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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夏亨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柳夏亨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요즘의 즐거운 일 한 가지는 龍山의 옛 터에 講會를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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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舜衡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權舜衡에게 답한 편지이다. 초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禮를 공부하여 고인을 본받으려고 하지만 뜻이 고인만 못하고 행실이 고인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 가지 책자에 가탁해서 상례를 치르려고 한다면 이것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서책에 정신을 쏟을 것이 아니라 居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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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琴德謨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琴德謨에게 답한 편지이다. 앞부분에는 청량산을 유람했던 기억을 적고 있다. 그리고 『중용』과 『대학』에 대해 참람되게 永樂簒註 외의 주해를 增補하였고, 우리 동방 선현들의 의론을 모아 한 권의 책자로 만들었는데, 질정을 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청량산 모임에는 갈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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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琴德謨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琴德謨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과 『대학』은 의리가 무궁하지만 章句나 或問에 밝히지 않음이 없고, 선배들의 각주에 상세하게 분별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내가 재주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게 수집하여 두 권을 만든 것은 남들에게 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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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致孝(宇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柳致孝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날 병산서원과 옥연정사에서 두 선생을 사모하던 마음을 펼 수 있었고, 강산의 승경도 볼 수 있어서 평소에 바라던 바를 조금이도 풀 수 있었다. 淸凉山 詩에 대해 和韻을 청하기에 마지못해 지었으나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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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景三(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申圭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 6월에 편지를 받고 답장도 하지 못하였는데, 또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못난 자신이 좋은 벗을 얻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고, 형이 선조의 유고를 간행한다고 하니 이것은 형 집안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斯文의 다행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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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晉五(晉奎)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姜晉奎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뜻밖에 멀리 떠나게 된 것을 위로하고 있다. 운수는 무궁하여 만나는 곳에 따라 잘 처신하면 좋게 변할 것이라고 하였다. 병이 깊어 송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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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家述(晩孫)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晩孫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손이 이 고을에서 가까운 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뵙고자 하였으나 병이 들어 직접 가지 못하고 아들을 대신 보내 안부를 묻는다고 하였다. 또 한 수의 시를 지어 보내 마음을 보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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賀李丈(瓚)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瓚이 壽職을 받은 것에 대한 축하편지이다. 『맹자』와 『서경』에 모두 長壽를 으뜸으로 쳤지만 그 근본을 따져 보면 德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집사가 오늘의 영광이 있게 된 것은 장수를 누려서가 아니라 그만한 덕이 있기 때문이라고 축하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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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穉洪(重範)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重範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조인 惟一齋 金彦璣는 퇴계선생의 旨訣을 직접 받아 후학을 가르쳤다. 당시 문인록에 遺稿가 편입되어 있지만 수백 명이 넘는다. 지금 편집하고 있는 책 중에 道學淵源錄에 선조를 편입시켜 달라고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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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畏庵族叔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족숙인 외암공에게 답한 편지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부끄럽고, 喪禮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 행하는 일마다 예의에 어긋나니 죄가 산같이 쌓였다고 하였다. 惠民 형과 상례에서 의심나는 것에 대해 토론을 하였는데,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함께 보내니 가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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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幼樂(宓仁)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權宓仁에게 보낸 편지이다. 글을 짓도록 부탁한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본래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성의를 저버릴 수 없어서 승낙한 것이었다. 이제 초고를 만들어 보내니 잘못되고 빠진 곳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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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聖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聖從에게 보낸 편지이다. 星山의 임지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명사들과 함께 유람할 수 있을 것이니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평소에 마음속에 간직한 것을 시로 엮어서 보내니 물리치지 말고 화답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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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裵性會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裵性會에게 답한 편지이다. 당신의 아들을 통해 편지를 보냈으나 들려 줄 특별한 말이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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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裵性涵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裵性涵에게 답한 편지이다. 四七輯證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다. 理氣性情은 학문상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으로, 중간에 四端七情을 섞어서 융합하고 그 후에 여러 선생들의 의론을 만든 후에야 확연해졌다. 