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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3001

    1833년(순조 33) 5월 1일부터 5월 17일까지의 기록이다.<br/> 지출된 백미와 미모, 文을 합해 모두 18냥 7푼이다. 32냥 3전 1푼은 두 庫直의 出債條이다.書押한 사람은 李日淳, 李仁淳이다.<br/>
    출처 : 유교넷
  • 363002

    1834년(순조 34) 4월 15일의 기록이다.<br/> 기물 현황 및 일반 물품 지출 현황의 기록이다. 광명실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창고의 기물도 이상이 없었다. 물품은 벼루, 재복, 방석, 열쇠, 전답문서, 전장기 등이다. <br/> 書押한 사람은
    출처 : 유교넷
  • 363003

    1834년(순조 34) 1월부터 4월 15일까지의 기록이다.<br/> 일반 지출 경비 내역의 기록이다. 出債文은 48냥이며, 守護軍錢 11냥을 포함하여 모두 59냥이다. 이 외에 향사 때 경비 지출, 잡비 및 술대금, 거마비 지출 등이 있었다. <br/> 書押한 사
    출처 : 유교넷
  • 363004

    1835년(헌종 1) 8월 1일의 기록이다.<br/> 기물 및 일반 지출 경비 내역의 기록이다. 광명실의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창고의 집물도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물품은 벼루, 재복, 방석, 열쇄, 두락문건, 전장기 등이다. 지출 명목은 현판 채색
    출처 : 유교넷
  • 363005

    1835년(헌종 1) 8월 9일의 기록이다.<br/> 기물 및 일반 지출 경비 내역의 기록이다. 광명실의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창고의 집물도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물품은 眞麥 외에 그렇게 많지 않다. 지출 명목은 잡비 지출, 향사시 술 대금 지급,
    출처 : 유교넷
  • 363006

    1836년(헌종 2) 3월 7일의 기록이다.<br/> 기물 및 일반 수입 지출 경비 내역의 기록이다. 광명실의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창고의 집물도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물품은 벼루, 재복, 방석, 두락문건, 전장기, 잡곡 등이다. 추수한 잡곡은 모
    출처 : 유교넷
  • 363007

    1836년(헌종 2) 4월 8일부터 7월경의 기록이다.<br/> 기물 및 일반 수입 지출 경비 내역의 기록이다. 광명실의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창고의 집물도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물품은 대미, 전문 등이다. 정미는 1석인데 쌀을 찧어 6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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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08

    1837년(헌종 3) 2월 1일의 기록이다.<br/> 일반 비품 및 경비 지출 내역의 기록이다. 광명실 소장 서책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 창고의 잡물도 변동이 없었다. 물품은 벼루, 재복, 방석, 두락문건, 전장기 등이다. 인수 받은 債米는 1냥 8전 4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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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09

    百拙庵上樑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玉川의 집을 헐고 나서 오랫동안 곤궁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무릎을 허용할 만한 작은 땅을 발견하였지만 재주가 지극히 졸렬하고 작은 등잔걸이마저 쓸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철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쉴 수 있는 곳을 정하지 못하다가 後郊의 작은 동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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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0

    族譜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족보가 간행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유씨의 鼻祖는 고려시대 大丞公 車達이시지만 족보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아 계승하기 어려웠다. 掌令公 濕에 이르러 貫을 全州로 옮기고 자손들이 벼슬을 하여 서울에 많이 살기도 하고 여러 시골로 흩어졌다. 1652년(효종 3)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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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1

    葛蘿山祈雨文(代作)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이 가뭄은 어찌 이리 심한가. 봄 석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보리와 밀이 말라죽고 못도 말랐는데 잠깐 내린 비는 벌건 화로에 내리는 한 점 눈과 같아서 천리에 먼지만 날고 땅은 거북 등처럼 갈라졌으니 희생을 마련하여 제사를 올리니 비를 내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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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2

    祭權參判泰一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참판 권태일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공은 학문이 깊고 성품이 온화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왕명을 받들어 接伴使로서 椵島에 가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순직하였으니 애통하기 그지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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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3

    祭鄭石門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석문 鄭榮邦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공은 愚伏 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병화를 피해 동쪽으로 피난을 가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술을 좋아하였지만 즐겨 마시지 않았고 항상 시를 읊조렸다. 16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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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4

    祭金葛峯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갈봉 金得硏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공은 시에 능하였는데 만년에 와룡산 아래 터를 얻어 맑은 개울과 흰 돌이 드러난 곳에 띠 집을 짓고 정원에는 여러 가지 화초를 심고 연못에는 맑고 시원한 기운이 있어 미진이 이르지 못하였다.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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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5

