 묻고, 疏事를 논의할 때 듣기만 하면서 결정된 것이 정당하면 異見을 제시하지 말고 정당하지 않으면 소견을 적극적으로 피
    출처 : 유교넷
  • 360966

    與慶進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아들 金慶進에게 보낸 편지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어머니의 병환이 어떤지를 묻고 조석으로 죽을 끓여 주되 女兒들이 방에서 떠들지 못하도록 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스승 李象靖의 상을 당해 黑冠·白帶를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白布로 巾帶를 만들 것을 주장하
    출처 : 유교넷
  • 360967

    答族姪淸進問目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族姪 金淸進이 자신의 저술인 『草廬問答』 등에 관한 2개 항목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8

    答淸進論語箚疑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淸進의 『論語』에 관한 14개 항목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69

    與姪川進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조카 金川進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의 저술인 『聖學正路』를 李巖淳에게 傳寫하도록 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전한 내용이다.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해 확신도 서지 않는 상황에서 남들에게 배포하려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70

    與姪經進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조카 金經進에게 보낸 편지로, 東巖 柳長源에게 배우게 된 것에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外面을 단속할 뿐만 아니라 心地를 발휘하기 위해 恭遜·忠信을 근본으로 삼도록 당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71

    與孫養觀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손자 金養觀에게 보낸 편지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절에서 공부하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는지를 묻고, 집안의 형편도 좋지 않지만 사치는 천박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며 검소한 생활을 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72

    與孫養觀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養觀에게 보낸 편지이다. 산승이 비록 옛날의 승려와 다르다 할지라도 경력이 많은 사람이니 실망하지 말 것과 서로 잡담을 나누는 대신 단정하게 앉아 독서를 할 것, 법당에서 佛像을 보고 즐기는 일이 없을 것, 다소 아는 것이 있다고 바로 내면세계를 지향하지 말 것,
    출처 : 유교넷
  • 360973

    答族姪學進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族姪 金學進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79년(정조 3)에 썼다. 義理를 정밀하게 살폈다고 할지라도 心法이 바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자세로 공부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며, 의리를 정밀하게 강론함과 동시에 독실하게 믿어야만 마음의 맹아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禪學과
    출처 : 유교넷
  • 360974

    答學進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金學進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0년(정조 4)에 썼다. 일상에서 體·用을 살펴서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自家身心’ ‘許多事務’ ‘省退物欲’의 3항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의혹이 없을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출처 : 유교넷
  • 360975

    仁說疑稟(附先生答)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朱子의 『仁說圖』를 여러 논설을 참고하며 분석하다 의심나는 부분을 스승 李象靖에게 질문한 내용으로, 36세 때인 1759년(영조 35)에 정리한 것으로 추측된다. 질문과 함께 이상정의 답변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그가 1766년(영조 42) 이상정에 이어 『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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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76

    仁說後錄 7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象靖에 이어 자신이 정리한 『仁說』을 분석해보다 맥락이 통하지 않는 부분은 수정하는 한편, 논설이 장황한 부분은 줄이고 소략한 부분은 보완한 내용이다. 『仁說』을 정리한 30년 뒤인 1789년(정조 13)에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말미에는 「仁說圖」가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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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77

    啓蒙疑問(附先生答)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滉이 주자의 『易學啓蒙』을 해설한 『啓蒙傳疑』를 분석하면서 대두한 의문에 대해 스승 李象靖과 주고받은 문답이다. 말미의 「承辨誨後再稟」 1개 항목을 포함해 모두 39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60978

    善惡皆天理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善惡은 모두 天理라는 先賢의 설을 준수해야 하지만, 惡의 理가 섞여 天理의 本然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43세 때인 1766년(영조 42)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360979

    性善說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평소 『孟子』의 性善說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本原을 지적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의 실질적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內·外, 遠·近, 精·粗, 大·小를 가릴 것 없이 추호라도 방만하거나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80

    涵養說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程子가 “涵養에는 오로지 敬을 활용해야 한다. 학문의 진전을 致知에 두어야 敬이 존재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한 말을 준수해야 하지만, 涵養이 禪學에 빠져 들거나 주재할 곳이 없어지고 혼매해지는 것을 막고 致知가 막히거나 흐트러져 知行이 合一하지 못하고 動靜이 서
    출처 : 유교넷
  • 360981

    操舍存亡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마음을 굳게 지키거나 버리고 보존하거나 없앤다는 정확한 의미를 설명한 내용이다. 이는 本然의 善만 말한 것도 아니며 마음의 병만 말한 것이 아니라 心의 體用이 眞·妄, 邪·正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 것으로, 사물을 대하며 활동할 때 반드시 마음을 바로 세우고 흔들리지
    출처 : 유교넷
  • 360982

    讀朱子跋魏元履墓表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朱子의 跋文을 읽다 南宋 孝宗代 정치적 상황이 소략하게 서술된 것을 두고 평가한 내용으로, 1779년(정조 3)에 썼다. 孝宗에게 발탁되자 나라를 떠났다가 죽은 魏元履의 행적에 관한 주자의 誌銘과 張栻의 墓表에 당시의 기록이 소상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강직하고 의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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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83

    梅榴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살구꽃보다 며칠 늦게 피는 매화와 한여름의 늦은 때 피는 석류꽃을 보고 뒤늦게 학문을 성취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위안을 삼은 내용으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360984

