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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4801

    又(安爾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安爾鎭이 쓴 제문이다. 下枝公(李象辰)의 碩德을 계승하였고, 孤山公(李惟樟)의 衣鉢을 전수받았다. 힘껏 저술을 하였고 濂洛의 학문을 연마하여, 지식은 철저하였고 지키기를 확고히 하였다. 늦게나마 천거되었지만 초야를 굳게 지켰다
    출처 : 유교넷
  • 364802

    又(金虎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金虎運이 쓴 제문이다. 내가 고루하고 식견이 좁아서 살아계실 때 선생의 문하에서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행실이 독실하고 옛것을 좋아하기로 우리 선생만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학문이 정밀하고 박식하여 사우들이 사표로 삼았다
    출처 : 유교넷
  • 364803

    又(宋洪直)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宋洪直이 쓴 제문이다. 선생의 從祖이신 孤山(李惟樟)선생을 흠모하는 사우들은 孤山선생에게 배우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는데, 이제 공께서 백년 후에 태어나서 계승하였다. 도덕을 온축한지가 사십 여년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초야를 지켰으니, 분수를 지킴이 확고하였고 출처가 정
    출처 : 유교넷
  • 364804

    又(柳致翊)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柳致翊이 쓴 제문이다. 공의 학문은 忠信으로 근본으로 하고 力行을 중심으로 하였다. 嶠南의 인사들은 栗園 孤山 두 사람과 공을 합쳐서 三君子로 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4805

    又(金漸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金漸運이 쓴 제문이다. 공은 옛날 조부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同門의 의리로서 특별히 친하게 대해 주었고, 조부가 돌아가신 뒤 공의 문하에 들어가니, 공은 무지하고 거친 나를 배척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여 가르침을 주셨다. 김점운은 문인이라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보면
    출처 : 유교넷
  • 364806

    又(門人 李貞模)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門人 李貞模가 쓴 제문이다. 이정모는 스스로 문인이라 표기하였다. 孤山의 가법을 굳게 지켜서 지극히 운수없는 사람이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겸손한 은택을 입었다
    출처 : 유교넷
  • 364807

    又(族弟 楨輔)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弟인 楨輔가 쓴 제문이다. 詩禮의 가풍이 땅에 떨어졌고 철석같이 믿었던 가르침이 끊어졌구나. 외로운 이들은 귀의할 곳이 없어졌고 자제들은 배울 곳이 없어졌다. 병든 사람을 구휼할 사람이 없어졌고 과실이 있는 사람을 깨우칠 사람도 없어졌다
    출처 : 유교넷
  • 364808

    又(族弟門人 漢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弟이자 門人인 漢醇이 쓴 제문이다. 지극한 정성은 뒷사람을 일깨우는 한 줄기 빛이 되었고, 영남의 사풍은 이로써 부지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64809

    又(族姪門人 升裕)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정국
    族姪이자 門人인 升裕가 쓴 제문이다. 소자는 어린 시절부터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선생의 학문은 위로는 家學을 계승하였으므로 문호가 단정하고 사우의 도움을 받았으며 학문적 노선이 엄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절도가 중용의 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후배들이
    출처 : 유교넷
  • 364810

    우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우천집(牛川集) 牛川 鄭玉의 文集. 7권 4책. 木版本. 간행연대는 찾을 수 없으나 鄭宗魯(1738∼1816)의 行狀, 蔡濟恭(1720∼1799)의 墓碣銘, 金굉(1739∼1816)의 墓誌銘 등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
    출처 : 유교넷
  • 364811

    詩(五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堂后元日次朴正郞(宗儒)韻(1731) 淸明自曾若還栗峯 受由歸庭(二首) 渡公山錦江 次權上舍(彦經)韻 在槐院直中送鄭道翁(重器)(二首) 次草堂客夜韻 差祭靖陵 開京謁圃隱先生遺像伏次肅宗大王御製韻(四首) 大王大妃殿延祥詩(二首) 過德原太祖射臺 咸興樂民樓次東嶽韻(二首) 咸關嶺 七寶山
    출처 : 유교넷
  • 364812

    詩(七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曾若閱淸樓送金上舍景初 栗峯飛仙樓卽事 隨使行到忠原回路 雨後登樓眺望次放翁郵館韻 登樓賞海棠次放翁韻 差使員宿稷山過素沙橋 登樓觀漲 曾若館送從弟文仲(圭) 次金景初 次東里見贈韻(二首) 次杜草堂三首韻示季任(珏) 京邸遇土坡驛卒夜話(三首) 次東里上黨韻 過俗離山因投宿村舍 九馬遷次東里韻
    출처 : 유교넷
  • 364813

