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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3251

    贈戶曹參判 朴在純(1825~1909)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潘南이고 字는 孟文이며 號는 梅史으로, 朴成榦과 楊州 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族祖 逸圃 朴時源에게서 배웠으며, 뛰어난 재주는 없었으나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가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집안이 가난해 학문에
    출처 : 유교넷
  • 363252

    處士喜齋朴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朴廷兌(改名 廷來; 1841~1886)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密城이고 字는 乃悅이며 號는 喜齋로, 朴盛德과 密城 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淸道人으로 兩親이 사망한 이후 科擧를 포기하고 義理가 없으면 궁구하지 않고 미묘하지 않으면 분석하지 않는 자세로 四七·理氣의
    출처 : 유교넷
  • 363253

    處士機巖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權周林(1847~1911)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安東이고 字는 公木이며 號는 機巖으로, 權烋와 星山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재산을 꼼꼼하게 관리해 부모의 봉양에 정성을 다한 효자였다.
    출처 : 유교넷
  • 363254

    通政大夫楸下孫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通政大夫 孫相奭(1820~1903)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慶州이고 字는 予宣이며 號는 楸下로, 孫星殷과 永川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小隱 柳致球에게서 배웠으며 訂窩 金岱鎭에게 斯文의 大事에 관해 질의하는 등 감화를 받았다. 밖에서 영달을 꾀하려면 나를 따르지 말라는
    출처 : 유교넷
  • 363255

    耘窓處士吳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耘窓 處士 吳翼發(1831~1886)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海州이고 字는 叔羽이며 號는 耘窓으로, 吳道煥과 南平 文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義軒 金宗燁에게서 배우며 ‘文學種子’로서 기대를 받았지만, 집안이 가난해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농사일에 전력하며 부모를 봉
    출처 : 유교넷
  • 363256

    處士晩圃南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南基旭(1820~1899)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英陽이고 字는 雲用이며 號는 晩圃로, 南道範과 信川 康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信菴 李準九에게서 배웠으며, 몇 차례 科擧응시에 실패한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을 돌보며 性理學의 탐구에 매진함과 동시에 고금의 歷史를 두루
    출처 : 유교넷
  • 363257

    處士卑庵金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金宇洛(1827~1901)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義城이고 字는 啓伯이며 號는 卑庵으로, 金鎭隣과 載寧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龜峯 金守一의 후손으로 叔父 素窩 金鎭宇에게서 배웠으며, 선조 雲川 金涌이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義理를 잃지 않았던 것을 귀감으로 삼아
    출처 : 유교넷
  • 363258

    處士鶴皐趙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趙奎乙(1847~1925)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漢陽이고 字는 玄老이며 號는 鶴皐로, 趙鏞熙와 義城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古隱 朴容學에게서 배웠으며, 文詞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陰陽·卜筮의 책들도 한 번 읽고도 모든 이치를 깨우쳤다. 자신이 저술한 많은 저
    출처 : 유교넷
  • 363259

    處士巖溪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李一欽(1845~1909)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全義이고 字는 允中이며 號는 巖溪로, 拙訥 李宅進과 安東 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心經』을 배웠으며, 오로지 經書와 歷史書를 읽고 베껴 쓰는 것을 즐기고 가정의 잡다한 일을 돌보면서도 貨利
    출처 : 유교넷
  • 363260

    嘉善大夫中樞院議官林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大靜縣監, 中樞院議官 등을 역임한 林東漢(1824~1910)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醴泉이고 字는 士明이며, 林應祥과 咸安 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약관에 손발이 마비되는 병을 얻었으나 스스로 의술을 익혀 극복했으며, 農·商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文·墨의 공부에도
    출처 : 유교넷
  • 363261

    司憲府持平을 지낸 千光祿(1851~1931)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穎陽이고 字는 華善이며 號는 晩隱으로, 千昌億과 光山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2년(고종 29) 甲科에 합격하여 成均館典籍에 임명되고 이어 持平에 발탁되어 時政의 개정방안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출처 : 유교넷
  • 363262

