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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1751

    경신년 민치량 등 18명이 첨좌께 알리는 통고문 / 기록자료>고문서 / 민치량 등
    일두 선생 유집 간역이 다음달 4일이라고 경신년 4월 14일에 온계서원 간소의 민치량 등 18명이 경북 예안 도산서원 첨좌께 알리는 통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1752

    安碩老과 姜宅馨이 陶山書院의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재사(齋舍)에 관한 내용으로, 재사(齋舍)가 지어진지 14년이 되었는데 하루도 숭업(崇業)의 일과 한 자리도 강학(講學)하는 일이 없어졌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주식(酒食)과 난적(亂賊)들의 손에 의해 없어지고
    출처 : 유교넷
  • 361753

    이 軍案은 보관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여 이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발급주체와 시기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도산서원에서 작성하여 禮安縣에 보고하고 예안현에서 그 내용을 확인하고 官印을 찍어 다시 발급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시기는 17세기 초반일 것으로 추정된다. 군안의
    출처 : 유교넷
  • 361754

    1796년 이황의 사제시 일기 / 기록자료>고문서 / 도산서원
    賜祭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내려주는 의례로 袒免 이상의 宗親ㆍ緦麻 이상의 異姓親ㆍ從2品 이상의 文武官 功臣 및 公事로 외방에서 죽은 자와 전사자 등에게 행해졌다. 임금이 내려주는 것이므로 ‘賜祭’를 平行에서 2行 대두하였다.<br/>제목없슴 해제<br/>제목
    출처 : 유교넷
  • 361755

    1684년(숙종 10) 6월 13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의복·기물·문구류·잡곡·買得田文記·沓文記·奴婢案·典當文書의 수량을 기록했다. 품목의 양도 늘고 경비의 폭도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 대미와 소미의 일부는 술값으로 지출되었으며, 콩 8석 5두 3냥
    출처 : 유교넷
  • 361756

    1685년(숙종 11) 1월 24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의복·기물·문구류·잡곡·買得田文記·沓文記·奴婢案·典當文書의 수량을 기록했다. 품목의 양도 늘고 경비의 폭도 다양해졌다. 역동서원과 경제적 교류가 계속되었다. 대미 5두를 빌려 갔다고 했다. 그리
    출처 : 유교넷
  • 361757

    1685년(숙종 11) 8월 12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이 문건은 앞의 문건보다 간략한 기록이다. 미곡·기물 등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대미 9석 8두 가운데 5두는 역동서원에서 빌려갔다. 정미는 120석 11두 5냥인데 종자로 쓴 것과 分給한 것, 전당
    출처 : 유교넷
  • 361758

    1685년(숙종 11) 12월 26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기물 중심의 간략한 기록이다. 잡곡은 종자 대금으로 빌려 주고 받은 것이라고 했다. 木은 5同 14匹인데, 일부는 역동서원에서 빌려간 것이다. 미봉된 곡물의 기록도 보인다. 특정 곡물은 이미
    출처 : 유교넷
  • 361759

    1686년(숙종 12) 5월 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 중심의 간략한 기록이다. 대미 5두는 역동서원에서 빌려갔다. 일부 곡물의 경우, 전당을 잡힌 사람의 인명도 상세히 적어 두었다. 곡물을 빌려 가고 제 때에 갚지 못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
    출처 : 유교넷
  • 361760

    1687년(숙종 13) 2월 15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 중심의 간략한 기록이다. 대미 5두는 역동서원에서 빌려갔다. 그리고 타작해서 수입으로 잡은 곡물도 기록했다. 곡물을 빌려 가고 제 때에 갚지 못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br/> 木의 경
    출처 : 유교넷
  • 361761

    1688년(숙종 14) 1월 2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기물·집기 중심의 기록이다. 대미 5두는 역동서원에서 빌려갔다. 소미도 빌려 준 것이 있는데 받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타작해서 수입으로 잡은 곡물도 기록했다. 곡물을 빌려 가고 제 때에
    출처 : 유교넷
  • 361762

    1706년(숙종 32) 1월 20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기물·집기·제기 등의 수량 기록이다. 서두에 대미·소미를 일부는 술값으로 지출될 것이라고 했다. 콩은 된장을 담는데 사용했으며, 奴婢案 및 문서 궤 등의 숫자도 비교적 자세히 적었다. 큰상과
    출처 : 유교넷
  • 361763

