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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廬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우리 州縣 동쪽 30리 냇가 위 雲谷이라는 곳에 한 칸 초라한 띠 집을 짓고 세간의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거친 음식과 책 몇 권을 벗 삼아 사는 金瑞一은 나의 친구이다. 나는 그의 너그럽고 안락한 생활을 좋아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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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巢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봄날 까치가 집의 남쪽 배나무에 집을 짓자, 제비는 집 벽에 집을 짓고, 황새는 앞 제방에 집을 지었다. 후에 제비와 황새는 모두 새끼를 길러 돌아갔고, 까치는 머지않아 둥지를 헐고 떠났다. 세 날짐승의 둥지가 혹 이루어지고, 혹 헐린 것이 어찌 주인이 아끼거나, 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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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川齋記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영천의 발원은 소백산에서 백 리를 달려 넓은 곳이다. 무엇 때문에 근원을 찾겠는가. 물의 흐름은 쉬지 않은 것이니 마음을 다스리는 활력도 물을 다스리는 것처럼 쉼 없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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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道書窩重建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상주의 북쪽 湖峯 아래 세워진 尊道書窩는 우리 淸臺 權相一 선생이 수학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1740년(영조 16)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제 다시 중건하여 기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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泛軒記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내 친구 金仲瑞는 조용하게 자신을 지켜, 한 번의 풍랑과 파도의 범람을 받지 않은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다. 마음이 넘치지 않으며, 자신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수양하고 서로 힘쓸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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僑隱亭記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선비가 산림에 은거하는 것은 종종 세상에 뜻을 펴려는 의지가 쇠약해진 것이니 군자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글 읽는 여가에 젊은이 6~7명과 개울물을 따라 산책하다가 물이 맑은 모퉁이를 발견해 정자를 짓고 교은정이라 이름하고 기문을 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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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巖精舍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나의 벗 金煥奎가 금년 봄에 동쪽으로 바다 구경을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나를 방문하여 새로 지은 현암정사의 기문을 부탁하기에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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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翁亭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하루는 한 노인이 찾아와서 기문을 부탁하였는데 올해 나이가 70이라고 한다. 一翁亭이라고 이름하였는데 翁字에는 ‘졸린다’는 뜻과 ‘술 취한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졸리는 것은 진실로 졸리는 것이 아니고, 술 취하는 것은 진정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朱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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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露齋記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府治 남쪽 30리 쯤에 屯齋 南公과 그의 부인 묘소가 있다. 1928년 봄에 여러 손자들이 모여 별도로 齋를 짓고 이름을 履露라고 하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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蒙山精舍重建記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輞川 위에 작은 바윗고개 아래 長沙村이 있는데 촌의 서쪽 산에 亭子가 있는데 몽산정사라 한다. 愚軒 金養鎭이 학문을 닦던 곳이다. 이제 중수를 하여 기문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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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圃家訓跋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芝圃 처사 趙公이 자손을 가르치는 글이다. 부모를 섬기고, 부부가 화합하며, 형제와 친구들의 질서와 마을 어른들을 대하는 법, 그리고 학문과 언어, 처신하는 법 등이 수록되어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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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溪權公文集跋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近溪 처사 권공은 자질이 영민하고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일찍부터 家學으로 학문을 이어받아 나이 60에 이르자 학문의 경지가 원숙하여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되었다. 그 문집의 발을 쓴다는 것이 어려워 정중히 거절하였으나 결국 사양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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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龍庵修稧識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우리 선조 辰峯 權宏 선생은 1636년(인조 14) 태백산 진봉 아래 집을 짓고 세거하기 시작한 지 수 백년이 지났다. 그 후에 후손들이 계를 시작하여 선조를 잘 모시지 못한 죄를 면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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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五代祖考通訓大夫行司憲府掌令府君兢齋遺稿後小識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5대조 할아버지의 문집인 兢齋遺稿의 뒷부분에 책의 발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서술한 識를 썼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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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本生高祖考晩醒府君遺稿後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고조할아버지의 유고집을 내면서 책의 끝 부분에 후일 자손들이 볼 수 있도록 유고집 간행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적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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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剩窩遺稿後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剩窩 공의 유고는 수 백년 동안 간행되지 못하였다. 내가 처음 읽어 보니 문장이 담백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담담하였다. 유고집을 내며서 편차를 바로잡고 다소 손을 보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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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家藏金月灘先生書畵後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家藏하고 있던 선현의 手墨이 몹시 많지만 김월탄 선생의 필적 태반이 액자와 대소 병풍으로 꾸며져 있다. 이것들은 월탄 선생의 예술작품인데 세월이 오래 되어 좀이 슬어 훼손되었다. 그래서 부질없이 서화의 뒷면에 몇 자 적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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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金氏夫人傳後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禹世益군이 나를 방문하여 2건의 글을 주었는데 이것은 자신의 모친 김씨 行略이라고 한다. 올해 나이가 72인 김씨 부인은 집안을 일으키고, 자식을 잘 키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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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白鹿洞書院事實後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백록동 서원은 청주 서쪽 30리 李渤洞에 있다. 南岡 權常之를 배향하였으며, 1760년(영조 36) 鳳溪院으로 옮겨 제향하였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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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本生先祖松巢府君考終日錄後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것은 우리 선조 松巢 선생의 마지막 일기책이다. 300여 년 후에 읽어 보아도 당시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잘 알 수 있어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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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鄭氏婦彰烈錄後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일전에 친척 조카인 寧萬이 이른바 彰烈錄 1책을 가져다 주었다. 오늘날 烈婦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씨 부인의 정절과 행실이 뛰어났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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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敬守帖後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2권의 경수첩 가운데 하나는 선현수묵인데 松巢 선조의 수묵이 모든 동문제현들간에 왕복한 문건이다. 부친이 경건하게 지켜 온 것이므로 경수첩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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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霽月堂修稧帖後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 稧事는 처음 참여하였지만 사망한 金翊模의 識 속에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후손들만의 탓이겠는가. 