    祭金直孺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김직유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 우리 당의 위기와 궁색함이 여기에 이른 것은 우리 형의 죽음 때문이다. 온 세상이 모두 형의 아름다운 소문을 칭찬하고 상대와 나를 하나로 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일찍이 父兄師友에게 모두 인정을 받았다.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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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6

    祭金處士希孟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김희맹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제문이다. 공은 대대로 덕이 있는 가문에 출생하여 詩禮의 명성이 전함이 있었고,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고 거친 옷을 입었지만 넉넉하게 생각하였다. 일 년이 지나 중추절에 임하니 온화한 모습을 접할 길 없어 한 잔 술을 올리고 길이 통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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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7

    祭權叔京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權鎬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제문이다. 그는 원래 한양 사람이었는데 정묘호란 때 난을 피하여 내려왔다. 젊은 나이지만 재주가 뛰어나서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다음 해 봄,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2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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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8

    祭亡弟林皐處士廷美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나이 오십을 겨우 넘어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동생이 각별히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학문은 陰陽消長의 이치를 통달할 정도로 깊었다. 수십 년 이래로 喪禍로 一家 親屬이 세상을 떠난 것이 절반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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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19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柳氏의 선조는 文化에서 나왔는데 고려조 공신 車達이 鼻祖이다. 그 후대에 전주로 籍을 옮겼으니 그 이름이 濕인데 사헌부 장령으로 추존되었다. 습이 克恕를 낳았는데 寶文閣 直提學이었다. 직제학이 濱을 낳았는데 文科府使를 지냈다. 부사에게 아들이 넷 있었는데 둘째 義孫이
    출처 : 유교넷
  • 363020

    墓誌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묘지명은 葛庵 李玄逸이 썼다. 玄逸은 일찍이 어린 시절에 아버님 옆에서 모실 때 어떤 객을 문에서 맞이하실 때 의관을 갖추고 나아가서 맞으시고 마주 앉아서 말씀을 나누실 때 몹시 정성스럽게 하셨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를 돌아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분이 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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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1

    墓碣銘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성균관 대사성 丁範祖가 쓴 것이다. 영남 諸君子는 퇴계 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효종 당시 成渾과 李珥 두 학자를 문묘에 배향하자는 것이 심히 엄하였지만 공이 그것을 저지시켰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많은 학자가 배출된 집안이고,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 공의 6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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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2

    祭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錦翁 金學培가 쓴 제문으로 공이 牛栗 문묘배향을 좌절시킨 기개를 찬양하고 그 후 세상일에 뜻을 두지 않고 은거한 것을 높게 평가하였다. 지금 공은 가고 없으나 岐山은 높기만 하고 溪水는 차갑기만 한데 일대의 고명과 百歲 精靈의 준엄하고 소탈한 영전에 한 잔 술을 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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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3

    又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甥姪 金啓光이 2주기 제삿날에 쓴 제문으로 百身으로 바꿀 수 있다면 하늘은 진실로 그를 죽여 九原을 만들지 않았을 것을 나는 누구에게 돌아갈거나 아! 슬프다.
    출처 : 유교넷
  • 363024

    又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鳩巢 權聖矩가 쓴 제문으로 공이 살아계실 때는 세상 선비들의 바람이더니 세상을 떠나시니 文을 잃은 듯하다. 혼탁한 시기를 만나 들끓는 논의를 단아한 기품으로 영수가 되어 靑衿을 세우시고 여러 가지 논의를 정리하시니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가 되었다. 그러나 세속의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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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5

    挽詞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鶴沙 김응조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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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6

    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存齋 李徽逸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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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27

    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趙挺融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3028

    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瓢隱 金是榲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3029

    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鄭侙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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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0

    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木齋 洪汝河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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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1

    又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孤山 李惟樟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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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2

    又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錦翁 金學培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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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직
    후손 道原이 쓴 것으로 그의 자는 叔文이고, 호는 蘆厓이다. 生父는 陽坡 觀鉉이나 慵窩 升鉉에게 양자로 후사를 이었다. 1721년(경종 1)에 안동 大坪里에서 출생하여 1791년(정조 15)에 卒하였다. 글재주가 뛰어나 13세에 百韻詩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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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4

