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3751
病中述懷示孫五赫從孫五昌及門親諸少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병중에 손자와 여러 친척들을 모아 놓고 한 이야기로 옛 사람이 이르기를 천하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책 읽는 소리인데 누가 읽는 소리가 가장 좋으냐 하면 子弟들이 읽는 소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선한 말을 하면 죽음이 가까웠다고 하는데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여러 자출처 : 유교넷 -
363752
歎舊錢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일전에 집안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궤짝에서 상평통보 2錢 10葉을 찾았다. 이 돈은 조선의 舊物로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약 500년 동안 통용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버려져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六經四書도 옛날 학문이 되어 구전 취급을 받고출처 : 유교넷 -
363753
硯田戱題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翰林 主人이라는 사람을 설정하여 먹과 벼루·붓 등을 은유적으로 비유하여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63754
敬讀大考手謄大學或問有感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안에 할아버지가 손수 쓴 大學 或問이 있는데 부친이 또한 매번 손을 씻고 아버지의 글씨를 느끼면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 책을 물려받아 읽을 때 감정이 남달랐다. 나이 70이 되어서 너무 낡아서 후손들에게 줄 작정으로 새로 썼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55
關東孝婦記聞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어떤 효부가 남편은 행상을 나가고 시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두 살 난 아이를 업고 마중을 나갔는데 술에 취한 시아버지가 고개 마루에서 호랑이를 만나 죽게 된 상황이었다. 며느리는 등에 아이를 호랑이에게 내 주고 시아버지를 구하여 돌아왔는데 호랑이출처 : 유교넷 -
363756
翔鳳誌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임하현 남산 북쪽에 봉황이 날아가는 형세의 땅이 있는데 그 중심에 초가집을 짓고 그 집을 둘러 싼 지형의 형세와 주변에 있는 고찰이 황폐된 모습 등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독서는 산을 보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즉 거친 것을 통하여 정밀하게 고찰하야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57
大元寶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천지간에 大元寶라는 한 광물이 있으니 형체가 없고, 큰 지위가 없지만 존귀하고, 가볍다고 하면 이보다 가벼운 것이 없으며, 무겁다고 하면 이보다 무거운 것이 없다. 천하 만고의 지극한 보물이다. 이 보물은 요순시대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서 공자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출처 : 유교넷 -
363758
墾荒說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에 묵은 밭이 수 畝가 있는데 다스리지 않았더니 모래와 돌이 쌓이고, 잡초가 우거져 무릎이 잠길 정도여서 지나가는 사람이 밭이 있었다고 생각을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는 젊은 청년들을 시켜 밭을 고르게 하였더니 묵기 전과 같이 되었다. 사람에게도 丹田이라는 밭이 있는출처 : 유교넷 -
363759
石蛙說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개구리와 비슷한 돌이 있는데 두드리면 그 소리가 음악같이 아름답지만 그 입을 봉하고 있고, 분뇨덩이 속에 앉아서도 근심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30년 동안 농사꾼으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너를 만났으니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 이러한 사실을 1899년 3월에 기록으출처 : 유교넷 -
363760
絲繩說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미미한 물건 가운데 쓸만한 것이 없는데 꿰매고 남은 부분은 잘라서 버리는 것만큼 하찮은 것이 없다. 나는 산속에 살면서 일없이 혹 책을 보기도 하고 버려진 실을 주워서 다시 잇는 것으로 소일하기도 한다. 천하에 버려질 물건이 없으니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 나를 비웃출처 : 유교넷 -
363761
天君復位說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상제께서 인간에게 丹田을 내려 주시고 天君이라고 봉하였다. 이미 神明에게 정당한 지위를 부여받고, 耳目口鼻와 手足을 다스리는 마음의 우두머리로서 지위를 부여하였으니 지금 그 지위를 잃고 의미가 퇴색하였으니 권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62
志帥平賊說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신체의 기관들 가운데 단전을 都元帥에 다른 여러 기관을 將卒에 비유하여 내부가 튼튼하지 못하면 도둑이 들고 도둑을 퇴치하려면 장수가 굳건해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63763
卜說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예전에 부친이 14~5세 때 여름날 睡廳堂에서 낮잠을 잔 적이 있었는데 문중 어른으로부터 걱정을 들었다. 그 후로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비록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없지만 卜說을 지어 경계한다. 왜냐하면 ‘臥’字는 ‘’字와 ‘卜’字가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출처 : 유교넷 -
363764
種穉桐說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어느 날 어린 오동나무 한 그루를 동쪽 담장 아래 심고 날마다 정성껏 돌보았다. 이 나무는 머지않아 한 자가 될 것이요, 손가락 마디만한 굵기가 될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정성을 들이면 그 효과는 저절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65
代服說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퇴계 선생이 喪禮에 관해서 이야기한 說이 있는데 그 후에 제자들이 그 설을 따랐다. 대개 3년 상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愚伏 鄭經世·明谷 崔錫鼎·勉宇 郭鍾錫 등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63766
曾南豊答王深甫書謂揚雄辨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남풍이 왕심보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양웅을 평가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양웅은 왕위를 찬탈한 왕망에게 벼슬한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67
