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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大英(中實)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중실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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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濟卿(秉植)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병식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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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英玉(相瑛)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상영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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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景約(淵覺)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유연각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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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巖叟(泰魯)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金泰魯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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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賀民(祐淵)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우연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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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贊夫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찬부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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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士文(濟秉)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제병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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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伯崇(秉輿)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안 동생 병여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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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範卿(濬洛)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준락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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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聖悅(學永)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안 아저씨 학영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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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從姪金彛舜(憲植)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헌식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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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載卿(厚永)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안 아저씨 후영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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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柳達源(淵永)文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유연영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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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聖懿(秉璿)文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병선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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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弟深彦(秉演)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둘째 동생 병연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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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季第淸彦(秉澈)文 5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막내 동생 병철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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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故室孺人宣城金氏文 5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부인인 선성김씨의 제삿날에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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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族弟極夫(泰模)文 5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집안 동생 태모의 명복을 비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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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吳應直(錫)文 5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오석의 명복을 비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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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李明仲(鍾濬)文 5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이종준의 명복을 비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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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柳耳亨(鼎熙)文 5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유정희의 명복을 비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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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金象初(羲東)詞 5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김희동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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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宗君熙緝(寧穆)文 5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나이 어린 종손 영목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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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李運八(承昌)文 5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열여덟 살에 요절한 청년 이승창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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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先祖成均學諭城谷先生墓碣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성곡 선생은 이름이 宣이며, 字는 公箸 어렸을 때 이름은 景龍이었다. 학문의 연원을 퇴계 선생에게 받았고, 成均 學諭와 尙州·慶州·靑松의 敎援을 지내면서 평생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청렴한 관직생활을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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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先祖承議郞權公墓碣銘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益民이며, 호는 太初이다. 어려서 家學을 통하여 학문을 익혔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랐다. 벼슬은 승의랑을 지냈으며,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24~5세에 요절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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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司僕寺醉翁亭權公墓碣銘(幷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宜悏이며, 자는 士寬이며, 취옹이라고 自號하였다. 1579년(선조 12)에 세상을 떠나서 묘갈을 지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깨지고, 부서져서 후손 相斗가 나에게 다시 써주기를 부탁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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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權公墓碣銘(幷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翼齡이고, 자는 叔瞻이며, 안동사람이다.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31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자손이 번창하여 내외 현손이 모두 300여 명이나 된다. 공의 6세손인 相玟·相銖 등이 비를 세우고 나에게 묘갈명을 부탁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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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蘆洲趙公墓碣銘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彦仁이며, 字는 景宅이고, 蘆洲는 自號라고 한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물러나 자신을 수양하는 학문에 힘썼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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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眞城李公墓碣銘(幷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晩永이고, 字라는 士成이며, 1789년(정조 13)에 태어나서 1828년(순조 28)에 세상을 떠났다. 言論이 정중하고, 曲直을 숨기지 않아서 유림의 신망이 깊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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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樞耳山李公墓碣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彙徹이고, 字는 敍五이며, 호는 耳山이다. 관직에 있으면서 인척의 사사로운 정리에 얽매이지 않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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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代祖考宣務郞鰲山府君墓表補遺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府君의 호는 鰲山이고, 네 번 郞字가 들어가는 벼슬을 제수 받았다. 이름과 字, 世系, 生卒 및 자손에 관한 것은 모두 舊表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집안에 보관하여 오던 『鰲川集』이 유실되어 찾지 못하였는데 마침 이웃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뒤져보니 우리 집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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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代祖考從仕郞府君墓表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부군의 이름은 以信이고, 집안이 빈한하였지만 성품이 곧았으며, 학문이 깊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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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泉權公墓表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赫이고, 字는 晦卿이며, 이천은 自號이다. 새벽에 닭이 울면 일어나서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지 3백여 년이 지난 뒤에 후손 寧穆이 나에게 묘표를 써달라고 하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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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祖成均生員河南公墓表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進博인데, 어릴 때 이름은 進亮이라고 한다. 자는 周伯이고, 호는 하남이다. 우리 族大父가 탁월한 기운과 멀고, 큰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 공을 으뜸으로 꼽았으며, 학문이 깊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묘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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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從兄處士公墓表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秉旋이고, 자는 旋玉이며, 1852년에 태어나서, 1930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질고 명석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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鰲亭金公墓誌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國子 生員 김공의 이름은 邦翰이고, 자는 公漸 이며, 호는 鰲亭이다. 스승을 모시지 않고 집 뒷산 帝惜洞에서 종일토록 책을 읽었다. 어머니가 매일 밥을 날라다 주었는데 개울물이 불어 건널 수 없으면 장대에 도시락을 매달아서 건네주었다고 한다. 나이 20살이 넘자 문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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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軒先生金公墓誌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길헌의 이름은 金鎭明이고, 자는 文若이며 공의 스승이다. 학문의 도리는 放心을 救하는 것이요, 방심을 구하는 방법은 敬字 한 자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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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金公墓誌銘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鎭璧이고, 자는 穉完이며, 성은 김씨이다. 가계와 사승관계와 자손들의 이름과 혼반 관계가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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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士高公墓誌銘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瀞이며, 자는 心水이고, 素士는 자호이다. 가계와 사승관계, 성품과 자녀의 혼반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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汎庵處士柳公墓誌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淵揖이고, 자는 而用이며, 전주유씨이다. 공의 평생 친구였던 자신이 묘지명을 쓰는 것은 고인에 대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라고 한다. 공의 가계와 학문 연원, 성품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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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弟伯崇墓誌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38살에 세상을 떠난 집안 동생 伯崇의 묘지명으로 가계와 사승의 연원, 성품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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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老處士金公壙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나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어린 시절의 총명한 자질과 자라서 검소하고 禮를 잘 지켰다는 사실과 가계와 젊은 시절의 일화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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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處士權公墓誌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이름은 永喆이고, 자는 吉重이며, 안동 사람이다. 공의 가계와 성품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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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女壙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자신의 큰 딸이 전주 柳氏 柳鎭斗에게 시집을 갔는데 몸이 약했지만 재주가 뛰어나서 8~9세에 唐詩를 외웠다고 한다.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 했는데 불행하게 애비보다 먼저 요절하여 원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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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義城金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金始五(1734~1794)의 행장이다. 김시오의 본관은 義城이고, 字는 壽元이다. 배우자는 安東權氏(1734~1784)로 權正沈의 딸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伯從兄인 金昌運의 둘째 아들인 金台壽를 양자로 들였다. 죽을 때 ‘無憾’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보여 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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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士雪坡孫公行狀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孫星岳(1741~1815)의 字는 肅玉, 號는 雪坡, 本貫은 月城이다. 당숙인 石峴公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大山 李先生에게 사사하였다. 25세 때 『大學』의 경문을 본받아 治家八政을 적고 이를 실천하고자 애썼다. 배우자는 月城 崔氏로 슬하에 2녀(사위 : 鄭涑,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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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陰金公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金養運(1824~1884)의 행장이다. 金養運은 本貫은 義城이고, 字는 穉功이다. 배우자는 宜城 李氏로 士人 李光胤의 女이다. 소생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독서에 매우 열심이었으며, 孝誠이 지극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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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大癡齋先生權公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大癡齋 權(1774~1826)의 행장이다. 권륙의 字는 晦仲으로 本貫은 安東이다. 순조 9年(1809)에 增廣試에 합격하여, 禮曹正郞, 司諫院正言, 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배우자는 瑞山柳氏와 永川皇甫氏가 있었으며, 소생으로 3남 3녀가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