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1301
임신년 8월 특정 사실을 기록하고 상호 증명 자료로 삼기 위해 만든 수표(手標)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실을 기록해서 상호 증명 자료로 삼기 위해 만든 수표(手標)인데, 임신년 8월 10일에 작성한 것이다. 이 수표는 생질인 가선대부 이조참판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이 외삼촌 장 생원(張生員) 댁에 써 준 것이다. 내용은 이현일이 조정의 부름을 받아출처 : 유교넷 -
361302
혼례 일자를 선택하여 보낸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실을 기록한 치부기(置簿記)인데, 혼례 일자를 선택하여, 보낸 초례택일(醮禮擇日) 문건이다. 이러한 형식의 문서를 연길(涓吉 : 날받이 문서)라고도 한다. 신랑은 정묘년에 태어났고, 신부는 무진년에 태어 났다. 혼인 날짜는 1월 19일인데, 양력으로는 3월 3출처 : 유교넷 -
361303
혼례 일자와 주의 사항을 전한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실을 기록한 치부기(置簿記)인데, 혼례 일자를 선택하여, 보낸 초례택일(醮禮擇日) 문건이다. 이러한 형식의 문서를 연길(涓吉 : 날받이 문서)라고도 한다. 신랑은 을사년에 태어났고, 신부도 을사년에 태어난 동갑이다. 혼인 날짜는 2월 18일이라고 했다. 이어출처 : 유교넷 -
361304
양자를 맞이하는 일자를 선택하여 보낸 치부기(置簿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실을 기록한 치부기(置簿記)인데, 양자를 맞이하는 일자를 선택하여, 보낸 솔양택일(率養擇日) 문건이다. 아버지는 임신생이고, 어모니는 기사생이며, 아들은 을사생이다. 양자를 맞아들이는 일자는 10월 26일인데, 부득이 아 날에 시행할 수 없으면, 10월 4일에출처 : 유교넷 -
361305
무신년 9월 김호병(金顥秉) 등이 향교나 서원에 갈암을 추모하는 남악정 건립의 협조를 구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임천서원 도유사 김호병 등 35인임천서원(臨川書院) 도유사(都有司) 김호병(金顥秉) 등 35명이 무신년 9월에 연서하여 인근 유림 단체인 향교나 서원에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출처 : 유교넷 -
361306
병오년 7월 김형록(金亨祿)이 문중의 족보 편찬 사업 추진에 대해 유림이나 향교에 협조를 구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평구(平邱) 도심리(陶心里) 묘를 관리하는 자인 김형록(金亨祿)이 병오년 7월 9일에 인근 유림 단체인 향교나 서원에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재령 이씨출처 : 유교넷 -
361307
유승우(柳承佑) 등이 갈암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고자 유림이나 향교에 협조를 구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금양단소 도유사 유승우 등 26인금양단소(錦陽檀所) 도유사(都有司) 유승우(柳承佑) 등 26명이 인근 유림 단체인 향교나 서원에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이 평출처 : 유교넷 -
361308
장병열(張秉烈) 등이 여러 유사들에게 갈암을 추모하는 남악정을 세운 것에 대해 축하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봉림정회중 장병렬 등 12인봉림정회중(鳳林亭會中) 장병열(張秉烈) 등 12명이 서양정(西陽亭) 여러 유사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이 평소 제자들을출처 : 유교넷 -
361309
기유년 3월 장인섭(張麟燮) 등이 향교나 서원에 갈암을 추모하는 남악정의 상량식에 참석을 부탁하는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경광단소 도유사 장인섭 등 22인경광단소(鏡光檀所) 도유사(都有司) 장인섭(張麟燮) 등 22명이 기유년 3월 16일에 인근 유림 단체인 향교나 서원에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출처 : 유교넷 -
361310
경자년 3월 이병수(李炳壽) 등이 향교나 서원에 갈암을 추모하는 남악정 건립의 협조를 구한 통문(通文) / 기록자료>고문서 / 미천강당 유사랑 이병수 등 29인미천강당(尾泉講堂) 유사랑(儒舍郞) 이병수(李炳壽) 등 29명이 경자년 3월에 인근 유림 단체인 향교나 서원에 보낸 통문(通文 : 유림 관련 사안이나 문중 현안에 대해 문중이나 유림 관련 단체 등에 보낸 글)이다. 다룬 사안은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출처 : 유교넷 -
361311