그러나 각각 集說을 내놓았기 때문에 후생들이 통합해서 맥락을 찾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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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文叔(輝濬)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輝濬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사는 집안에서 전해지는 학문은 단서가 있는 것이니 집안을 일으키고 무너진 풍속을 다시 일으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하여 일어나게 할 만하니, 이것을 명심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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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叔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輝濬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기의 견해와 맞지 않은 것을 論駁 당한 것에 설명한 것이다. 무릇 道는 하나이지만 가르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공자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한 가지 물음에 각각 그 재주에 따라 다르게 가르쳤고, 주자도 그렇게 하였다. 그러니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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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士星(箕煥)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南箕煥에게 답한 편지이다. 집사께서 평소에 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는데, 지금 가까이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 사람을 늙었다고 버리지 말고 자주 찾아 주고 가르침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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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善汝(道性)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柳道性에게 답한 편지이다. 선조 遺稿의 교정을 맡기는 일은 중대한 일이다. 이 사람을 본래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데 맡게 되었고, 이미 이전에 세 어른의 교정을 거쳤으니 거기에 더 손 댈 곳이 없다. 그러나 억지로 교정을 본 곳이 있어서, 다시 올리니 한 번 봐 주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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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繼孟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繼孟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날 내 재주가 천박하고 공부가 거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인이 남긴 찌꺼기만을 엿보고 외람되게 책자를 만들어, 「退溪書類要」·「庸學考說」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본래 한 집안에서 근거로 삼을 자료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참람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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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國凝(時洛)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時洛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과 『대학』의 무궁한 의리에 대해서 章句에서 밝히고, 或問에 다 밝혔다. 그러나 先儒들의 해석이 萬端으로 달라서 후학들이 어리석은 견해로는 깨달을 수도 없고 산만하여 고찰하기에도 불편하였다. 그래서 재주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게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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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國凝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時洛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 사람은 산남의 비루하고 늙은이인데 이러한 사람을 버리지 않고 두 번 세 번 편지를 보내 가르침을 내리니 감사하다고 하였다. 『중용』과 『대학』은 支節과 脈絡을 분석한 것에 선유들이 상세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에 大綱은 절로 분명하다. 그러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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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國凝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時洛에게 답한 편지이다. 中庸과 費隱에 대해 서로 견해가 맞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別紙에서는 中庸과 費隱, 그리고 體用說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리고 「中庸總略私箚辨」에서는 箚辨에 나오는 구절을 하나하나 여러 학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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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晦叔(根永)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權根永에게 답한 편지이다. 뜻하지 않게 편지를 보내 주어 근황을 잘 알게 되었다. 공부하는 방법은 먼저 뜻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 미루어 나간다면 이해하지 못한 것도 점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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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章彦(宜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宜燦에게 답한 편지이다. 함께 切磋琢磨하는 공부에 종사하자고 한 것에 대해 훌륭하다고 하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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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章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宜燦에게 답한 편지이다. 안부를 주고받은 내용과 講錄이 완성되었으면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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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裵叔燁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裵叔燁에게 답한 편지이다.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병통을 적출해 내는 것이 학력이 지극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다. 節要의 남을 가르치고, 글을 읽고, 자신에게 절실하게 하는 가르침은 말한 것마다 조목 마다 긴절한 것이니, 공부를 할 때 여기에서 체험하고 여기에 의거해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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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而述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庭德에게 답한 편지로 공부하는 방법, 독서법에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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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舜華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安舜華에게 답한 편지이다. 시와 편지를 보내 주었는데 몇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비의 進就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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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穉夢(弼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鄭弼和에게 답한 편지이다. 그대가 명리의 길을 버리고 실제의 공부를 하기 원한다니 훌륭하다. 그리고 늙고 병든 사람에게 배움을 청하니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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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明擧(成漢)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權成漢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에 질문했던 것을 지금에야 답을 하는데 경전의 본뜻에 맞는지 선유들의 학설을 참고해서 살펴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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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穉洪易麓書庵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易麓書庵은 金穉洪(重範)이 日月山 중턱의 자기 집 옆에 지은 서재이다. 무릇 易의 도는 한 번 陰하고 한 번 陽하는 것이다. 양의 정밀함이 日이 되고, 음의 정밀한 것이 月이 된다. 