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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5151

    先考府君遺事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아버지 金弼亮(1775∼1837)의 遺事이다. 자는 明夫로, 중년에 弼淳으로 개명했다. 未成人으로 入繼하여 아버지의 喪禮를 成人처럼 잘 치르고, 어머니를 모심에 효성을 다했다. 龜窩 金의 문하에서 수업한 뒤, 중년 이후에는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쏟았다. 朱子의
    출처 : 유교넷
  • 365152

    先妣孺人驪江李氏遺事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저자의 어머니는 驪州李氏로, 晦齋 李彦迪의 9세손이며, 첨지중추부사 鼎搢과 密陽孫氏 사이에서 1779년(정조 3) 良洞里에서 3녀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총명하고 才智가 월등하였는데, 백부는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 아이가 남자로 태어나서 우리 가문을 드날리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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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53

    本生王考處士府君遺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부친의 生父인 金堡(1745~1812)의 遺事이다. 자는 子克이다. 어려서 조부와 부친을 여의어 집안을 부지하는데 힘을 쏟았고, 홀어머니를 섬김에 愛敬을 다했다. 누이와 친족을 비롯해서 벗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후덕한 은혜를 베풀었다. 1793년(정조 17)에 증조모의
    출처 : 유교넷
  • 365154

    亡孫秀才壙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72세의 나이에 손자 金正輝(1846~1875)의 壙中에 넣은 글이다. 자는 剛伯이며, 夔和와 英陽南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는 達城徐氏이다
    출처 : 유교넷
  • 365155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肯庵 李敦禹가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5156

    壙誌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拓菴 金道和가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5157

    墓碣銘(並叙)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曾孫 金應周가 요청하여, 洗山 柳止鎬(1825 ~1904)가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5158

    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우수
    晩求 李種杞가 지었다. 下齋가 先君과 함께 만나 古今의 일에 대해 토론할 때, 어린 나이였던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博雅한 군자라는 느낌을 가졌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하재의 증손이 遺文을 보이면서 拓菴 金道和의 命이라며 발문을 청해왔다. 四七說,
    출처 : 유교넷
  • 365159

    하지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상진
    하지집(下枝集) 下枝 李象辰의 시문집. 7권 3책. 목판본. 원집 6권과 부록 1권, 도합 7권 3책으로 동생 李弘辰이 1793년(정조 17)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의 구성을 보면 卷1에는 賦 1편과 詩 66수가 실려 있고, 卷2에는 詩 80수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160

    동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동암집(東巖集) 東巖 柳長源의 시문집. 14권 7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연도와 간행 경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상 서간이 문집 양에 비해 특히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간은 경전의 訓詁, 인의체용설, 자겸설 등과 같은 성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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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東巖亭, 戱作東巖二十詠, 龜峀, 東屯, 西崦, 山泉齋, 養正齋, 獨梅園, 雙竹塢, 塤篪巖, 晩對石, 香遠塘, 栗社, 望遠臺, 菊砌, 柿林, 桃坂, 柳堤, 風詠臺, 梨亭, 東川, 岐山, 巖齋吟示三峴諸君, 伏次伯氏三棣堂韻, 庚寅立春日會宿三棣堂次杜草堂立春詩是正月初八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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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2

    上大山李先生(1769)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가 大山 李象靖에게 학문을 배우기를 청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십수 년 전에 김낙행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나, 문득 자신의 학문이 實得이 없고 단지 입과 귀에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6,7년간 아무와도 학문적인 문답을 나누지 않았다. 자신이 학문에 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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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3

    上大山先生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가 이상정에게 예학과 관련해 질문한 편지이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당돌한 편지에 우악한 답장을 내려준 데 대해 감사해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고 학문도 일천한 자신이 선생의 기대에 부응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어 金士休 집안의 상제례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가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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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4

    答大山先生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위의 편지에 대해 이상정이 답을 하였으나, 저자가 쉽게 납득하지 못하였다. 이에 다시 한 번 질문한 것이다. 저자는 비록 종손의 입장에서는 친진했다고 하더라도 5대조가 正嫡이라면 變禮를 적용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에는 이 편지를 보내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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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5

    上大山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지난번 상례와 관련해 당돌한 말투와 항변하는 듯한 논조를 보인데 대해 사죄하는 한편, 자신의 견해가 매우 허점이 많았다면서 이상정에게 쓴 편지이다. 더욱 철저히 공부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邵詩의 의미에 대해 熊禾가 妙用說을 주장한 것이 자못 의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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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6

    上大山先生(1772)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 이상정에게 학문적 자문을 구하는 편지이다. 하나는 柳範休가 高山에서 직접 이상정으로부터 배운 것을 기록해 와서 함께 읽었는데 그 중 의문나는 점 몇 가지가 있어 別紙에 써 보내니 가르침을 바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變禮集說을 읽기 시작했는데 설도 다양한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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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7

    上大山先生(1775)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예안 사림이 『退溪逸集』약간 권을 수정하고 이듬해 봄에 상재하는 것과 관련해 이상정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그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여 한이었는데, 우연히 도산에 갔다가 교정한 원고를 보고 매우 잘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의문이 있어 이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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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8

