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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았던 남정호(南楨浩)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남정호임술년(1982) 9월 3일 가르침을 받았던 남정호(南楨浩 : 본관 영양)가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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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호(李武浩)가 삼종형(三從兄)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무호임술년(1982) 9월 3일 삼종질(三從姪 : 9촌)인 이무호(李武浩 : 1905∼1991)가 삼종형(三從兄 : 9촌)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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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발(李仁發)이 숙모인 유인(孺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인발을유년(1885) 8월 25일 조카인 이인발(李仁發 : 1863∼1915)이 숙모인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전주류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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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우(柳淵友)가 친누나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친가제 재최인 유연우친 동생이며 상주인 유연우(柳淵友 : 본관 전주)가 재령 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간 누나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어질고 정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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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발(李仁發)이 숙모인 유인(孺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참최인 인발갑신년(1884) 9월 11일 조카이며 상주인 이인발(李仁發 : 1863∼1915)이 숙모인 유인(儒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전주류씨(全州柳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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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월(南有鋮)이 친척인 이사연(李士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남유성친척인 남유성(南有鋮 : 본관 영양)이 이사연(李士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어려서부터 집안의 철저한 유교적인 교육을 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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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증(南孝曽)이 장모인 유인(孺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남효증기사년 12월 11일 사위인 남효증(南孝曽 : 본관 영양)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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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호(李宜鎬)가 외숙모 유인(孺人)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의호기묘년(1879) 11월 19일 생질(甥姪) 이의호(李宜鎬 : 1850∼?)가 외숙모(外叔母)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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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李鉉重)이 친척 할아버지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현중친척 손자인 이현중(李鉉重 : 1825∼1892)이 친척 할아버지인 처사공(處士公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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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으로 사귄 아우인 백중목(白重穆)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참최인 백중목병인년 10월 29일 정으로 사귄 아우이며 상주인 백중목(白重穆 : 본관 대흥)이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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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쪽 친척인 박치구(朴致龜)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종 박치구병인년 10월 30일 외가쪽 친척인 박치구(朴致龜 : 본관 함양)가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를 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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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李相健)이 재종질(再從姪) 이사연(李士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상건을축년(1865) 10월 30일 재종숙(再從叔 : 7촌)인 이상건(李相健 : 1795∼1867)이 재종질(再從姪) 이사연(李士淵)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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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인 이건발(李健發)이 유인(孺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 이건발무진년(1928) 12월 10일 부친인 이건발(李健發 : 1872∼1947)이 유인(孺人 : 일반 부인의 칭호)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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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영(李復榮)이 형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복영병인년(1866) 10월 30일 아우인 이복영(李復榮 : 1827∼1878)이 가운데 형인 처사공(處士公 : 벼슬하지 않고 지낸 선비)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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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악(李壽岳)이 삼종숙(三從叔)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수악병인년(1866) 10월 30일 삼종질(三從姪 : 9촌)인 이수악(李壽岳 : 1845∼1927)이 삼종숙(三從叔)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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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악(李壽岳)이 삼종숙(三從叔)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질 수악병인년(1866) 10월 30일 삼종질(三從姪 : 9촌)인 이수악(李壽岳 : 1845∼1927)이 삼종숙(三從叔)인 처사공(處士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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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李壽璣)가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수기병인년(1866) 10월 30일 조카인 이수기(李壽璣 : 1846∼1921)이 숙부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와 사별해야 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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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후배인 박재식(朴在植)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향후생 박재식임술년(1982) 9월 3일 고향의 후배인 박재식(朴在植 : 함양)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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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익(南重益)이 외삼촌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자자 남중익임술년(1982) 9월 3일 누나의 아들인 남중익(南重益 : 본관 영양)이 외삼촌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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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예모(南禮模)가 처숙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서 