지금 다시 부활시켰으니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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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省齋安公遺墨後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성재 안공의 유묵은 유명하고 훌륭한 것인데 지금 題名帖 소책자를 한 권 얻어서 읽어보니 책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고, 좀이 먹은 부분도 있어 내가 수습하여 유묵 뒷면에 몇 자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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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挽祭拾遺後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것은 우리 집안 6대의 만사를 모아서 만든 책이다. 선조들의 덕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책에 이와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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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花樹稧帖後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 稧는 1874년 金穀(돈과 곡식) 약간으로 시작되어 1880년에 비로소 토지를 갖추고 매년 한 번씩 모이기로 하였다. 여러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힘쓰지 않으면 지켜지기 어려우니 스스로 힘쓰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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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立春稧帖後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 稧를 만든 까닭은 친척들이 일 년에 한 번 입춘날에 모여서 결속을 다지자는 뜻으로 결성하였다. 날짜는 입춘날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에 따라 정해졌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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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佳哉亭記後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進士를 지낸 柳公이 瓢溪의 佳哉洞에 정자를 지었는데 그 후손 東建씨가 집에 보관하고 있던 고전적을 열람하고 오래된 문서들 속에서 편액 글씨와 기문을 찾아냈다. 나에게 다시 기문을 부탁하여 외람되게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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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孝子黃斗根事實後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黃漢熙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 斗根의 효행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 손가락을 끊어 죽어가는 부친의 목숨을 구한 사실과 모친이 병석에 누워 물도 못 마시게 되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였다고 한다. 나에게 글을 청하길래 사양하다가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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扇銘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부채에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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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友銘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문방사우의 덕을 기리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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硯匣銘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벼루집을 찬양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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硯滴銘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연적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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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放心銘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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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德性銘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사람에게 덕성은 하늘이 부여한 고유한 것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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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問學銘 5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부하는 학자가 취해야 할 자세를 언급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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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有齋銘(幷小敍) 5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魏國王이 세 그루의 槐나무를 심으면서 자손 가운데 三公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는데 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從叔이 정원에 槐나무를 심으면서 魏公과 같은 뜻을 세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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瘞硯銘(幷小敍) 5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실수로 벼루를 떨어뜨려 깨버렸는데 벼루를 묻으면서 애석해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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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道書窩重建上樑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尊道書窩는 淸臺 權相一 선생이 수학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1740년(영조 16)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제 다시 중건하는 것은 淸臺 權相一 선생이 수학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1740년(영조 16)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제 다시 중건하는 役事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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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廟移建上樑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藤巖공은 불행하게도 함경도 지방의 역적을 토벌하러 가셨다가 순직하셨다. 400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다가 후손들이 뜻을 모아 祀宇를 짓기로 하였다. 上樑을 한 이후에 여러 가지 재앙이 없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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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溪亭重建上樑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藥溪亭은 藥溪 權舜記의 강학 장소로 건립된 亭子이다. 臨河面 半邊川에 건립하였는데, 수해로 유실되어 1897년(광무 2) 마을 안으로 이전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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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堂重建上樑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二愚堂 權寏(1580~1652)은 가학으로 학문을 배웠으나 출중하였고, 경치가 좋은 곳에 溪堂 이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 10대를 지나면서 허물어지고, 볼품이 없게 되어 중건을 하게 되어 쓴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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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坡亭重修上樑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謙齋 吳公이 물이 맑은 곳에 몇 칸의 집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기와가 썩어서 새로 고치게 되었는데 이것을 기념하여 쓴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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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溪別廟重建上樑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伊溪 南夢賚(1620~1681)의 別廟를 旅軒 張顯光의 학맥을 이어 받은 淸臺 權相一(1679∼1759)이 공론을 수렴하여 건립하였다. 지금 많이 훼손되어 새로 중건하고 상량문을 지어 올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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訥谷大宗宅重建上樑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안동권씨 副正公派의 종택은 원래 淵谷 佳原膴址 朴實에 세거한 이래 수백 년 동안 살아왔다. 지금 종택이 허물어져 중건을 하고 상량문을 쓴다. 앞으로 우리 가문에 빛나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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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慕亭上樑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萬古의 忠臣烈士의 혼은 이 景慕亭으로 모일 것이다. 조선 초의 사육신과 단종 복위를 실행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忠莊公 李甫欽, 그리고 병자호란 때 화친을 거부하고 청나라로 잡혀갔던 삼학사 등을 기리는 정자를 지을 때 쓴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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翔鳳精舍上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後介山에 신라시대 삼층 석탑이 전해 오는 곳에 翔鳳精舍라는 절을 지으면서 쓴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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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山亭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儒家의 道는 자연을 즐기는 것인데 경치가 좋은 이 산에 새롭게 정자를 신축하였다. 이 산 중에 仁과 智를 즐기고 雪月春風을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정자가 될 수 있도록 상량한 이후에 神의 보살핌이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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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山別廟改題告由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仁山 할아버지 別廟의 제목을 고친다는 내용을 알리는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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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妣淑人聞韶金氏墓道安石告由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할머니 숙인 문소김씨 묘도를 다시 고쳐 쓰면서 맑은 술과 조촐한 祭需를 올리면서 고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