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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柳규)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유규가 권보를 위해 지은 輓詞이다. 樹谷 깊은 곳에 대낮에도 문을 걸어 잠그고, 百原山 속에서 가르침을 남겼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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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金弼衡)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金弼衡이 권보을 위해 지은 輓詞이다. 문장은 어릴 적에 성취하였고, 집안의 학문 깊이를 일찍 깨쳤다. 남쪽 봉우리도 놀란 듯 홀연히 어둡고, 가을 산의 새벽달도 어진 친구가 떠난 것을 아는구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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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曾胤)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李曾胤이 권보를 위해 지은 輓詞이다. 霽谷이 먼저 가 사림이 슬퍼하였는데, 공께서도 또 머물지를 않고 우리를 떠나는구려. 우리들의 곤궁한 운수인가! 흰머리 늙은이가 눈물을 흘린다고 하였다. 霽谷은 권보의 큰형인 縉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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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柳演)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柳演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祭文이다. 어찌하여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가 하면서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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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安尙沈)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安尙沈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祭文이다. 공은 세상에 있을 때는 하늘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고 죽어서는 이름을 떨쳤다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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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柳宗春)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孟熙 柳宗春(1720∼1795)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祭文이다. 슬프다! 공이 떠난 지도 두 돌이 되었다. 아득한 세월 속에 내가 누구와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느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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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安敏修)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安敏修가 권보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儒林의 모범이며, 집안의 학문을 이어 받았고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다. 서투른 글이지만 영전 앞에 바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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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金弼衡)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金弼衡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斯門이 불행하여 작은형 巢谷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다음에 큰형 霽谷公, 이번에는 공마저 떠났다. 곡하고 돌아오니 산 달빛만 으스름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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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金彦燮)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金彦燮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삼 년이 흘렀다. 樹谷에 풀만 가득하구나. 신령스러운 영혼이라면 나의 정성을 살펴보시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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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姜復一)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姜復一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공은 강직하고 지혜로운 자질에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학문 있는 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친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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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柳一春)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柳一春이 권보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공은 어릴 때부터 부친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공자의 아들인 伯魚와 비견된다. 오늘 영전 앞에서 곡을 하니 온 세상에 사람이 없는 듯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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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從子明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조카 明佑가 올리는 제문이다. 아! 일 년 사이에 나의 아버지(緝)을 잃고, 또 삼촌이 세상을 떠났다. 온 집안이 텅 빈 듯하다. 너무 서러워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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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玄孫 鍍가 지었다. 고조부의 이름은 보(䋠:1709∼1778), 자는 季凝이다. 고려조에 太師를 지낸 幸이 權氏姓을 하사 받아 대대로 안동에 살았다. 증조부 摶은 군수를 지냈다. 조부는 憕으로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하였으며 저서로 『喪禮考證』이 있다. 아버지 榘(1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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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通政大夫 權璉夏가 지었다. 屛谷 선생 榘(1672∼1749)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학문과 행실로 우뚝하다. 樹谷公 (1709∼1778)는 자가 季凝인데 막내이다. 수곡공은 경전을 연구하고 역사서를 섭렵하여 고금을 꿰뚫었고 천문과 數學에도 두루 능통하였다. 집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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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地銘 / 기록자료>고도서 / 권보金道和(1825∼1912)가 지었다. 공의 이름은 (1709∼1778)는 자가 季凝이다. 고려조에 姓을 받은 幸이 시조이고, 僕射를 지낸 守洪이 分派된 조상이다. 右參贊를 지낸 柱가 공의 8대조, 증조부는 군수를 지낸 摶. 조부는 憕, 아버지는 屛谷公 榘이다. 어머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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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소무헌집(素無軒集) 素無軒 琴書述의 문집. 6권 3책. 