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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4751

    市隱堂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선조인 市隱堂 李珍이 살던 집을 중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저자는 시은당의 호를 그대로 당호로 하고 집안 자제들을 위한 강론의 장소로 삼았다. 시은당 이진은 서애의 학통을 계승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752

    啓蒙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주희의 {역학계몽}에 대한 說이다. 저자는 {계몽}을 점치는 책으로만 본다면, 그 유행을 따르기는 해도 그 원류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라 하였다. 하나의 태극이 순수하고 지극한 善으로서 開闔을 거듭하는 것이 바로 {계몽}이 내포하고 있는 본래적 의미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753

    陰陽上下生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河隈書堂에서 柳畏齋ㆍ權可齋ㆍ李后山이 한 자리에 앉아 陰氣가 위에서 생기는가 아래에서 생기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관한 기록이다. 畏齋는 위로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后山은 아래로 생긴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저자는 주자의 감흥시에 착안하여 후산의 설을 지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754

    禍福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대개 음란한 사람에게 화를 내리고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는 것은 天道의 일반적인 현상이며, 성인은 그 일반적 현상을 말한 것이 화복설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성인이 괴이한 현상을 말한 것이 아닌 것이다. 동중서가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공을 계획하지 않는다."라고
    출처 : 유교넷
  • 364755

    明德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대학} 장구에 나오는 "明德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품부받은 것으로 텅비고 신령스럽고 어둡지 않아서 뭇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고 한 구절에 대해 여러 학설을 옮겨 적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저자는, 여러 학설을 종합해 볼 때 明德은 理氣를 겸하고 있으면
    출처 : 유교넷
  • 364756

    貢擧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군현에서 능력있는 선비를 중앙에 천거하는 것을 貢擧라고 하는데, 이에 관해 논하였다. 예로부터 공거에 관해 말한 것이 많지만 주자의 설이 공거에 관한 가장 훌륭한 指南이라고 하였다. 즉 文武를 병용하는 것인데, 지금의 제도를 가지고 옛날의 제도에 맞추면 거의 무난할
    출처 : 유교넷
  • 364757

    克己復禮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만력 임오년에 명나라 사신 黃洪憲이 조선에 와서 문묘를 배알하고 벽에 걸려있던 四箴을 보고 文成公 李珥로 하여금 그 의미를 강해하게 하였는데 명나라 사신은 극찬하였다. 그 강해 내용에 대해 저자는 감히 후생이 입댈 바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예컨대
    출처 : 유교넷
  • 364758

    九容說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예기}에 나오는 군자의 아홉 가지 행동 양식 즉 九容에 관해 설명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足은 몸을 떠바치는 일을 하니 운동이 무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手는 心의 부림을 받는다고 하였다. 目에 관한 부분을 산일되었다. 口는 心의 吐納을 담당한다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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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59

    小學箚疑管窺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소학}을 읽으면서 의문이 되는 부분을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달아 놓았다. 예컨대 子有二妾장에서 "由衣服飮食, 由執事"에서 由자의 의미, 婦或賜之장에서 "新受賜……更受賜"의 의미 등에 대한 의견을 붙였다. 居不奧장에서 "一居一行, 一立一坐……"의 의미는 부모를 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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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0

    四書箚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四書를 읽으면서 의문이 되는 부분을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달아 놓았다. 예컨대 {대학} 補亡章에서 知와 理의 선후 문제, 豁然貫通의 의미가 불교의 頓悟의 의미와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중국 先儒의 학설에 의하면, 겉으로 드러나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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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1

    易經蠡測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가 역경을 공부하면서 느낀 문제점을 정리하였다. 형이상과 형이하가 모두 하나의 도리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또한 가장 처신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역경}의 九三에 " 无咎"의 경계가 있고, 九四에 다시 "无咎"의 경계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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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2

    擬對御製中庸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중용}에 대한 임금의 문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어본 글이다. 서문부터 시작해서 장구의 주요 내용에 대한 질문 요지를 적고 저자의 의견을 한 글자 낮추어서 정리하였다. 주된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道統" 두 글자는 서문의 핵심이다. 모두 세 번 道統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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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3

    擬對御製中庸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권4에 이어서, {중용}에 대한 임금의 문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었다. 문목 가운데 중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천명과 性의 관계. 맹자가 자사에게 배웠다는 설. 진실과 거짓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학설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는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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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4

