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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東岡齋權公行狀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處士 權度勉(1781~1814)의 행장이다. 권도면의 字는 乃勗, 號는 同岡, 本貫은 安東이다. 배우자는 英陽南氏와 義城金氏였고,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일생동안 벼슬하지 않고 향리에서 독서에 몰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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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庵金公行狀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慕庵 金樂龍(1790~1870)의 행장이다. 선생의 字는 孟呂, 本貫은 禮安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柳尋春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배우자는 仁川蔡氏로 슬하에 6남을 두었다. 東庵의 넷째아들인 權輝駿은 著者의 장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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甁軒高公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甁軒 高彦章(1827~1867)의 행장이다. 고언장의 字는 文伯으로 開城이 本貫이다. 錦洲公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李晩寅, 鄭東箕와 더불어 家塾에서 공부하였으며, 일시에 文名을 떨쳤다. 배우자는 安東권씨로 著者의 고모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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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有齋權公行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根永(1843~1907)의 행장이다. 권근영의 字는 晦叔, 號는 必有齋, 本貫은 安東이다. 眉南公 權仁濩에게 글을 배웠다.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아 辛酉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배우자는 聞韶金氏이고 슬하에 5남을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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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正朴公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朴秉德(1849~1911)의 행장이다. 박병덕의 字는 善可이고, 生父는 朴致彦, 生母는 星州 裵氏로 큰아버지 朴致孝의 양자가 되었다. 평시에도 小學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하였다. 배우자는 靈山辛氏로 후사가 없어서, 아우 永德의 아들인 廷을 양자로 들였다. 박정영의 부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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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夫人義城金氏行狀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義城金氏의 행장이다. 18살에 務安人 朴禎粲에게 출가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夫人이 78세 되던 해(1914)에 橫說竪說歌라고 하는 약 80餘 句의 글을 엮어 책을 만들면서 著者가 行狀을 작성하였다. 橫說竪說歌는 경술국치 이후의 여러 일들을 적어놓은 것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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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六代祖考芝圃府君行錄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공의 6代祖인 權澣(1677~1749)의 行錄이다. 권한의 字는 新之, 號는 芝圃이다. 백부인 判書公으로부터 작은 아버지인 僖靖公과 함께 학문을 배웠다. 豊壤趙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글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약간의 문장만이 남아있어, 그것을 묶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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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考枕隱府君家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著者의 高祖인 權懤(1734~1811)는 初名은 燧, 字는 元卿, 스스로 枕隱이라는 號를 지었다. 妹胥인 金雨皐와 절친한 우정을 나누었고, 柳星休, 金啓運, 柳庭燁 등과 함께 우호가 깊었다. 배우자는 퇴계선생의 후손인 眞城 李守方의 女이다. 아들이 없어서 族弟 權榮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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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高祖考處士府君家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塋(1748~1824)의 字는 晦甫로 安東權氏다. 배우자는 宜城李氏로 슬하에 1남(權厚仁)과 2녀(胥: 李汝鳳, 金宗益)가 있다. 남은 저술로는 「福地齋舍記」와 「臨川書堂重建記」와 몇 편의 誄詞만이 남아 있는데, 편지 등의 자료들을 모아 책으로 엮으면서 家狀을 적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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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高祖考通德郞晩醒府君遺事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1741~1818)은 安東權氏로 字는 時明이다. 아버지는 掌憲을 지낸 權相龍, 어머니는 興陽李氏, 배우자는 晉山姜氏와 咸陽朴氏이, 소생으로는 3남 2녀가 있다. 여러 族親과 門人이 남긴 글에서 권영은 집안에서는 효우가 깊었으며, 평상시에는 매우 온화하다가도, 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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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林下府君遺事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大進(1803~1873)의 字는 成之로 著者의 祖父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고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도와주었다. 특히 妹婿인 孔巖 柳業明에게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獨子를 교육함에 모든 일은 몸소 하게끔 하고 엄히 하였는데, 이는 큰일이 생겼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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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祖處士公遺事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進和(1804~1870)의 字는 敬之이고 安東人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효성을 지극히 하고 인자하고 후덕하였다. 배우자는 聞韶金氏, 淸州鄭氏, 寧海申氏가 있었으나, 자식이 없어 權時永을 양자로 들였다. 曾孫인 權寧萬의 부탁으로 이 글을 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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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祖考府君遺事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權道進(1809~1869)의 字는 行仲이다. 효성과 우애가 깊었고, 친족들을 항상 도왔다. 자제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항상 먼저 보내 맛보게 하였다. 著者가 밤에 게으름을 피우며 공부하지 않으면, 글을 암송해 주어서 익히게 하였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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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府君遺事略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父인 權祚永(1827~1896)에 대한 글이다. 권조영의 字는 幼錫으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받드는 데 뜻에 어긋남이 조금도 없었다. 집이 가난하여도 아버지의 손님을 접대함에 힘쓰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게 하였다. 죽음에 앞서서 校理 李公晩이 문안을 왔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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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孺人義城金氏遺事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모친 義城金氏(1823~1892)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아버지의 손님이 오셨을 때 쌀이 없어 보리를 빻아서 식사를 대접하였으나, 손님들은 그것이 보리임을 알지 못했다. 또한 남편이 과거를 보러 갔을 때는 정안수를 떠놓고 빌었다. 