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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4301

    李栗谷代白公論事疏辨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栗谷 李珥가 休菴 白仁傑을 대신해 靜菴 趙光祖 文廟從事 문제를 논한 상소문에서 왕이 "退溪는 어떠한 사람인가"라고 한 물음에 "어떤 사람은 程朱의 學統을 이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經世致用의 재주는 없다고 합니다"라고 답한데 대해 변론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02

    易繫天地定位山澤通氣雷風相薄水火不相射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周易-說卦傳』의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03

    詩豳風編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詩經-豳風』의 鴟鴞이하의 시를 七月장에 이어 붙여서 빈풍으로 한 것에 대해 諸儒들의 학설이 있으나, 이것은 단지 周公이 큰 변고를 당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뜻만 논술에 한 것에 불과하고 東征詩를 七月장에 이어 붙인 뜻은 밝히지 못했다고 보고,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
    출처 : 유교넷
  • 364304

    詩賓之初筵抑戒詩編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시경』의 [淇澳] [賓之初筵] [抑戒]시가 모두 衛 武公의 학문과 성덕의 始終을 이루는 것인데, [淇澳]은 衛風에, [賓之初筵]은 小雅에, [抑戒]는 大雅에 넣어서 배열하였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논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05

    讀中庸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中庸』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기록된 『論語』나 綱領과 條目의 순서에 따라 기술한 『大學』과는 달리 子思가 홀로 道統이 서로 전해진 뜻을 미루어서 立言한 것이기 때문에 首尾가 貫鎖하고 가슴 속에서 서로 얽고 배열한 후에 문장으로 기록하였기에 그 微妙함이 무궁하다고
    출처 : 유교넷
  • 364306

    屋漏說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屋漏는 방안의 서북쪽 귀퉁이에서 中霤의 神을 제사지내는 곳으로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을 말한다. 이 屋漏에 대해 주자의 "釋宮"설과 퇴계선생이 경연에서 "西銘"강의를 통해서 밝힌 견해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易東書院 講會에서 논의되었지만 확정되지 못하고, 제
    출처 : 유교넷
  • 364307

    太極圖箚疑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柳箕鎭과 太極圖에서 대해 몇 가지 논의하던 중에 外邊의 黑白圈에 대한 유기진의 견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08

    書梓材篇末蔡氏傳疑義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書經-康告』 [梓材]편에 대해 蔡氏가 설명하기를 "앞부분은 위에서 아래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고, 뒷부분은 신하가 임금에게 고하는 말로 말이 분명하다. 마침내 신하가 고한 말을 주나라 召公이 進戒한 말로 여겨서 책을 편집하는 사람이 잘못 합쳐서 편집했다."고 한 데
    출처 : 유교넷
  • 364309

    四端七情橫貫過了疑義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朱子語類』의 "七情自於四端橫貫"과 "七情分配四端" 문목에 대하여, 葛庵선생이 申克齋와 七情橫貫에 대해 논의한 것과 大山선생의 [與李希道書]에서 논변한 것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10

    參同契疑義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魏伯陽의 參同契는 修養家의 鍊丹法으로 儒家에서는 도외시하여 달리 유파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자가 蔡元定 元樞 등과 이것에 대해 논의한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그 글을 교정을 보고 說을 지어서 밝힌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역대 제가들의 참동계에 대한 평가
    출처 : 유교넷
  • 364311

    禮鄕飮酒준義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준은 鄕飮酒禮 때 有司가 되어 손을 접대하는 사람이다. 『韻書』에는 주인을 돕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향례]편에는 酬酌을 할 때 준은 일이 없다고 한 것에 의심을 가지고 준의 고증하여 적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12

    讀國朝記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英祖가 아들 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일은 이후로 朝野의 어떠한 문적에도 금기되었다. 늦게서야 어떤 사람의 기록을 보고 그 전말을 상고한 것이다.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할 때 대신들이 죽음으로 말리지 못한 일, 정조가 친부인 사도세자의 종통을 이은 것이 아니라 사도
    출처 : 유교넷
  • 364313

