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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近思錄疑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근사록』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주의 내용과 혼용하여 밝힌 글이다. 제일권의 動而生陽~靜極復動조의 주에 口訣을 그대로 싣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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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衣制度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深衣의 제도를 궁구한 글이다. 朱子의 추천으로 유학자의 法服으로 인정받은 深衣의 제도를 『禮記』 「深衣篇」의 원문과 그 주석을 상세하게 인용하여 밝히고 있다. 기존의 주 이외에도 자신의 견해가 보이는데 袼이 당시의 우리식 발음이 “딘동”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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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洲精舍諭學者書示諸君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滄洲精舍에서 학자들에게 하였던 이야기를 제군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적은 글이다. 老蘇는 초학이 문을 익힘에 『論語』·『孟子』·『韓子』 및 여러 성현의 글을 종일 읽기를 칠팔년을 하여야 博을 이룰 수 있으며 흉중에 쌓인다하여 문장의 익힘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나는 老蘇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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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賢祠創建事通道內文(代道淵儒生)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忠賢祠를 창건하며 도내에 돌린 通文이다. 丙子胡亂 때 강화도로 鳳林大君을 따른 西湖 姜渭聘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인해 세상을 등진 太白六隱의 한 사람인 陶隱 姜恪의 祠를 건립하자는 道淵書院의 통문이다. 이들의 행적은 나라에서 이미 追贈의 예를 행하였기에 밝혀졌다. 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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嶠南拾遺記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嶠南拾遺記의 序文이다. 爲政의 道는 風化의 근본에 있다. 풍화의 근본은 세도의 무너짐으로 인해 본디 가지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彛衷을 感發시킴에 있다. 趙廷和가 모아 편찬한 嶠南拾遺는 감발의 동기가 될 만한 일을 가려 놓았으니 풍화에 도움이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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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裵氏族譜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慶州 裵氏 族譜의 序文이다. 保掌氏의 권유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族譜는 親親을 바탕으로 먼 일족에까지 이르게 되는 바탕이 된다. 이는 政敎의 나머지이며 法術의 쓰임이니 王政의 근간인 人道와 관련된 일이다. 배씨는 고려이후 盆城, 星山, 達城, 曲江의 네 본관으로 이어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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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趙君活翁歸平壤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活翁 趙君을 평양으로 보내는 글의 序文이다. 活翁은 평양의 거족으로 사대부와 교유한다면 이름난 선비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으면서도 지금 몸을 낮추고 못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는 평양이라는 지리적 한계에 의해 중앙으로의 진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허나 活翁은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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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城觀德堂行鄕飮酒禮後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達城 觀德堂에서 행해진 鄕飮酒禮를 기록한 책의 後序이다. 坡平人 尹相國이 영남의 관찰사로 내려와 鄕飮酒禮를 행하니 이를 치하하고 있다. 자신은 직접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文武를 겸비한 일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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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靜齋記(1820)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全州人 壽靜齋 柳鼎文이 지은 壽靜齋의 記文이다. 水晶山에 壽靜齋를 지은 柳耳仲은 분명 뜻을 산과 같이 안정되게 하고 기운을 산과 같이 두텁게 하며 덕을 산과 같이 쌓음을 오래하여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함일 것이다. 그런데 柳耳仲은 스스로 水晶에서 뜻을 취하였으니 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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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丹山記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1820년 10月 3日에 뜻하지 않게 모인 친구 다섯이서 聖發을 주인으로 하여 여러 날 동안 丹陽 유람길에 올랐던 일을 기록한 記文이다. 먼저 단양팔경의 시작인 三仙巖을 지나 島潭에 이르고, 石門에 이르니 주위의 경치는 빼어나기만 하다. 易東과 退溪 兩先生을 모신 院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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存養齋記 3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金德升이 지은 存養齋의 記文이다. 金德升이 올리지 못하고 있는 存養齋라는 현판은 『孟子』의 存其心養其性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몸의 주인으로 무궁한 변화에 적절하게 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기름에 오래이하여 편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性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公의 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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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日月山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영양군 일월면에 있는 해발 1,219m의 일월산을 오르면서 느낀 일들을 적은 記文이다. 