    上大山先生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위의 편지와 관련된 내용을 다시 보냈다. 저자는 「인심도심도」가 퇴계 이황이 직접 그린 것도 아니고 문집 초본에도 없으니, 월천이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일집』에 선생의 견해라고 쓰는 것은 경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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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69

    上大山先生(論仁義體用,1778)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상자에 넣어둔 이상정의 간찰을 꺼내 읽다가 의문점이 생겨 보낸 편지이다. 『近思錄釋義』 중 “仁存諸心 性之所以爲體 義制夫事 性之所以爲用”에서 두 번째의 性은 情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자기의 異見을 설명하고 있다. 즉 人義의 체용에 대한 것인데,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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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0

    上大山先生(再論仁義體用,1779)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위의 편지에서 밝힌 저자의 견해를 다시 한 번 설명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인과 의를 性의 體用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의 性은 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근사록석의』의 설명은 옳지 않다고 보는 자기 견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다만 말미에 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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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1

    答九思堂金先生(1760)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가 학문을 연마하는 도중 의문이 나는 것을 김낙행에게 묻고 그에 대해 김낙행이 답을 주었다. 그 중에서 저자가 수긍하기 어려운 점을 다시 별지로 작성해서 김낙행의 의견을 구하는 편지이다. 저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自謙作工夫’에 대해 謙을 快‧足으로 풀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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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2

    答九思堂先生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위의 편지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自謙作工夫’에 대해 謙을 快‧足으로 풀이하는 것에 대해, 誠意는 工夫, 意誠은 功效이며, 無自欺는 공부, 자겸은 공효라고 보는 입장이었다. 또 悠久를 悠遠과 같은 의미로 보는 潘氏의 설에 이견을 제기하는 등의 내용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173

    答九思堂先生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自謙을 功效로 보는 자기의 견해가 매우 성급하였음을 토로하는 한편 悠久를 悠遠으로 보는 데 이의를 제기한 것은 옳지 않은가 하고 김낙행에게 반문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자겸설에 대한 견해를 金江漢에게 말했더니 자기와 거의 같았고, 그래서 더욱 자기 설에 자신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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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4

    功效說後論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자겸을 공효로 보는 자기 설을 수정하면서 쓴 글이다. 저자는 誠意章에서 자겸 두 자만을 떼어서보면 ‘無自欺는 공부, 自謙은 공효’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만약 성의장 전체의 논지를 본다면 ‘자겸이 공효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중심으로 말했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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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5

    與蔡判書(濟恭,1783)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채제공에게 저자의 생부인 刑曹參議 柳觀鉉의 묘갈명을 부탁하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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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6

    答李方伯(秉模)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경상감사 이병모가 저자에게 會校할 때 강의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자,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가기 어렵다고 답하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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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7

    答柳侯(義養,1785)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柳義養이 두 차례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온 데 대해 사례하는 편지이다. 아울러 이전에 저자가 쓴 예서를 보냈었는데, 유의양이 다시 그 후속편을 빌려보고 싶다고 하자 완곡하게 거절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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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8

    與柳侯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柳義養에게 저자가 지은 예서 3책을 보내면서 쓴 편지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 데다가 책을 펴면 바로 고칠 곳이 수두룩한 것이지만, 유의양의 교정을 바라기 때문에 이 책을 보낸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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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79

    與柳侯(1786)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전주유씨 족보 간행과 관련하여 유의양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두에 족보의 간행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유의양의 교정이 매우 정확하여 여전히 정정함에 감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본론에서는 족보에 양자로 들어간 사람에 대한 기술에서, 생가 계보에는 누구에게 出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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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0

    與李惺軒(台煥,1770)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台煥에게 저자가 이상정과 문답했던 편지들을 모아 보내면서 쓴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잘못된 예설에 대해 이상정이 보여 주었던 관심을 저버리지 않는 한편 잘못된 설로 禮家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禮說이 담긴 편지를 모아서 보내니, 질정을 바란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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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1

    答金濯以(江漢,1760)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江漢이 저자의 自謙說에 대해 의견을 밝힌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김강한의 견해가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역시 자신의 견해도 일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전에 자신이 보냈던 편지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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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2

    與金濯以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江漢이 悠久兼內外之說의 의미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견해를 써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 역시 김강한과 같은 생각이지만, 몇 가지 점에서 本義와 다른 것 같아 그에 대해 적어 보내니 가르침을 주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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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3

    答金濯以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江漢이 저자의 자겸설을 논평한 것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우선 김강한의 지적을 통해 자신의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견해를 수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胡五峯의 格物說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의견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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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4

    答金濯以別紙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江漢이 상례와 관련해 문의한 것을 별지로 작성하여 보낸 답장이다. 김강한은 담제가 끝난 후 撤筵하고 入廟할 때, 사당에 어머니와 처 兩位에 미리 고유제를 지내야 하는지, 담제가 끝난 후 純吉之服을 입는지, 禫月 이후에 옻칠한 관과 深靑色 띠를 매는 것인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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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5

