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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應弼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李鍾炫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32년에 썼다. 『鶴南集』을 완간해 반포한 노고를 치하하면서, 학문의 중흥을 여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표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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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聖謙(秉殷)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金秉殷에게 보낸 편지로, 1920년에 썼다. 書院의 享祀를 대신 담당해줄 것을 부탁함과 동시에, 18세 된 손자를 맡아서 교육해 줄 것을 요청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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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張壻範可(斗燮)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사위 張斗燮에게 보낸 편지로, 1916년에 썼다. 흉년을 맞아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은 운수에 달린 것이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본업에 힘쓰고 절약한다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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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張壻範可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사위 張斗燮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옛날의 賢哲들도 숱하게 곤경을 겪으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했음을 주지시키면서, 농사일에 여념이 없는 것은 알지만 조상의 묘를 돌보는 일은 본분에 해당하는 일이니 소홀히 하지 않도록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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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孟直(浚植)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金浚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두통에다 현기증이 잦아 글을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음에도 요청을 저버리지 못해 가까스로 완성하기는 했지만,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는지 한 번 검토한 다음에 싣도록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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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漢初(基洛)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南基洛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26년에 썼다. 한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집의 편찬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성의에 찬사를 보내면서, 부탁한 遺墨이 자신에게 있는데 아직 찾지를 못했지만 草稿本에 삽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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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允雨)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李允雨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부탁한 조상의 遺墨은 늙고 정신이 혼미해 겨우 두 건 정도만 찾아낼 수 있었을 뿐이며, 그 외의 것은 기억에 없어 도움을 주지 못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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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壻金孟文(昌祺)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孫壻 金昌祺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16년에 썼다. 세상의 어지러운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한 길로 학문에 매진하기를 당부하면서, 어린 증손자들은 「訓蒙字會」를 읽다가 근래 『史略』을 배우는 등 진척이 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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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壻金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孫壻 金昌祺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20년에 썼다. 과거공부를 위해 먼 길을 떠날 때 제대로 작별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면서, 자질은 있으나 성의가 부족하다는 자신의 지적을 경계로 삼아 성공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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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孫壻金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孫壻 金昌祺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27년에 썼다. 객지에서의 어려운 생활에 위로를 보내면서, 자신은 눈과 귀가 어두워지지만 증손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가르치는 재미로 소일하고 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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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祖明七(穟德)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祖 柳穟德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廬江書院에서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감상이 어떠한지를 묻고, 자신에게 배우러 왔던 무리들이 新學으로 관심을 선회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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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兄景禹(淵甲)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兄 柳淵甲에게 보낸 편지로, 1891년(고종 28)에 썼다. 선조가 나라로부터 諡號를 받은 가문의 慶事를 전하면서, 이를 기념해 몇 날 동안 잔치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廬江書院에서 3일 동안 講會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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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應夏(淵龜,190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弟 柳淵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08년(융희 2)에 썼다. 급변하고 있는 세태로 인해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모두 남을 속이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다고 자책하면서, 門戶에조차 그러한 풍조가 만연해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앞으로 어디에 의지할지 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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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姪聖興(東杰)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姪 柳東杰에게 보낸 편지로, 1891년(고종 28)에 썼다. 높은 목표를 가질 필요 없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榮華를 추구하지 않고 妄動하지 않더라도 영광과 행운은 찾아오기 마련이라 충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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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姪聖興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姪 柳東杰에게 보낸 편지로, 1897년(광무 1)에 썼다. 남들보다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인내로써 학문에 매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며 용기를 갖도록 독려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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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雲擧(淵慶)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弟 柳淵慶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학문적 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만, 항상 가문의 위상을 염두에 두면서 文藝에 치중하지 말고 언행을 신중하게 할 것을 충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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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愚亭留諸君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愚亭에 머물며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 번 방문하여 격려해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作文보다는 讀書에 주력하되 新奇한 것에 관심을 갖지 말고 節度를 유지하며 학문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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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從弟義可(洙澤)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從弟 柳洙澤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920년에 썼다. 