    辭持平疏(1737.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직책을 감당할 자신의 능력부족과 부친의 병을 이유로 司憲府 持平을 사직하기를 청원한 상소이다. 향촌의 한미한 가문에 태어난 데다 과거에도 겨우 합격한 처지로서 持平의 중책을 맡기니 황망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왕의 귀와 눈으로서 조정의 是非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책무를
    출처 : 유교넷
  • 364814

    辭持平再疏(1737.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늙은 부친의 병이 깊어가고만 있는데 대신 간병할 동생마저 병으로 生死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돌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데, 이러한 처지에서는 持平의 중책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사직하는 것이니 허락해 주도록 재차 요청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4815

    署經後初疏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한미한 출신으로서 왕의 耳目이 되어 측근에서 보좌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자 영광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持平 임명에 관한 署經의 과정에서 사간원의 배척이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직접 병든 부친을 간호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에 있는 현실을 들어 사직을 청원하면서 時務에 관한
    출처 : 유교넷
  • 364816

    由還後請遞疏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言官으로서 당연한 본분을 지키며 행사한 언론이 오히려 儒臣들의 모함의 대상이 되는 풍토에서 더 이상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체직시켜 줄 것을 청원함과 동시에 왕의 治道에 대한 방안을 제시한 상소이다. 부친의 병환 때문에 귀향했다가 차도가 있어 5개월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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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17

    持平辭職疏(1738.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직책을 감당할 능력의 부족과, 자신이 언관으로 발탁되는데 대해 여전히 사람들의 모함을 받고 있는 점, 부친의 병환을 간호해야 하는 처지 등을 들어 사직을 청원한 상소이다. 風憲의 직책은 그 언론이 세상을 떨게 할 정도로 신랄하고 言議는 신뢰할 수 있도록 볼만한 것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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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18

    持平辭職再疏(1738.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왕명을 못 이겨 잠시라도 근무하기 위해 上京하다 부친의 병환 더욱 심해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낙향하면서 丹陽에서 재차 사직을 청하면서 향촌민의 곤궁한 실정을 전하며 대안을 제시한 상소이다. 辛丑 壬寅年(경종 1 2) 이래 반복되는 한발과 홍수 등으로 인해 농토가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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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19

    正言辭職疏(1746.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팔순에 접어든 부친의 병 구환에다 자신도 천식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라 司諫院正言의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며 사직할 것을 청하면서 時務와 관련한 여러 현안들을 제기하고 개선책 마련을 촉구한 상소이다. 辛丑 壬寅年(경종 1 2) 이래 반복되는 한발과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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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0

    正言辭職再疏(1748.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자신의 끊임없는 질병 등 일신상의 이유로 도저히 직책을 수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사직을 청원한 상소이다. 왕이 다시 정언을 제수한데 대해 감동한 나머지 어버이를 섬기는 심정으로 보좌하려 마음을 먹은 데다 마침 獄事도 끊이지 않아 상경을 서둘렀으나, 혹한에다 길은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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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1

    請錦城大君立祠疏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順興儒生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世祖代 順興府使 李甫欽과 함께 端宗復位를 주도하다 죽음을 당한 錦城大君을 제향하는 사우를 건립해 줄 것을 청원한 상소이다. 단종의 복위와 관련하여 죽음을 당했던 死六臣은 숙종의 배려에 의해 伸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향한 祠宇
    출처 : 유교넷
  • 364822

    辭同副承旨上書(1756.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나이가 들어 몸도 쇠약한 데다 측근에서 왕세자를 보필할 만한 능력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同副承旨를 제수한 명령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한 上書이다. 外職에 근무하던 중 몸이 쇠약해지고 병마저 들어 새로 제수된 외직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사직하고자 했는데 갑자기 承宣의 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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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3

    辭同副承旨再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왕세자가 同副承旨의 사직을 허락하지 않음에 따라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조정의 업무처리 상황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재차 사직을 허락해 주도록 요청한 上書이다. 외직을 사직하자 말자 깨끗한 조정의 代言의 직임을 맡긴 데 대해 오로지 感泣할 뿐이지만 용렬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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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4

    辭同副承旨三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원래 먼 곳에서 올라와 업무능력이 없는 데다 나이가 들어 고질병이 있는 처지로서 淸朝의 近密의 직책에 합당하지 않았는데 公事出納의 과정에서 물의가 빚어진 것을 계기로 책임을 지고 사직하고자 하니 허락해 줄 것을 왕세자에게 요청한 上書이다. 朝報의 발간이 차질을 빚은데
    출처 : 유교넷
  • 364825