琴書述의 손자인 穡圃가 遺文을 편집하여 제가들의 校勘을 받고, 당시 인사들에게 행장과 묘갈명을 받아 문집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집의 참화로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손자 性洙가 조부의 뜻을 이어서 다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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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吟病得小麓觀物, 挽柳京老(箕鎭), 訥谷會中謹次伯兄韻聯呈李士興(致禎), 淸凉軸中韻, 臨江盥濯, 自遣, 淸凉道中, 挽李參判(泰淳), 亭會板上韻, 淸凉軸中韻, 柳濯叟(致皜)入洞口韻, 文殊菴夜坐, 夜雨, 丹砂峽敬次退溪先生韻, 次李信菴(秉夏)韻, 初月, 新歲有感, 按廣瀨稿孤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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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儒義理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哲宗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周나라 成王 때 周公이 太王과 王季의 尊號를 올렸던 예에 의거하여, 莊獻世子에게 존호를 올리고 正宗大王에게도 존호를 올릴 것을 청한 상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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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復毁撤書院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賜額서원이 훼철되기 전의 상소문. 서원의 악폐를 막기 위하여 철폐시키는 상황에서, 賜額 서원은 존속시키고, 賜額하지 않은 서원은 훼철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대해 毁撤된 서원의 복설을 청한 상소문. 먼저 역대로 학교와 서원을 설립한 목적과 경과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서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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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定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定齋 柳致明이 周子의 太極圖에 五行圖 아래 작은 圈點이 찍힌 것을 界辨圖라고 한데 대해, 자기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아울러 墓碣銘의 序文과 銘文에서 몇 가지 수정을 했으면 한다는 견해를 적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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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雪竹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친형의 장례식 날 설죽 이병은의 伯兄 訃音을 듣고 60년 막역한 친구였던 고인과의 정리를 생각하고, 멀리서 애도의 뜻을 전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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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雪竹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行狀 草稿의 몇 가지 미온하게 생각되는 표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어 보낸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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賀僉知李丈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李丈이 나이 90이 되어 조정으로부터 僉知의 벼슬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90평생의 행적을 서술하고, 나이 70이 되어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희어서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도 있고, 기력이 노쇠해서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장은 나이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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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見可(彙炳)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이휘병의 편지에 대해 處世하는 방법에 관해 서술한 편지이다. 성인의 도를 가지고 성군을 만나 일세에 교화를 펴는 것이 常道이지만, 성인의 도를 가지고 때를 만나지 못해 초야에서 이름없이 사라지는 것은 變道라고 하여, 역대의 사적을 들어 설명하였다. 마지막에 바람 앞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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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方伯(錫愚)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관찰사 신석우가 樂育齋에 講席을 마련하고 主席의 임무를 맡아 달라고 한 편지에 대해, 노둔한 재주로 궁벽한 산 속에 살아가는 나이 70된 늙은이로 직무에 나갈 수 없음을 밝힌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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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輿(彙載)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이덕여의 맏아들이 처음 벼슬에 나간 것을 축하하고, 이덕여도 掌樂院正에 제수된 것을 축하한 편지이다. 본인은 눈병이 나서 서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고, 이덕여는 벼슬에 나가서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아서 士論과 衆論에 부합하도록 힘쓰기를 바란다는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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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갑작스런 형의 죽음을 위로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가까이 이사를 와서 좋은 이웃을 얻어 기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관직에서 치적이 날로 드러남을 치하하고, 외롭게 쓸쓸히 살아가는 자신을 한번 찾아주어 회포를 풀기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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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上舍(五秀)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형의 죽음에 멀리서 편지를 보내 위로를 해준 데 대해 감사한 편지이다. 아울러 이 병으로 백형의 죽음을 맞는 등 액운이 이어지자 이상사도 몸을 잘 보전하기를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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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殷老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詩經』「 豳風」의 작가 문제와 지어진 시기에 대해 유은노와 서신으로 견해를 주고받은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빈풍]을 주공이 東征에서 돌아와 빈땅에 거처할 때 지은 것인가? [七月]장이 빈풍에 들어 있는 이유, [鴟鴞]를 周公이 지은 것인가 아니면 주공을 찬양하기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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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殷老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시경』의 내용과 편차에 관한 견해를 주고 받은 내용이다. 『시경』 「大雅」의 [卷阿], [民勞], [板], [韓奕]의 지어진 시기와 저자, 편차와 풍자의 대상에 대한 유은노의 견해에 답하였다. 그리고 『孟子』에서 "詩亡"이라고 한 것에 대해 詩集傳과 詩序의 해석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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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泰叟(岱鎭)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김대진의 아들이 요절한 것에 대해 애도의 뜻을 전하고, 弔問하는 글 한 장도 제때에 보내지 못하여 죄스럽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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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汝雲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일상적인 안부를 전한 편지로, 안질과 요통으로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근황과 손자가 총명하여 훗날이 기대된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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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汝雲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김여운이 遺逸로 천거되어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노년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근심스럽다는 내용과 종손부가 아래위로 애정이 깊고 집안일을 잘 처리하여 매우 다행인데 그것은 귀문 중에서 잘 가르쳐 준 