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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3151

    征邁軒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交友 金聖憲이 渴梅洞의 깊은 산록의 계곡에 건립한 征邁軒에 대한 기문이다. 洞名의 의미에 맞추어 목마르게 梅花를 부른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진 이 집은 그의 학문적 자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평이하게 살면서도 貨利와 聲色을 멀리한 채 높은
    출처 : 유교넷
  • 363152

    黃硯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密陽의 嶺南樓 옆에 새로 건립된 黃硯齋를 둘러보면서 지은 기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忠孝를 동시에 실천했던 黃硯公이 만년에 鏡湖 위에 별장을 짓기 위해 터를 닦다가 땅 속에서 누렇고 자색 빛이 나는 오래된 벼루를 발견하고는 自號와 함께 堂號를 지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출처 : 유교넷
  • 363153

    守分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1926년 西北의 諸老들과 함께 景濂亭 儒會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小白山 남쪽 桃花源의 깊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李天弼이 지은 守分堂을 둘러보고 지은 기문이다. 분수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얻는 것으로 賢愚貴賤이 각기 常分을 갖기 마련이며
    출처 : 유교넷
  • 363154

    愼庵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日月山 아래 剡溪가 굽이도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愼庵亭에 대한 기문이다. 이 정자는 南益陽이 그의 祖父 愼庵 南蓀을 위해 건립한 것이다. 신암은 일찍이 武科에 합격하여 義興衛部將·軍威縣監·晉州兵馬使 등을 역임했으며, 丙子修好條約으로 日帝의 침략이 본격화하자 지혜로운
    출처 : 유교넷
  • 363155

    夢軒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交友 申敬安이 머물고 있는 韶州의 夢軒에 대한 기문이다. 그는 일찍이 文獻을 본업으로 삼고 있던 가문에서 家學을 계승하면서 經史를 폭넓게 읽으며 사물의 원리와 이치를 터득했으며, 자신과 함께 교유하며 풍운의 꿈을 품고 龍虎가 되고자 약속하고 꿈의 실현을 위해 서로 노
    출처 : 유교넷
  • 363156

    松厓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司憲府 持平을 지내고 사망한 松厓 崔匡之가 머물던 松厓齋에 대한 기문이다. 立齋 鄭宗魯의 문인인 그는 경전을 강론하고 성리학의 要訣을 들은 이래 전심전력으로 尊德性과 道問學에 매진하며 修身과 進學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는 관직에 나아가서는 오로지 君民을 위한 방안
    출처 : 유교넷
  • 363157

    恬庵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자신과 14촌 동생 柳應夏가 70년 동안 머물면서 讀書와 養性에 매진했던 恬庵에 대한 기문이다. 安靜·澹泊·和平의 의미를 지닌 ‘恬’을 통해 이곳에서 티끌 없이 맑은 성품을 기르고, 절제되고 근검한 자세를 확립하며, 간결하고도 정제된 文詞를 구사하리라 다짐했음을 밝혔
    출처 : 유교넷
  • 363158

    節婦咸陽朴氏彰烈閣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承訓郞 朴元熙의 딸이자 羽溪 李潤旭의 부인인 節婦 咸陽 朴氏의 彰烈閣을 興州(順興)에 건립하면서 지은 기문이다. 宗家에 시집가 집안의 온갖 일을 도맡아 처리함과 동시에 화목을 이끌어오다, 남편이 병이 들어 지성껏 병구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자 삼년상을 모두 치른
    출처 : 유교넷
  • 363159

    白山齋舍重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東海의 曲江郡 北白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蔬水齋 柳寅福의 묘를 수호하는 白山齋舍를 重建하면서 지은 기문이다. 仁義와 忠養으로 일세를 풍미했음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0

    澗西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80년을 형제와 다를 바가 없이 지낸 姊兄 金建伯이 만년에 침식을 잊고 저술한 「澗西」를 보고 감회를 적은 기문이다. 작은 계곡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고 東에서 노력해 西에서 成功을 이루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소개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1

    退學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從先祖 驪牧公 柳蜚英이 鶴城(蔚山)의 守令으로 재직할 때 머물던 곳에 族祖 柳致東이 退學堂을 건립하면서 자신에게 지시해 지은 기문이다. 堂號가 坊名을 딴 것이기는 하지만 조용히 물러나 학문에 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內修外攘(내면의 심성을 길러 바깥의
    출처 : 유교넷
  • 363162

    謹書大埜先生心經集解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大埜 柳健休(1768~1834)가 지은 『心經集解』를 발간하면서 감회를 담아 지은 발문이다. 心學에 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하여 조목조목 辨析한 내용이 程·朱의 訓釋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退溪의 訓領에 철저하게 의거하고 있다며 그가 지은 『四書集評』·『三經集解』·『異
    출처 : 유교넷
  • 363163

    鶴南李公先生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鶴南 李晦慶(1784~1866)의 文集을 발간하면서 지은 발문이다. 자신의 伯高祖 壺谷 柳範休에게서 “居敬·窮理로 道를 이루는 기틀로 삼고, 明辨·篤行으로 誠을 생각하는 기본으로 삼는다”는 旨訣을 전수받았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집의 내용 가운데 「洪範圖敍」·「庸學大
    출처 : 유교넷
  • 363164

    書金武卿先賢墨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武卿이 東方 儒賢의 筆蹟을 널리 모아 20冊으로 묶은 묵첩에 쓴 발문이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德性과 氣像이 묻어 있는 법이라는 선현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통해 인품의 함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담았다.
    출처 : 유교넷
  • 363165