梧里에 있는 친구 趙晦伯을 만나 평소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일월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니 곳곳의 여울물, 폭포 그리고 기이한 산세들과 언뜻언뜻 발아래를 지나는 자욱한 구름은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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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小白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충청도 단양과 경북 순흥에 걸쳐 있는 소백산맥 중 산맥의 북동쪽에 있는 해발 1,421m의 國望峰을 오르고 난 뒤 적은 記文이다. 강운에게 있어 이곳은 신재 주세붕, 퇴계 이황과 관계있는 곳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곳이다. 발길 따라 머문 곳에 있는 붉게 새겨진 경자 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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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峯山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지금의 충청북도 중원군에 있는 八峰山을 오른 뒤 감회를 적은 記文이다. 충주에 일이 있어 갔다가 일을 마친 뒤에 누군가가 팔봉산의 빼어남을 이야기함으로 이번 산행은 시작되었다. 비를 무릅쓰고 三浦村으로 들어가서 우뚝한 팔봉산을 바라보았고 삼리 더 들어가 李耔, 李慶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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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坡亭詩帖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鶴坡亭 詩帖의 後記이다. 벗인 鶴坡 趙君은 정자를 만들고 글도 올리지 못하고 벗들과 자리도 마련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문상을 갔다 그 정자에 올라보았는데 이후 그의 아들인 趙彦國이 선공의 시첩을 가져와 後跋을 청하니 뜻을 이루지 못한 벗을 그리워하며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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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雲師遺稿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野雲스님 遺稿의 발문이다. 스님의 어머니는 사방 자욱한 구름 속에 있다가 구름이 걷혀서야 돌아오는 태몽을 꾸고 스님을 낳았다. 그래서 그런지 스님은 일생을 구름같이 보냈다. 다만 鄒孟氏의 설을 익힌 자를 만나 衷을 토해냄에서 스님은 분명 佛을 스승으로 섬기는 儒의 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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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子生之謂性說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程子가 『中庸』의 天命之謂性의 註에서 生之謂性이라 한 것이 告子의 生之謂性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밝힌 說이다. 告子의 설은 性을 바로 氣로 보았기에 孟子의 비판을 받았고 程子의 설은 말은 같지만 性이 理氣를 겸하고 있음에 대한 설명어이다. 그러기에 하늘이 부여한 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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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者自成說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中庸』 24장의 誠者 自成也라는 문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힌 說이다. 誠의 말 뜻은 이루어짐이다. 이루어짐의 도는 반드시 그 誠을 다할 수 있음에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자연스럽게 성취하는 도리라 하고 있다. 이렇듯 성이 자신을 이루는 이유가 되지만 成己는 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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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我罪我說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春秋』를 지은 뒤 말씀하신 知我者 罪我者를 知我者는 夫子를 아는 자이고 罪我者는 부자를 알지 못한다라는 한쪽의 이해에 대해 자신의 이해를 밝힌 說이다. 知我者는 부득이함에 근원한 것이며 罪我者는 그 지위없이 作함을 어려워한 것이니 夫子의 이 말씀은 이미 스스로 알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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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仙亭開基告由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丙子년에 杜谷 洪公, 抱翁 鄭公, 覺今 沈公, 遜愚 洪公, 우리 潛隱公 형제분이 세상일을 부끄러워하며 동해가 文山이 둘러있는 마을에 은거함을 기리기 위해 지은 臥仙亭의 기초를 닦는다는 告由文이다. 遜愚의 子가 靈瀑가의 이 바위를 얻어 다섯 어른을 행적을 기억할 장소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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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浦書院姜忠烈公(壽男)奉安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忠烈公을 漁浦書院으로 모시려는 奉安文이다. 나라의 원수를 만나 항복하지 않으면 도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忠烈公은 가족들과 헤어짐에 綰髻遺服으로서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고 적을 만나서도 육탄으로 그들을 대함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이곳은 公의 祠가 이미 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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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賢祠上樑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陶隱 姜恪의 고향에 세워지는 忠賢祠에 올린 상량문이다. 祠宇는 丙子년에 강화도에서 적을 꾸짖으며 장렬하게 생을 마친 西湖 姜潙聘을 모시려는 곳이다. 서호공의 행적은 가문에서 귀감이 되기도 하지만 나라의 귀감이 될 만한 분이기에 유림의 중론에 의해 사우를 세우게 되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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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吾軒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성현의 책을 읽으면서도 일생토록 본원의 공부는 이루지 못하고 번잡한 일에 매여 살아온 자신이 노년이 되어 작은 땅을 점쳐 얻어 從吾軒을 짓고 올린 上樑文이다. 좋은 곳을 얻어 이제 좋은 時를 받아 西는 齋로 하며 東은 室로 하고 전체를 從吾軒이라 하니 나의 藏修處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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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溪巖金先生(坽)文(遷葬時) 2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溪巖 金坽 선생의 移葬時에 적은 제문이다. 