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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季弟器汝(祖洙)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科擧란 몸 밖에 있는 물건이니, 자신을 잊어버리고 함부로 뜨거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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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孫正輝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네 몸은 그저 네 한 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몸이기도 하다. 그러니 너의 몸을 위태롭게 하지 말거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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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林景賢祠毁撤時告由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賁趾 南致利(1543∼1580)의 위패를 봉안했던 노림서원의 景賢祠가 훼철될 때에 사유를 아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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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巖永慕祠毁撤時告由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五友堂 金近(1579~1656)의 위패를 봉안했던 永慕祠가 훼철될 때에 사유를 아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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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代祖妣恭人光山金氏墓祀告由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15대조비인 광산김씨의 묘사를 지낼 때에 지은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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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定齋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柳致明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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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雪竹齋李公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李秉殷(1782~1860)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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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母孺人驪江李氏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驪江李氏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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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舅李公(海祥)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李海祥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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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第四內舅李公(汲祥)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李汲祥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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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鶴坡趙公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장인인 趙星復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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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正字弼汝(彦國)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趙彦國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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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家洙)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家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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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侄不期堂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致一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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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兄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若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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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子振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弼鐸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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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父(弼孝)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弼孝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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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故室宜人漢陽趙氏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漢陽趙氏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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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彦洙)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彦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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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從兄(養洙)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養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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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叔弟景仲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政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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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弟器汝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祖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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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孫正輝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正輝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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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李景覩(庭雲)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李庭雲을 추도하는 誄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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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趙叔賢(彦淑)辭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趙彦淑을 추도하는 誄辭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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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李君顯(承穆)辭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李承穆을 추도하는 哀辭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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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諭應講諸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강학에 응하는 여러 후학들을 訓諭한 내용이다. 성현들이 남긴 經傳은 부모나 神明처럼 중요한 것이니, 먼저 정신을 집중해서 정밀하게 경전의 의미를 이해한 뒤에, 마음과 입이 함께 따라가면서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야 할 것이다. 先君이 抄錄한 朱文讀書法 9條가 있으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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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目與達民往復說辯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道和와 6조목에 걸쳐 心性 및 理氣에 대해서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①性을 ‘具而具之’ 또는 ‘發而發之’라고 말할 수 있는가, ②理는 純하고 氣는 駁하다, ③聖人이 품부 받은 氣의 粹駁, ④性이 惡의 요소를 겸하고 있다, ⑤일찍이 氣質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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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心說初晩攷異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朱子語類』와 『朱子大全』에 보이는 心의 已發 또는 未發에 대해 언급한 3조목을 앞에 제시하고, 이어서 자신의 按說을 붙여 추가 설명을 더한 뒤에, 말미에 大山 李象靖(1711~1781)이 주자의 이런 언급에 대해서 初年說 또는 晩年說이라고 단정한 논의를 부기하는 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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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山集四端七情說箚疑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대산집』권29에 보이는 「사단칠정설」 중에서 의심이 나는 2조목을 기록한 것이다. 