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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861) 3월 유치호(柳致皓)가 저곡(楮谷)에 자신의 근황과 상대 아들의 학문을 칭송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유치호아우 유치호(柳致皓 : 1800∼1862)가 신유년(1861) 3월 12일에 저곡(楮谷)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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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김진곤(金鎭坤) 등이 수급자 미상에게 가족의 근황과 건강을 염려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김진곤 등 6인김진곤(金鎭坤) 등 6명이 임자년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 안부 전하기, 현안 설명 및 부탁 사항, 마무리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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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1852) 7월 상욱(相郁) 등이 반유(泮留)에 문중 현안인 상소문을 올리는 과정을 언급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욱 등 7인친척인 상욱(相郁 : 1786∼1864)등 7명이 임자년(1852) 7월 15일 반유(泮留)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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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1852) 7월 상건(相健)이 형에게 가족의 근황과 문중 어른의 활동 등을 전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상건6촌 아우인 상건(相健 : 1795∼1867)이 임자년(1852) 7월 13일에 형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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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2월 상운(相運) 등이 저곡(楮谷) 익동(翊洞)에 조상 추모 사업을 칭송하며 보낸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상운 등 5인친척 아우인 상운(相運 : 1781∼1864) 등 5명이 2월 21일 저곡(楮谷) 익동(翊洞)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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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년(1699) 7월 현일(玄逸)이 수급자 미상에게 상주로서 근신하며 지냄을 전한 간찰(簡札)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현일기묘년(1699) 7월 30일 상주인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이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친척이나 스승, 친구, 동문 등과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한다. 형식은 대체로 서두 인사, 근황 및 가족 동향 여쭈기, 자신과 가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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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9월 조계영(趙啓永)이 외삼촌인 처사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조계영임술년 9월 3일 생질(甥姪)인 조계영(趙啓永 : 본관 한양)이 내구(內舅)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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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1969) 3월 이춘발(李春發)이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좨주 세자시강원찬선을 역임한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9대손 춘발기유년(1969) 3월 27일 9대손 이춘발(李春發 : 재령, 1912∼1978)이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좨주 세자시강원찬선을 역임한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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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李宣浩)가 종숙모(從叔母) 유인(孺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질 이선호종질(從姪 : 5촌)인 이선호(李宣浩 : 재령, 1906∼1932)가 종숙모(從叔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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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李相健)이 벗인 권구서(權龜瑞)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우 이상건벗인 이상건(李相健 : 안릉, 1795∼1867)이 권구서(權龜瑞 : 본관 안동)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망자를 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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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1928) 12월 이선발(李宣發)이 백수(伯嫂)인 유인(孺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선발무진년(1928) 12월 11일 시동생인 이선발(李宣發 : 재령, 1880∼1959)이 맏형수[伯嫂]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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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1866) 2월 종제인 이기영(李岐榮)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기영병인년(1866) 2월 18일 종제(從弟 : 4촌 동생)인 이기영(李岐榮 : 1830∼1895)이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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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10월 외6촌인 박치기(朴致騏)가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종제 박치기정묘년 10월 30일 외6촌 아우인 박치기(朴致騏 : 함양)가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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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10월 30일 외7촌인 박치화(朴致和)가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내종 박치화정묘년 10월 30일 외6촌인 박치화(朴致和 : 함양)이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이군(李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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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터를 잡으면서, 혼령에게 고한 축문(祝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건축물의 터를 잡으면서 혼령에게 고한 축문(祝文)이다. 낙동강과 학가산 등 주변 경관을 언급하면서 이곳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유교적인 덕성을 실천하는 곳이 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리고 어진 후손들과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어 유학이 진흥되고 번성되기를 기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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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9월 남병철(南秉哲)이 안릉(安陵)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남병철임술년(1982) 9월 3일 정으로 사귄 아우뻘인 남병철(南秉哲 : 본관 영양)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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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9월 장석기(張碩基)가 간송(澗松) 사형(査兄)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장석기임술년(1982) 9월 3일 대대로 알고 지낸 아우뻘인 장석기(張碩基 : 본관 안동)가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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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1982) 9월 벗인 이중락(李中洛)이 처사(處士) 간송(澗松)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우 이중락임술년(1982) 9월 3일 벗인 이중락(李中洛 : 1905∼1985)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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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1982) 9월 이병운(李秉運)이 중부(仲父)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병운임술년(1982) 9월 3일 이병운(李秉運 : 1928∼1994)이 중부(仲父 : 가운데 숙부)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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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인 손주익(孫鑄翼)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 손주익임술년(1982) 9월 3일 친척인 손주익(孫鑄翼 : 본관 월성)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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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從孫)인 이철희(李喆熙)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손 철희임술년(1982) 9월 3일 종손(從孫 : 4촌의 손자)인 이철희(李喆熙 : 1948∼?)가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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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걸(李秉杰)이 숙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병걸임술년(1982) 9월 3일 조카인 이병걸(李秉杰 : 1922∼1999)이 숙부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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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섭(李元燮)이 친척 조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원섭임술년(1982) 9월 3일 친척 손자인 이원섭(李元燮 : 1925∼1995)이 친척 조부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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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았던 남경순(南慶純)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남경순임술년(1982) 9월 3일 가르침을 받았던 남경순(南慶純 : 본관 영양)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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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원(李海)이 사장(査丈)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시생 이해원임술년(1982) 9월 3일 가르침을 받았던 이해원(李海源 : 여강, 1927∼?)