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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溪書院林溪曹公常享祝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晦溪書院에 林溪 曹公을 배향할 때 올린 축문이다. 조공은 효도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유풍이 늠름하니 사람들을 엄숙하게 할 만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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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葛庵李先生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葛庵 李玄逸에게 올린 제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헌이 한 집안에 모여져 哲人이 태어났으니, 덕을 드날리고 문화를 떨쳐서 혼자의 몸으로 여러 현인들의 업적을 계승하였고 필부로서 백세의 스승이 되었다며 이현일의 학덕을 기렸다. 또한 성군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었지만 충성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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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周卿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趙彦郁에게 올린 제문이다. 지난날 조언욱에게 세대가 내려와 문장의 법도가 무너졌으니 자네와 같은 굉장한 문장력과 넓은 식견으로 저서에 힘쓰라고 한 적이 있음을 회상하면서 조언욱이 죽은 후 그의 글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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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穉峻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穉峻에게 올린 제문으로 빼어난 자품과 순수한 자질, 정밀한 식견을 갖고 있던 이치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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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曾祖杏山公(汝弼)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曾祖인 杏山 金汝弼에게 올린 제문이다. 김여필은 芙蓉과 같은 모습에 약관의 나이로 남쪽으로 가서 명성을 날렸으며 일생동안 선조의 유적을 유지하고 밝히는 데 진력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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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處士公(纘運)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祖 金纘運에게 올린 제문이다. 조석으로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는데 운명하여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다며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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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東園從叔父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從叔父에게 올린 제문이다. 石門에 종숙부가 남긴 글씨가 아직까지도 그대로인데 운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가지 못하였으니 평상시 받은 은혜를 저버린 것이라면서 종숙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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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愧窩族祖(漸運)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祖인 愧窩 金漸運에게 올린 제문이다. 김점운은 선조의 유풍을 이어받아 덕을 드날리고 문화를 진작시켜 모습이 본받을 만 하였으며 서책을 탐독하였고 인재 양성에 열심이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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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鎭福)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兄 金鎭福에게 올린 제문이다. 김진복은 선조의 유풍을 실추시키지 않고 집안과 일가에게 도리를 다하여 단란하게 하였다고 칭송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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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德庸兄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德庸에게 올린 제문이다. 덕용은 우아하고 간략하며 고요하게 자신을 지켰으며, 덕은 돈후하고 신중하였으며 행실이 자상하였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면서 현 시대에 태어났지만 마음은 고인과 같았고 시세와 함께 하면서도 몸가짐은 처녀처럼 얌전하였으며 일생 동안 조촐한 생애를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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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處士金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叔인 處士 金公의 생애를 정리한 행장이다. 김공이 죽은 지 3년 후 손자 疇洛의 요청으로 지었다. 서두에서 먼저 김공이 죽은 후 집안이 적막해지고 법도가 해이해져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여 김공의 집안에서의 존재감을 회고하고 있다. 김공은 타고난 자질이 고매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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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祖叔父成均生員東園公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東園 金羲壽의 생애를 정리한 行狀이다. 김희수의 자는 以凝이며 초명은 鼎壽, 호는 東園, 본관은 義城이다. 1760년(영조 36) 3월 7일에 태어났다. 그는 骨相이 淸秀하고 儀表가 峻嶷하였다. 취학했을 때 재종숙인 惺庵 金顯運에게서 배웠고 글씨 쓰기에 열중하기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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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處士金公行狀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叔인 處士 金民喆의 생애를 정리한 행장이다. 김민철의 자는 秀明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1773년(영조 49)에 新塘里에서 출생하였다. 태몽으로 星辰의 상서가 있어서 아명을 應辰이라고 하였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특이하고 골상이 淸秀하여 보는 사람들이 기이해 하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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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穉峻行略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李穉峻의 생애를 정리한 行略이다. 이치준과 자신은 異姓의 가까운 친척으로 서로 사는 곳이 멀어 만나보지는 못하였다가 병신년 겨울에 그의 집에 가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精神과 意象을 한 번 보고서 그 흉중에 보존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며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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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祖隱行齋金公行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祖인 隱行齋 金彙運의 생애를 정리한 行錄이다. 김휘운의 자는 泰以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을묘년에 秋月里에서 태어났다. 얼굴이 그림과 같고 살결이 고왔다. 부친이 집안을 빛내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는데 부친이 그의 나이 3세에 운명하자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젖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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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弟인 金養眞이 지은 金鎭宇의 行狀이다. 김진우의 자는 啓魯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1786년(정조 10) 11월 15일에 新塘里에서 출생하였다. 자질이 침착하고 고요하였으며 7세에 족조인 竹巢公 龍燮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몇 달 안 되어 『十九史』를 다 읽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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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族姪인 金興洛이 지은 金鎭宇의 墓碣銘이다. 묘갈명은 행장에 근거하여 지어지는 까닭에 그 내용은 앞의 行狀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김진우는 자가 啓魯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1786년(정조 10) 11월 15일에 新塘里에서 출생하였다. 자질이 침착하고 고요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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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우金道和가 지은 발문이다. 