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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張道應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자신을 포함한 고향의 宿儒들이 다수 관료로 발탁되게 되었다는 장위방의 편지를 받고 축하와 함께 조정의 동향을 전한 편지이다. 향촌에서 청빈하게 자적하던 장위방의 평소 신중한 행동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반가워하는 한편, 조정에서는 신하들이 世子에게 왕인 영조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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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張道應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장위방에게 보낸 문안성 편지이다. 모처럼 편지를 받고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으며 향촌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부러운 심정을 전하는 한편, 병까지 얻은 몸으로 관직생활에 동분서주하다 보니 책을 읽는 것은 고사하고 직접 찾아가 인사도 드리지 못하는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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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張道應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장위방에게 보낸 편지로 학업에만 힘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위로를 보내는 바이며, 자신도 현재 왕의 건강이 좋지 않아 사직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왕의 병이 나으면 곧바로 사직하고 고향을 찾겠다고 다짐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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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鴻甫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신홍보에게 자신의 詩學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 내용의 편지이다. 詩라는 것은 의지와 취향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이지만 근래의 습속은 입에서 나오는 기운을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자신은 현재 부친이 위독한 데다 아들마저 병이 들어 경황이 없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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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聖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김성탁(1684∼1747)이 1735년(영조 11) 뒤늦게 增廣試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로, 부친의 병환 때문에 직접 찾아가 기쁨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점을 사과하면서 같이 기대를 모았던 金源仲(敬泌, 1701∼?)이 합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는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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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謝恩肅拜를 위해 上京한 김성탁에게 왕을 만났을 때를 대비하여 몇 가지 처신의 방법을 조언한 내용의 편지이다. 영남의 山林處士들이 통상 왕 앞에 설 경우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포부를 피력하고 향촌의 인재를 천거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仕宦을 바라지 않으면 관직에서 물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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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사헌부지평에서 체직되자말자 사직소를 올린 김성탁의 처사가 영남의 士氣를 꺾는 일이라며 만류하는 한편, 상소의 원본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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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參議觀鉉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刑曹參議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 머물고 있던 유관현(1692∼1764)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 편지이다. 인근의 선비들의 권유로 淸心樓에서 白日場을 열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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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相國宗城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이종성(1692∼1759)에게 보낸 안부편지로서 몇 번을 찾아뵙고자 했으나 번번이 헛걸음만 했음을 전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入城하여 인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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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明溪院儒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강원도 平海의 明溪書院 소속 유생들이 서원을 移建하면서 그에게 奉安文을 부탁한데 대해 사양하는 내용의 편지로, 이건의 절차를 설명함과 동시에 향촌출신 張文華의 문장이 뛰어나니 그에게 작성하도록 부탁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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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直長澐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直長 유운(1701∼1786)에게 보낸 안부편지로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건강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반가웠으며 곧 6품으로 승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은 이미 늙어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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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內翰世澤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이황의 8세손인 이세택이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로, 관직에 발을 디딘 이상 모든 사람의 촉망을 받는 인물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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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士會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酉谷에 살고 있는 이사회에게 보낸 답장으로 편지를 받아보고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으며 자신은 樂善好義하는 左道 士林의 기개를 펼 수 없는 현실에 심신이 피로하여 문을 걸고 지내고 있음을 전하는 한편, 이세택이 그릇이 큰 인물로 퇴계학파의 자부심을 반영한다고 기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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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士會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이사회에게 보낸 편지로 작별할 때의 아쉬웠던 심경을 피력하고 가을비가 내리는 덕분에 고향도 흉년을 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겠다며 안부를 물은 다음, 자신은 조정의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해 사직을 요청하고 업무를 그만두다시피 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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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尙書之億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判書 이지억(1699∼1770)의 위로 편지에 자신의 답답한 심경과 현안에 대한 생각을 전한 편지이다. 자신이 체직된 것은 특정 세력의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된 것으로 마음 편하게 조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근황을 전하고, 지금의 정세가 저자거리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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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評事泰會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남태회(1706∼1770)에게 계획된 山行을 포기할 것을 권유한 편지이다. 