    族先祖猿溪公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族先祖 猿溪 柳仁培(1589~1668)의 문집을 발간하면서 지은 발문이다. 敬堂 張興孝와 雲川 金涌의 문하에서 수학했음을 전하면서, 유유자적한 삶의 궤적과 花園에서 풍류를 즐기는 멋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6

    書金城詩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임진왜란 당시 錦陽 韶州의 金云山 전투에서 槍卒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小雲子 金城의 詩帖에 붙인 발문이다. 詩文에 우러나는 애절한 우국충정에 눈물을 머금은 감회를 토로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7

    淡水帖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定齋 柳致明의 문인들인 叔父 修齋 柳元直과 石澗 徐孝源이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글들을 모아 만든 「淡水帖」에 붙인 발문이다. 두 사람의 긴밀한 교유관계와 함께 서로 논변을 전개한 내용도 궁극에는 한마음으로 통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 규정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8

    謹書金孟直家先淵源筆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孟直이 靑溪 金璡을 비롯한 조상들의 遺墨을 모아 만든 「家先淵源筆帖」에 붙인 발문이다. 한 가문에서 전승된 필첩이기는 하지만 퇴계학파 적전의 道德·學問·文章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69

    九峯李公墓碣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九峰 李士雲의 墓碣을 다시 세우면서 지은 후지이다. 1789년(정조 13) 東巖 柳長源이 쓴 墓碣을 세우기는 했지만, 영남유림의 상소에 의해 忠孝卓異로 朝奉大夫 童蒙敎官으로 贈職되면서 다시 세웠다.
    출처 : 유교넷
  • 363170

    小庵李公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小庵 李鉐均(1855~1927)의 문집을 발간하면서 지은 발문이다. 定齋 柳致明에게 배웠으며, 布衣로 만족하면서 進退와 得失이 분명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출처 : 유교넷
  • 363171

    金時沃潤來字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時沃의 字를 潤來로 지으면서 그 의미를 풀이한 글이다. 潤은 연못의 물이 넘쳐흘러 대지를 적신다는 것으로, 자질을 널리 함양해 세상에 묻은 때를 씻어내는 역할을 할 것을 바라는 기대를 담았다.
    출처 : 유교넷
  • 363172

    金時潤雨汝字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時潤의 字를 雨汝로 지으면서 그 의미를 풀이한 글이다. 천지의 만물을 발육하게 하고 원기를 생성하도록 하는 것이 雨이듯이, 義理를 널리 펼쳐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을 기대하며 축복의 뜻을 전했다.
    출처 : 유교넷
  • 363173

    裵汝鸞(炳翰)宜庵贊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裵汝鸞(炳翰)이 거처하는 宜庵의 문자해석을 통해 학문적 자세를 칭송한 글이다. 農·商에 종사하며 功利에 집착하기보다 讀書와 稽古를 마땅한 것으로 여김과 동시에, 가지런한 천성을 바탕으로 스승을 따라 性理學의 천착에 매진하며 正道를 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세에 대해 찬
    출처 : 유교넷
  • 363174

    岐陽書堂追遠祠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岐陽書堂에 선조들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追遠祠를 건립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기양서당은 1615년(광해군 7) 岐峯 柳復起(1555~1617)가 건립했으며, 그와 安珦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었다.
    출처 : 유교넷
  • 363175

    先祖妣義城金氏旌閭閣移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先祖妣 義城 金氏의 旌閭閣을 옮기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76

    臨川書院崇正祠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鶴峯 金誠一이 제향된 임천서원이 훼철된 뒤 복원할 때 그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崇正祠를 건립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77

    寶白堂重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寶白堂 金系行(1431~1517)이 건립해 거처했던 자리에 후손 蘭圃 金學圭의 주도로 중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78

    桃源亭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肯搆堂 孫諟命(1564~?)이 건립했던 정자의 자리에 桃源 李鍾極이 자신의 號를 딴 도원정을 새로 건립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79

    錦雲亭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吳中義가 士林의 지원을 받아 錦雲亭을 건립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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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180

    採薇軒重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虎溪 申適道(1574~1663)가 건립한 정자인 採薇軒을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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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181

    金正弼(政洛)誄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외6촌 동생 金政洛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弔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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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182

    金養仲誄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절친하게 교유했던 金直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3

    誄金國凝(時洛)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1896년 丙申義兵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莊庵 金時洛의 빈소에 올린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4

    金特夫(璋煥)誄辭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西山 金興洛의 문인으로 交友인 金璋煥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5

    李啓顯(承佑)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西山 金興洛의 문인으로 交友인 李承佑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6

    金景春誄詞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金景春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7

    沈啓五(琥澤)誄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沈琥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8

    仲子婦永川李氏幽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둘째 며느리 永川 李氏가 1918년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조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89

    祭肯庵李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肯庵 李敦禹(1807~1884)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0

    祭季舅承宣李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承宣을 지낸 막내외삼촌 李公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1

    祭先師石隱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從叔이자 스승인 石隱 柳基鎬(1823~1886)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2

    祭同樞南公(有相)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同知中樞府使를 지낸 南有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3

    祭金景能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兄弟처럼 가깝게 교유했던 金潤模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4

    祭張公(九鳳)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평소 존경하던 張九鳳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5

    祭西山金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스승인 西山 金興洛(1827~1899)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6

    祭三從叔父(奎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三從叔父 柳奎鎬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7

    祭宗丈慵坡公(東植)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종손 慵坡 柳東植(1832~1904)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8

    祭族弟景約(淵覺)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族弟 柳淵覺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199

    祭雲圃金戚丈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外戚族 雲圃 金景洛(1834~1912)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200

    祭洗山叔父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叔父 洗山 柳止鎬(1825~1904)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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