남예모임술년(1982) 9월 3일 조카 사위인 남예모(南禮模)이 처숙부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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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근(權五根)가 사형(査兄)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권오근임술년(1982) 9월 3일 사돈 관계이며 아우뻘인 권오근(權五根 : 본관 안동)이 사형(査兄 : 사돈 관계이며 형임)인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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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인 조철호(趙哲鎬)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조철호임술년(1982) 9월 3일 처남인 조철호(趙哲鎬 : 본관 한양)가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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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화(孫晉華)가 장인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손진화병인년 2월 18일 사위인 손진화(孫晉華 : 본관 월성)가 장인인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의 가문 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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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알고 지내던 동생인 남유수(南有秀)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제 참최인 남유수병인년 10월 30일 대대로 알고 지내며 상주인 동시에 아우뻘인 남유수(南有秀 : 영양)가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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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선(李壽璿)이 숙부인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질자 수선병인년 10월 30일 조카인 이수선(李壽璿)이 숙부인 처사(處士) 부군(府君)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이다. 제문은 죽은 이가 생전에 남긴 말이나 행동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을 올린 뒤에 읽었다. 망자가 떠난 이후의 쓸쓸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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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촌 동생인 이수헌(李壽憲)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수헌4촌 동생인 이수헌(李壽憲 : B5888재령, 1842∼1915)이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와 사별한 정회를 절실하게 그려내었다. 망자가 유교적인 인품을 익혀, 어진 선비로서 유림 활동과 가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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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면(呂相冕)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지상세제 여상면친 아우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여상면(呂相冕 : 성산)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학문과 어진 인품을 회고하면서 그가 유교적인 인격을 형성하여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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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3월에 금양(錦陽)의 유허비를 세우면서 영전에 올린 축문(祝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지명제 노한용임진년 3월에 노한용(盧漢容)이 금양(錦陽)의 유허비를 세우면서 주인공의 행적과 업적을 추모하면서 그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지은 축문(祝文 : 혼령에게 올리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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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식(辛佑植)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장(李丈)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시세생 신우식가르침을 받은 신우식(辛佑植)이 간송(澗松)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빼어난 자질이 고운 난초와 같다고 하면서 그기 가문의 우수한 전통을 이은 선비였다고 했다. 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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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인 이상채(李相采)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상채친척인 이상채(李相采 : 재령, 1787∼1854)가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와 평소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립고 애틋한 심정을 표현했다. 망자가 평소 자신을 알뜰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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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았던 권영두(權永斗)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자 권영두가르침을 받았던 권영두(權永斗 : 안동)가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권영두는 스승을 잃은 슬픔과 함께 스승의 빼어난 학문과 탁월한 유교적인 인격미를 회고하면서 평소 그가 자신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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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았던 박회찬(朴晦燦)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박회찬가르침을 받았던 박회찬(朴晦燦 : 금성)이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쓸쓸한 정회를 문면에 담아냈다. 망자가 떠났지만 망자가 즐겼던 산수 자연의 정경과 자연 대상을 표현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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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았던 유치호(柳致皜)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후학 유치호가르침을 받았던 유치호(柳致皜 : 전주)가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유교적인 인격미와 우수한 학문 정신에 대해 추모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망자의 의리 정신과 효행 및 우애 정신은 역사에 빛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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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받은 권석하(權錫河)가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권석하가르침을 받은 권석하(權錫河 : 안동)가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는 고유한 집안 유풍을 계승하여, 어진 선비의 형상을 갖추었다고 술회하였다. 이와 함께 망자는 문학과 도덕 측면에서 손색이 없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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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처럼 친하게 지낸 박우영(朴宇永)이 간송(澗松) 처사(處士) 이공(李公)을 추모하며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척소제 박우영형처럼 친하게 지낸 박우영(朴宇永 : 금성)이 수급자미상의 영전에 망자의 생전 행적과 인품을 회고하면서 슬픈 마음을 표현한 만사(輓詞)이다. 망자의 우수한 학문과 빼어난 인격을 추모하면서 그가 유교적 인격미를 완성하여, 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덕행과 인격미를 추모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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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10월 장례시 주의해야 할 사안과 중요 사안에 대해 기록한 안장기(安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안과 주의해야 할 사안에 대해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인데, 임신년 10월 26일에 작성한 문건이다. 