수백 년 뒤에 태어나 伯夷, 太伯에 견줄만한 선생의 淸함을 사모하였던 자신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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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葛菴先生(玄逸)文(遷葬時) 2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葛菴 李玄逸 선생의 移葬時에 적은 제문이다. 돌아기신지 129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道는 책으로 남아 있어 이에 의한 尊慕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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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壺谷柳公(範休)文(遷葬時) 2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壺谷 柳範休 선생의 移葬時에 적은 제문이다. 사후 구년 뒤에 행해진 이장으로 인한 자신의 감회를 적고 있다. 생전에 들을 수 있었던 太極의 說은 質正함이 멀며 증명함이 강건하며 어려움을 밝혀 주었다. 이후 親炙하기를 바랬으나 이루지 못함을 아쉬워하다가 通家의 연을 맺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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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廣瀨(李野淳)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退陶의 후손으로 李大山과 金天沙 양 선생에게 수학한 廣瀨 李野淳公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특히 자신에게 退陶遺箴을 적어준 일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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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公(宅度)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평소 淸함을 지키며 법도를 따라 생활하였던 權公 宅度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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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葛川(熙周)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갈천 김희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의 덕은 늙어도 더욱 드러나며 공의 행실은 오래되어도 더욱 믿음을 주니 공의 삶의 자세를 알기에 충분하다. 李大山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이룬 바가 있음에도 세상에 등용되지 못했음을 애도하고 있다. 다만 칠십의 수와 자손의 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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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成公(彦根)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지킨 바는 늙어감에 더욱 확고해져 훼손당해도 막히지 않고 기림을 받아도 영화로 생각하지 않았던 영남의 巨儒 成公 彦根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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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奎應(星復)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스물 둘의 나이로 화산에서 만나 박식하면서도 겸손한 趙星復을 벗하였으며 이후 모자란 자신을 벗으로 계속 인정해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특히나 先祖의 원을 벗기 위하여 먼 길의 고초를 마다않는 모습은 지금에도 눈에 선하다. 다만 끝내 그 뜻을 펴지 못하였으니 時를 탓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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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叔顒(象觀)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鄭象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하늘은 가혹하게도 叔顒에게 뛰어난 재주를 주었으면서도 재주를 펼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지 않아 불우한 삶을 보내게 하였는가. 海山에서 처음 만날 적에 叔顒의 기질은 매임이 없었고 그 이후의 만남에서 約에 의한 절제함을 느껴 기대하였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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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退可(秉進)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金蘭과 같은 벗으로 서로를 독려하였던 退可 李秉進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자신 스스로 자신을 위했으니 남이 헐뜯거나 기리지 않았다. 자신의 입은 호리병같이 담아두고 마음은 저울같이 공평하게 일생을 보낸 벗의 죽음은 안타깝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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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郭上舍(溟翰)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사십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上舍 郭溟翰을 애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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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兄秋沙公()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잦은 병으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三從兄 秋沙公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13년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겸허히 낮추어 물어보시던 삼종형의 정은 애틋하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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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兄上舍公(榏)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孝友의 행실과 慈諒의 성품은 응당 복을 누려야 할 것인데 17년을 병상에 누워 고생하다 돌아가신 從兄의 죽음을 슬퍼한 제문이다. 자신을 친자식과 다름없이 보살펴주던 從兄의 죽음은 의지함을 잃어버렸기에 비통하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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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姪聖師(必文)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한해에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이 배우며 함께 살았던 삼종질 姜必文의 죽음을 슬퍼한 제문이다. 