선비가 글을 읽고 경전을 연구하는 것은 致用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홀로 세상에 드리워져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장이 아니냐고 한 다음 구양수의 “지극한 보물이 그윽한 산천에 잠겨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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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조선 후기의 학자 柳致球의 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1885년(고종 22) 손자 柳淵昌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金興洛의 발문이 있다. 卷1에서 卷3까지는 저자가 지은 詩, 書, 雜著, 誄辭, 墓碣銘 등이 실려 있고, 卷4는 부록으로 저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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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癸亥冬至叔父方谷先生呼韻命賦,夜坐, 族先祖猿溪公(仁培)有四無吟蓋有所激而云恐後之覽者不識公本意今反之, 周王道中次李叔仁(東協)韻, 丁亥九月與族叔學先(覺文)同陞國庠聞喜席族祖遯坡翁(龜休)促成七步詩, 小隱亭成金上舍(再鳴)詩以見贈遂次其韻, 月外道中, 輓權丈(徶), 誓石亭訪申穉亨(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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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1808)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학문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는 16세 때 쓴 편지로, 평소 공부하면서 품어 왔던 의문점을 大埜 柳建休에게 묻고 있다. 저자는 재주가 부족하고 가세도 빈한하여 학문에 열중할 수 없다는 의례적인 말과 함께 평소에 궁금하던 내용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편지 뒤에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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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1810)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18세 때 유건휴에게 궁금한 내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빈궁하여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는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때로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때마다 朱子가 陳膚仲, 林叔和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곤 하는데, 거기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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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1811)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19세 때 유건휴에게 궁금한 내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유건휴를 직접 뵙고 학문을 배우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論語』 「子張」에 나오는 ‘子游와 子夏가 道의 本末을 놓고 벌인 토론’에 대한 權以復의 해석과 柳範休의 ‘性發爲道之義’가 결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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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1812)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20세 때 유건휴에게 궁금한 내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그 내용은 19세 때 보낸 편지에서 물었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권이복과 유범휴가 견해 차이를 보인 것에 대해, 본인의 학문이 좀 더 진전된 이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것, 이외에도 많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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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問目(1815)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와 유건휴가 상례와 관련해서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한 것을 정리한 문목이다. 禫祭를 마친 뒤에 成殯하는 것이 예의에 합치하는가의 여부, 承重한 손자가 할아버지 상의 상주가 되어도 되는지의 여부, 그 와중에 증조모 상을 당하면 次曾孫이 주관해도 되는지 여부, 다른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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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埜先生(1820)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상장례와 관련해 궁금한 것을 유건휴에게 물은 편지이다. 새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과 이장하는 일이 겹칠 때, 情誼가 가벼운 것을 먼저하고 무거운 것을 뒤로 미루는 것이 예에 합당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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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晩洲(以復,1812)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권이복에게 저자의 의견을 전하는 편지이다. 『論語』 「子張」에 나오는 ‘子游와 子夏가 道의 本末을 놓고 벌인 토론’에서 자유와 자하가 말한 것의 의미와 朱子와 程子가 붙인 주석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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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晩洲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권이복에게 저자의 의견을 전하는 편지이다. 『論語』 「子張」에 나오는 ‘子游와 子夏가 道의 本末을 놓고 벌인 토론’에서 자유와 자하가 말한 것의 의미와 朱子와 程子가 붙인 주석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는 理에는 본말이 없고, 大小와 精粗가 없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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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泉(熙紹,1831)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김희소가 봄에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오래도록 찾아뵙지 못한 점을 사죄하는 한편, 여름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아울러 『퇴계집』과 『퇴계서절요』의 내용 중 저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면서 의견을 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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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定齋先生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定齋 柳致明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대학』과 『중용』을 읽으면서, 의심나고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주변에 師友가 없어서 아쉽다고 하였다. 아울러 자신이 『대학』과 『중용』을 읽고 나서 깨우친 요체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대한 유치명의 의견을 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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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定齋先生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정재 유치명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10여 년간 정재 유치명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 매우 아쉽다고 하였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큰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쓰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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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信庵(1840)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信庵 李秉夏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가 『大埜集』 간행의 執事를 맡았으나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병하가 저자의 부탁으로 유건휴가 쓴 松陰公의 행장을 정서해 보낸 데 대해 감사한다는 내용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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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信庵(1841)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信庵 李秉夏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 무렵의 저자는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학문을 하는 이들이 실질과 의리를 닦는데 힘쓰는 것이 아니라, 희한하고 신기한 것을 익히는 데 애쓰는 세태에 염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학문을 하느니 차라리 밭에서 농사를 짓는 데 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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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叔仁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李東協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당시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동해안을 