상제와 관련된 의복을 입는 일자와 입는 사람들에 대해 규정한 것을 기록한 복차(服次)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상제와 관련된 의복을 입는 일자와 입는 사람들에 대해 규정한 것을 기록한 [복차(服次)]이다. 상제가 진행되는 일정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이 입는 상복과 입는 일자를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361312
정미년 8월 서양정 창건시 일을 주관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안을 추진하고, 해당 인물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인데, 정미년 8월 15일의 기록이다. 서양정(西陽亭)을 창건할 때, 그 일을 주관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건이다. 도도감, 도감, 도변, 택일, 개기제사 등의 직함 아래 그 직임을 담당한 유사의 명단을출처 : 유교넷 -
361313
신해년 3월 보림서당(寶林書堂) 석채례(釋菜禮)를 거행시 일을 주관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안을 추진하고, 해당 인물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인데, 신해년 3월 17일의 기록이다. 보림서당(寶林書堂) 석채례(釋菜禮)를 거행할 때, 그 일을 주관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건이다. 직분별로는 초헌, 아헌, 종헌, 찬자, 알자, 진설, 봉향, 봉로출처 : 유교넷 -
361314
갈암의 신원을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릴 때 일을 분담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 사안을 추진하고, 해당 인물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인데, 갈암의 신원을 촉구하고, 벼슬을 내려 주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릴 때, 그 일을 분담한 유사들의 명단을 기록한 [갈암급첩소임록(葛庵給牒疏任錄)]이다. 이 상소문을 올리는데 최고 책임자인 소수(疏首)출처 : 유교넷 -
361315
병진년 8월 금호서원(琴湖書院) 도유사(都有司)인 이장호(李長浩)의 명단이 기록된 망기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특정한 사안을 추진하면서 이에 따른 기록을 남긴 문건으로, 병진년 8월 1일에 작성한 것이다. 금호서원(琴湖書院) 도유사(都有司)인 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이장호(李長浩 : 1905∼1981)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361316
갈암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남악정을 중수하고 기념하기 위한 남악정중수일기(南嶽亭重修日記)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 1627∼1704)의 행적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건립한 남악정을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성한 [남악정중수일기(南嶽亭重修日記)]이다. 갈암의 평소 행적을 강조하면서 이 정자를 세우게 된 내력을 서술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361317
함풍(咸豊) 2년 명서암(冥棲庵)에서 전해지는 노비들의 명단을 기록한 명서암전래노비안(冥棲庵傳來奴婢案)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명서암(冥棲庵)에서 전해지는 노비들의 명단을 기록한 [명서암전래노비안(冥棲庵傳來奴婢案)]인데, 함풍(咸豊) 2년(1852)의 기록이다. 노비의 성명을 기록하고, 그 하단에 그의 인적 사항을 기록했다. 죽은 노비는 별도로 기록했다. 그리고 집안에 거주하며, 노동력을 제출처 : 유교넷 -
361318
갑인년 도산서원이 간역소에 돈을 보낸다는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미상갑인년 4월 21일에 50냥을 도산서원 간역소에 보내니 잘 받아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19
신축년 임익상이 도산서원에 돈을 보낸다는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임익상신축년 11월 모일에 임익상이 돈 30냥을 도산서원에 드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0
계묘년 유호영이 도산서원에 재물로 보내는 물목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류호영계묘년 2월 11일에 유호영이 도산서원에 제물로 보내는 물목단자이다. 황촉 1쌍과 향 1톳을 도산서원에 올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1