총명한 자질로 배우고 익힘에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쓰이기를 기대하였더니 십수 년 동안 막혀서 불우한 삶을 살다 갔으니 통탄스럽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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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姪上舍(必祐)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자신보다 네 살 어린 종질 姜必祐의 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어릴 때의 총명함은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였고 조정에서의 강직함은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한 종질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기만 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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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痘神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明하고 仁한 신에게 우리 무리를 어여삐 여겨 痘神을 물러나도록 청하고 있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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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秀才哀辭(載凈)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스물 셋의 짧은 생을 살다간 權載净의 삶을 슬퍼하는 哀辭이다. 어릴 때부터 가까이서 뛰어난 재질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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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周祜哀辭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부지런하면서도 순박한 자질을 지녀 儒業에 종사하면 그 문을 光大히 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姜周祜의 요절을 슬퍼하는 哀辭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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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達熙哀辭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馬坪里에서 만난 徐氏 노인의 열다섯 된 동생이 動止가 어른과 같다는 자랑을 들었다. 이후 다시 徐達熙가 秀才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기대함이 있었다. 그런데 스물 둘에 요절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슬픈 마음이 일어 哀辭를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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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韓山李公墓碣銘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韓山人 通德郞 李秉進의 묘갈명이다. 친구인 李秉進이 죽자 그의 아들인 李秀億이 二父가 지은 誌狀을 가지고 와서 부친을 아는 이가 나만한 사람이 없음으로 墓碣銘을 청하여 짓게 되었다. 가정에서는 艮巖公의 훈육을 받고 밖으로는 川沙翁의 가르침을 받은 公은 가난하여도 흔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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姊氏李貞夫人墓碣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맏누이가 죽자 아들인 李彙遠이 갈문을 청함에 至情으로 받아들였다. 누이는 태어나 어머님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받아 글도 깨우치고 행동도 규중 여인의 법도에 맞았다. 자라서는 李泰淳의 배우자가 됨에 泰淳이 스물다섯에 소과에 올라 마흔 셋에 급제할 때까지 직접 베를 짜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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葛川金公家狀(代本家作)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葛川 金熙周(1760~1830)의 家狀을 본가를 대신하여 지었다. 태어나면서 자질이 훌륭하였던 府君은 어려서부터 가정의 기대를 받았다. 스물이 넘어 豊基에서 李大山 선생을 만남에 학문의 길을 정하였으며 선생을 依歸處로 삼았다. 의심이 나면 李小山 선생에게 나아가 질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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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贈吏曹參議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뒤에 증손자 漢奎의 현달로 吏曹參議에 증직된 부친 의 遺事이다. 성품이 고결하여 벗들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부친은 어릴 때부터 빼어난 재기를 지녔다. 18세에 조부께서 돌아가시니 金陵의 偸葬을 바르게 하기 위해 3년을 오가며 성사시켰으니 府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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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子莫奉傳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안동 춘양 사람인 李莫奉의 효행을 기록한 傳이다. 莫奉의 아버지인 李愛命 또한 효행으로 마을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莫奉은 일곱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예에 따라 조석으로 곡을 하였으며 마을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이 연유를 묻는 이에게 “어쩌다보니 그러하였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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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李秉遠, 李羲發, 權載鈺, 朴時源, 李漢膺, 姜泰重 등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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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韓山人 所庵 李秉遠이 쓴 장문의 제문이다. 평소 松西 姜橒과 만나거나 글을 통해 서로 교의를 다지고 절차탁마하였던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특히 죽음에 임하여 보내온 편지에 답을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고 있다. 평소 강운에게 가지고 있었던 마음으로 미칠 수 없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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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운權禎夏, 姜命奎 등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