맑은 것이 해와 달보다 빛나는 것이 없고, 해와 달은 사사롭게 비추는 곳이 없다. 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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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陵令馮(錫驥)枳庵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枳庵은 馮錫驥가 지은 집으로 加平縣 大報里에 있다. 馮錫驥의 선조는 명나라에서 병부시랑을 지냈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조선으로 왔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데, 枳(탱자)로 이름을 지은 것은 본토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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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晩悟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부군의 이름은 星說, 자는 箕仲, 본관은 光山이다. 그 선조는 신라에서 나왔다. 신라 말 왕자 興光은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光州의 西一洞에 은둔하였다. 손자 吉은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관직이 左僕射에 이르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光城君 若采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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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考巖塘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공의 이름은 道赫, 처음 이름은 道全이다. 본관은 光山이다. 그 선조는 신라에서 나왔다. 신라 말 왕자 興光은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光州의 西一洞에 은둔하였다. 손자 吉은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관직이 左僕射에 이르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光城君 若采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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庸學考說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중용』과 『대학』은 주자가 일생동안 정신을 쏟은 책이다. 그런데도 다 풀지 못하였다. 다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옛 유학자들의 주석이 흩어져 나오고, 두루 다 보기에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 학설을 모아서 배우는 사람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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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溪先生李公遺稿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松溪는 李亨男(1556~1627)의 호이다. 송계유고를 간행하게 된 경위를 적은 발문이다. 퇴계선생의 후손으로 퇴계선생을 私淑하였다. 임진왜란에는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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練武亭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練武亭의 上樑式에 지은 글이다. 이 연무정이 완성된 후에 道는 화살처럼 곧고, 많은 무사들은 활을 당기고, 고을의 호걸들은 뛰어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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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島齋舍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菊島齋舍의 上樑式에 지은 글이다. 국도재사가 완성된 후에 근본이 서고 가지가 뻗고, 산처럼 물처럼 영원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영원토록 화목하고, 시와 예를 배우는 풍기가 옛사람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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籤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籤은 점칠 때 쓰는 대오리를 말하는데, 거기에 쓴 것으로 誠과 敬을 항상 지키겠다는 의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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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穉殷(羲洛)杖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金羲洛의 지팡에 쓴 것으로 주인과 함께 늙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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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峯先生權公墓道立石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震峯은 權宏(1575~1652)이 호이다. 권굉의 묘도에 묘갈명을 세울 때 아뢴 글이다. 遺逸로 천거되어 尙衣院別座에 제수되었고, 병자호란에 江華에 扈從한 공으로 昭武·寧社 두 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소식을 듣고 慷慨詩를 읊고 奉化 小川 震峰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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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洞別廟重建奉安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山洞別廟를 重建하고 위패를 奉安할 때 올린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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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仲觀(鎭敎)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수십 년을 형제처럼 지냈던 金鎭敎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16살 때 季父의 사위가 된 이래 공부를 함께 하며 서로 의지했는데 어찌 이리 빨리 세상을 떠났는가하고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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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濟彦(秉周)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權秉周 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젊은 나이에 죽었기에 그 사람됨과 그 나이 때문에 슬퍼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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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博(學淵)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李學淵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안동 북쪽 二老村에 살았던 그는 날 때부터 총명하였고 옥같은 풍모를 지녔었다. 독서하고 과거공부를 하여 문사가 날로 나아졌는데, 불행하게 병에 걸려 세상을 마친 것을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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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聖翊(廷羽)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安廷羽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같은 나이,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말은 어눌하면서도 믿음이 있고 성품은 질박하면서도 문채가 있었다. 과거공부를 하여 30여 세에 명성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뜻을 펼쳐 보지 못하였다. 중년에 천연두에 걸려 한 쪽 눈을 잃고 나서는 두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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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松巖權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松巖 權好文(1532~1587) 선생의 묘소를 옮길 때 지은 제문이다. 퇴계선생의 문인으로 진사시 합격하였으나 연이어 부모를 여의자 官界에의 진출을 단념하고, 靑城山 기슭에 鳶魚臺를 짓고 유유자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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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霞隱朴公(宗絢)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朴宗絢이 제사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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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公(宗範)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재찬朴宗範(1778~1862)의 제사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