따라 유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말하고, 하지만 이것은 잠깐 동안 즐겨야지 오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동협 등과 함께 문집 간행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 등을 적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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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申稺亨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申弘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달포 전에 그가 보낸 편지가 매우 위안이 되었는데 답장을 못해 미안하다는 것, 언제 한 번 만나 담소할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것, 그리고 늘그막에 의지하던 孟仁마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적막하다는 등의 저자의 근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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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幼徵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金九壽에게 보낸 답장이다. 궁벽한 곳에 살면서 세상 물정 모르지만, 60이 넘은 늙은 나이에 김구수 같은 지기를 만나 매우 과분하고 큰 행운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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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兩吉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의 表弟인 南殷喆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은철은 저자에게, ‘형의 상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큰 조카마저 상을 당하게 되었다. 이럴 경우 큰 조카손자의 상복은 어떻게 하며, 아울러 고유문 등에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저자는 그에 대해 한강 정구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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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士遠(鍍壽)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金鍍壽에게 보낸 답장이다. 세태가 쇠락하여 허위와 아첨이 득세하고 선을 행하려는 자는 적다는 것을 한탄하면서, 이러한 세태에 물들지 않도록 늘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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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吳稺宣(鍑)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吳鍑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복이 선친의 묘 자리를 잡는 문제로 저자에게 상의하였다.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저자는 풍수지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그것이 허황된 것임을 역설하면서,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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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司馬所會中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司馬所에 모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상 때 곡하는 벼슬아치의 반열에서 西庭의 좌석 배치는 古規에서 유래된 것이나, 생원·진사의 庭禮에 어긋나는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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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啓若(膺協)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李膺協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응협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저자를 배려해 준 점에 감사하면서, 이러한 배려에 어긋나지 않도록 학문에 열중하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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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叔述之(承文)族兄幼根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族叔인 柳承文과 族兄인 柳致榮에게 보낸 편지이다. 큰 흉년을 맞아 기근에 허덕이는 일족을 위해 수곡 문중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곡식으로 진휼하자는 두 사람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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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羅谷會中(1834)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나곡의 종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곡의 일족이 유건휴의 문집인 『大埜集』을 간행하기 위한 경비를 일부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구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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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公燁(根文)景貫(渾文)士龍(夔攵)(1852) 4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族叔인 柳根文, 柳渾文, 柳夔文에게 보낸 편지이다. 흉년을 맞아 기근을 해결하기 어려운 친족에게 일족이 경제적으로 부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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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窩雜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성리학에 관한 문제를 비롯, 『대학』, 『중용』 등의 經義에 관해 權以復, 柳範休, 趙友慤, 申鼎周, 趙希洙 등 여러 학자들과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기설을 비롯해 사서의 朱子나 程子의 주석에 대한 의문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어, 당시 저자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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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書軒李公逸稿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琴書軒 李鵬齡 문집의 서문이다. 이붕령은 고산 이유장의 제자로 성품이 호탕하고 기품이 방정해서 많은 선비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密庵 李栽, 霽山 金聖鐸, 訥翁 李光庭, 甁窩 李衡祥 등이 모두 그와 교유하였다. 그러나 세속에는 뜻이 없어 周房山 아래에 집을 짓고 거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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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氏宗禊案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靑松府에 세거하던 정씨의 종가가 몰락하였다. 이에 鄭彙坤, 鄭泰鎭 두 사람이 자본을 내어 종가를 부흥시키고자 하면서, 후세에도 종족이 화목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저자에게 글을 부탁하여 쓴 글이다. 저자는, ‘종가는 나무에 비유한다면 뿌리와 같으니, 두 사람의 뜻을 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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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權明應(五奎)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권오규에게 학문의 성취를 위해 충고하며 쓴 글이다. 저자는 학문하는 방법은 致知力行에 있는데, 그를 위해서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권오규는 외진 곳에 살아서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함을 늘 안타까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오규가 스스로 정재 유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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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吳堅汝(鑽)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의 사위이자 제자인 오찬에게 훈계하는 내용이다. 오찬은 학문에 매우 열중하여, 깊은 밤에도 그만 두라는 말이 없으면 밤을 새워 읽을 정도였다. 저자는 이에 대해,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늘 읽은 바를 마음속에 두었다가 매사에 그대로 행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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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隱堂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구저자가 거처할 집을 짓고, 당호를 ‘소은당’이라고 한 다음 그 의미를 풀어놓은 글이다. 저자는 ‘소은’의 의미는 산림에 은거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선비가 원래 뜻하는 바는 아니라고 하였다. 선비라면 세상에 뜻을 얻어 포부를 펴야 하는데, 정작 자기는 세상과 맞지 않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