    景慕宮私議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景慕宮은 莊獻(思悼)世子의 廟號이다. 영조는 일찍 죽은 孝章世子를 眞宗으로 추존하고, 정조를 承重하게 하였다. 莊獻(思悼)世子는 정조의 生父이지만, 정조 이후 4 5대가 지나도록 추존하는 예가 없이 景慕宮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주어 길이 尊奉하는 곳으로 삼았
    출처 : 유교넷
  • 364314

    朋友說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주자가 [跋黃仲本朋友說]에서 "朋友의 도에 대해서 사람의 大倫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예부터 성현들이 이것은 모두 하늘에서 타고난 것이요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오직 父子와 兄弟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요, 나머지 세 가지는 인위적인 교합으로
    출처 : 유교넷
  • 364315

    流弊說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고대로부터 質勝文하지 못하고 文勝質하게 된 폐단으로 흐르게 된 경위를 논한 것이다. 周公이 文質彬彬의 中道를 얻은 것, 孔子가 文勝의 때에 태어나 中道로 돌리려던 노력, 老子가 도리어 성인을 모독하고 예를 멸시한 연유, 朱子가 諸家를 절충하여 다시 聖賢立言의 뜻에 천
    출처 : 유교넷
  • 364316

    管論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고대 結繩으로 문자를 대신하던 시대에서부터 宋나라 주자에 이르기까지 역대 문장의 성쇠에 대해 논한 글. 伏羲氏가 八卦를 만든 이래, 堯舜시대에 이르러 禮樂과 政令이 갖추어졌으나 문장이 간략하고 고아했으며, 주나라에 이르러 크게 완비되었다. 공자에 이르러 예악과 정령
    출처 : 유교넷
  • 364317

    無事杞憂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서양 열국과 서학이 점차로 조선에 들어오던 시기에 역대 왕조가 흥망성쇠한 원인을 분석하여 흥망의 조짐이 보일 때 미리 경계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堯舜과 三代(夏, 殷, 周)의 시대의 성군과 현신들은 서로 고하고 권면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것은 나라가 위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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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18

    孤山志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孤山은 금서술의 선조 금난수가 자리잡고, 머물며 수학하던 곳이다. 퇴계선생이 매우 좋아하여 자주 찾았고, 선배들도 오고가며 流賞하여 낙동강 유역의 최고의 승경이 되었다. 그러나 근래 몇 백년이 지나면서 찾는 이도 드물고 그 당시 선현들이 유람하던 자취도 멀어지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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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19

    淸澗堂金公遺集小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淸澗堂 金公의 유집에 서문을 붙인 것이다. 김공은 일찍이 과거공부를 버리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뜻을 구하여, 白屛山 아래에 "淸澗堂"을 짓고, 경전을 익히면서 자득하였다. 당시의 몇몇 大老들과 道義交를 맺고 명절이나 절기 때마다 모여 시를 지어 흥취를 붙이곤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320

    易安堂琴公遺集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易安堂 琴聖奎 遺集의 서문이다. 금성규는 퇴계선생의 문인이며, 名筆인 梅軒 琴輔의 증손으로 당대의 명필이었다. 명필 王羲之 같은 이도 글씨가 너무 뛰어나 그 사람의 인품을 가릴 정도가 된 경우를 예를 들면서, 금성규의 경우는 필법이 당대에 최고였지만 荷塘 權斗寅 懶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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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1

    送李見可上京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1855년 李彙炳을 疏頭로 삼아서 영남에서 義理上疏를 올리 적에, 서울로 전송하면서 보낸 글이다. 布衣의 신분으로 조정의 일에 관여할 수 없지만, 忠君의 마음으로 상소를 올리는 것은 천하의 義理라고 하고, 상소문을 왕이 받아들인다면 종묘와 백성들에게 경사가 되고,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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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2

    三槐窩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族弟 琴德民의 조부가 槐村에서 羅峴으로 이사를 할 때, 홰나무[槐]를 옮겨 심지 않았는 데도 3대가 지나서 절로 자라나고 또 두 작은 그루가 자라났기 때문에 집을 "三槐窩"라고 하였다. 옮겨 심는 인력을 더하지 않고 자생한 나무는 氣數를 온전히 받아서 뿌리가 성대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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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3

