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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潤哉(德秀,1721)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德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太師廟의 일은 잘 알지 못하므로 답답하다고 하였다. 다만 和平를 유지하는데 힘쓰고 義理를 베풀면서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 옳을 듯하고, 격분한 마음으로 대응하거나 힘으로 맞서면 不可하니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특히 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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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潤哉(1723)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德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리가 필 때도 멀지 않았는데 채소국을 곁들여 먹으면 근심이 없어질 듯 한데 조만간 왕림하시어 그동안의 회포를 풀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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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潤哉(1733)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德秀에게 보낸 답장이다. 魯林(안동)에서의 모임은 감기가 겹친 탓에 움직일 수 없을 것 같고, 이에 대한 책망은 기꺼이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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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國華(命夏)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安命夏에게 보낸 편지이다. 늙고 쇠약하여 정신이 혼미해지고 건망증이 심해져서 날이 갈수록 깊은 병이 되므로 잊는 것은 많고 남는 것은 적은데, 이 모든 것을 어쩔 수 없이 순순히 받아들일 뿐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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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士直(栐)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李栐에게 보낸 답장이다. 春中 무렵부터 질병에 걸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으나 후유증이 남아 기력이 쇠잔하고 눈이 어지럽고 귀가 어두워졌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書冊을 던져 버렸고 힘쓸 곳이 없어 君子를 버리고 小人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되어 기쁜 마음이 전혀 없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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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少昌(1726)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冑寲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만나기가 참으로 쉽지 아니한데, 그동안 평안하신 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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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少昌(1730)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冑寲에게 보낸 답장이다. 密菴 李栽께서 세상을 뜨시고 이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지 애통할 따름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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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鵬擧(起溟,1738)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起溟에게 보낸 답장이다. 吉祭의 방식에 관해 논의하였는데, 길제가 비록 時享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緇服(검은 상복)을 벗음에 있어 반드시 길제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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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鵬擧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起溟에게 보낸 답장이다. 喪禮에 관해 논의하였는데, 喪이 지나고 나서 禫祭를 지내지 아니한 사람은 신위를 마련하여 哭을 하면서 除服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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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鵬擧(1739)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起溟에게 보낸 답장이다. 祔祀는 几筵에서는 수행할 수 없고 이미 撤筵한 후에 행하면 紙榜을 이용하여 지낸다고 하였다. 또 의례에 따라 분향 및 酒果를 진설하고 집에 있는 자제로 하여금 사당에 고유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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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鵬擧問目(1741)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起溟의 질문에 대한 답장이다. 金起溟의 7대조 사위인 安處仁은 乙卯士禍에서 禍를 입어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르고 7대조 묘소 아래 내외 쌍분을 마련하였다. 자손이 없었으나 제사를 폐하지 않고 遠代가 지난 뒤에도 계속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혹자가 이르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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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素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仲素에게 보낸 편지이다. 날이 갈수록 귀밑머리가 백발이 되고 눈이 어두워져서 書冊의 註脚 문자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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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會徵(成全,1743)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李成全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자에 듣기를 兄들이 廣興寺에 모여 孤山 李惟樟의 遺文을 정리하는 계획을 세운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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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邇豪(運復,1730)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運復에게 보낸 답장이다. 족보를 개간함에 있어 반드시 公議를 모아 채택할 것을 당부하였으며, 이를 위한 모임에 참석함이 마땅하지만 先山의 분묘가 무너져 補土를 해야 하므로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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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河達夫(達海,1744)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河達海에게 보낸 답장이다. 사당이 완공된 것을 축하했으며, 位版에 題主를 하는 것과 門長이 主祭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질문에 그렇게 함이 마땅하다고 답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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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進士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洪應龜에게 보낸 답장이다. 喪服에 관해 논의한 내용인데, 斬衰服을 입고 장사를 지낸 뒤에 齊衰의 服을 당한 사람은 재최로 바꾸고 장사를 지낸 다음, 다시 참최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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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退甫(樂行,1731)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樂行에게 보낸 답장이다. 