지금이 백성들이 납세 등으로 가장 곤궁을 겪고 있는 때이자 자신이 海路를 다녀보니 백성들의 생활이 참혹하기 짝이 없어 이러한 상황에서 遊山은 의미가 없는 일이니 다음 날을 기약할 것을 권유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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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慶承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吏曹로 복직한 사실을 전한 채경승의 편지에 축하와 함께 자신의 처지를 전한 답장이다. 반년동안 荒政에 매진하다보니 심신은 지치고 병마저 얻어 바다의 맑은 가을바람에도 전혀 차도가 없는데, 이는 飢民을 구제할 방도를 제대로 찾지 못해 다른 사람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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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黃巡相晸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鏡城判官 재직 당시 함경도관찰사 황정(1689∼1752)에게 民政에 관한 사항을 보고한 내용의 편지이다. 府南지방이 府北에 비해 흉년이 더 극심함에도 漕運으로 운송해 오는 곡물의 양이 적기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니 漕米太實穀 수천 석을 府南지방으로 돌려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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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箕伯成中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평안도관찰사 이성중(1676∼?)에게 보낸 답장이다. 경성판관으로 부임한 이래 연이어 닥치는 일에 매달리다 소식도 전하지 못하던 차에 편지를 받게 되어 죄를 진 것 같다며 사과하고, 부탁한 碑石을 옮기는 일은 箕城(平壤)에서 멀지 않은 遺趾를 물색 중이라 경과를 설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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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閔尙書百祥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호조판서 민백상(1711∼1761)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든 땅인 황해도의 관찰사에 부임한 것도 영광인데 殿最에 따른 발령을 받으니 견책을 기다리는 자로서 조정을 모욕한 죄가 크다고 말한 뒤, 흉년으로 民情이 불안하니 대책을 마련해 줌과 동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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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蔡參判濟恭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참판 채제공(1720∼1799)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세자의 온양행차 수행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자신은 병 때문에 사직하고자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안부를 전하고, 芙蓉堂을 重修하는 일은 역량이 모자라 지체되고 있는 데다 上樑文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폐해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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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水原伯東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윤동승(1718∼1773)에게 안부를 전한 답장이다. 조만간 임지로 찾아가려 했으나 승진하여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것도 討賊의 적격자로서 발탁되었다니 당연한 일이라 축하하고, 자신은 체직 여부가 殿最에 의해 결정될 것이지만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며 오직 民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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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兪相國拓基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영의정 유척기(1691∼1767)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이 원로를 우대해 영의정으로 임명하고 또 그것을 사양해 용퇴하겠다고 한 것은 모두 우리나라의 큰 盛事라 전제하고, 자신은 황해도관찰사에 부임한 이래 병을 얻어 곧바로 물러나고자 했으나 일에 쫓겨 실행에 옮기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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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士安正宅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권정택(1706∼1765)의 편지에 자신의 근황을 전한 답장이다. 황해도관찰사를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고 물러나 推考를 기다려도 왕이 오히려 선물을 내려 불허한 데다, 公務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큰 흉년으로 백성들 사이에 말이 자자한데도 사직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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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箕伯彙良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평안도관찰사 정휘량(1706∼1762)에게 芙蓉堂 重修와 관련하여 협조를 요청한 편지이다. 부용당이 심하게 기울어져 무너질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수공사를 하고자 하니 뛰어난 匠人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평안도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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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士章景漢(175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김경한에게 보낸 편지로, 지난번 지나는 길에 바쁜 일정에 쫓겨 찾아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한편, 집안에 재앙이 닥쳐 3번이나 상을 치러야 하는 변고 때문에 사람들과 교유하는 일에 소홀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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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三從河瑞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三從弟 鄭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喪事때 멀리서 문상을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동생 山甫가 관직을 버리고 돌아오려 하는 것을 극력 만류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자신은 사헌부에 발령이 나서 참여하지 못하지만 碑碣을 세울 때 高王考(鄭琢)의 遺墨을 集字할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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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三從河瑞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삼종제 정밀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준 선조 鄭琢의 影幀은 백여 년 만에 직접 뵙는 것처럼 완벽하다고 칭찬하고, 왕이 직접 써준 銘(畵像贊)과 敎書를 받는 영광을 입게 되었음을 전하는 한편, 조관으로서 자신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영정을 받들고 봉안하러가지 못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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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溪書院廟宇移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강원도 平海 黃應淸이 제향된 明溪書院을 移建하면서 소속 유생들의 요청으로 작성한 글로서, 황응청이 禮學으로 향촌의 교화에 매진했음을 상기시키며 예학의 중심이 될 것을 기대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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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溪書院廟宇移建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명계서원을 移建하고 황응청의 위패를 옮겨 봉안할 때 작성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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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月軒追享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黃汝一(1556∼?)을 명계서원에 追享할 때 작성한 글로서, 文章 道學에 뛰어나 斯文의 모범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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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耕巖亭權公一經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順興 陶村출신 경암정 권일경(1674∼1753)의 행장이다. 