문건의 서두 부분에 상주의 생년 간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망자를 추모하면서 망자의 일생을 회고하는 4언 형식의 짧은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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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某)년 9월 장례시 주의해야 할 사안과 중요 사안에 대해 기록한 안장기(安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안과 주의해야 할 사안에 대해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인데, 9월 30일에 안장한 내용을 기록한 문건이다. 문건의 서두 부분에 상주 및 아들, 며느리의 생년 간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망자를 안장하면서 일자에 따라 진행된 장례 일정을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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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장례 절차에 따른 일정과 장례시 주의 사안을 기록한 안장기(安葬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장례를 치르면서 관련 사안과 주의해야 할 사안에 대해 기록한 [안장기(安葬記)]인데, 서두 부분에 상주의 생년 간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는 망자의 장례 절차에 따른 일정을 기록했다. 이 외에 장례시, 주의할 점과 기피해야 할 사안에 대해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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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날짜를 경자년 2월로 정하고 통보한 연길(涓吉)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이 문건은 문서 분류상 편지글에 해당하는 간찰(簡札)인데, 구체적으로 밝히면, 혼례 절차상 내왕하기 위한 예식서장(禮式書)이다. 혼례 날짜를 정해 통보한 연길(涓吉)인데, 혼인 날짜는 경자년 2월 17일 술시로 정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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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李玄逸)의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의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이다. 서두에서 갈암의 행적과 유교적 덕망을 술회하면서 갈암에 대한 신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 강조하였다. 이어 갈암의 영남 유림 활동과 가문 배경을 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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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상(李鼎相)이 이현일(李玄逸)의 신원과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 / 기록자료>고문서 / 진사 이정상이정상(李鼎相 : 1809∼1871)이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의 신원을 해결하여 주고,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이다. 갈암의 영남 유림 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상 및 행적과 유교적 덕망을 술회하면서 갈암에 대한 신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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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李相奎)가 서얼 규제 모순의 개선을 주청한 상소문(上疏文)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상규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인 이상규(李相奎 : 1776∼1851)가 첩의 자식을 소홀하게 대하여, 신분적인 제한과 차별을 두는 조정의 제도상 모순을 들어, 이에 대한 개선을 주청한 상소문(上疏文)이다. 역대 제왕들이 서얼에 대해 우대했던 내력을 서술히면서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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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李玄逸)의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의 직첩(職牒)을 내려 주기를 주청한 상소문(上疏文)이다. 갈암의 빼어난 행적과 유교적 덕망을 술회하면서 갈암에 대한 신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 역설하였다. 그리고 영남 유림 사회에서 갈암의 위상과 유림 활동 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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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병기(南炳基)가 이상채(李相采)의 행적 및 가계에 대해 기록한 졸수재이공묘지명(守拙齋李公墓誌銘) / 기록자료>고문서 / 남병기남병기(南炳基 : 영양)가 수졸재(守拙齋) 이상채(李相采 : 재령, 1787∼1854)의 행적 및 가계에 대해 기록한 [졸수재이공묘지명(守拙齋李公墓誌銘)]이다. 서두에서 재령 이씨 가문의 배경과 내력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이상채가 어려서부터 유교적인 가문의 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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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복이 이상채(李相采)의 행적 및 가계에 대해 기록한 졸수재이공묘지명(守拙齋李公墓誌銘) / 기록자료>고문서 / 허복허복(許鍑)이 수졸재(守拙齋) 이상채(李相采 : 재령, : 1787∼1854)의 행적 및 가계에 대해 기록한 [수졸재이공묘지명(守拙齋李公墓誌銘)]이다. 서두에서 재령 이씨 가문의 배경과 내력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상채가 어려서부터 철저한 유교적인 가문의 철저한 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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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7월 운양서원(雲陽書院)에서 향례(享禮)를 위한 도유사(都有司) 추천을 요구한 고목(告目) / 기록자료>고문서 / 운양서원경신년 7월 14일 운양서원(雲陽書院)에서 보낸 문건인 고목(告目)인데, 운양서원에서 8월 23일에 향례(享禮)를 실시하기 위한 도유사(都有司)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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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8월 금호서원(琴湖書院)의 김홍두(金洪斗)가 이 원장(李 院長)에게 향례를 위한 망기를보낸 고목(告目) / 기록자료>고문서 / 금호서원 장무 김홍두병진년 8월 1일 금호서원(琴湖書院)의 장무(掌務)인 김홍두(金洪斗)가 이 원장(李 院長)에게 보낸 문건인 고목(告目)인데, 금호서원에서 8월 19일에 향례(享禮)를 실시하기 위한 망기(望記 : 예식을 거행하는 순서를 기록한 문건)를 보내니, 살펴 봐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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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서원(仁山書院)의 훼철로 인해 그곳에 배향되었던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 1619∼1672)의 위패를 모실 수 있는 배려를 해달라고 비변사(備邊司)에게 올린 문건이다. 이휘일의 행적과 저서를 언급하고, 영남 유림 사회에서 그의 위상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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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3월에 논을 매매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작성한 논 매매 계약서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노 조계월논을 매매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작성한 논 매매 계약서이다. 조선 시대의 법전(法典)에 의하면, 서로 매매가 성립된 이후, 100일 이내에 관청에 신고하여 입안(立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 문건은 논 매매 계약서인데, 갑진년 3월 16일에 작성되었다. 논주인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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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康熙) 2년 11월에 논을 매매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작성한 논 매매 계약서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조계월논을 매매하고 이를 증빙하기 위해 작성한 논 매매 계약서이다. 조선 시대의 법전(法典)에 의하면, 서로 매매가 성립된 이후, 100일 이내에 관청에 신고하여 입안(立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 문건은 논 매매 계약서인데, 강희(康熙) 2년 11월 24일에 작성되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