    1707년(숙종 33) 1월 24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기물·집기·노비의 신공에 대한 기록이다. 서두에 대미·소미의 현황을 정리했다. 콩의 일부는 된장을 담그는데 사용하였다. 미상환된 금액이나 미곡의 수량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기존 곡물
    출처 : 유교넷
  • 361764

    1707년(숙종 33) 8월 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잡곡·기물·집기·노비의 신공에 대해 매우 간략히 기록했다. 정미는 이자로 分給했다고 적었다. 대미는 향례시 술값으로 지불되었고, 未捧된 것도 있다. 소미·콩 등의 잡곡 현황을 기록했다. 노비의 신공
    출처 : 유교넷
  • 361765

    1707년(숙종 33) 8월 1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위의 문건을 작성한 열흘 뒤에 작성한 문건이다. 서두에 기물의 파손 숫자를 상세히 적었다. 열흘만에 다시 작성한 것으로 보아, 앞선 기록의 내용이 매우 부실하므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 같다. 기존
    출처 : 유교넷
  • 361766

    1707년(숙종 33) 11월 22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을 장리 이자로 빌려준 사례가 많다. 奴婢案·각종 식기류·기물·집기 등의 수량을 자세히 기록했다. 특히, 수저의 파손 숫자를 상세히 적은 것으로 보아 가재 도구의 관리에 철저했
    출처 : 유교넷
  • 361767

    1708년(숙종 34) 5월 20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소미·정미 및 잡곡을 長利로 빌려준 사례가 많다. 타작한 곡물의 숫자도 자세히 적었다. 받지 못한 곡물과 품목은 보이지 않지만, 노비의 신공을 받지 못한 사례는 기록되어 있다. 콩은 田稅로 내기 위해
    출처 : 유교넷
  • 361768

    1708년(숙종 34) 5월 27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앞선 기록과 불과 7일의 차이가 있다. 일 주일 뒤에 다시 기록한 문서이다. 위의 기록이 곡물 수량 조사의 간략한 기록임에 비해 이 기록은 제대로 된 기록이다.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을 長利로 빌려준
    출처 : 유교넷
  • 361769

    1709년(숙종 35) 10월 17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서두에 각종 곡물에 대한 기록에 충실하다. 상환 조치된 사례가 많았던 것 같다. 꼼꼼히 빌려준 곡물의 숫자가 기록되었다. 상환 조치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다. <br/> 받지 못했다는 기록은 별
    출처 : 유교넷
  • 361770

    1710년(숙종 36) 1월 5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의 수량을 기록했다. 奴婢案·각종 식기류·기물·집기 등의 수량도 적혀 있다. 특히, 수저나 식기류의 파손 숫자를 상세히 적은 것으로 보아 가재 도구의 관리에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361771

    1710년(숙종 36) 9월 25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기물의 수량 기록이다. 책방의 서적 보유 현황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번 전장기와 대조 검열한 결과, 물품의 변동이 없다고 했다. 奴婢案의 기록도 보인다. 특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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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1772

    1711년(숙종 37) 1월 26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기물의 수량 기록이다. 정미는 25석 6두인데, 종자대로 빌려 준 것을 기록했다. 皮牟 역시 종자로 빌려 준 것을 기록했다. 전체 곡물은 63석 14두 3냥 1홉이다. 노비의
    출처 : 유교넷
  • 361773

    1712년(숙종 38) 1월 24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기물의 수량 기록이다. 정미는 27석 11두인데, 종자는 3석 9두라고 했다. 文은 3냥이다. 일부의 콩은 된장 담그는데 사용했다고 적었다. 모든 곡물은 78석 1두 8냥 8홉
    출처 : 유교넷
  • 361774

    1712년(숙종 38) 2월 1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대미·소미·정미 및 잡곡·기물의 수량 기록이다. 정미는 24석 11두인데, 종자는 3석 9두라고 했다. 콩은 메주로 사용한 것이 있다고 적었다. 노비안의 기록 가운데 신공 미납된 사례가 기록되었으며,
    출처 : 유교넷
  • 361775