    辭左副承旨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왕이 陵幸을 감행하려는데 대해 만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元臣들이 체직되는 것에 항의하여 사직할 것을 왕세자에게 청한 上書이다. 왕의 陵幸 일자가 정해진 이후 큰비가 내려 길이 막히는 등 사고의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조정의 신하들과 초야의 백성
    출처 : 유교넷
  • 364826

    辭黃海道觀察使上書(1759.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자신을 황해도관찰사로 임명한데 대해 늙고 병든 인물을 발탁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한 언관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기 때문에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왕세자에게 사직을 청원한 上書이다. 外職에 재직하고 있는 백성을 위해 남긴 업적도 별로 없어 발탁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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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7

    辭黃海道觀察使再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관직이 탐이나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기는 했지만 원래 직위를 감당할 재목이 되지 못하는 데다 신병까지 겹쳐 도저히 직무를 수행할 수 없어 사직하니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嶺南人의 폭넓은 발탁을 왕세자에게 권유한 上書이다. 人事란 인재의 長 短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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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8

    辭黃海道觀察使三上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황해도 관찰사를 사직하기 위해 세 번째 올린 上書이다. 남들이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방백의 직책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만큼 사직의 허락을 얻기 위해 성밖에 머물고 있어도 한 달이 지나도록 조치가 없기에 다시 촉구하는 바이며, 신하가 되어 언관들의 論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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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29

    辭黃海道觀察使四上書(윤6월 29일)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몇 차례 사직 상서에도 불구하고 허락을 얻지 못해 任地로 부임하기는 했지만 황해도의 실상을 파악한 결과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직하기를 왕세자에게 청한 上書이다. 첫째, 원래부터 변방의 직임을 맡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출처 : 유교넷
  • 364830

    辭黃海道觀察使五上書(7월 초6일)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몸이 쇠약하고 피로하여 업무를 살필 수 없는 처지인데다 업무상 과실을 들어 대간이 탄핵하고 나선 것을 계기로 왕세자에게 사직을 청한 上書이다. 원래 한미한 출신이면서도 관료로서 30여 년을 근무해 오는 동안 성품이 비록 졸렬하다고는 하나 분수에 따라 처신하며 출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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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1

    辭黃海道觀察使六上書(7월 18일)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황해도관찰사를 사직하기를 청하며 왕세자에게 올린 여섯 번째 上書이다. 자신이 흉년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假都事가 무리하여 올린 進上物膳單子를 임금이 단호하게 거절하고 내려 보낸 사실을 알고서는 감격했으며, 자신이 守令에 대한 殿最를 실시한 것은 전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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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2

    辭黃海道觀察使七上書(7월 27일)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황해도관찰사를 사직하기를 청하며 왕세자에게 올린 일곱 번째 上書이다. 무릇 人臣으로서 임금을 섬길 때는 去就가 신중해야 하며 士大夫로서 처신할 때는 염치와 의리를 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전제한 뒤, 다른 사람들에게서 욕을 듣고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근무를
    출처 : 유교넷
  • 364833

    辭黃海道觀察使八上書(11월 25일)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황해도관찰사를 사직하기를 청하며 왕세자에게 올린 여덟 번째 上書이다. 사직을 원했으나 遞職되지 못하고 반년이나 흐른 데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만큼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항상 불안한 심정으로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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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4

    啓辭(1737년, 持平으로 재직할 때)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1. 全光監司 徐命九는 인망도 없는 데다 물정에도 어두우며 행동도 조잡하여 政令만 번거롭게 하고 있어 荒政 등 중요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적절한 인물이 아니니 교체해야 한다. 2. 조정에서 필요로 하는 종이는 寺僧들이 役으로써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良丁을 紙保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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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5

    正朝賀箋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保寧縣監으로 재직할 당시 새해를 맞아(1743년인 듯) 다른 사람을 대신해 大殿과 大王大妃殿에 올린 箋文이다. 왕의 無黨無偏의 자세에 의해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聖德에 의해 한발도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지나간 것을 축하하며, 대왕대비의 복덕을 祝壽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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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6

    大朝誕日箋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영조의 탄신일을 맞아 水軍節度使를 대신해 지은 箋文이다. 경사를 맞이해 억조창생이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가운데 변방에서 은덕을 입고 있는 신하의 한 사람으로서 하례를 드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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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7