이 사장(査丈 : 사돈 어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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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인 이상채(李相采)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자죄인 이상채계미년(1823) 5월 14일 상주인 이상채(李相采 : : 1787∼1854)가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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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질(甥姪)인 이상채(李相采)가 유인(孺人)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상채신사년(1821) 6월 생질(甥姪 : 누나의 아들)인 이상채(李相采 : 1787∼1854)가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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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종손(再從孫)인 이수의(李壽嶷)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손 수의병진년 12월 13일 재종손(再從孫 : 6촌)인 이수의(李壽嶷)가 재종대부(再從大父)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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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용(趙慤容)이 장모인 유인(孺人) 완산유씨(完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조각용병술년 5월 16일 친척인 조각용(趙慤容 : 본관 한양)이 장모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완산유씨(完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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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발(李僖發)이 숙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희발병술년(1886) 5월 17일 친척인 이희발(李僖發 : 1868∼1914)이 숙부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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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朴載明)이 손윗 자형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박재명병술년(1886) 5월 17일 처남인 박재명(朴載明)이 손윗 자형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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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기록자료>고문서 / 제참최인 박영수병술년(1886) 5월 16일 상주이며 아우뻘인 박영수(朴榮秀 : 본관 금성)가 벗인 이덕진(李德鎭 : 본관 안릉)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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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숭(李壽嵩)이 4촌 형인 간송(澗松)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재최인 수숭병술년(1886) 5월 17일 상주이며 4촌 동생인 이수숭(李壽嵩 : 1846∼1905)이 4촌형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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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의(李壽嶷)가 4촌 아우인 이덕진(李德鎭)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형 수의병술년(1886) 5월 17일 4촌형인 이수의(李壽嶷 : 1840∼1886)가 4촌 아우인 이덕진(李德鎭)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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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인 이인발(李仁發)이 유인(孺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자 인발임인년(1902) 9월 25일 조카인 이인발(李仁發 : 1863∼1915)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전주류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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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발(李僖發)이 숙부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희발임인년(1902) 9월 24일 조카인 이희발(李僖發 : 1868∼1914) 숙부인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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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발(李潤發)이 종숙부(從叔父)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윤발임인년(1902) 9월 25일 종질(從姪 : 5촌)인 이윤발(李潤發 : 1873∼1921)이 종숙부(從叔父 : 5촌)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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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李孝燮)이 4촌 형인 간송(澗松)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참최인 효섭병술년(1886) 5월 17일 4촌 동생이며 상주인 이효섭(李孝燮 : 1850∼1914)이 4촌형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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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채(李相采)가 고모(姑母)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상채기묘년 5월 20일 조카인 이상채(李相采 : 1787∼1854)가 고모(姑母)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고모의 정숙하고 어진 성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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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李岐榮)이 종질(從姪)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군(李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기영갑신년(1884) 9월 11일 종숙(從叔 : 5촌)인 이기영(李岐榮 : 1830∼1895)이 종질(從姪 : 5촌 조카)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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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발(李仁發)이 숙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참최인 인발갑신년(1884) 9월 11일 조카이며 상주인 이인발(李仁發 : 1863∼1915)이 숙부인 처사(處士) 부군(父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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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영(李溥榮)이 내종형(內從兄)인 처사(處士) 안릉(安陵) 조공(趙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이부영계축년(1853) 8월 7일 외4촌 동생인 이박영(李溥榮 : 1819∼1889)이 내종형(內從兄 : 4촌)인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조공(趙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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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영(南萬榮)이 벗인 처사(處士) 안릉(安陵) 이상재(李相載)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 남만영벗인 남만영(南萬榮 : 본관 영양)이 처사(處士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 이상재(李相載)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는 어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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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찬(朴瑀燦)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박우찬병술년(1886) 5월 17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나이가 어린 자인 박우찬(朴瑀燦 : 금성)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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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용(朴宇鏞)이 친척 형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박우용병술년(1886) 5월 17일 친척 아우인 박우용(朴宇鏞 : 본관 함양)이 친척 형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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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전(李羲傅)이 친척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제 이희전친척인 이희전(李羲傳 : 본관 영천)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집안의 고유한 유풍을 계승하고 유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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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화(李壽崈)가 죽은 부인 완산유씨(完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 이수화이수화(李壽崈 : 1847∼1884)가 죽은 부인 완산유씨(完山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부인과 단란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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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찬(朴琥燦)이 장인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박호찬임인년(1902) 9월 25일 사위인 박호찬(朴琥燦 : 본관 금성)이 장인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장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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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孫顯德)이 장모인 유인(孺人)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손현덕사위인 손현덕(孫顯德 : 월성)이 장모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서두에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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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필(趙性必)이 외삼촌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조성필을묘년 3월 29일 외생(外甥)인 조성필(趙性必 : 본관 함안)이 외구(外舅)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