첫 번째는 『中庸』 首章에 대해, 주자가 말한 “맹자가 이른바 性善이란 本體로써 말한 것이니 仁義禮智가 未發한 것이 그것이며,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은 用處로써 말한 것이니 四端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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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極圖五行說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五行의 穉盛에 대한 朱子의 설에 관한 내용이다. 주자는 圖說解에서 “水와 木이 陽이 되고, 火와 金이 陰이 되니, 이는 生出의 차례를 주로 하여 말함이다.” 하였고, 解剝圖體에서 “水는 陰盛이 되고, 金은 陰穉가 되고, 火는 陽盛이 되고, 木은 陰穉가 되니, 이는 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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遯溪集後叙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下齋가 族大父인 遯溪 金塇(1758~1815)이 남긴 유고를 모아 『遯溪集』을 편찬하면서 지은 後叙로, 학문 중에서도 특히 明理之學에 대단히 밝았던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재는 10여 세의 나이에 講席에 참여해서 한두 차례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어려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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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求堂文集後叙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不求堂 金迬(1606∼1681)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쓴 後叙이다. 本貫은 義城이며, 旅軒 張顯光(1554∼1637)의 문하에서 배우면서 爲己務實의 학문과 立身殉國의 의리를 닦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나라가 危急存亡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일개 布衣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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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士金公事蹟後叙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聞韶縣 북쪽 30리 乾馬山에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한 김공의 사적에 관한 後叙이다. 후손인 金達洙가 記事, 碑文, 諸賢의 撰述 등에 보이는 김공의 사적을 보여주면서 글을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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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達民師門日錄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金道和의 『師門日錄』 말미에 써준 글이다. 스승과의 문답 과정에서 있었던 경전의 해석이나 의리의 발명에 대해 기록한 글로서, 체재와 내용이 繁蔓하지 않고 理趣가 명백하며 平實하면서 말이 간략하게 정리되었다. 특히 三先生이 敬에 대해 말한 것을 논한 부분은 정제되고 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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懼齋金公追述詩稿後叙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宗人인 金疇洛이 그의 선조인 懼齋公과 從先祖인 畏齋公이 임진왜란에 倡義한 사적을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招魂詞와 祭文과 誄文을 읽어보니 바로 西生浦의 옛일에 관한 것이었다. 서생포는 宗人인 의병장 栢巖公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김주락이 두 분이 창의한 기록을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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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西樓同遊錄後叙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遯庵 徐公이 은거하다가 사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십수 인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지어 『登西樓同遊錄』이라 이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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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聲齋唱酬錄叙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韓山子 士先이 만년에 霞山의 남쪽에 살면서 그 서재를 無聲齋라 하고 唱酬詩를 남긴 바 있는데, 후인들이 齋號를 보고 오해할까 염려되어 스스로 해설하는 글을 지어 「無聲齋唱酬錄序」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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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慕錄叙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從兄인 金養洙가 엮은 『三慕錄』을 본 뒤에 소감을 기록한 글이다. 세 가지란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비롯하여 역대의 스승과 군주를 말하는데, 각각의 이름은 「永慕錄」, 「尊慕錄」, 「敬慕錄」이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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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主簿事蹟後叙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韶州 남쪽에 金主簿 父子를 祭享하는 사당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이들은 병자호란을 당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터럭처럼 가볍게 여기고 국가의 危難을 구하려고 雙嶺으로 나아가 싸우다가 의롭게 죽은 인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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蘆隐亭記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蘆隱居士 李公이 마을 남쪽 작은 언덕에 정자를 짓고 노년을 보내려고 하였지만 이루지 못했고, 지금 그의 아들 李敬立이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고자 그 곳에다 蘆隱亭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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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始百(敦稷)晩霞草廬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西湖에 있는 李敦稷의 晩霞草廬에 대한 記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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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務軒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벗인 朴華卿이 雙務軒을 짓고 기문을 부탁해서 쓴 글이다. 두 가지를 힘쓴다 함은 농사와 독서를 말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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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府使令廳重修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1872년(고종 9)에 安東府의 使令廳을 중수하고 쓴 기문이다. 한결같이 옛 제도를 준용해서 땅을 더 개척하지도 않고 재목도 더 모으지도 않았으며, 다만 방향만 바꾸어서 花岳을 등지고 낙동강을 바라보도록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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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代祖考判官府君墓表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醴泉郡에 있는 判官府君의 묘소 碣石이 세월이 오래 지남에 따라 퇴락하게 되어, 새롭게 고쳐 세우면서 쓴 墓表이다. 이름은 鵷(1486∼?), 자는 大擧이며, 萬欽과 一直任氏 사이에서 예천 金谷里에서 출생했다. 부인은 安東權氏로, 光瑞의 딸이다. 품계는 奉訓大夫, 관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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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肯庵 李敦禹가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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壙誌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拓菴 金道和가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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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叙)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曾孫 金應周가 요청하여, 洗山 柳止鎬(1825 ~1904)가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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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晩求 李種杞가 지었다. 下齋가 先君과 함께 만나 古今의 일에 대해 토론할 때, 어린 나이였던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博雅한 군자라는 느낌을 가졌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하재의 증손이 遺文을 보이면서 拓菴 金道和의 命이라며 발문을 청해왔다. 四七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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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成均生員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할아버지 金(1762~1790)의 遺事이다. 자는 伯春, 호는 懇巖이다. 龜尾에서 光翊과 韓山李氏 사이에 출생했다. 大山 李象靖과 小山 李光靖(1714~1789)에게 배웠으며,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性理書에 전념했다. 후사가 없어 伯祖인 遂命의 아들 弼亮을 후사로 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