    上尊號箋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鏡城判官으로 재직할 당시 大王大妃에게 "貞德"의 尊號를 올릴 당시 兵馬節度使를 대신하여 왕과 大王大妃에게 올린 箋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64838

    大殿誕日箋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대리청정을 담당하고 있는 王世子(章憲世子­思悼世子)의 생신을 맞아 올린 箋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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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39

    答趙相國顯命(175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豊原府院君 조현명에게 보낸 답서이다. 5대조 鄭琢의 銘文(神道碑銘)을 작성하여 보내 준데 대해 감사하는 한편, 행적을 기록함에 있어 사실과 다르거나 누락된 부분을 수정 보완해주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別紙에 3가지 항목의 수정 보완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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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0

    答梁廷夔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귀가 제대로 듣기지 않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심각한 질환을 겪고 있는 양정기가 처방을 물어온데 대해 방안을 제시한 답서이다. 耳目의 질환은 대개 안으로 氣火가 막히고 밖으로 神形이 활력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禪家에서 面壁하여 空을 생각하듯이 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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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1

    與洪大耳景輔赴燕京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추운 날씨에 멀리 淸나라에 사신으로 떠나는 홍경보(1695∼1742)에게 건강과 효율적인 임무수행을 당부하면서 보낸 편지이다. 사신으로 가는 사람들이 종종 청나라의 귀중한 물품을 구입하며 奢侈의 풍조를 일삼고 있으나 거기에 동조하기 보다는, 평소 眼疾을 앓고 있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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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2

    與朴靈城君文秀(174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保寧縣監으로 재직할 당시 兵曹判書 박문수(1691∼1756)에게 향촌의 실정을 전하며 선처를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씨에 殘邑의 백성들이 살기에 곤궁한 처지에 있는 상황인 데다 楊州 先山의 한 무뢰배가 十數步의 땅을 偸占함으로써, 관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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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3

    與李敬裕孝甲(172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친구 이효갑에게 향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실상을 전한 내용의 편지이다.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梅園과 欄園을 조성하여 함께 벗할 사람을 기다리고, 樓閣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부용과 연꽃을 심고 붕어를 살게 하여 즐기다 보니 다른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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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4

    與淸臺權公相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고향의 선배 권상일(1679∼1759)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왕이 상호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수령으로 파견하게 한 것이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지방행정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산파역을 한 권상일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특정집단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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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5

    答淸臺權公相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권상일에게 부탁한 先祖의 墓碣銘을 받고 난 뒤 고마운 인사와 함께 보완을 요청한 내용의 편지이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쁜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묘갈명을 부탁하여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후손들이 돌려가며 그 내용을 읽어보고는 조상에 대한 새로운 감회를 느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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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6

    與金蘆峯정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김정(1670∼1737)에게 자신의 난처한 처지를 전하며 조언을 구한 편지이다. 栗峯道 察訪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봉록을 덜어 驛卒의 구황사업에 진력한 것이 조정에 알려져 왕이 말 한 필을 賞으로 내린다는데, 관직을 그만두고 自處하고 싶은 데다 병도 들어 고향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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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7

    與金祥翁瑞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김정의 아들 김서절(1695∼?)에게 직첩이 환급된 것과 관련한 조정의 동향을 전하면서 자신의 근황을 전한 편지이다. 왕이 鎭靜을 위해 파직했다가 職牒을 환급해 禮曹에 서용한 것을 축하하면서 玉堂 李度遠 沈聖希와 校理 李흡, 掌令 李齊恒 등이 반발해 辭職을 요구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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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8

    與金祥翁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김서절에게 안부를 묻고 전한 편지이다. 御使가 回啓한 뒤 贈典이 있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어찌되었는지를 묻고, 부친 김정이 濟州牧使 시절의 善政에 대한 칭송이 높다는 것을 제주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전한 뒤, 지난번 鞫獄 때 자신은 侍從의 奔競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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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49

    與金祥翁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김서절에게 보낸 편지로 政目에서 實職에 薦望된 것이 당연한 일이자 다행스런 일이라며 축하하고 서울로 가는 길에 한 번 만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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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4850

    答張道應緯邦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
    辭職을 만류한 편지를 보낸 선배 장위방에게 자신의 심정을 피력한 내용의 답장이다. 새로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政勢가 불안하고 부친의 병도 깊어 물러나고자 했는데 만류하니 서로 親愛하는 것이 지나칠 정도라 전제하고, 영남의 뛰어난 인재들이 전혀 발탁되지 못하는 현실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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