    擬對御製中庸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권5에 이어서, {중용}에 대한 임금의 문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었다. 문목 가운데 중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眞知와 그 實踐에 관하여. 朞月의 해석에 관하여. 知에 속하는 것과 行에 속하는 것. 知와 行의 선후 관계. 智 仁 勇에 내포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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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5

    六代祖考通德郞府君墓所立石時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의 6대조인 廷發의 묘소에 비석을 세울 때 지은 告由文이다. 정발은 通德郞을 지냈다
    출처 : 유교넷
  • 364766

    從先祖豊隱府君墓所立石時告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에게 從祖가 되는 洪仁의 묘소에 비석을 세울 때 지은 告由文이다. 字는 景會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義兵을 일으켜 九潭에 주둔해 있던 왜적이 安東을 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767

    崔毅仲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친구인 崔光鎭에 대한 哀辭이다. 최광진은 50여년을 저자와 한 고을에서 살며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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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68

    李士漸(汝鴻)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李汝鴻에 대한 哀辭이다. 33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나 병으로 요절함을 애통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769

    柳士能(奭祚)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柳奭祚에 대한 哀辭이다. 유석조는 저자의 모친에게 조카 손자가 되는 사람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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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0

    金幼吉(始翰)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金始翰에 대한 哀辭이다. 김시한은 저자의 季父의 사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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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1

    金士準(海敎)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金海敎에 대한 哀辭이다. 김해교는 나이 16세에 향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으나 회시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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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2

    族弟景宅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弟인 景宅에 대한 哀辭이다. 훌륭한 자질을 타고 났으나 역시 장수는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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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3

    族孫士弼哀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孫인 士弼에 대한 哀辭이다. 동생이 있었으나 동생보다 먼저 죽었다. 그의 지극한 효성에 대해 향당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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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4

    祭懶拙齋李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懶拙齋 李山斗(1680∼1772)에 대한 제문이다. 선생은 필부로서 백세의 선생이 되었고 한 몸으로 三達尊을 겸하였다고 하였다. 저자의 王考는 그와 막역한 사이로 誄文을 지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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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5

    祭百弗庵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처삼촌인 百弗庵 崔興遠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는 大山 李象靖에게 입문하기 전에 百弗庵에게 먼저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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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6

    祭柳畏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畏齋 柳宗春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는 일찍이 河隈書堂에서 柳畏齋ㆍ權可齋ㆍ李后山과 한 자리에 앉아 陰氣가 위에서 생기는가 아래에서 생기는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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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7

    祭內舅柳公(湖)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외숙부인 柳湖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는 공과 자신의 관계가 외숙과 생질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고 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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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8

    祭柳錫之(景祚)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柳景祚에 대한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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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79

    祭崔毅仲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崔光鎭에 대한 제문이다. 毅仲은 그의 字이다. 1758년(영조 34)에 저자가 경주최씨의 집으로 장가들었을 때, 최광진은 그때 이미 백불암 최흥원에게 배우고 있었고, 저자를 형으로 부르며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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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0

    祭再從大父下枝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에게 재종조부가 되는 下枝公에 대한 제문이다. 공은 어려서 부형들에게 들었고 만년의 하지공을 직접 뵌 적도 있다고 했다. 공은 담담한 마음과 자애로운 덕, 굳센 의지와 탁월한 식견을 가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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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1

    祭季父文(178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삼촌을 위해서 쓴 제문이다. 숙질간에는 남들이 알지 못한 정분이 따로 있으며, 집안이 한산하였으나 분수를 지키고 의리를 잃지 않았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4782

    祭族祖上舍公(大錫)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祖인 大錫에 대한 제문이다. 족조는 특별히 저자에게 집안의 가학을 의탁하였지만, 족조를 곁에서 모시면서 조석으로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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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3

    祭族叔蓍庵公(寅炯)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叔인 寅炯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가장 믿고 따랐던 사람이다. 공의 후덕함과 공의 역량을 배우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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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4

    祭再從叔(寅晟)文(177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再從叔인 寅晟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는 위로는 엄한 아비가 없고 곁에는 도와주는 벗이 없어서 학문적으로 성숙한 것은 오로지 재종숙의 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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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5

    祭孫女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손녀에 대한 제문이다. 저자의 손녀는 1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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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6

    祭古塚文(代作)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족친이 아니면 제사지내지 않는다는 것이 옛성인의 말씀이다. 저자는 그러나 집 가까이에 있었던 무덤이 사람이 거두지 않아 잡초가 가득한 것을 보고 제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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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7

    祭山神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가뭄이 들어 산신에게 기우제를 올릴 때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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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8