    與金濯以(1769)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가 『寒泉集』을 읽다 의문나는 곳이 있어 김강한에게 묻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 金士休 집안의 親盡한 조상의 신주를 薦厝하는 것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1권 12, 15, 19쪽에 실린 이상정과의 편지 참조)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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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6

    答李學甫(宗洙,1760)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양자로 들어간 이가 양부의 상을 당했을 때 3년복을 입어야 하느냐, 아니면 장자의 상복에서 한 등급 낮춘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종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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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7

    與李學甫(1783)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이종수가 『대산집』 교열을 부탁한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사정상 학문에 열중할 수 없지만 이종수 등은 돌아간 이상정의 학문을 잇기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대산집』에 실을 초고 중 일부에 標點하여 보내니 교열시 참고해 달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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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8

    與李學甫(1790)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이종수가 5월 18일에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이종수가 ‘潛養懋內’ 등의 말로 자신의 병통을 바로 잡으려 해 주는 것에 감사해 하는 한편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 이종수가 別紙로 문의한 것에 대해서 자신은 잘 모르지만 지속적인 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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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89

    答李學甫別紙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서자가 그 할아버지의 제사를 주관할 수 있는가, 제사지낼 때 지팡이에 의지할 수 있는 경우는 언제인지, 重服人의 갓끈 색깔은 흰 색인가 검은 색인가 등 상례와 관련한 이종수의 질문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힌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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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0

    答金道彦(宗德,1786)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宗德이 안부를 겸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김종덕은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던 저자에게 『대학』에 나오는 ‘自謙’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저자는 『大學或問』에 그 뜻이 잘 나와 있는데 굳이 이것과는 다른 의미를 찾느냐고 반문하면서, 자기는 처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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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1

    答金道彦(1787)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김종덕과 다시 한 번 ‘絜矩’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구사당과 자신이 생각하기에, 自謙은 공부의 효과를 전제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주자도 心廣體胖은 意誠의 효험이고, 자겸은 곧 意誠이라고만 하였으니, 자겸을 효험이라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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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2

    與金道彦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김종덕과 自謙의 의미에 대해 논쟁하는 편지이다. 김종덕은 ‘좋은 색을 좋아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은 공부의 자겸이고, 心廣體胖은 공효의 자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장은 서로 모순이 아닌가?’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구사당과 자신의 주장, 즉 자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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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3

    答金道彦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김종덕과 自謙의 의미에 대해 논쟁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자신이 전에 했던 주장을 바꾸어, 자겸이 공부이자 공부의 효험으로 봐도 괜찮다고 하였다. 다만 자겸이 공부라는 것은 정설이고, 효험이라는 것은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주자어류』를 살펴봐도 정확한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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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4

    與金道彦景蘊(宗發)弘輔(宗爕)(1788)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가 김종덕 형제에게 자신의 학설에 대한 의견을 묻는 편지이다. 저자는 자신이 일전에 보낸 편지 중에서, 팔대가와 관련된 내용 중 일부를 폐기해 줄 것을 청하였다. 아울러 「心學圖」 중에서 心에는 권점을 하고, 敬은 권점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던 것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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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5

    答金道彦別紙(1792)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퇴계선생문집』에 나오는 이황과 기대승의 四七論爭 중 일부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올바른가를 묻는 편지이다. 즉 기대승은 渾淪說에 기반을 두어 理氣를 一物로 간주하였다. 이에 대해 이황은 ‘道가 곧 器요, 器가 곧 道라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理氣가 일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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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6

    答金道彦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주자서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하고 김종덕의 견해를 묻는 편지이다. 저자는 건강이 좋지 않아 南淵의 모임을 봄으로 미룰 것을 청했던 데 대해 이해를 구하고, 아울러 김종덕이 보낸 편지에 대해 자신은 진정으로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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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7

    答金道彦(1795)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는 조카의 방문을 통해 直城에서 모여 『심경강록』의 교감을 마쳤고, 아울러 『대산집』의 重校를 위해 高山에서 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노년이 되었어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김종덕 등을 치하하는 한편, 자신은 건강이 좋지 않아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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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8

    答金道彦(1796)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김종덕의 문안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와 김종덕이 만나서 학문적 토론을 할 처지가 아닐 뿐 아니라, 자신의 병세가 매우 깊어 머지않아 불귀의 객이 될 듯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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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199

    與孤雲會中別紙(先生文集會校時,1784)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문집』을 간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저자가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교감을 청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攝祀孫이 心喪할 경우의 복장은 緇笠과 緇帶를 입는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후산 이종수가 이의를 표시하였다. 저자는 굳이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는 않겠지만, 자신과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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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00

    答孤雲會中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문집』 간행과 관련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신병 때문에 문집 교정에 참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정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점에 미안해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 이어 자신이 스승인 이상정과 문답했던 편지 중, 周服內의 사람이 출입할 때 緇笠과 布帶를 입어도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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