계해년 유동걸이 도산서원에 유사직을 면하게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류동걸癸亥年 5월 25일에 안동 朴谷의 柳東杰이 陶山書院에 보내는 단자이다. 류동걸은 집안의 喪事 때문에 부득이하지만 도산서원의 제례 당시 유사의 직임을 면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단자이다. 行草를 전혀 쓰지 않고 정갈한 楷書로 단자를 작성한 것은 도산서원에 대한 존의를 나타출처 : 유교넷 -
361322
신축년 정대위가 도산서원 유사들에게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정대위신축년 11월 10일에 丁大緯가 도산서원 유사들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尙德祀 廟變에 대해 통박한 심정을 전하고 자신이 즉시 부임해야하는데 公事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우선 편지로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3
임인년 강빈이 부모님 병환 간병 등 대임직을 면하게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강빈임인년 8월 3일에 재말 강빈이 자신이 중요한 책임을 담당하였으나 부모님의 병환으로 잠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지경이고 또 大享이 다가오므로 여러 준비를 늦출 수 없는 지경에 있으므로 대임을 할 수 없다고 아뢰고 바꿔 주기를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4
병술년 이만일이 도산서원에 체면을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일병술년 7월 3일에 도산서원에 직임을 맡은 이만일이 형님의 병환이 위중하고 또 表從의 慘制를 당해서 여러 가지로 직임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체면해 주기를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5
병진년 이만표가 도산서원에 체면을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표병진년 11월 5일에 도산서원의 직임을 맡은 이만표가 적임이 아니라면서 체면해 주기를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6
병진년 이만표가 도산서원에 체면을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표병진년 11월 5일에 도산서원에서 오래도록 首席의 직임을 맡고 있는 이만표가 적임이 아니며 또한 朞降制를 만나서 직임을 맡기 어려우므로 체개해 줄 것을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7
도산서원이 제자록 간행을 적은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재임陶山書院의 諸子錄을 간행하는 것에 관한 내용.출처 : 유교넷 -
361328
병진년 이만일이 도산서원에 직임을 면하게 청하며 보낸 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일병진년 7월 3일에 도산서원에서 직임을 맡은 이만일이 자신의 직임을 맡기 어려운 사정을 여러 번 알리고 체개해 주기를 바랐으나 허락 받지 못해서 다시 허락해 달라고 청하는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361329
1786년 김한기가 62세 때 가족 및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 / 기록자료>고문서 / 영해부 행사건륭 51년 1월 모일 즉 1786년 (정조 10년 병오년) 영해부 북면 병곡리에 거주하는 망창역노 김한기의 호적단자이다. 나이가 62세로 을사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며, 그의 四祖와 거느린 식솔로 아들 2명과 며느리 1명 딸1명이 기재 되어있다.출처 : 유교넷 -
361330
1897년 이만이 도산서원으로 원향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규1897년 2월 1일 (고종 34) 剡村의 李晩煃가 院享을 신중하게 거행해야 한다고 도산 서원에 보낸 편지이다. 조정의 명으로 크고 작은 향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향교에서는 장차 향사를 지내려고 하고 있지만 서원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조정출처 : 유교넷 -
361331
1897년 권복삼이 관으로 잘못된 역의 부과를 면하게 해달라며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복삼臨東面에 사는 權卜三의 자식인 權日億에게 選武價布에 充定토록 하라는 통지문에 대해 권복삼이 권일억은 자신의 자식이 아님을 밝히고 잘못된 역의 부과를 면하게 해달라는 소청문이다. 1897년(光武1) 10월에 권복삼에 의해 관에 제출되었다. 이것이 도산서원에 있게 된 것출처 : 유교넷 -