부유하게 자랐으나 시집와서 가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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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府君遺事略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생부인 權敎永(1836~1914)의 字는 舜五이다. 성품이 자애롭고 인자했으며, 근검절약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아우가 죽었을 때는 노모가 있어서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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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先妣孺人宜城金氏遺事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생모인 禮安金氏(1832~1886)는 어렸을 때 唐詩를 한 번 듣고도 외울 정도로 총명하였다. 20세에 시집와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고, 자식을 키우는데 매우 자애로웠으며, 저자에게는 다른 두 형제에 비해서 특별히 사랑해 주었다. 著者와 슬하에 秉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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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女趙氏婦遺蹟略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둘째딸에 대한 글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權氏(1888~1920)는 16살에 趙羲錫에게 시집가서 33세 되던 해에 죽으니, 슬하에 1남 2녀를 남겼다. 딸의 죽음에 대해서 필자는 아버지의 허물 때문이라 하면서 애절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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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女金氏婦行記略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公의 셋째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적은 글이다. 權氏(1891~1935)는 16살에 金聲九에게 시집갔으나 19살에 남편이 일찍 죽고 만다. 남편이 요절하여 부부의 정도 모르고 살다간 딸에 대한 애절함과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아 딸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의 회한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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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節婦傳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密陽朴氏는 21살에 固城人 李旻基에게 시집왔다. 집이 가난하여도 시부모를 잘 공양하였고, 남편이 讀書하는데 뒷바라지를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병들어 죽자 바로 죽으려 하였으나 주변의 만류로 참다가 남편의 3年 喪을 마치고는 곧바로 자살하였다. 당시 잊혀져가고 있던 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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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生傳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達成 지역에 가난한 裵生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명주로 만든 주머니 하나를 주웠다. 배생원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만 자기가 물건 값을 받지 못한 것만을 한탄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풀어보니 紙貨 2백 원이었다. 처음에는 돌려주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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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聞韶 金鴻洛이 지은 輓詞이다. 完山 柳淵昌이 지음 輓詞이다. 安陵 李壽必이 지은 輓詞이다. 咸陽 朴祖洙가 지은 輓詞이다. 眞城 李秀杰이 지은 輓詞이다. 英陽 南孝順이 지은 輓詞이다. 族從 永羽가 지은 輓詞이다. 金永奎가 지은 輓詞이다. 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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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漢陽 趙榮基가 지은 祭文이다. 英陽 南慶佑·南典淳·南佑龍·南時佑가 지은 祭文이다. 眞城 李中寓가 지은 祭文이다. 義城 金翰洛이 지은 祭文이다. 義城 金衡七이 지은 祭文이다. 義城 金秉燦이 지은 祭文이다. 族弟 秉誠이 지은 祭文이다. 族弟 秉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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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英陽人 南炳基가 지은 제문이다. 權秉燮(1854~1939)의 字는 國衡, 本貫은 安東이다. 배우자는 宜城金氏(1851~1918)로 金輝俊의 女이다. 敎永의 아들로 태어나 鎭明의 문하에 취학하였으며 그 후 외삼촌 金養鎭과 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여러 번 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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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石塢 선생 死後 38년 뒤에 完山人 柳東銖가 지은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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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병섭族姪 權炳哲이 지은 것이다. 石塢 先生은 영특한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일찍부터 벼슬길에 나아가는 뜻을 접고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히는데 열심이었다. 이어서 公의 世系에 대한 것과 배우자, 子孫을 자세히 적었다. 公이 돌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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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달의석촌집(石村集) 石村 李達意의 문집. 2권 1책.서문은 李會春(1890~1977)이 1963년에 썼고, 발문은 李家源과 李宰賢이 1964년에 작성하였다. 따라서 1962년에 權相翊이 교감을 완료하였고, 1964년에 간행한 듯하다. 문집은 두 권으로 되어 있다. 권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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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조선 후기의 학자인 金鎭宇의 문집. 6권 3책. 목활자본. 李敦禹의 序文과 金道和의 跋文이 붙어 있다. 저자의 아들인 金蓍洛이 유고를 수습한 후 서문의 저자인 李敦禹에게 부탁하여 엮게 된 것으로 보이며, 문집의 교정 역시 이돈우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이돈우는 서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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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夜吟, 墻角梅花枯朽已久忽見一點二點花着在枝頭感而作此, 月夜偶吟, 落照次杜工部韻, 挽北亭李公(宗周), 挽柳判書(相祚), 挽族曾祖處士公(始榦), 次老社懷古韻, 秋夜, 次柳濯叟韻贈別, 贈李信庵忠立(秉夏)於山寓榻, 敬堂張先生挽(遷葬時), 挽李參判(泰淳), 挽邁埜徐丈(活), 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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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次杜工部贈湖南諸友韻寄忠立, 挽權彛仲(虎), 琴臺曲贈趙周卿, 宿瑞石亭, 次李景圓敬亭四友壇韻, 挽族兄伯剛(鎭圭), 挽李日成(相奎), 水月趙公(儉)挽(遷葬時), 挽李丈(致宅), 挽族叔大叟(來壽), 次葛庵李先生復官焚黃韻, 次錦陽壇韻, 族叔箕應(疇壽)粧成先賢墨帖作詩求和遂次其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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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宿仙遊亭伏次藥峯先祖韻, 方壺亭伏次鶴峯先生韻, 次杜詩春雨韻, 贈鄭景勳(欽寬), 除夜口占, 達城歸路登八公山, 仙遊亭重建時呼韻, 伏次瓢隱先祖韻, 酬李景圓, 日月山道中口占, 登一字峯, 用前韻贈趙恬窩(聖臣), 復用前韻贈別諸友, 題冥寂庵, 雪中次南野集中韻, 次墨洞精舍韻, 用前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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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定齋柳公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定齋 柳致明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 번 이별한 뒤 다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하고 난 후 안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바닷가에 살면서 경전을 읽고 있는데 服制가 중첩되어 슬픔이 크다고 하였고, 뵙고서 가르침을 받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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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定齋柳公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定齋 柳致明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치명이 嶺海로 간 후 선비들이 따를 만한 사람이 없어 風流와 文雅가 날로 쇠퇴하고 있다는 언급과 함께 얼마 후면 정자를 완성하게 되는데 유치명이 임금의 은혜를 입어 새로 지은 정자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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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士珍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士珍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번 한번 만나 높은 의론을 듣고 그윽한 정을 나누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사정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시를 짓는 재주가 없어 화운시를 적어 보내지 못한 점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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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士珍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士珍에게 보낸 답장이다. 