조상의 墓碣과 祠宇를 고치고 族譜간행을 주도하는 등 가문의 선양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향촌의 父老들과 상의해 紹修書院의 院規를 시의에 맞게 수정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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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資憲大夫兵曹判書行永柔縣令金公小良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조선 초기 禮安에서 榮州로 옮겨와 살며 영율현감을 지낸 김소량(1384∼1449)의 묘갈명이다. 둘째 아들 文節公 金淡(1416∼1464)에 의해 병조판서로 追贈되었음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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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進士應大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강원도 仙사縣(현 蔚珍)의 처사 남응대(1695∼1755)가 일찍부터 과거공부는 포기하고 평생을 올바른 삶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내용으로, 아들 東迪의 부탁으로 작성한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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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權公宅揆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경암정 권일경의 아들인 권택규(1694∼1753)의 묘지명으로, 현실참여보다는 평생을 가정을 돌보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만 매진한 효자라는 점을 부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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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고南公慶薰墓誌銘 序幷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영해출신으로 金彦璣의 제자인 南義祿의 아들 난고 남경훈(1572∼1612)의 묘지명이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와 함께 郭再祐의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면서 후덕한 인품을 바탕으로 군문의 분열상을 조정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평생을 朱子十晦를 교훈삼아 살고자 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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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戶曹典書蔡先生貴河遺墟碑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고려말 杜門洞에 들어간 多義先生 채귀하의 遺墟碑銘으로, 牧隱 李穡과 교유하는 한편 仁川 蔡氏 자손들이 대대로 仁義를 실천하도록 모범을 보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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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婦金氏碑陰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金就文의 후손인 世鐄의 딸이자 鄭琢의 후손인 必泰의 처 金氏의 碑文으로, 남편이 사망하자 시부모 및 친정어머니에게 유서를 남기고 20일 만에 자결했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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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藥圃先生文集跋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5대조 약포 鄭琢의 문집 발문으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정옥이 좌승지로 입시했을 때 왕이 홍문관에 {龍灣聞見錄}을 베껴서 올리도록 하고 遺像을 보여주도록 해서는 친히 畵像贊을 지은 사실과, 조상의 遺稿를 간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황해도로 옮겨주는 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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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비行蹟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郡守 尙彦의 딸인 어머니 金氏의 상을 당해 작성한 행적이다. 항상 단아한 면모를 유지하며 喜怒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和氣로 사람을 대하며 잘못을 저질러도 타이를 뿐 나무라지 않는 후덕함을 평생토록 유지한 어머니를 회고하며 애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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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民樓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榮州의 醫院 서남쪽에 세워진 제민루를 중수하면서 작성한 記文이다. 위로는 의료기관으로서의 업무를 담당하고 아래로 병마에 시달리는 백성을 치료하는 상징성을 지닌 제민루가 1433년(세종 15) 건립된 이래 3백여 년 동안 풍상을 견디다 낡아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하여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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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澗書堂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文節公 金淡 등 영주의 대표적 士林의 遺風이 남아있는 休川 東樊峴에 세워져 많은 文學士를 배출한 남간서당이 낡아 宋錫基 金緯國 등 향촌사림이 주도하여 중수하게 되었음을 전한 記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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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柏巖金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백암 金륵(1540∼1616)을 위한 제문이다. 伊山書院으로 위패를 옮겨 안치할 때 院儒들을 대신해 작성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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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蒼雪齋先生權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창설재 權斗經(1654∼1725)을 위한 제문이다. 퇴계학을 心得하여 후배들에게 衛道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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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參奉祥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참봉 김상을 위한 제문이다. 자신의 선조 鄭琢과 김상의 선조 金農 이래로 두 家門이 대대로 道義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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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琴潛軒子久必恒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잠헌 금필항을 위한 제문이다.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이 공부하지 않고 가는 길이 달랐어도 항상 道義로 마음을 주고받았음을 회고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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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琴大譜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금대보를 위한 제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종기로 고생할 때 함께 안타까워하며 울던 일을 회상하며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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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李師俊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이사준을 위한 제문이다. 醫術에 뛰어나 병약한 자신을 몇 차례나 위기에 구해준 사실을 되새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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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箕伯李公誠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평안도관찰사 이성중(1676∼?)을 위한 제문이다. 조용하면서도 엄정한 업무처리로 사람들의 신망을 잃지 않았음을 부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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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節公騎牛子李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정옥정몽주를 살해한 조영규를 탄핵하는 등 절의를 지킨 기우자 李行(1352∼1432)의 묘를 지나다 지은 제문으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