361332
성주에게 도산서원에 비자격자의 출입금지를 호소하며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도산서원성주에게 도산서원의 창건 내력을 소개하고 소속 모입 인원을 물침할 것을 호소한 문서이다.<br/> 도산서원은 선정신 이황이 장수유식하던 곳이어서 현인을 존모하는 의미에서 서원의 모입 인원에 대해서 각별히 물침하게 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문서의 결락이 있으므로 연대출처 : 유교넷 -
361333
송기식이 노유들에게 유자들의 할일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송기식송기식이 도산서원의 노유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낸 시기는 아마도 한창 외세가 밀려오던 한말시기로 추측된다. 송기식은 도산서원의 위상을 먼저 말한 다음 현재 살고 있는 유자들이 해야할 일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유생을 선발하여 경학사범으로 삼아 각 고을의 학생들을 가출처 : 유교넷 -
361334
이만헌 등 2명이 일근의 처벌건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만환 이면호 등도산서원의 유생인 이만헌과 이면호 등이 노비인 일근이 저지른 모종의 불량한 일에 대하여 강경한 처벌을 원하는 상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61335
정유년 예안 등 43명이 순상에게 금종국의 잘못된 원록기록시정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순 외 38인정유년 1월 모일에 禮安 校院 儒生 幼學 金洵 외 38인이 巡相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琴正裕 등이 그 아버지가 院錄에서 삭제된 일로 議送한 일에 대해서 작년 秋享 때 원장 金重國이 琴弘璧의 말만 듣고 士林에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원록에 다시 써넣은 일은 잘못된 처사이출처 : 유교넷 -
361336
이광춘 등이 실력자에게 서리 침탈로부터의 보호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원 김광춘 등생원 이광춘등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에게 보내는 상서이다. 도산 서원 주위의 어로 등을 서리의 침탈로부터 보호하고자 올린 상서문이다. 그 밖에 농암 이현보와 이퇴계 선생이 같이 노닐 던 곳의 나무들을 보호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37
병진년 이휘병 등 13명이 도산서원 회중에 중건 논의에 대한 답례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도산회중병진년 12월 3일에 陶山書院 會中에 李彙炳 외 12인이 보내는 문서이다. 이휘병 등은 년구하여 院宇가 퇴락한 일을 알고 重建을 논의한 데 대해서 약소하지만 5냥을 보내드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38
병인년 이순원 등 15명이 순상에게 면 인력의 재사용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사순 等병인년 3월 모일에 李元淳 외 14인이 巡相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서원 앞에 大川이 흘러서 제방을 신축하려 하는데 役事가 커서 본읍과 안동, 봉화, 영천, 진보, 영양 여섯 읍의 부근 面에서 軍丁을 이용하게 한 일에 대해서 마침 겨울이어서 일을 정지한 일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361339
이임이 관사주의 처분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운곡리리임모년 3월 모일에 雲谷里 里任이 官司主의 처분을 청하는 문서이다. 英陽에서 온 南班奴 때문에 마을에 白徵의 폐단이 있으므로 兩倉에서 이름을 拔去해 주기를 청하는 내용이다.이에 대해서 23일에 官에서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제음이 내려졌다.출처 : 유교넷 -
361340
을미년 금득이 관에 금득만의 군역 열외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수노 琴得을미년 10월 모일에 예안 도산서원 首奴 琴得이 官에 청하는 문서이다. 北面에 거주하는 金得萬이 본 서원의 婢 金娘의 세 번째 소생인데 뜻밖에 工曹 軍役에 들어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서원 측은 본원의 비에 대해서 雜役에 勿侵하라는 관문을 가지고 있으므로 군역에출처 : 유교넷 -
361341