    범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범암집(汎庵集) 柳淵楫의 문집. 10권 5책. 석인본. 序文은 없으며 손자 柳轍薰이 지은 跋文이 있다. 이에 의하면 이 문집은 그가 사망한 25년 뒤인 1958년 간행된 것이 확인된다. 즉 유철훈이 집안에 남아있던 그의 遺文을 정리함과 동시에 각 가문에 흩어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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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秋齋謾吟, 卽事, 早春與金景器(象鍾)遊陶淵, 萬下族兄(淵穆)以一律見寄遂步呈, 戱和族兄君應(淵九)見贈, 謹次南嶽亭重修韻, 寓棲上朴適得金國凝(時洛)歷訪共賦, 挽金丈(鳳洛), 洗山叔父東閣晬筵謹次原韻, 挽金用賓(興植), 謹次石門亭板上韻, 挽族叔晉卿(晉鎬), 柳都事石湖丈(道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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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乙卯五月會校下山鄭公文集於大坪臨罷用集中韻贈鄭聖活(來源), 白雲洞講會歸路抵宿沙川一行凡數十人夜坐拈韻, 抵沙瑅李參奉大演(鍾輔)家, 次守分堂韻, 宿海里金殷弼(賚植)家, 次金極夫(建永)晩松亭韻, 會校響山稿臨罷拈韻, 挽李參議戚丈(中斗), 挽金厚若(鎭堉), 次鶴臯亭韻(幷序), 挽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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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7

    上西山金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스승인 西山 金興洛(1827~1899)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환절기에 건강은 어떠한지를 물었다. 斷髮令에 따라 상투를 자르라는 압박이 계속됨으로써 자신도 하는 수 없이 책상 앞에서 禮를 갖추어 衣冠을 벗고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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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8

    答金丈(宗洛)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貞齋 金宗洛(1882~1952)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를 받고도 쌓인 눈으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소식이 늦어지게 된 것을 사과하면서, 丙申義兵(1896) 당시 倭賊들에게 복수할 날에 임박해서 모친의 상을 당하는 바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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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39

    與雲圃金戚丈(景洛)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雲圃 金景洛(1834~1912)에게 보낸 편지이다.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林下로 물러나 讀書와 窮理로만 일관하는 자세에 경의를 표시하면서, 바깥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을 전했다. 매번 모임을 주선하려고 했다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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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0

    與金剛徽(鳳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鳳相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주최한 賓筵에 참석해 형제나 다를 바가 없는 50년 우의를 잇도록 해준데 대해 고마워하면서, 다시 자신의 회갑연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맡아서 가르치고 있는 자신의 손자는 일일이 독서할 과제를 제시하기 보다는 수시로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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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1

    答金剛徽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鳳相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지금 서로가 궁핍한 채로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은 世俗에서 벗어나 淡泊함을 만끽하며 禮儀와 人情을 드러내지 않고 본분을 지키면서 살자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제는 학문에 진척이 없는데다 악화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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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2

    與金景能(潤模)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潤模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전에 얘기했던 대로 선친의 무덤을 옮겨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날짜까지 정해 놓았지만, 주위에서 風水上 곧바로 水火의 재난을 입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손의 禍福이 좌우될 수 있다는 말들을 하는 바람에 망설이고 있음을 전했다. 자신은 그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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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3

    與姜季明(鎔)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姜鎔(1846~1934)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長壽를 축하하는 잔치에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항상 찾아가서 학문의 진전과 내면의 修身을 위한 요체를 들으면서 나이에 상응하는 시야를 넓히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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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4

    答姜季明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姜鎔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학자들은 서로 모여 학문을 토론하다가도 元老에게 한 번씩 학문의 방법 등을 듣고 나면 태만한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고 경건한 자세를 갖추기 마련이라며, 초청에 응하여 가르침을 줌으로써 曲學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유학에 대한 공부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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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5

    與李內兄台重(中鉉)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李中鉉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친의 무덤을 옮기는 일은 한여름이 다가오기 때문에 가을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전하면서, 그것이 늦추어지는 것은 자신이 보아둔 적절한 장소가 확정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니 그것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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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6

    與金養仲(直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直永에게 보낸 편지로, 1900년(광무 4)에 썼다.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초청하여 목소리와 함께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하는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자신은 여러 가지 번잡한 일들로 인해 조용한 날이 없는 데다 정신과 기력마저 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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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7

    與李仲圓(中轍)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李中轍(1848~1937)에게 보낸 편지로, 1900년(광무 4)에 썼다. 지난번 자신에게 보내준 글들 가운데 수정하기를 바라는 부분을 지적해 주면서, 昧翠翁의 事蹟을 찾고 있는데 혹시 가지고 있으면 보여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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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8

    答李仲圓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李中轍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14년에 썼다.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자신의 집을 수리하는 일에 매달려 있는 근황을 전하면서, 새로이 편찬이 추진되고 있는 『陶山及門錄』은 반년이 지난 상황에서 볼 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은데 수록여부에 대한 논의를 통일시키는 등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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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49

    與金公玉(始永)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始永에게 보낸 편지로, 1923년에 썼다. 항상 모임을 앞장서 주도하고 싶지만 병들고 나태함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함을 사과하면서, 보내준 詩에 대해 次韻해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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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050

    答南德玄(升喆)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南升喆(1851~1922)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03년(광무 7)에 썼다. 오랜만에 멀리서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서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며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보리가 여물고 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오는 절기를 맞아 은둔만 하지 말고 몸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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