    從先祖豊隱府君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가 쓴 從祖인 豊隱 李洪仁의 家狀이다. 諱는 洪仁이고 字는 景會이며 姓은 李氏이고 본관은 全義이다. 고려 개국공신 楨의 후손으로, 父 筌과 母 南陽 洪氏 사이에서 1525년(중종 20)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홍인은 형 진사공 英과 동생 생원공 薰과 더불어 서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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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89

    族兄慵訥齋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가 쓴 族兄인 용訥齋 漢伍의 行錄이다. 용訥齋의 初諱는 大胤이고, 字는 孝承이다. 父 敏政과 母 星山 呂氏 사이에 1719년(숙종 45)에 태어났다. 이한오는 우직하고 덕성스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부모에게 밥을 봉양하는 일을 비복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직접 수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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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0

    祖考處士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의 조부인 拱辰의 遺事이다. 이홍진은 1690년(숙종 16)에 태어났는데, 음성이 우렁차고 골상이 준수하여 종증조인 孤山 李惟樟은 "우리 문호를 일으킬 사람은 이 아이이다." 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말하기를, "유자가 할 일은 몸과 행동을 삼가고 아이들을 가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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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1

    先考處士府君遺事(幷小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의 선고인 처사공 寅燮의 遺事를 모으고 앞에 짧은 서문을 붙인 것이다. 이인섭은 만년에 주자서를 좋아하여 구부려 읽고 우러러 생각하며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찍이 말하기를, 말세에 과거공부는 폐할 수는 없지만 또한 內 外 그리고 躁 靜의 구분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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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2

    日用節目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가 일상적인 생활규칙을 적은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빗질하고 세수를 한다. 방청소를 한다. 사당을 배알한다.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책상 앞에 정좌한다. 수업 받을 사람이 있으면 차례대로 정밀하게 가르친다. 식사를 한다. 經史數板을 살펴 잘못된 것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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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3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豊山 柳尋春이 쓴 行狀이다. 李楨國의 字는 牧之이고 號는 尤園이며, 初名은 謙胤이다. 本貫은 全義였는데, 鼻祖로부터 10세손인 翊 당시에 본관을 禮安으로 移籍하였다. 父는 寅燮이고 母는 豊山 柳氏로 1743년(영조 19)에 河回에서 태어났다. 10세가 되던 해에 홍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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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4

    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의 아들 光一이 쓴 家狀이다. 李氏의 鼻祖는 고려 태사 棹로 본관은 全義였다. 그로부터 10세손인 提學 翊에 와서 禮安으로 본관을 移籍하였다. 제학공이 成均祭酒 昪을 낳았고, 죄주공 軍簿判書 竦을 낳았다. 판서공이 軍器監事 贈吏曹判書 鞰을 낳았고, 이판공이 主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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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5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柳台佐가 行狀을 바탕으로 쓴 墓碣銘이다. 정조대왕께서 널리 어진 선비를 구하실 때, 경상도 관찰사는 공을 讀書 治心 經綸으로 나라에 천거하였다. 임금이 말을 보내서 공을 서울로 보내게 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특별히 童蒙敎官을 제수하고 불렀지만 또다시 나아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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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6

    立石告辭(族弟楨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저자의 산소에 비석을 세울 때 族弟인 楨輔가 쓴 告辭이다. 정보는 저자의 효성과 우애는 타고난 것이고, 학문은 가정에서 배웠다고 하였다. 또한 百弗庵과 大山의 문하에서 배울 때 많은 어진 이들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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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7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臨齋 柳규가 쓴 輓詞이다. "주자와 퇴계의 글을 板에 새겨 인쇄하였다."는 말로 미루어 양현의 글을 판각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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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여러 사람이 쓴 輓詞이다. 저자는 李㙖, 金宗發, 權訪, 李周楨, 權思浹, 李宗周, 李곤, 李宗儒, 柳學祚, 柳懿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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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799

    誄辭(金굉)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金굉이 저자를 위해 쓴 뇌문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李楨國은 영남의 善士이다. 집안이 대대로 유학의 집안으로 家學의 전통이 있었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며 행실이 단정하고 맑아서 집안의 가르침에 따라 성현의 학문을 연마하였다. 가정을 올바로 다스리고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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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00

    祭文(崔華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崔華鎭이 저자를 위해 祭文이다. 대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은 나의 사표이다. 겸손한 덕의 소유자로 비록 나이어린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공은 나보다 근10년 연장이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며 털끝만큼도 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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