덕분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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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表弟聖望(輝大)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본문에서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큰 환란을 당해 놀랍다는 내용과 세상살이가 본래 어려움이 많다는 말로 위로하고, 객지에서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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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聖望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큰 액운을 당했으나 여가에 책을 읽고 시를 외우며 신중하게 기다리라는 내용과 곧 조정의 은전이 내릴 것 같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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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孟經(秉常)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며칠동안 함께 지냈던 즐거움과 돌아오는 길에 말이 병나서 걸어서 오는 괴로움, 그리고 國母喪을 당하여 애통한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그리고 小祥 때 閏달을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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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公善(性和)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일상의 근황을 답한 편지이다. 시력을 잃어서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 과거를 보러 간 아들이 병이 들어 돌아오지 못한 얘기, 希元의 字說을 지어 주었는데 너무 소략한 것 같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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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公善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일상적인 근황을 답한 편지이다. 虛名의 재앙을 이기고 실질의 공부에 나가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先兄의 遺稿가 약간 남아 있는데, 등사해서 보낼 테니, 후배들과 서로 강론하고 믿는 의리를 돈독하게 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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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公善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일상적인 안부에 대한 물음과 象數의 原에 대해서 전대 선현들의 문답에도 잘 보이지 않는데 외람되이 몇 마디 한 것이 매우 두렵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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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追遠齋會中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저자의 근황에 대한 전달과 追遠齋를 수리하는 일이 끝났는지에 대한 물음과 그리고 수일내에 서로 만날 수 있겠는지 여부를 물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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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兄舜瑞(廷學)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族兄에게 안부를 전한 편지로, 눈병이 실명할 정도로 심해졌다는 내용과 아들이 서울에 가서 시험에 합격했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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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伯兄梅村公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새롭게 임금으로부터 벼슬을 제수 받고 伯兄에게 왜 謝恩肅拜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섯 가지 연유를 설명한 편지이다. 다섯 가지를 들어 설명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벼슬길에 들어섰으니 의리상 한 번은 肅拜를 해야 하고, 둘째는 歷歲이래로 처음 除授의 교지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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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姪性翁景祖(佑烈)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일상적인 안부를 전하고, 아울러 幹事에 내가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면밀하게 준비하여 교정하여 간행하도록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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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景祖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내용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날씨도 덮고 걸음도 불편하여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내용과 그리고 부탁한 글은 급박하고 졸렬하게 써서, 누락된 부분도 있고 껄끄러운 부분도 있으니 이 글은 상자 안에 넣어두고 훗날 훌륭한 작가를 기다리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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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景祖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東溪書院에 대한 毁撤令이 내려지자, 位版을 땅에 묻는 절차에 대해서 논한 편지이다. 祖, 子, 孫 삼대를 봉안하다가 子, 孫은 남겨 두고 祖의 위패를 땅에 묻는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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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從弟穉一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族弟 穉一에게 보낸 편지이다. 동계서원에 훼철령이 내려지자, 훼철령을 거두어 달라고 조정에 상소하자는 논의가 鼎山에서 있었다. 이에 公議가 나온 것의 문제, 疏頭의 문제 등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적어 보낸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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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孫致章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族孫인 致章에게 보낸 편지이다. 주로 학자의 자세에 대하여 논하였다. 공부를 하면서 생업을 위해서 농사일을 겸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공부와 산업에 本末을 알아서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고, 여가에 한가하게 앉아 있지 말고 공부에 마음을 쏟고 책에 눈을 붙여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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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岱基孫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공부하는 곳이 외지고 숙식도 불편하지만, 공부는 얼마나 정밀하고 專心으로 하는 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장소와는 상관없이 立志가 어떠한가가 중요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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顧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退溪 李滉 선생이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중요한 것을 뽑아 열 가지 條目으로 만들어 警省의 자료로 삼은 것이다. 그 조목은 학문에 힘씀[勉學], 뜻을 세움[立志], 공부에 힘씀[用工], 곤궁함을 참음[忍窮], 욕망을 억제함[制欲], 심신을 편안히 쉼[休養],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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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老先生集與奇高峯論心性情改圖後一書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退溪先生文集 중에 退溪께서 高峯 奇大升이 心統性情圖를 고쳐서 논의한 데 대해 보낸 편지를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