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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3401

    常享祝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춘추 향사때 사용한 축문으로 金世鎬가 지은 것이다. 玉雪같이 맑고 쇠같이 굳세고 화살처럼 곧은 덕을 영원토록 기리기 위해 제물을 갖추어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3402

    又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김계행의 후손되는 金鼎均이 지은 축문이다. 앞의 축문을 지은 김세호가 만년에 축문을 새로 지어서 쓰라는 당부가 있었고 士論 역시 그러했지만 실행되지 못하다가 나중에 이 축문을 새로 지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正學을 계승하고 淸節을 닦았으며 廉潔함을 갖추었으니 그
    출처 : 유교넷
  • 363403

    祭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金涌(雲川, 1557∼1620)을 淸德祀에 合享할때 密菴 李栽가 지은 제문이다. 보백당 김계행은 玉같은 풍모에 바위보다 더 굳은 지조를 지녔으며 높고 뛰어난 식견을 지녔다고 했다. 凝溪 玉沽 역시 道를 넓게 실천했고 풍모와 명성이 널리 알려 누구나 그를 흠모했으며 雲
    출처 : 유교넷
  • 363404

    奉安時士林通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묵계서원 청덕사를 지어 玉沽(凝溪, 1382~1436)와 보백당 김계행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사림들에게 보낸 통지문으로 앞의 遺事를 지은 李簠가 지었다. 옥고는 冶隱 吉在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經學에 밝았고 性理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고 한다. 안동부의 通判으로 있으면
    출처 : 유교넷
  • 363405

    亞卿請贈時上言(1858)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철종 9년 김계행에게 亞卿 즉, 正三品의 參判직을 추증해줄 것을 청하며 올린 글로서 李周禎(大溪; 1750∼1818)이 지었다. 높이 받들만큼 두드러진 절개와 행적이 있으면 포상해 높이며 관직을 추서함으로써 직책의 이름을 바꾸어 주는 표창 정책이 역대 성스러운 왕들의
    출처 : 유교넷
  • 363406

    吏曹回啓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안동지역 유생들이 김계행에게 관직을 높여 추증하기를 청하며 올린 「亞卿請贈時上言」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당시의 吏曹判書였던 金炳學이 임금에게 보고하고 어떻게 처리할 지를 묻는 글이다. 김병학은 해당 上書에 나타난 추증의 사유를 김계행의 뛰어난 품덕, 무오사화시 보여준
    출처 : 유교넷
  • 363407

    敎旨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앞서의 「亞卿請贈時上言」에서 요청한 김계행 추증 청원에 대해 임금이 윤허하여 내린 교지이다. 충성스러움과 효성스러운 마음을 지녔고 청렴하고 결백하였으며 道學의 淵源이 되었음을 들어 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을 추증했다.
    출처 : 유교넷
  • 363408

    亞卿焚黃告由文(1858)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김계행에게 나라에서 참판을 추증하자 이를 묵계서원 사당인 청덕사에 고하는 고유문으로 柳致明(定齋, 1777∼1861)이 지은 것이다. 조정에서 벼슬을 추증할 때 추증된 관직의 사령장과 황색 종이에 쓴 副本을 주는데, 이를 받은 자손은 추증된 선조의 무덤이나 사당에 고
    출처 : 유교넷
  • 363409

    貳卿焚黃改題時議節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나라에서 참판을 추증함에 따라 位版의 내용을 바꾸는 改題가 수반되는데, 이 글은 그러한 개제와 관련된 의례 및 절차에 관해 논한 글로서, 역시 정재 유치명이 지었다. 密菴 李栽가 가례를 원용해 정한 서원의 改題 절차에 따를 경우, 추증 대상인 신위에만 告하고 配位에는
    출처 : 유교넷
  • 363410

    改題告辭(1858)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추증에 따른 청덕사 위판 개제시 金垈鎭(訂窩, 1800∼1871)이 지은 글이다. 김계행이 忠孝와 淸白의 德行을 갖춘 데다 道學에 뛰어나서 이조참판의 직을 추증 받은 것은 斯文의 영광이므로 모든 선비들이 기뻐하는 바라고 했다. 이어 사당의 위판을 새로 바꿈에 좋은 날
    출처 : 유교넷
  • 363411