    處士蒼廬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李壽昇(1854~1913)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月城이고 字는 德玄이며 號는 蒼廬로, 李始榮과 務安 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叔祖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再從叔父에게서 文章과 性理學을 배웠다. 근본에 힘쓰지 않으면 가지와 잎은 시들기 마련이라는
    출처 : 유교넷
  • 363263

    端人陽川崔氏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端人 陽川 崔氏(1847~1926)의 묘갈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63264

    孝子忠勳府都事姜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孝子 忠勳府都事 姜泰馨(1843~1911)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晉山이고 字는 致老이며, 日愼堂 姜德永과 金寧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繼母에게서 자랐으나 學業에 힘쓰는 가운데에서도 養親을 최우선의 일로 삼아 정성껏 봉양했다. 父親이 돌아가신 뒤
    출처 : 유교넷
  • 363265

    通政大夫三斅李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通政大夫 李濬(1568~1659)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月城이고 字는 敬九이며 號는 三斅로, 李成立과 綾城 具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靑松에서 태어났으나 임진왜란으로 興海로 옮겼으며, 날마다 쉬지 않고 經史를 講究했으며 孝悌·忠信·勤儉을 후진들을 가르치는 의리로 삼겠다
    출처 : 유교넷
  • 363266

    樂隱權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權錫(1824~1887)의 묘갈명이다. 本貫은 安東이고 字는 和叔이며 號는 樂隱으로, 晩窩 權澤奎와 密陽 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經史에 博通했으며 이치가 정밀하여 주위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科擧에 응시할 때마다 번번이 고배를 마셨으며, 뒤에는
    출처 : 유교넷
  • 363267

    通德郞鶴下李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李恂發(1780~1856)의 행장이다. 本貫은 永川이고 字는 恂如이며 號는 鶴下로, 李宜明과 坡平 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申宅和에게서 배우며 일찍부터 자질을 인정받았다. 1832년(순조 32) 屛山書院 請額上疏의 疏頭로 추대되어 上京했으며, 여기서 南人을 포섭할 의
    출처 : 유교넷
  • 363268

    外祖父 義禁府都事 李彙正(1781~1838)의 행장이다. 本貫은 眞寶이고 字는 聖揆이며 號는 東屛으로, 李民淳과 昌寧 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을 대할 때 溫裕·慈惠를 우선하고 理學의 토론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木川 張錫愚, 晦堂 崔侃, 壺月 李定之
    출처 : 유교넷
  • 363269

    處士仁皐南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南朝瓛(1843~1906)의 행장이다. 本貫은 英陽이고 字는 獻卿이며 號는 仁皐로, 南有相과 安東 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從叔父 雲林 南有栻에게서 배우면서 科擧공부에 매달렸으나, 중년 이후 儒學의 공부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며 포기하고 性理學의 탐구에만 진
    출처 : 유교넷
  • 363270

    通德郞悔軒李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通德郞 李魯守(1820~1895)의 행장이다. 本貫은 永川이고 字는 子約이며 號는 悔軒으로, 鶴下 李恂發과 英陽 南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定齋 柳致明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科擧에 응시하지 않았다. 부인을 잃은 뒤로 집안에 칩거
    출처 : 유교넷
  • 363271

    承政院右承旨를 역임한 外叔 李晩耆(1825~1888)의 행장이다. 本貫은 眞寶이고 字는 德老이며 號는 新巖으로, 李彙正과 安東 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52년(철종 3) 登第하여 承文院正字, 成均館典籍을 거쳐 弘文館校理로 재직할 때에는 經筵에 참석해 『小學』을 강
    출처 : 유교넷
  • 363272

    三從叔父修齋柳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三從叔父 柳廷鎬(1837~1907)의 행장이다. 字는 元直이며 號는 修齋로, 起軒 柳致任과 義城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定齋 柳致明과 西山 金興洛에게서 배웠다. 龍潭寺에서 『定齋集』간행에 참여했으며, 1896년(建陽 1) 丙申義兵 당시에는 安東義兵의 文簿를 전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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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73