明郭子章論辨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어느 날 한가한 시간에 집안에 있던 고서 가운데 곽자장이라는 글을 얻어 그 가운데 管蔡論을 읽었는데 관채는 은나라의 충신으로 伯夷·叔弟와 같은 무리로 문왕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주나라가 건설될 때 먼 곳에 은거한 충신으로 그의 절개를 찬양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63768
大學絜矩辨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대학의 絜矩에 관한 견해를 밝힌 글이다. 絜矩란 자기의 마음을 척도로 하여 남의 마음을 헤아리되 어떠한 경우에도 방정한 것을 말한다. 定齋 柳致明과 訂窩 金垈鎭 등의 설을 소개하면서 각기 한 모퉁이를 주장하여 통합된 설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69
先生實記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중종 때 발생한 己卯士禍의 전말을 기록한 己卯錄에 따르면 퇴계의 제자들 가운데 기묘사화에 연루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柳谷 孫季暾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참화를 도리어 영예롭게 여기고 항소하는 상소를 올리다가 聖主山 아래로 돌아와서 자진하였다. 제사를 받드는 손자출처 : 유교넷 -
363770
禦侮將軍永陽李公實記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병자호란 당시 禦侮將軍으로 활약하였던 雙嶺 李公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고, 다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후손 羲穆이 여러 사람들이 쌍령 선생에 관해 기록한 것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려고 가져와 청하길래 서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1
遯叟金公逸稿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金仁輔의 자는 宅之, 호를 遯叟 또는 洛濱이라고 하며 본관은 안동이다. 1858년(철종 9) 嘉善大夫와 兵部侍郞을 지냈고, 문무를 겸비했다고 한다. 후손 容漢이 유고를 수습하여 서문을 청하길래 감히 망령되이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2
伊溪先生南公續集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伊溪 南夢賚(1620~1681) 문집의 속집이다. 이계집은 1778년(정조2)에 3책으로 간행되었다. 후손 龍佑가 연보와 부록을 정리하고 몇 편의 유고를 모아서 내게 와서 서문을 부탁하길래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3
川西先生金公文集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영남에서 발간된 몇 개의 문헌에 문장의 대가로서 川上氏를 으뜸으로 치는데 川西 선생 또한 그 한 사람으로 꼽힌다. 효성과 우애가 깊었으며 학문이 깊었다고 한다. 손자 奎煥이 유고를 수습해서 서문을 청하길래 손을 씻고서 망령되이 서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4
荷潭趙公文集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하담 趙彦觀(1805~1870)의 문집 서문이다. 일월산 아래 하담거사 趙公은 총준하고, 독실하여 문장과 행실에 뛰어났다고 한다. 공의 손자 容甫가 유고를 수습하여 서문을 청하길래 평소에 경모하는 마음에서 삼가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5
海東名賢錄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나는 弱冠의 나이에 西豀 金公을 용산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 서혜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40년이 지난 후에 공의 유고를 다시 대하니 문장이 간결하고, 뜻이 깊었다. 공의 손자인 永奎가 공의 원고를 정리하여 서문을 청함에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서출처 : 유교넷 -
363776
送秉準之古蘭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나라에 일본과 분쟁이 있었을 때 글을 읽던 선비들은 往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학문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秉準은 평소에 나를 따르던 후배로서 어느 날 책 한 권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 吉水縣 谷蘭里로 떠난다고 하였다. 내가 그의 옷소매를 잡출처 : 유교넷 -
363777
贈李秀才鳳世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詩草를 넣은 작은 주머니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더불어 이야기해 보니 역사와 성현의 事蹟에 밝았다. 뜻이 굳고 인품이 성숙되어 그를 격려하는 뜻에 써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8
送金憲洛之橫城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헌락은 山南에서 태어나 성품이 질박하고 가난한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공이 먼 곳으로 떠남에 어찌 석별의 정이 없으랴. 그런 까닭에 애석한 마음을 전하는 글로써 그를 보낸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79
送金仲瑞(圭洛)僑知禮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중서는 나의 같은 동네 친구로서 吉軒 金鎭明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다. 60년을 같은 마을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만났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멀리 떠난다고 하니 그를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담은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0
贈別崔大洙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陶山及門錄에 의하면 崔香湖 선생은 關東의 강릉 사람이다. 大洙는 그의 손자이다. 水陸 오백리를 넘어 삼백년 동안 학문을 닦았으나 큰일에 한가롭지 못하니 나머지를 어찌 묻겠는가.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한 마디를 구하니 賢者에게 주는 말은 유유자적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1
龍山稧帖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무릇 계라는 것은 그 유래가 멀고, 公私 경중의 구별이 있다. 선현을 존경하고 추모하는데 연명으로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그 뜻이 공적이고, 중대한 일이다. 우리 宗中에 어떤 사람이 龍山稧帖을 들고 와서 한 마디 경책이 되는 말을 써 달라고 하길래 살펴보니 훌륭한 인물출처 : 유교넷 -
363782