전에 보내 준 편지에서 주자의 말을 통하여 자신을 깨우쳐 준 점에 대하여 사례하였고, 서원에서 개최하는 講會가 내년에 어떻게 거행될 지 일정이 정해지지 않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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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士珍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士珍에게 보낸 편지이다. 예전에 이사진이 이른 나이에 머리가 희고 질병까지 겹친 것을 보고 건강을 매우 걱정하였는데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기운이 왕성하고 안색이 좋아져 젊은이들보다 건강하니 기쁘다고 하였고, 아울러 酒會를 거행하기 어려운 사정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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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忠立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편지이다. 주변 인물들의 근황을 상세히 적고 있으며, 이충립이 지은 遊山錄의 발문이 景物을 표현하는 데 힘썼을 뿐만이 아니라 仁者와 智者가 산수를 보는 법을 서술함으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원한 여운을 갖게 한다고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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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忠立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충립이 지어 보낸 시와 편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龍寺의 모임 이후 자신의 헛된 명성이 사방으로 전해져서 사방에서 사람들이 찾아온 점에 대하여 명성이 실정을 벗어난 것 같다는 경계의 마음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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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忠立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편지이다. 澗亭에서 문집을 교감하는 작업이 어떠한 지 물은 다음, 師儒들이 운명한 다음 그들의 문집을 정리할 사람이 없던 차에 이충립이 그 일을 담당한 것에 대해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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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忠立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답장이다. 보내준 편지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표하고, 이충립이 지어 보낸 記文에 대하여 느끼는 바가 많다고 하였고, 고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근황도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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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忠立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편지이다. 三冬 이후 蔚龍, 新澤과 芙蓉, 石門에서 濯叟 및 景學 등과 유람한 내용을 서술하였고, 大坪 어른이 칠순의 나이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면 유림들이 의지할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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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忠立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답장이다. 가족을 이끌고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 人事를 사절하고 평상시 교유하던 사람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을 전하면서, 아름다운 산수를 찾고자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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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忠立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답장이다. 자신들은 역량이 고인에 미치지 못하므로 曲直과 是非를 가리는 데 힘쓰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退溪書節要』의 경우 副本이 없으니 빌려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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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忠立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답장이다. 안부와 함께 노년의 생활을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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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忠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편지이다. 龜院에서의 벗들이 만나 즐기던 시간과 泗水에서 꽃놀이하던 일이 우리 고을의 좋은 고사가 될 만하다고 하였고, 자신이 4월에 鶴洞을 두루 유람한 즐거움을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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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忠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忠立에게 보낸 편지이다. 쇠잔한 나이에 궁벽한 산에서 거처하면서 교감을 의뢰받은 것이 매우 분에 넘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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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耳仲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柳耳仲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을 잃은 유이중의 슬픔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두 손자들이 있으니 슬픈 마음을 추스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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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質汝(秉殷)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秉殷에게 보낸 편지이다. 바닷가에서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사는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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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內舅柳公(衡祚)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외숙인 柳衡祚에게 올린 편지이다. 소식을 듣고도 안부 편지를 올리지 못한 점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였고, 집안이 불운하여 연이어 초상이 난 정황을 서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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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元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趙士元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요즘 신세가 좋지 않아 연이어 초상이 났다는 내용과 함께 英山이라는 곳이 협곡 중에 좋은 곳으로 샘물이 좋고 땅이 비옥하니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