부모의 상을 잇달아 당한데 대해 애도의 뜻을 표시하면서, 그와 관련해 질문한 喪禮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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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從弟義可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從弟 柳洙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방황만 하다 다시 유학의 공부에 전념하게 된 것을 반가워하면서, 보내준 詩篇을 보니 감성은 충분한 듯하지만 정밀함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면서 가슴 속에 온축된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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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東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아들 柳東運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의 사소한 일이라도 주위의 어른들에게 물어서 처리하도록 당부하면서, 자신의 여행은 일정이 다소 늦추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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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東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아들 柳東運에게 보낸 편지이다. 10년 동안 칩거하다 여행길을 떠난 자신의 감회를 전하면서, 대구·경주·밀양·부산 등지를 계속 돌아볼 예정임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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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兒轍薰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손자 柳轍薰에게 보낸 편지로, 1904년(광무 8)에 썼다. 무사히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음을 알리면서, 次韻한 시를 보니 名目을 선호하지 않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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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兒轍薰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손자 柳轍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外地에서 생활하고 있는 손자에 대해 불안한 심정을 전하면서, 독서를 하는 여가에 游藝할 때에는 지나치게 매몰되어 心志를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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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兒轍薰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손자 柳轍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학문에 소홀히 하고 있는데 대해 질책하면서, 어린 나이가 아닌 만큼 가문의 위상을 염두에 두고 부질없고 방탕한 생각을 갖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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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家十科志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선비가 집안에 머물면서 일상적으로 지켜야 할 德目 10가지를 자신의 생활에 비추어 제시하며 자식들에게 당부한 내용이다. 조상의 제사를 정성껏 받들어 모시고[奉先], 성심으로 부모를 섬기며[事親], 애정으로 同宗들과 화목을 도모하고[敦宗], 찾아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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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家書示兒子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자신의 아들에게 家事와 관련하여 당부한 내용이다. 祖父 이래로 貨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 역시 18세에 가사를 전담한 이후 30년 동안 貨殖의 능력이 없어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에 머물렀지만 별다른 아쉬운 것이 없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이러한 가풍을 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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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贈族姪東麒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族姪 柳東麒에게 文人으로 갖추어야할 자세를 당부한 내용이다. 박식함에만 힘쓰고 정밀한 것에 힘쓰지 않을 경우 방만하게 되고, 헛된 것만을 쫓고 실속을 숭상하지 않을 경우 핵심이 흐려질 것이며, 번거로움을 싫어하고 간결함만을 따를 경우 절름발이 지식을 면하지 못할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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鰲亭金公逸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鰲亭 金邦翰(1635~1698)의 逸稿를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세상의 학자들이 경전을 읽거나 이치를 궁구하는데 힘쓰는 것을 싫어하고 피상적인 詩文을 즐기면서 편한 곳만 찾으려는 풍조에 젖어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성리학의 근원과 함께 우주의 변화양상을 추적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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黙庵裵公刊所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黙庵 裵克紹(1819~1871)의 遺文을 모아 文集을 간행하기 위해 2백여 명이 모여 稧帖을 만들면서 그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 그는 定齋 柳致明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肯庵 李敦禹, 萬山 柳致儼, 頤齋 權璉夏, 愼庵 李晩慤 등과 절친하게 지냈다. 禮說에 밝았을 뿐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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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村世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逸休齋 孫汝奎, 鶴潭 孫氏, 松窩 孫是椅, 含翠亭 孫東杰, 巖軒 孫重杰 등의 遺文을 모아 「魯村世稿」로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모두가 조정에 발탁된 바는 없지만 오로지 학문을 통해 내면적 心性의 함양에만 매진했고, 그 詩文들은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 평이한 가운데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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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厓李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昌厓 李秀榮(1845~1916)의 文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자신이 산속에서 칩거하고 있는 동안 들은 慶州 출신의 여러 인물 가운데 그의 행적에 대해 가장 솔깃해 했음을 회고하면서, 繼述의 자세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추슬러 유유자적한 가운데에서도 태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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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檟亭約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자신의 칠순을 맞아 柳淵博·淵愚·淵學 등 칠순 나이의 형제들과 함께 7代祖 慵窩 柳升鉉과 陽坡 柳觀鉉 형제가 10년 동안 학업을 닦으며 科擧에 합격했던 渭川의 三檟亭을 찾아 복원을 실현할 것을 약속하면서 그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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茅廬李公遺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茅廬 李命尹(1652~1708)의 遺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온순하고 순수한 인품을 갖추고 바깥세상과는 단절한 채 근본에 힘쓰며 자신의 내면적 심성함양에만 매진할 뿐이었으며, 甁窩 李衡祥, 涵溪 鄭碩達, 屛厓 曺善長, 伊溪 李浩秀, 魯岑 孫汝斗 등과 道義로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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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地立春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1906년(光武 