    太極圖說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周敦頤의 『太極圖說』을 근간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내용이다. 太極의 전체는 오로지 中正仁義로서 靜을 위주로 하지만 그 기미는 대단히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태극의 공부에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中正仁義를 정립하기 위해 ‘主靜’해야 하며 吉한 것을
    출처 : 유교넷
  • 360985

    存則靜說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朱子가 游誠之에게 답한 편지에 “操는 存이다.”고 한 것의 註에 “存은 곧 靜이면서도 動이다.”라 한 말의 의미를 설명한 내용이다. 心의 전체가 動靜을 겸하며 감응을 기다리지 않고 존재한 후에 靜하고 사라진 후에 動한다면 靜은 本然의 體가 될 수 없고 動은 道에 해악
    출처 : 유교넷
  • 360986

    書李學甫謄示張敬堂性道說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后山 李宗洙가 敬堂 張興孝(1564~1633)의 性道說을 정리해 보내온 것을 계기로 토론한 내용이다. 장흥효가 처음에는 未發의 경우 어느 쪽도 막힘이 없고 어느 때라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주자의 설명에 근거해 ‘性爲統體一太極’이라 했다가, 뒤에 太極이 위주가 되어 兩儀
    출처 : 유교넷
  • 360987

    率性之謂道說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李宗洙가 “性은 體이고 道는 用이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으로, 1787년(정조 11)에 썼다. 이 문제를 두고 서로 7, 8일간 토론을 벌였음을 회고하면서 자신은 朱子가 말한 “率性을 道라 이른다.”라고 한 말을 근거로 性은 道를 포함하고 있기
    출처 : 유교넷
  • 360988

    自慊說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십수 년 동안 自慊이 工夫와 더불어 功效가 된다는 논리를 話頭로 삼아오다가 東巖 柳長源과 4, 5차례 토론을 벌인 다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다. 자겸은 誠意·正心을 향해 나아가는 전제가 되는 것으로, 善을 좋아하고 惡을 싫어하는 마음을 저변에 두면서 만족해하는
    출처 : 유교넷
  • 360989

    率性說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1789년(정조 13) 여름 率性에 관한 의문을 艮谷 李埦과 토론한 다음 스스로 그 의미를 터득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1790년(정조 14)에 썼다. 李滉의 ‘心無體用’의 글을 읽고 비로소 體·用 이전에 無體·無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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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90

    大山先生碣文中四七說往復修改辨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樊巖 蔡濟恭(1720~1799)이 李象靖의 墓碣文을 작성하면서 理·氣는 ‘不相雜’이면서도 ‘不相離’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分看의 가운데 合看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四端·七情은 渾在하여 一物이 된다고 한 渾淪說에 대해 分看일 경우 사단·칠정은 合看의 바깥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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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91

    朴南野甲乙錄辨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南野 朴孫慶(1713~1782)이 저술한 『甲乙錄』에 수록되어 있는 仁說을 朱子와 張栻의 논리에 근거해 逐條 비판한 내용이다. 모두 7개 항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92

    先師文集校正時意見不合處大目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大山集』을 간행하기 위한 교정 작업 과정에서 대두한 쟁점들을 정리한 것으로, 1784년(정조 8)에 썼다. 모두 4개 항목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93

    通陶山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陶山書院에 보낸 通文이다. 『退溪集』의 교정본 편찬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義城의 安東金氏를 비롯한 士林들이 晩翠堂 金士元(1539~1601)의 問目을 포함할 것을 요청한데 대해 거부함에 따라 그 부당성을 지적한 通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60994

    書示孫養觀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손자 金養觀에게 살아가면서 경계해야 할 바를 정한 경계문으로, 1797년(정조 21)에 썼다. 朱子가 長子를 가르치면서 준 15개 항목과 함께 자신이 직접 작성한 僭言 13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60995

    兒子入籍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아들 金慶進을 戶籍에 등재하면서 당부한 내용으로, 1764년(영조 40)에 썼다.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날은 곧 職事를 담당하는 날로서 임금을 섬기고 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한편, 집에서의 講習을 통해 仁義禮智의 길과 格致·誠正·修齊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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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96

    命兒子名絅光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아들의 이름을 絅光이라 지어주면서 그 의미를 설명한 내용이다. 마음을 바로 세워 그것을 양성하며 덕의 길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絅이라 했고, 문채가 빛을 발하고 은은한 가운데 밝은 빛을 비추기를 바라는 뜻에서 光이라 했다며 그 연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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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97

    聞韶孝義烈事蹟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義城縣令 徐命敷로부터 邑誌에 수록되어 있는 의성출신 孝子 20명과 烈女 10명, 義士 3명의 祭文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고 그들의 事蹟을 정리한 다음 쓴 序文으로, 1767년(영조 43)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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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998

    考證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孔子에서 朱子를 거쳐 退溪에 이르는 학문이 儒學의 嫡統이라는 사실을 『朱子書節要』와 『退溪書節要』의 편지글을 주축으로 논증한 『考證』을 저술하면서 쓴 序文으로, 1774년(영조 50)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360999

    釋學正贓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佛敎가 사람을 현혹하여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유학적 관점에서 논증한 『釋學正贓』을 저술하면서 쓴 序文으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출처 : 유교넷
  • 361000

    聖學正路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
    儒學이 심성함양과 더불어 孝悌·忠信의 올바른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정당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聖學正路』를 저술하면서 쓴 序文으로, 1782년(정조 6)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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