    先師石隱柳公行總敍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從叔이자 스승인 石隱 柳基鎬(1823~1886)의 행적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 1921년에 썼다. 定齋 柳致明의 제자로서 鶴峰 金誠一이 제향된 臨川書院 賜額 청원운동을 주도하다 金化에 유배되기도 했다.
    출처 : 유교넷
  • 363274

    通德郞宣城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姑母夫 通德郞 金輝翊(1846~1894)의 행장이다. 本貫은 禮安이고 字는 景欽이며, 小下 金樂灃과 晉州 姜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에게 엄격했으나 남에게는 厚誼를 베풀어 곡식을 빌려주고도 장부에 적는 법이 없었다.
    출처 : 유교넷
  • 363275

    處士順窩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西山 金興洛의 문인인 處士 金冑植(1859~1916)의 행장이다. 本貫은 義城이고 字는 舜敎이며 號는 順窩로, 金恭洛과 達城 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4년(고종 21) 조정에서 衣制變更을 지시했을 때 영남사림들의 항의하는 상소를 준비하자 草野의 사림들이 변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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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76

    處士紫陰南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南升喆(1851~1922)의 행장이다. 本貫은 英陽이고 字는 德玄이며 號는 紫陰으로, 南熙泰와 眞城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慶州 龍田 출신으로 1896년(建陽 1) 閔妃弑害 및 斷髮令에 항의해 일어난 丙申義擧에서 鄕人들의 추대를 받아 都摠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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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77

    處士蘭圃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處士 金學圭(1852~1929)의 행장이다. 本貫은 安東이고 字는 敬立이며 號는 蘭圃로, 金炳周와 全州 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寶白堂 金係行의 후손으로 보백당을 건립해 향음주례를 개최했으며, 芶全 金中淸이 머물던 九未堂의 수리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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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78

    訓導若愚李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訓導 李訥(1541~?)의 행장이다. 本貫은 永川이고 字는 希仁이며 號는 若愚로, 李秀蕃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鄕校에 봉안된 五聖八賢의 位版을 옮기는 한편, 書記 朴文虞 등 邑兵 수백 명을 거느리고 慶尙左兵使 朴晉을 도와 국난극복에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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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79

    季父通德郞府君行略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季父 通德郞 柳憲鎬(1841~1913)의 행장이다. 字는 季憲이며, 柳致溥와 月城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재물을 모으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허름한 복장으로 살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항상 앞장섰다.
    출처 : 유교넷
  • 363280

    先妣端人眞城李氏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어머니 端人 眞城 李氏(1823~1896)의 행장이다. 李彙正과 高靈 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1896년 安東義兵에 의해 書記에 추대되었으나 간호를 이유로 나아가지 않자 病中임에도 꾸짖으며 대장부로서의 기개를 가르쳤음을 회고했다.
    출처 : 유교넷
  • 363281

    祖考都正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祖父 都正 柳致潤(1805~1880)의 유사이다. 字는 必身이며, 柳少文과 眞城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掌苑署別提·金山郡守·敦寧府都正 등을 역임했으며, 안동사림의 臨川書院 賜額請願 上疏를 지원하기도 했다.
    출처 : 유교넷
  • 363282

    先考正字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아버지 正字 柳章鎬(1823~1870)의 유사이다. 字는 伯憲이며, 柳致潤과 眞城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承文院副正字를 잠시 역임했으나 평생을 농사일에 전념했으며, 가난한 처지에도 곧고 간결한 인품을 견지했다.
    출처 : 유교넷
  • 363283

    宋烈婦傳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宋湖 宋奎鉉의 딸인 烈婦 宋氏에 대한 행적을 뒤늦게 전해 듣고 쓴 전기이다. 남편이 水害로 사망하자 10여리를 헤매며 떠내려간 시체를 찾아 수습하여 장례를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출처 : 유교넷
  • 363284

    挽詞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姜鎔·李中轍·金翊模·李心求·李鍾夔·金鴻洛·李錫權·金翰洛·南朝馹·李弼鎬·南孝順·宋冑煥·金昌鎭·金秉矩·金賚植·李鉉復·裵炳翰·金鴻基·李炳鯤·李英雨·南錫翰 등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363285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權秉燮·金秉燦·權錫瓚·李濬衡·金鍾九·金鼎漢·柳淵龜·柳東蓍 등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363286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族弟 恬庵 柳淵龜(1861~1938)가 썼다.
    출처 : 유교넷
  • 363287