義慕稧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천하 사람들이 이익에 현혹되어 죽고 사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는 1910년에 오백년 역사가 망하는 치욕을 당하였다. 履軒 李公의 발의로 義士 및 沒士를 추모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어 계를 만들고 내가참람되이 그 서문을 쓴다는 내출처 : 유교넷 -
363783
波譜重刊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안동권씨 副正公派의 파보는 1734년(영조 10)에 처음 발간하고 1861년(철종 12)에 중간되었다. 그리고 나서 30여 년이 지난 1901년에 파보를 다시 발행함에 서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4
溟欞杖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이 溟欞 한 가지를 가지고 와서 집 주위에 심었더니 가지가 무성하게 잘 자라서 이것으로 지팡이를 만들어 수천리를 짚고 다닌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5
任窩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任窩와 臨河가 발음이 비슷하여 임하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에 또한 窩字가 들어 있어 주인에게 개구리처럼 게으르다고 농담을 하자, 주인이 任字를 가지고 성현들이 천하를 교화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알았다고 주고 받는 농담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6
石塢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자신의 호 石塢를 지은 유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朱子의 시 가운데 石門塢라는 시가 있는데 석문에 사는 은둔지사가 유유자적 하면서 시를 읊었다고 한데서 호를 취했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363787
臨川舟遊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임자년(1912) 7월 15일 임천에 배를 띄우고 옛날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하면서 달은 예전과 같고 강산은 엄연하지만 우리의 시가 소동파의 시만 못함을 애석해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8
遊晩休亭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임천에 배를 띠우고 놀았던 7월에 蘭圃 金敬立이 찾아와서 만휴정에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놀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89
大瓢亭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낙동강변에 朴里라고 하는 한 마을이 있는데 몇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그 곳에 정자를 짓고 대호정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에 모여서 책도 읽고 농사철에는 비도 피하고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0
臨湖遊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임술년(1922) 가을 7월 16일에 윗개울에 사는 여러 노인들이 호숫가의 집에 모여 소동파의 적벽부를 흉내 내어 밤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1
望道齋移建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증조부가 망도재라는 집을 지어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여서 독서를 하는 곳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증손자인 秉旋이 이 遺蹟이 물에 잠길 것을 걱정하여 동쪽으로 옮겨 지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2
望隱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내 친구 金士益은 輞川里에 사는데 輞字와 望字는 음이 같다. 그래서 스스로 望隱이라고 호를 지어 나에게 記를 묻길래 글자의 뜻을 해석해 주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3
審安堂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丹陽 元坡里에 심안당이라는 집이 있는 데 예전의 國子 生員을 지냈던 南震萬 독서하던 곳이다. 堂과 亭이 있는데 검소하고, 질박한 맛이 있다. 내가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記文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4
槐亭重建記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丹陽의 槐市里에 稼亭 李穀과 牧隱 李穡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가정 공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괴시로 돌아와서 정자를 짓고 괴정이라고 이름하였다. 英祖 때 다시 지었고, 1937년에 중건하였는데 나에게 記文을 청하길래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5
拙軒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稼亭 李穀의 후손 鎭燾가 괴시리에 있는 軒을 수리하고 나서 오랫동안 기문이 없었는데 나에게 청하길래 합당하지 않음에도 망령되게 기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6
此屋記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은 유자나무·버드나무·뽕나무로 둘러싸인 산골이며, 그 속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은 무릎을 겨우 들여 놓을 만한 작은 공간이지만 편안한 곳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7
石記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동해안에 살고 있는 친척 아저씨뻘 되는 聖伯氏가 나이 76세에 지팡이를 짚고 험한 고개를 넘어 백여 리가 넘는 길을 나를 위해 찾아왔다. 石이라는 記文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8
景節祠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경절사는 예전에 嘉善大夫와 兵曹參判을 지냈던 堅守堂 玉선생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巨濟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을 모집하여 곽재우와 함께 활약하였다. 경절사는 오늘에야 세워져 사적의 시말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63799
龍巖亭移建記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紫海의 북쪽에 용이 서린 듯이 빼어난 騰雲山 남쪽으로 십여 리에 큰 들이 있는 데 仁良里라 한다. 그 동쪽에 높은 봉우리가 龍起峯이며 그 한 모퉁이에 정자가 있으니 용암정이다. 參議 용암 김공이 관직을 쉴 때 휴양하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 황폐해졌는데 후손 龜永씨가출처 : 유교넷 -
363800
近志室記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일전에 李徽久씨가 부친이 쓴 근지실기를 가지고 수백리 길로 나를 찾아와 글을 청하길래 감히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