    正卿請贈時上言(1859)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김계행에게 正卿 즉 정이품의 관직을 추증해줄 것을 청원하는 상소로서 후손 金炳學이 썼다. 먼저 名臣을 높이 받드는 것은 나라의 성대한 典禮이고 賢士를 존숭하는 것은 사림의 公議라고 밝히고 安東에 成宗代에 副提學을 지낸 寶白堂 김계행이란 인물이 있다면서 그의 덕행과
    출처 : 유교넷
  • 363412

    吏曹回啓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안동지역 유생들이 김계행에게 관직을 높여 추증하기를 청하며 올린 「正卿請贈時上言」의 내용과 관련된 추증 문제에 대해 당시의 吏曹判書였던 南秉喆이 임금에게 보고하고 어떻게 처리할 지를 묻는 글이다. 남병철은 김계행이 뛰어난 품덕, 빼어난 문장, 곧고 맑은 절개로 道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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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13

    敎旨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앞서의 「正卿請贈時上言」의 내용대로 요청한 김계행 正卿추증 청원에 대해 임금이 윤허하여 내린 교지이다. 충성스러움과 효성스러운 마음을 지녔고 청렴하고 결백하였으며 道學의 淵源이 되었음을 들어 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
    출처 : 유교넷
  • 363414

    焚黃告由文(1859)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김계행에게 판서를 추증하자 이를 묵계서원 청덕사에 아뢰는 고유문으로 李彙寧(古溪, 1788∼1861)이 지었다. 김계행의 덕행을 기리고 나라에서 추증의 은전이 내림에 焚黃, 즉 추증된 관직의 사령장 副本을 태우고 예를 갖추어 아뢴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3415

    諡狀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영의정 鄭元容經山이 지은 諡狀이다. 나라에서 연이어 參判과 判書를 추증한 사실을 언급한 후 연보와 행장 등에 의거해 생애를 따라가면서 김계행의 德行과 功業을 거론했다. 이어서 1705년(숙종 31) 인근의 선비들이 黙溪 壺潭 가에 사당을 짓고 추모한 사실을 언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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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16

    諡號敎旨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定憲이라는 시호를 내리는 교지인데, 순수한 행적이 크고 높음을 일러 定이라 하고 忠을 지향하고 德을 받아들임을 일러 獻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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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17

    墓碣改竪告由文(1887)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判書의 직책이 추증되고 定憲의 시호가 내린 사실 등 새로운 내용을 추가함에 따라 墓碣을 다시 세우고 이를 아뢰는 글로서 柳道性(石湖, 1823~1906)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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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18

    墓碣改竪時追錄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묘갈을 새로 세울 때 추가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묘갈문이 1732년(영조 8)에 쓰여졌는데 그 후 34여 년이 지나 1858년(철종 9)에 이조참판이 추증되고 이듬해 판서가 추증되고 1863년(철종 14)에 定獻의 시호가 내려짐에 따라 1887년(고종 24)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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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19

    神道碑銘幷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외손 되는 李敦禹(肯庵, 1807∼1884)가 지은 신도비명이다. 序에서 연보와 행장 등에 의거해 김계행의 생애와 공적을 열거했다. 이어 銘에서 대대로 명성과 덕을 끼쳤고 집안에 청백한 기풍을 전했으며 행적이 두드러지고 강직한 성품에 학문의 功을 더했으며 圃隱을 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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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0

    淸德祠上樑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玉世寶가 지은 상량문이다. 金係行과 玉沽의 出處가 비슷하고 德業이 백대의 師表가 될 만하며 시대적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행적이 일치함을 말했고 이 청덕사로 인해 후인들이 덕이 있는 선비를 우러러 받들고 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3421