    李君希元字序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運和를 사위로 맞이하려고 冠禮를 치를 때, "希元"이라고 字를 지어주고 거기에 字序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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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4

    梅軒琴先生遺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梅軒 琴輔의 遺稿에 붙인 발문이다. 금보는 퇴계선생의 문인으로 당시에 저술한 문장들이 모두 師門의 旨訣이요, 고인의 格言이었지만 한 번은 화재를 당하고 한 번은 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10세대 佑烈이 여러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五言絶句, 七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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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5

    世譜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家譜인 乙丑譜가 만들어진지 49년만에 다시 癸丑譜를 만들고 그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족보라는 것이 떨어져 있는 계파를 모아주고, 세대가 멀어진 사람의 근본을 밝혀서 친하게 해주고, 인정이 박해진 것을 정의를 통하게 해서 두텁게 해 주는 의의가 있다. 그래서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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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6

    家乘世編跋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조상을 추모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자료인 行狀, 碣銘, 遺事, 紀行, 紀蹟 등 문자들이 각 집안에 흩어져 있고 후손들도 각처에 흩어져 있어서, 두루 다 찾아 읽을 수도 없고 자세히 상고할 수가 없기 때문에 世譜增刊을 마치고 나서 각 집안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으고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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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7

    書淸遠亭琴先生事蹟後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淸遠亭 琴先生은 世宗 때의 명신으로 호남관찰사를 지내고 치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손이 번성하지 못하고 문집이 남아 있지 않아서 經術과 文章을 후손들이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후손 琴啓新이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생의 사적을 기록한 책을 가지고 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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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8

    申儒伯(相彬)九九衫詩軸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申儒伯이 九九(81)올로 된 거친 베로 적삼을 만들어 입고, 가난함을 허물로 여기지 않고 편안함을 따라 행동하였다. 그래서 신유백이 九九(81)에 뜻을 둔 것이 적삼을 "九九"라고 이름하게 되었고, 친구들이 서문도 짓고 시로 짓기도 하였다. 顔回는 즐거움이 簞食瓢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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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29

    浮浦書堂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後溪公이 후진을 양성하고, 梅村公이 이어서 교육을 담당하였지만 학생들이 기거할 곳이 없어 한탄스러웠는데, 이제 몇 칸 서당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학업을 닦고 서로 권면하여, 경박한데 빠져서 말세의 기풍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득실에 너무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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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0

    祭溪巖金先生文(遷廟時)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溪巖 金령의 遷廟 때 지어 올린 제문이다. 김령은 광해군의 亂政을 보고 귀향하여 仁祖反正 후 벼슬을 내렸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숙종이 그의 지조를 칭찬하였다. 난세를 당하여 지조를 지켜 자신이 받은 고통은 불행이었지만, 선생의 행실로 인해서 천지가 바로 서고,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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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1

    祭霞皐李公(巖淳)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霞皐 李巖淳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이암순이 85년의 壽를 누리고 죽자, 어떻게 그렇게 장수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본성을 잘 길렀기 때문이지, 산삼이나 영지같은 약물의 덕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본성을 길렀던 바탕은 성현의 서적과 성현의 가르침으로 보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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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2

    祭李信庵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信庵 李秉夏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학덕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대산선생을 私淑하여 성현의 경전으로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산림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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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3

    祭金表兄(是珩)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金是珩을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방정한 기품과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으면서도, 巖穴에 은거하면서 성현의 경전을 익히며, 출세에 마음을 두지 않은 마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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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4

    祭李戚叔(龜發)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戚叔인 李龜發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공은 맑은 지조와 야윈 체질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안분자족하였다. 세상사가 변하여 그 동안 잘 살던 사람들도 제대로 유지를 못하는데, 공은 유독 나이와 덕망이 날로 높아지고 영화와 신체도 날로 좋아져서 80년의 수를 누리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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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5