부인을 질병으로 잃고 나서 애통함을 금치 못하는 중에 위로의 편지를 받았으나 답장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으며, 흉작이 심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떻게 집안을 다스리고 있는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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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子仲(適道)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適道에게 보낸 답장이다. 『大學』에 관해 논한 편지를 받고 배움이 더욱 정진한 듯하다고 했으며, 한 글자 한 구절까지도 究竟에 이르도록 밝혀야만 비로소 大意를 깨달을 수 있다는 독서법을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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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甥(始亨)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생질 金始亨에게 보낸 답장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상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상례방식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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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甥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생질 金始亨에게 보낸 답장이다. 墓祭를 祠宇에서 행하는 것은 옳지 않고 廳事에서 지내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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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石兒(䋠小字)孝甥(洪遵小字,1720)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아들 權䋠와 생질 權洪遵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을 비운 사이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고, 집에 돌아가서 점검을 할 때 게으르고 해이함이 있으면 벌을 내리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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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環說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천체관측기구인 雙環의 원리를 설명한 글이다. 雙環은 세 개의 바퀴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개는 천체의 형상을 나타내고 나머지 한 개는 그 힘을 받아 움직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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疑義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喪服에 관해 설명한 글이다. 古禮에 의하면 內舅는 緦麻, 姨母는 小功이라는 것은 ‘舅’와 ‘母’라는 이름에 의해 더해진 服이므로 이들 모두 緦麻로 족하다. 또 형제의 妻에게 小功의 服을 입는데, 원래는 服이 없지만 형제는 一體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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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韻掇英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三韻補遺는 여러 작가의 字書를 모아서 만든 책이다. 글자의 모양과 음, 뜻이 폭넓게 인용되고 있으며 고증 또한 철저하다. 그러나 문자를 입과 귀를 위한 자료로만 삼으려고 하니 학문하는 사람의 깊은 병폐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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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忠烈記後(1702)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知足堂 趙之瑞와 그 부인 鄭氏에 관한 『忠烈記』의 後記이다. 公의 늠름한 忠烈과 烈行은 사람의 머리를 서게 하였고 志士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 아! 저의 선조(權柱) 또한 바르고 곧은 道를 지닌 탓에 미움을 받아 公과 더불어 禍를 입었으니, 이 기록을 보고 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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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寶白堂金公實記後(1733)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係行을 위한 『寶白堂實記』의 後記이다. 아! 선생께서는 강직한 자세를 근본으로 삼고 학문의 힘으로 세상을 구했으며 깨끗하고 더럽히지 아니함이 있었다. 그러나 世代가 멀어짐에 따라 遺文과 舊蹟이 흩어져 버리니 言行의 출처를 상세히 기록해두지 않으면 후일 考驗할 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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硯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넓고 평평한 것은 들[野]이고 오목하고 깊은 것은 못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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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제 몸을 버리어 外物을 윤택하게 하는 仁者의 무리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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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먹을 마시고 종이로 가서 혀로 토하여 글자를 이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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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평평하기는 숫돌같고 흰 것은 눈과 같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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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舅翊贊柳公(宜河)文(1698)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外叔 柳宜河에게 올린 제문이다. 아! 슬프도다. 이 불초는 죄가 차고 악이 쌓여 죄가 神天에 이르러 禍를 받음이 가혹하나이다. 이 한 몸 외로이 남아 목숨은 실오라기 같은데 이곳에 서서 부르짖습니다. 公께서는 저를 孤危하다고 지극하신 정성으로 저를 불쌍히 여기셨고 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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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父長隱公文(1733)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季父 權協에게 올린 제문이다. 작년에 병이 깊어지던 날 마침 집안에 일이 생겨 이별을 고하고 돌아갔는데 3,4일이 못되어 부음이 갑자기 이르렀다. 곁에 머물면서 永訣하지 못한 것이 오장이 찢어질 뿐 더 무슨 말씀이 필요하겠습니까? 앞으로 日月이 비록 얼마나 남았는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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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進士(昌運)文(1711)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權昌運에게 올린 제문이다. 아! 나와 公과는 同宗의 誼가 있고 인척관계의 연분이 있어 서로 마음을 허락하고 교분을 가져왔다. 나이는 약간 차이나지만 公께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내가 公의 德에 이끌린 것은 실로 세속의 면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주장이 같고 의지가 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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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兄進士柳公(後康)文(1697)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外從兄인 柳後康에게 올린 제문이다. 형제간에 화평하고 부모를 섬김에는 어긋남이 없었고 宗黨을 대함에는 정성을 다했으며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너그러우셨다. 몸과 마음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법도에 맞게 허물이 없도록 했으니 어찌 남들이 비난하겠는가? 저를 돌보아 사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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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啓章(之熤)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李之熤에게 올린 제문이다. 