    淸德祠重修上樑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세 분 현인의 위대한 節介가 시대가 다르지만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玉沽의 학문은 天人의 이치를 궁구하고 神明을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청렴하고 굳센 마음을 지녔고, 김계행은 편안함과 험난함에 한결같이 처하여 忠貞을 지극히 하였으며 金涌의 行業과 文章은 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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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2

    立敎堂重修上樑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묵계서원 강당인 立敎堂 重修 당시의 상량문이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강당이 옛날의 제도를 따라 지은 것이라 협애하여 諸生들이 함께 모일 때 마다 너무 작다는 불평이 있었고 건물 자체도 기울고 퇴락하여 중수해 넓히기로 하고 상량을 하기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새로 지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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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3

    挹淸樓上樑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묵계서원 누각인 읍청루 상량문으로 密菴 李栽가 지었다. 玉沽와 김계행의 학문과 덕행을 찬탄하고 시대는 서로 다르지만 符節처럼 서로 부합하는 덕행으로 같은 사당에 모셔져 추모되었음을 말했다. 이어 언덕을 허물고 누각을 세움에 이제 누각을 상량을 하게 되었으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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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4

    齋樓重建上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大山 李象靖이 읍청루 중건 상량에 지은 글이다. 사물은 일단 이루어지면 다시 허물어지기 마련임을 말하고 오랜 세월의 풍우에 누각이 훼손되어 기와와 기둥이 기울고 퇴락되어 많이 선비들이 근심을 하다 중수하기로 하여 이제 상량하게 되었다고 한다. 상량 후 地靈이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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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5

    晩休亭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鄭璞(南屛, 1734~1796)이 지은 만휴정 상량문이다. 상량 후 이 곳에서 아이들이 와 즐겁게 놀 수 있고 시를 읊으며 노인들이 지팡이 짚고 와서 발 뻗고 쉬고 친족들이 즐거운 모임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 책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어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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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6

    黙溪書院創建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柳克和가 지은 묵계서원 창건기이다. 이곳은 세종대에 凝溪 玉沽가 安東 通判으로 있으면서 은택을 베푼 곳이었고 憲宗대에 보백당 김계행이 묵계촌에 내려와 쉬던 곳으로 그들의 여운이 남아있는 곳이다. 1687년(숙종13)에 인근의 사림들이 晩松과 湖潭에 서당을 세워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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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7

    晩休亭重修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후손 金養根이 지은 중수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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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8

    書堂重建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한말의 학자이자 의병장인 金道和(拓庵, 1825~1912)가 지은 중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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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29

    書實紀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김계행의 외손 權矩(屛谷, 1672∼1749)이 實紀에 부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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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0

    跋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外孫되는 李光廷이 지은 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431

    重刊跋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柳止鎬가 지은 重刊 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3432

    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행
    外孫 柳道獻이 지은 발문이다. 1706년(숙종 32)에 서원을 세워서 배향했고, 1858년(철종 9)에 이조판서 직책을 추서받았으며, 1808년(순조 8)에 定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의 유학을 받들고 유학의 도를 높이는 정책에 따라 선생의 숨은덕이 세상에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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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3

    서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서계집(西谿集) 西谿 金在燦의 文集. 6권 3책. 1907년(순종 1)에 金道和(1825~1912)가 校勘한 것을 1915년에 손자 金永奎가 간행하였다. 卷1에는 漢詩 152首가 실려 있고, 卷2에는 輓詞 54편이 실려 있다. 卷3에는 書 18편이 실려 있고, 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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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巖亭陪慕亭李丈(蓍秀)謹次唱酬韻, 宿艾蓮寺, 宿靑龍寺, 登擎天臺, 龍巖亭十詠, 靑龍寺雪中卽事, 贈李伯謙(益煥), 春日與李穉明(秉珉)共賦, 訪靈山寺, 贈褧上人, 上中臺寺憩石, 登浮石聚遠樓, 次鳳城金使君(在榮)衙中唱粹韻, 謹次靑鳧金使君丈(箕明)遊周王山韻, 病鶴, 感吟金桑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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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5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江皐柳先生輓, 輓魯庵鄭公(必奎), 輓鶴棲柳公(台佐), 輓金國元(鎭右), 輓柳濯叟(致皜), 輓柳殷老(衡鎭), 輓松嶽金公(重載), 輓鹿門李公(一相), 輓金穉完, 輓金應一(驪洛), 輓敬庵李公, 輓再從兄文應(洛圭), 輓華峯李公(廸裕), 輓柳謙叟(光睦), 輓三從叔(道緝), 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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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6