10) 이래로 10년 동안 자신을 비롯한 全州 柳氏와 安東 權氏의 장로들이 매년 立春에 福地에서 稧會를 열면서 서로 우의를 다졌는데, 그 계첩을 만들면서 石塢 權秉燮과 더불어 지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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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山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無窩 權舜經(1676~1744)이 동생들과 함께 학업에 매진했던 龍山에서 그의 遺集을 편찬하기 위한 계회를 조직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禮學에 특히 밝아 儀式의 변화에 대해 깊이 궁구했으며, 顧齋 李槾, 密庵 李栽, 霽山 金聖鐸에게 질문하며 배운 내용들을 모아 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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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齋先生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忍齋 申埰(1610~1672)의 文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성리학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등 학문적 수준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당시에는 아버지 虎溪 申適道, 숙부 懶齋 申悅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忠義를 실천했다. 「學圖十銘」을 저술했고, 丹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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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窩李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閒窩 李時逸(1731~1792)의 文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경전을 폭넓게 읽으며 養性과 함께 義理를 궁구하는데 매진했으며, 科擧에 합격해 官界에 진출해서는 難進易退를 실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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訥窩吳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訥窩(庵) 吳衡弼의 文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肅齋 趙秉德과 立軒 韓運聖 등의 문하에서 20여 년 동안 배우면서 四子六經에 통달했고, 克齋 李圭容, 耻窩 張啓勳, 德溪 李祥 등과 道義로써 교유했다. 그의 詩文은 평이하고 담담한 가운데서도 진한 묘미가 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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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皐實紀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東皐 權仲和(1322~1408)의 實紀를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조선 개국 초 언관으로 활동하며 나라를 경영하는 합리적 방책을 제시했으며, 청렴하고도 검소한 자세로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무리하게 출세를 도모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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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陰南公文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松陰 南龍燮(1734~1817)의 文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 그는 一庵 李圭哲에게서 배웠으며, 인간의 영욕을 뜬구름으로 여기며 오로지 養性을 통해 君子의 도리를 갖추는 데만 진력하여 凝庵 尹聚東, 泉齋 申弼欽, 后山 許愈로 이어지는 湖上三老의 학맥을 형성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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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溪聯芳詩稿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정몽주와 함께 조선왕조의 개창을 반대하다 襄陽에 유배된 이래 평생 갈대로 만든 삿갓을 쓰고 세상을 떠난 蘆浦 安俊의 후손인 蘆溪 安嗣宗, 淸遠亭 安繼宗, 集勝亭 安承宗 형제들의 詩文을 모아 책을 편찬하면서 지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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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塘花樹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林塘에 있는 楸齋를 보수한 것을 계기로 全州 柳氏 花樹會를 결성하고 約案과 함께 詩帖을 만들면서 그 전말을 기록한 서문이다. 규약을 정해 가문의 화목을 돈독히 하고 各派에서 일정한 회비를 염출해 모임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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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同稧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同學이자 동고동락을 같이 하던 金昌鎭·金昌祺·李順鎬가 三同稧를 만든 것을 축하하며 지어준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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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山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紫雲山 아래 은거하고 있던 交友 金象鍾의 號를 云山이라 하게 된 연유와 관련하여 그 의미를 찬미한 내용의 記文이다. ‘云’이라는 글자는 정해진 의미도 없는 助詞에 불과한 것인데 하필 ‘雲’에서 ‘雨’를 버리고 사용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자신에게는 당초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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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石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李滉의 후손인 李中轍(1848~1937)이 細川과 立石의 사이에 살면서 號를 艮石이라 정한 것은, 벼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우거하는 모습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그 의미를 부여한 내용의 기문이다. 조상 대대로 돈독한 삶을 살면서도 적절하게 그칠 줄 아는 미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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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瀾精舍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退溪學의 요람인 陶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翠屛의 七臺三曲 명승에 자리 잡은 月瀾精舍를 중수하면서 그 전말을 기록한 기문이다. 이 精舍는 원래 月瀾庵이라 이름했던 것으로 1560년(명종 15) 晩翠 金束脡이 이곳에서 과거에 합격했고 그에 이어 川沙 金宗德이 10여 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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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庵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의성 김씨의 집성촌인 進川 앞에 자리 잡은 進庵에 대한 전말을 여기서 세거해온 金甲秉의 부탁으로 기록한 기문이다. ‘進’이 천리를 行進하고 百川을 流進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끊임없이 쉬지 않고 부지런히 進德, 進學을 위해 매진하는 가문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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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老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세상을 떠난 交友 金重建이 自號하며 머물렀던 石老를 그의 인품과 연관하여 추모의 정을 담아 기록한 기문이다. 돌은 흙의 精髓이고 氣의 中核을 의미하듯이 그는 일찍이 단아한 품성을 갖추고서 科擧를 포기하고 전원에서 책만을 벗으로 삼아 진정한 삶의 방향을 모색했으며, 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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盤隱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안동의 남동쪽 50리 지점의 蘿谷에 族叔 柳宜鎬와 從弟 柳仁甫가 대를 이어 살고 있던 자리에 盤隱亭을 건립하고 그 옆에 追慕齋의 편액을 걸면서 지은 기문이다.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맑아 사람이 은둔하기에 알맞은 이곳은 처음 자신의 아버지가 정착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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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古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宜陽(春陽)의 桂成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太古亭에 대한 기문이다. 이곳은 鄭逑가 安東府使로 재직하면서 즐겨 찾으며 바위에 ‘太古洞天’의 大字를 새기기도 했던 곳으로, 靖窩 姜鎔이 노년을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정자를 건립했다. 그는 여기서 性理學에 침잠하며 그것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