여러 해 전 庚午年(1690)에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는 君과 나는 청년이었다. 한 번 보고서도 마치 오래 사귄 옛 벗처럼 의지가 투합하여 서로 즐거이 지냈다. 그동안 몇 년이 흘러 나의 머리카락은 희어졌고 君의 얼굴도 쇠잔해졌다. 질병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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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黃監察(浚)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黃浚에게 올린 제문이다. 아! 평생에 서로 마음을 許與한 뜻과 지극히 친한 벗을 永訣하는 슬픔은 죽어서 상봉함도 멀지 않을 것이니 바람을 맞아 머리를 돌리니 눈물이 가슴에 가득 찰 뿐이라고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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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來卿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李復煥에게 올린 제문이다. 어린 시절 만나 마음을 터놓고 지내다가 서로 멀리 헤어져서 그리워하며 바라보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병이 깊어져 온갖 의술을 다 써 보았지만 끝내 타향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魂이 되었으니 인간사가 가히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일까 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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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汝沃(濡)文(1732)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姜濡에게 올린 제문이다. 아! 公은 고매한 성품과 굳은 절조를 가졌는데 이렇게 혹심한 변을 당했으니 이 무슨 괴변인가 하면서 슬픔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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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第(集)文(1719)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종형제 權集에게 올린 제문이다. 우리 가문이 번창하지 못하여 王考 이하 從父로부터 형제로 삼을 사람은 오직 나와 君, 泰初(權彙) 뿐이니 그 외롭고 쓸쓸함이 이와 같다. 그런데 君이 갑자기 세상을 떴으니 살아남은 자로 하여금 더욱 외롭게 하며 눈물을 참으려 하지만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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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妹娘子文(1698)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여동생에게 올린 제문이다. 家兄은 슬픔을 머금고 아픔을 껴안은 채 亡妹娘子의 혼령에게 告하고 哭을 한다. 아! 너의 평생에 마음 쓰고 행한 것을 생각하면, 어버이를 섬긴 정성과 宗族에게 화목하게 대한 情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일을 함에 있어 조금도 불만스러운 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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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古墓文(1718)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이름 모를 묘소에 올린 제문이다. 神의 幽宅이 이 언덕에 의지해 있었는데 封瑩은 허물어 무너졌고 비탈진 곳에 겨우 남아 있네. 그 자손은 있는지 없는지 굶주렸는지 먹지 아니했는지 외로운 魂이 가엾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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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舞山祈雨文(1725)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검무산에서 지낸 기우제 축문이다. 극심한 가뭄이 달을 넘겨 민심은 횡횡하고 금월 2일 神에게 서둘러 告하고 비를 기다렸지만 정성이 부족하여 신명을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이랑에 가득 찬 오곡들이 장차 모두 없어져 벌거숭이 빈 땅이 될 것이니 나라의 貢賦와 관가의 세금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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祠堂移安告由文(1706)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神主를 사당으로 옮겨 奉安하는 고유문이다. 宗祀의 중책을 이어 받았으니 基業을 마땅히 死守해야 하며 함부로 移動함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나 喪禍를 겪은 이래 위태함이 더욱 심해져 가솔을 이끌고 쫓기는 듯 달아나서 보전을 해온 것이 9년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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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花山先生墓道立石告由文(1711)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7대조 權柱 묘소에 입석할 때의 고유문이다. 宗人들이 뜻을 합하고 힘을 모아 大家로부터 碑銘을 얻고 재물을 모아 돌을 들여왔습니다. 처음 일을 도모하고 나서 여러 해 만에 이제 겨우 마치고 吉日을 가려 幽墟에 세우고자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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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六代祖修撰公贈副題學焚黃告由文(1686)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從 6대조 權磌의 증직을 告하는 고유문이다. 국운이 불행하여 凶邪가 毒氣를 드러내어 士類에게 미친 慘禍가 겹겹이 쌓였으며 甲子(1504), 己卯(1519), 辛巳(1521)에 우리 가문의 禍가 더욱 혹독했으니 귀신도 울었습니다. 얼마 후 여러 名賢에게 벼슬을 주어 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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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時若(聖欽)哀辭(1719)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柳聖欽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오호라! 時若에게는 한 분의 兄이 있었는데 참으로 우애가 지극하여 그가 병석에 있을 때 돌보는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였는데 끝내 구하지 못하였으니 命을 어찌하겠는가? 兄은 어진 아우를 잃었고 부인은 의탁할 곳이 없으니 더욱 슬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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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子謙(聖益)哀辭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柳聖益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豊山 柳子謙은 금년 정월 辛未日에 甘文의 寓舍에서 별세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이는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 탄식하면서 善士가 죽었다며 애석해하였다. 子謙은 천성이 착했으며 대수롭지 않던 병에 毒疾이 겹쳐 병석에 눕고 나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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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孫明佑撰)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屛谷 權榘의 집안 내력과 系譜, 조상들의 행적, 權榘의 인품, 학문적 경향 등 일생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술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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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竝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陽川 許傳이 지은 묘갈명이다. 선생의 諱는 榘요 字는 方叔이며 안동권씨이다.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학자는 모름지기 뜻을 먼저 세워야 한다”라고 하셨으며, 또 “사물의 깊은 이치를 추구함에 있어 스스로 깨달아 얻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시기를 “마음은 반출처 : 유교넷 -
363350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구金命錫이 지은 만사이다. 公의 죽음을 두고 鄕人이 서로 告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