    上江皐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江皐 柳尋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제자로 받아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과거 공부에만 몰두하여 외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또한 지난 날 들었던 것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죄송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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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7

    與敬庵李丈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敬庵 李漢膺선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반평생을 治心養性하는 공부에 힘을 쏟지 않고, 과거공부와 名利에 마음 쏠려서 마침내는 군자가 되는 길을 버리고 소인이 되었으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이제라도 선생의 방정하고 정확한 가르침을 받고자 청하니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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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8

    答金致淸(鎭河)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鎭河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주신 梅花試帖을 보니 詩格이 淸新하여 다 읽기도 전에 사람으로 상쾌하게 한다고 하였다. 몇 줄 편지에 눈 속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하였다. 경솔하게 和韻詩를 올리게 되어 부끄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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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39

    與柳肅斌(疇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柳疇睦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랜 만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退溪선생의 書札 중에서 성찰하고 고찰할 만한 자료를 뽑아 4책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보여 줄 수는 없고 좀 더 수정을 한 후에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 龍溪書院의 尊學祠를 重建하는데 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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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0

    與金渭師(尙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尙鉉에게 보낸 편지이다. 5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다. 퇴계선생의 문집의 양이 많기 때문에 살펴보기에 쉽지 않기 때문에 『논어』·『중용』·『심경』·『근사록』·『가례』등에 관련된 말을 뽑아서 4책으로 만들어 『退書類要』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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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1

    答權惠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權惠民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해 받은 편지에 이제 답을 한 것이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지난 날 禮法 주에 의문 나는 것을 질문하였을 때, 조목조목 밝게 깨우쳐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고, 거기에서 의문 나는 것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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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2

    答權惠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權惠民에게 답한 내용이다. 費隱說에 대해 전에 金時洛과 변론한 적이 있는데, 그대 서로 의견이 어긋나서 해결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각종 서적에 나오는 費隱에 견해를 제시하여 자신의 의견을 적어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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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3

    答金孟學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孟學에게 답한 내용이다. 서로간의 우정을 돈독히 하자고 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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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4

    與金晉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晉玉에게 보낸 편지이다. 濂溪圖說은 천고 道理의 대단을 설파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圖解를 부연해서 만든 일은 참람된 꾸짖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근거로 삼은 것은 모두 유래가 있다. 여러 학설을 모아서 圈點을 표시하고 모아서 그 아래에 덧붙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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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5

    答金晉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晉玉에게 답한 편지이다. 전에 보낸 편지에서 내용 같은데 조목조목 辨論하여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였다. 또한 김진옥이 辨論한 것 가운데에서 몇 조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부연한 것이다. 조목은 앞 편지의 별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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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6

    答金晉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金晉玉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로의 견해가 맞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부연 설명하고 있다. 道理라는 것은 公共의 것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와 맞다 해서 기뻐하거나 다르다고 해서 미워해서는 안 되고 至當한 데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別紙에서 조목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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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447

    答李聖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李聖圭에게 답한 편지이다. 陰이 靜한 가운데 절로 陽의 뿌리가 있고, 陽이 動한 가운데 절로 陰의 뿌리가 있다는 설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은 점에 대해서 다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3448

    答李士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李士安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사안이 보낸 主一說의 견해에 대해, 저자가 一자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3449

    答李士安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李士安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의 ‘戒慎不睹’구절에 대한 조선의 諸家들의 학설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3450

    與柳夏亨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
    柳夏亨에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아울러 인근의 훌륭한 어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 선비들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玉淵精舍에 몇몇 어른들이 모인다고 들었는데 참석하지 못함이 아쉽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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