    祭李君睦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君睦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옥같은 자질을 타고난 그는 조정에 있을 적에는 명사들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고, 고향에 있을 적에는 귀천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기쁘게 하였으며, 집안 조상의 사적을 기록할 때는 반드시 공의 문장을 기다렸고, 유림에서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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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6

    祭李見可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見可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함께 수학을 한 李見可에 대한 애통함과 높은 학문으로 조상의 유업을 잘 받들고, 암혈에서 즐거움을 찾은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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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7

    祭金聖能(昌敎)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金昌敎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30여 년 동안 두 집안의 친분이 骨肉보다 더 두터웠던 것을 주제어로 하여 죽음을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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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8

    祭南公(德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南德煥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저자의 여동생이 남덕환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서 사돈관계에 있었는데, 제때에 조문하지 못하고 뒤늦게 조문하게 되어 더욱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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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39

    祭李進可(彙絅)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彙絅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평생을 莫逆한 지기로 지내던 사람이 죽음으로 해서 지난날의 풍류와 담소를 다시 찾아 볼 수 없는 애통한 심정을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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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0

    祭李景民(彙秀)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彙秀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두 집안이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으며, 특히 공은 강직하고 민첩한 성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을에 의논할 일이 있으면 항상 伯兄의 화평함으로 공의 강함을 잘라주고, 伯兄의 너그러움으로 공의 민첩함을 안배해 주었다. 그래서 두 집안이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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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1

    祭李允兼(彙祚)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彙祚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이휘조와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친구로 평생을 거의 만나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로 친했다. 특히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30여 년간 과거공부를 하였지만 결국 성취하지 못한 것은 운명이라고 하여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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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2

    祭李啓運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李啓運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오랜 친구로 지내던 사람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소탈한 성품으로 産業을 경영하지 않고, 일처리는 자세하게 하여, 진부한 것은 모두 제거하였지만 가난만은 없애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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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3

    祭族祖殷瑞(成範)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族祖 琴成範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금성범과는 본관은 같지만 파를 달리한다. 항렬로는 조부항렬이고, 나이로는 친구인 금성범의 집안과의 누대에 걸친 친분을 서술하고 가문의 儒老들이 거의 사라져 버린데 대해 슬픔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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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4

    祭先兄梅村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兄 梅村公 琴詩述의 죽음을 애도한 글로 형제이면서 사제지간의 은혜가 있고, 형제이면서 친구와 같은 정분이 깊었던 형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적었다. 名利에 급급하지 않았고, 세속의 사람들과 다르려고 하지 않았지만 구차하게 부합하려 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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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5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先兄 琴時述의 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세상을 살다간 형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홀로 있을 때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여러 앞에서 억지로 조심하려 하지 않았으니 언어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 경전을 읽고 오직 실천하는데 뜻을 두었으며 온화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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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6

    祭長姪進士(翼祥)文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큰 조카 琴翼祥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금익상은 형인 梅村 琴詩述의 장남이다. 가업의 계승이 그의 몸에 있고, 사림의 중망이 그의 몸에 있었는데, 갑자기 죽게 되어서 의지할 곳을 잃은 슬픔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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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7

    族姪叔民(翼獻)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族姪 琴翼獻을 애도한 노래이다. 쓸쓸한 노년에 의지할 곳으로 삼으려 했던 조카가 먼저 죽게 되자, 조카의 삶을 위해 슬퍼할 뿐만 아니라 내가 의지하려 했던 그대를 잃어버린데 대해 슬퍼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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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348

    通仕郞行禮安訓導琴公碣陰記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琴宰의 墓碣陰記이다. 금재의 자는 叔材이다. 퇴계선생의 壙記를 인용하여, 성품이 강직하고 지조가 있으며, 남의 잘못을 보면 반드시 꾸짖어 바로 잡아서 향당에 믿음을 보였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4349

    勉進齋琴先生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琴應壎의 墓誌銘이다. 금응훈의 자는 壎之, 호는 勉進齋로 琴應夾의 아우이다.
    출처 : 유교넷
  • 364350

    雪軒琴公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금서술
    琴三達의 墓碣銘이다. 금삼달의 자는 爾兼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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