    1712년(숙종 38) 3월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정미·대미·소미·잡곡·기물의 수량 기록이다. 정미는 5석 12두이다. 이 중 3석9두를 종자로 사용했다. 콩은 일부분 메주로 사용했다. 모든 곡물은 24석 2냥 4홉이다. 引用文은 19兩이다. 노비안의 기록
    출처 : 유교넷
  • 361776

    1713년(숙종 39) 2월 29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정미·대미·소미·잡곡·기물의 현황 기록이다. 정미는 14석 12두인데, 3석 9두는 종자이다. 皮牟은 5석 11두이며, 그 가운데 일부를 종자이다. 콩 가운데 일부도 메주로 사용했다. 引用文은 8兩이다
    출처 : 유교넷
  • 361777

    1713년(숙종 39) 5월 30일 작성한 문서이다.<br/> 정미·대미·소미·잡곡·기물의 현황을 기록한 것이다. 대미는 1석 5두이며, 소미는 3두이다. 文은 10兩이다. 牛皮의 기록도 보인다. 未捧의 기록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물 파손 현황은 자세히 기록하
    출처 : 유교넷
  • 361778

    1713년(숙종 39) 7월 2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곡물보다 기물 기사가 먼저 나온다.<br/> 정미·대미·소미·잡곡·기물의 현황을 기록한 것이다. 노비안은 두 건인데, 未捧의 기록은 없다. 尋院錄·傳掌記의 권수도 기록했다. 대미는 3석 5두인데, 일부는 상환했
    출처 : 유교넷
  • 361779

    1714년(숙종 40) 1월 2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책방의 재고 조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했다. 노비안이 두 건이다. 문구류 및 의복·기물이 먼저 기록되어 있다. 高足床의 파손 건수도 나와 있다. 尋院錄 · 傳掌記의 권수도 기록했다. 이어 각종 그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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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1780

    1714년(숙종 40) 8월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노비안 두 권이 있는데, 신공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 기록은 없다. 제기와 각종 비품의 항목과 숫자를 기록했다. 주류 제조와 관련된 주방 기구가 많다. 책방의 재고 조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했다. 문구류 및
    출처 : 유교넷
  • 361781

    1714년(숙종 40) 12월 10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책방의 서적들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노비안 두 권이 있는데, 신공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 기록은 없다. 제기와 각종 비품을 항목별로 정리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주류 제조와 제기 관
    출처 : 유교넷
  • 361782

    1715년(숙종 41) 8월 2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책방의 서적들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노비안 두 권이 있지만, 신공미납의 기록은 없다. 제기와 각종 비품을 항목별로 정리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주류 제조와 제기 관련 주방 기구가 많
    출처 : 유교넷
  • 361783

    1716년(숙종 42) 1월 2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책방의 서적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노비안 3건이 있지만, 신공 미납의 기록은 없다. 제기와 각종 비품을 항목별로 정리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주류 제조와 제기 관련 주방 기구가 많이 사용된
    출처 : 유교넷
  • 361784

    1717년(숙종 43) 2월 15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책방의 서적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노비안 3건이 있지만, 신공 미납의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제기와 각종 비품을 항목별로 정리하면서 그 숫자를 기록했다. 작도도 기록에 남아 있다. 주류 제조
    출처 : 유교넷
  • 361785

    1717년(숙종 43) 2월 24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지난 번 전장기에 이어 1달 안에 작성한 문건이다. 곡물부터 정리했다. 대미·소미·미당·콩·조 등으로 기록했다. 콩은 된장을 담그었다. 정미는 10석 9두인데, 3석 9두는 종자용이다. 모든 곡물은
    출처 : 유교넷
  • 361786

    1717년(숙종 43) 12월 5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지난 번 전장기에 이어 10달만에 작성한 문건이다. 곡물부터 정리했다. 대미·소미·미당·콩·조 등으로 기록했다. 정미는 19석 9두인데, 3석 9두는 종자용이다. 모든 곡물은 49석 7두이다. 文은
    출처 : 유교넷
  • 361787

    1718년(숙종 44) 11월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미곡 중심의 아주 간략한 기록이다. 대미·소미·미당·콩·조 등으로 기록했다. 정미는 19석 9두인데, 3석 9두는 종자용이다. 모든 곡물은 46석 13두이다. 신공 미납 기록은 없다. 賑歲穀은 없다. 곡물
    출처 : 유교넷
  • 361788