을유년 운곡리 민인이 관사주의 처분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운곡리민을유년 8월 모일에 宜西 雲谷里 民人이 함께 官司主의 처분을 청하는 문서이다. 劉德善의 價布를 족인으로 책임을 피하고 도망간 劉永三을 차사를 보내 잡아와서 독촉하고 順興 墨坊에 있는 족속 劉貴在, 劉順三, 劉順伊 등이 유덕선과 同姓四寸이므로 징출하게 할 것을 청하는출처 : 유교넷 -
361342
을유년 운곡리 민인등이 관으로 백징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운곡리민을유년 7월 의서 운곡리의 민인 등이 관의 처분을 바라며 보낸 문서이다. 劉德善의 騎步價布는 그가 작년에 유리걸식하다가 죽었으므로 납부할 수 없으므로 근동에 살고 있는 유덕선의 족인 劉永三에게 부담하게 해서 마을에 부당한 白徵이 없어야 한다고 청하는 내용이다. 이에출처 : 유교넷 -
361343
임오년 춘복이 관사중의 처분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원노 춘복임오년 12월 모일에 도산서원 노비 春卜이 奉化 官司主의 처분을 바라며 보낸 문서이다. 도산서원의 노비 朱心身이 죽은 비 分伊의 소생이고 그의 소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존재하므로 주심신을 汲婢의 役에 넣은 것은 잘못이므로 이것을 바로잡아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1344
신유년 김용대 등 2명이 사도에게 원역종사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룡대占孫신유년 11월 모일에 北面 炳谷에 거주하는 望昌驛의 奴 金龍大 외 1인이 使道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자신의 아버지 漢起가 도산서원의 비와 결혼하여 낳은 남매 중에서 자신은 아버지를 따라서 驛役에 종사하고 여동생은 어머니를 따라서 院役에 종사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頭目에출처 : 유교넷 -
361345
신유년 운재가 관사주에게 협박건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역노 운재신유년 12월 모일에 盈德 飛底에 거주하는 驛奴 云才가 관사주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운재는 대대로 역노 莫述의 소생인데 금년에 도산서원의 노역에 횡침하려는 일에 대해 판결을 기다리던 중 그저께 밤에 도산 두목이라는 두 사람이 와서 자신이 승소했다며 身貢을 준비하여 내출처 : 유교넷 -
361346
정해년 최덕술이 청하관에 잘못된 역의 시정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원노최덕술정해년 1월 모일에 예안 도산서원의 首僕 최덕술이 淸河官에 보낸 청원서이다. 도산서원의 卜孫이라는 인물이 방어진에 살다가 뜻밖에 잘못 使令 良役에 들어갔으므로 이에 대해서 奴婢案을 증거물로 올리므로 시정해 주기를 청하는 내용이다. 청하 관에서는 제음에서 그 본디 일에출처 : 유교넷 -
361347
을유년 운곡리의 백성등이 관사주에게 이징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운곡리민을유년 7월 모일에 의서 운곡리의 백성 등이 관사주에게 보내는 청원 문서이다. 유덕선의 가포를 징납할 수 없어서 족속 유영삼에게 移徵하였는에 유영삼이 자신은 유덕선과 姓族이 아니라고 하면서 평소의 호형호제하던 의리를 져버리고 관문에 도착하자 도망해 버렸으므로 유영삼에출처 : 유교넷 -
361348
신유년 김용대 등 2명이 사도주의 처분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점손 등신유년 11월 모일에 병곡에 거주하는 金用大와 金占孫 등이 사도주의 처분을 청하는 문서이다. 김용대 등은 대대로 역노로서 응역하였는데 도산서원의 收貢差奴가 자신들의 이름을 가탁하여서 원역에 이름이 들어 있으므로 이것을 조사하여 바로 잡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영해 관에서출처 : 유교넷 -
361349
최망업이 노비를 매윽 / 기록자료>고문서 / 량인 최망업모년 정월 모일에 영양에 거주하는 최망업은 노비를 매득하였다. 거래의 대상이 된 비는 박생원의 비 분이의 삼소생인 시분이다. 점련한 문기를 참고하여 노비매매사실을 인정하는 입안을 내달라하였으니 점련한 문기는 이 매매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일 것이다. 주지하듯이출처 : 유교넷 -
361350
임인년 성월이 관사주의 처분에 대해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성월록임인년 3월 모일에 하리 부포에 거주하는 도산서원 수호군 成月彔이 관사주의 처분을 바라는 문서이다. 성월록은 도산서원 수호군으로서 수십년을 지냈는데 불의에 잘못 속오 군역에 들어가 있어서 한사람의 몸으로 두가지 역을 질 수 없으므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시정해 줄 것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