    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權秉燮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363288

    墓碣銘(幷敍)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權相圭가 썼다.
    출처 : 유교넷
  • 36328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연즙
    孫子 柳轍薰이 1958년 文集을 간행하면서 쓴 跋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63290

    병곡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屛谷 權榘의 문집. 10권 5책. 續集 4권 2책. 아들 縉과 손자 明佑가 遺文을 정리‧편집하였고 鄕長 河龍圖와 門生 安敏修가 출판을 계획했으나 완수하지 못하고, 1797년(정조 21)에 이르러 金弼衡 등의 발의에 의해 간역이 시작되어 外孫 柳一春, 象春 등이 다
    출처 : 유교넷
  • 36329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次柳介仲(聖和)韻, 閒居(1702), 題畵屛(八絶, 1716, 滄波垂釣, 陽坡翫龜, 松陰對酌, 石榻看棊, 月下撫琴, 風前掛帆, 雪橋騎驢, 暮山沽酒), 輓金適菴(台重, 1711), 登樓, 望前山, 和柳任甫(聖尹)詠竹(二絶), 和東谷諸友(1718), 端午日與柳國賓(後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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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2

    太師廟金門對擧疏(1726)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太師廟에 모셔진 權幸과 金宣平의 位次 분쟁의 해결을 위해 올린 疏이다. 엎드려 아뢰옵니다. 前郡守臣 金昌說 등과 前護軍臣 權德明 등이 각기 선조 金太師宣平과 權太師幸의 位次와 잔을 올리는 先後에 대해 疏를 올려 옳고 그름을 논했는데 事案이 禮曹 등에 올랐으나 아직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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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3

    與權蒼雪齋(斗經)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權斗經에게 보낸 편지이다. 仲春 이후 癘氣(腫氣)에 걸려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지내왔다고 했으며, 鄭相(未詳)의 일은 선후관계가 下敎하신 바와 같으며 다만 당시의 事蹟을 流失하여 고증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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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4

    與李密菴(栽)別紙(1706)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李栽에게 보낸 편지이다. 代服(喪主 대신에 服 착용하는 것)에 관해 질문하였다. 先儒의 禮設에 따르면 부친의 喪을 치르는 중에 조부모가 돌아가신 경우 빈소를 마련하지 아니했으면 아들이 代服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고 하였는데, 만약 이미 成服을 한 경우에는 어떠한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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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5

    答李密菴(1723)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李栽에게 보낸 답장이다. 龍城으로부터 돌아와서 보내신 사찰과 편지를 잘 받았으며,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지적해주신 사항을 공손히 받들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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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6

    答李君直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李槾에게 보낸 답장이다. 연이어 겪은 喪으로 인해 氣血이 쇠진하여 귀가 울리고 눈이 어둡고 정신이 혼미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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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7

    與金振伯(1730)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로이 관직에 除授되어 부임하게 된 것은 마땅히 헤아려 결정한 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 또 이로 인해 이별을 하게 되니 매우 서운하다고도 했다. 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행차가 가까이 지날 것인데 길가에 나가 손을 흔들어 전별하지 못하는 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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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298

    答李天祥(光庭,1743)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李光庭에게 보낸 답장이다. 玉淵과 屛山은 영남에서 絶勝의 곳인데 兄께서 이곳을 다녀가신 적이 없다면 欠事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조만간 격식을 차리지 말고 행차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3299

    與李子昻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李山斗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해 겨울두 차례 서신을 받았으나 외진 곳에 살다보니 便이 없어 答을 하지 못하여 한스럽다고 하였다. 조만간 이곳으로 省墓를 오실 때를 기약하며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3300

    與洪國寶(大龜,1726)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
    洪大龜에게 보낸 편지이다. 교정을 부탁받은 遺稿 두 책을 封해 보내며, 우매한 자신이 어찌 감히 參涉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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