    1719년(숙종 45) 2월 30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노비안 2건이 보이는데, 신공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일부 품목은 개수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다. 깨어진 그릇이나 분실한 수저 등의 기록은 계속 나타난다. 정미 가운데 종자용으로 사용하거나 환상
    출처 : 유교넷
  • 361789

    1719년(숙종 45) 3월 16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 중심의 아주 간략한 기록이다. 대미는 3두이며, 소미는 3두 1냥이라고 했다. 곡물의 수량도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품목도 매우 축소 기록되었다. 모든 곡물은 16석 11두이다. 신공 미납 기록
    출처 : 유교넷
  • 361790

    1720년(숙종 46) 1월 10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곡물에서부터 책방 서책 검열까지 정리해서 수압을 한 번 했고, 이어 곡물에서 집기까지 검열해서 書押했다. 말하자면, 한 문건 안에 두 번 수압을 한 셈이다. 특히, 李克弼은 두 번
    출처 : 유교넷
  • 361791

    1720년(숙종 46) 12월 1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대미·소미부터 잡곡 및 기물 등으로 정리했다. 정미는 34석이며 그 가운데 3석은 종자용이다. 文은 34兩인데, 木價 8전은 미봉이라고 했다. 모든 곡물의 양은 97석 5두 4냥
    출처 : 유교넷
  • 361792

    1721년(경종 1) 6월 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을 기록했다. 정미는 20석 8두인데, 8석 7두는 饑民을 위해 사용했다고 적었다. 피모는 종자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당시 沓 2두락을 매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61793

    1721년(경종 1) 6월 28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을 기록했다. 미곡을 종자로 사용했거나 分給한 사례를 기록했다. 모든 곡물은 32석인데, 종자용으로 사용했거나 하인에게 분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還上된 것도 있다
    출처 : 유교넷
  • 361794

    1722년(경종 2) 1월 2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정미는 12석 4두로, 3석 9두는 종자용이라 했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을 기록했다. 미곡을 종자로 사용했거나 分給한 사례를 기록했다. 모든 곡물은 83석인데, 종자용으로 사용했거나
    출처 : 유교넷
  • 361795

    1722년(경종 2) 7월 1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곡물부터 기록했다. 정미는 5석 9두로, 3석 9두는 종자용이라 했다. 이 외에 잡곡 가운데도 종자용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을 기록했다. 미곡을 종자로 사용했거나 分給한 사례가 기록
    출처 : 유교넷
  • 361796

    1722년(경종 2) 9월 26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부터 기록했다. 정미는 20석 1두로, 2석 12두는 종자용이라 했다. 이 외에 잡곡 가운데도 종자용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도 기록했다. 미곡을 종자로 사용했거나 分給한 사례 등
    출처 : 유교넷
  • 361797

    1722년(경종 2) 10월 9일에 작성한 문서이다. <br/> 앞 문서에서 일 주일 정도 지난 후에 기록되었다. 곡물이 먼저 기록되었다. 정미는 17석 6두로, 2석 13두는 종자용이라 했다. 이 외에 잡곡 가운데도 종자용으로 사용한 경우를 적었다. 대미와 소미의
    출처 : 유교넷
  • 361798

    1722년(경종 2) 12월 6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이 먼저 기록되었다. 정미는 10석 2두로, 2석 13두는 종자용이라 했다. 이 외에 잡곡 가운데도 종자용으로 사용한 경우를 적었다. 대미와 소미의 수량도 기록되어 있다.<br/> 이어 文을 빌려가
    출처 : 유교넷
  • 361799

    1723년(경종 3) 3월 7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 및 문구류 중심의 간략한 기록이다. 대미는 2두이며, 소미는 5두이다. 정미 3석 3두 중 2석 3두를 종자로 사용하였다. 아주 간략한 기록이다. 賑歲穀은 없다. <br/> 書押한 사람은 金(亻+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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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1800

    1723년(경종 3) 9월 7일에 작성한 문서이다.<br/> 곡물 및 기물 중심의 소략한 기록이다. 대미는 1두이며, 정미는 2석 13두이다. 이 외에 곡물 및 집기류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아니며, 식기류 및 문구류 등에 대한 기록은 생략되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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