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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夢弼(相說)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相說이 상례와 관련해 질문하자 이에 답하는 편지이다. 김상열은 妻喪을 당해 11개월째에 練祭를 지내지 못했을 경우, 연제를 생략해도 되느냐고 문의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예서를 참고해도 통일된 의견은 없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였고, 어떤 이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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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子友(弘輔)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부친상을 다 마치기 전에 모친상을 당할 경우에 상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냐는 金宗燮의 질문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이광정과 김장생‧이현일‧정구 등의 주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자신은 확신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禫服과 心喪服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모두 緇服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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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聖瞻(泰東)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泰東이 조모상을 당하여, 조부와 조모를 합장하려고 할 때의 의례를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조부를 합장하려면 조모를 위해 자최를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부를 위해서 다시 緦麻服을 지어 입어야 하며, 조부를 발인할 때도 조모와 똑같은 儀物을 사용하되 方相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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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聖瞻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泰東이 처부모상을 당해 상복에 대해 물어오자 답하는 편지이다. 처부모상은 不杖朞이므로 담제와 연제 모두 지내지 않아야 된다는 설과 담제는 비록 행하지 않더라도 연제는 지내야 한다는 설이 있는데, 저자는 굳이 담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연제까지 안 지낼 필요가 있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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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正甫(昌鏡)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徐翰廷이 司憲府 持平에 추증되어 徐昌鏡이 告由하는 절차에 대해 물어오자 답한 편지이다. 어떤 이들은 신주를 조매한 다음에는 焚黃을 묘소에서 행한다고 하는 이도 있으나, 이상정은 묘소에서 하지 말고 지방을 써서 집에서 하는 것이 예라고 하였다. 그런데 서정한은 이미 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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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見中(龍燮)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龍燮이 상례에 대해 물어오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김용섭이 생각하는 의절이 이미 적절해서 자신은 거기에 새롭게 답할 것이 없으며, 더욱이 자신은 예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겸사로 시작하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모친상을 당하면 기년상을 치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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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道行,1781)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도행에게 『대산집』 간행과 관련해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대산집』 교정과 관련해 20일까지 보내기로 한 약속은 잊지 않고 있으나, 감히 표점을 할 처지가 아니라고 겸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집안의 형님과 의논하여 교정이 필요한 부분을 표시해 보내니 잘 판단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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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問(1783)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도행이 처상을 당하여 상제와 담제를 지낸 다음에도 几筵을 치우지 않고 上食하고 곡을 하는 것이 예에 합당한지, 그리고 상제를 지낸 후 바로 緇笠을 하는 것이 예에 맞는지를 물어오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궤연을 치우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곡은 삭망 때만 하는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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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도행이 관례와 관련해 질문하자 답하는 편지이다. 관례를 치를 때는 高祖父의 종손 집에서 치르는 데, 만약 종손이 노쇠하여 관례를 주관하지 못하면 본인의 집에서 관례를 하고 자신이 모시는 신위에만 고하며, 관례를 치른 다음에 고조묘의 사당을 알현한다고 하였다. 아울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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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問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도행이 친진한 5대조의 신주를 別廟로 祧遷한 지 오래되었고, 또 長房도 친진하여 신주를 埋安하게 되어 그 절차를 묻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신주를 매안할 때의 제사는 長房이 주관하고, 만약 장방이 별묘에 받들 때 직접 하지 않았다면 宗子가 제사를 주관해도 괜찮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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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中立(1789)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도행이 정씨 집안의 상사와 관련해 질문하자 답하는 편지이다. 아들의 상을 당해 아직 장례를 치루지 않았을 경우, 부인의 祥祭를 지내도 좋은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장례를 지낸 후 상제를 지내도 괜찮고, 아니면 처상의 几筵을 다른 곳으로 옮겨 부친이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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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聖紹(述道,1774)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趙述道가 태극의 의미를 도해한 글을 보내 의견을 묻자 답한 편지이다. 저자는 태극에 대한 설명에 혹 모자라는 부분은 없는지, 仁義를 양음으로 설명하는 것이 너무 상세한 것은 아닌지, 혹 김종덕으로 부터 태극에 대한 의견을 들은 적이 있었는지 등을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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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聖紹問(1789)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조술도가 조덕린의 復官이 행해진 뒤 改題할 때의 儀節을 묻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박세채와 윤증의 견해를 받아들여, 平凉子와 白布直團領, 淡黑布帶로 의례를 행하며, 사당과 빈처에 같은 날 고유제를 치르더라도 무방하다는 답을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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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賓卿(觀燮)問目(1785)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觀燮이 상례와 관련해 물은 데 대해 답하는 편지이다. 이관섭의 종제인 友燮은 아들이 없이 죽었다. 이에 이관섭의 계부, 즉 우섭의 부친이 살아계실 때 양자를 들였고, 그가 양부의 상을 치뤘다. 그런데 그 양자마저 요절하여 부득이 계부의 차자인 益燮이 攝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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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賓卿問目(1787)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觀燮의 宗姪인 李儉行은 한 달 전에 이미 禫祭를 마쳤는데, 당시 역병이 돌아 아직 吉祭를 지내지 못하였다. 때문에 아직 宗子로서 명위가 정해지지 않아, 기제사를 지낼 때 종자로서 예를 치르는 것이 미안하다고 이관섭은 생각하고, 이에 대한 의례가 어떻게 되는지 저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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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賓卿問目(1788)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이관섭의 사위인 朴明中이 역질로 인해, 4월 10일경에 부친상을 당하고 그믐날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7월 20일에 성복하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한 儀節이 명확하지 않아 저자의 견해를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이관섭은 ①부친상과 모친상이 각각 선후가 있는데 같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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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問目(1784)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상례에 관련해 권모가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질문은 장자가 후사 없이 죽어 차자가 어머니의 상을 攝祀하였는데, 그마저 소상 전에 돌아갔다. 이제 장자의 후사를 들였고 祥祭는 다가오는데 신주의 내용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소상전의 삭망 중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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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鎭東,1786)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상례에 관해 문답한 편지이다. 김진동은 成服을 조금 늦게 하였을 경우 禫祭를 지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로 문의하였다. 저자는 대산 이상정의 견해에 따르면, ‘연제와 상제는 담제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성복한 날을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하여 지내지만 담제는 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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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1787)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상례에 관해 문답한 편지이다. 김진동은 며느리 상을 당해 몇 가지 문제를 문의하였다. 저자는 우선 며느리 상은 1년 후에 궤연을 철거하는 것이 예이지만, 꼭 철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진동의 경우 손자가 어리기 때문에 궤연을 철거해도 무방하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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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상례에 관해 문답한 편지이다. 저자는 우선 김진동이 몇몇 친우와 함께 『대학』을 강독하였다는데 학문의 진척이 있었는가를 묻고 있다. 이어 宗子가 衰絰의 상중이라서 직접 節薦을 행할 수 없는 상황이면 아들에게 대행시키는 것이 예이지 별거하는 숙부나 아우가 대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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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1788)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金鎭東이 『중용』 25장의 내용에 대해 질문하자 답한 글이다. 저자는 자신이 그러한 질문에 답할 만한 학문적인 능력도 모자라고, 또 책이 모두 동암에 있어 참고할 자료가 없으며, 게다가 형님의 손님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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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金鎭東이 주자와 장식 사이에 이루어진 논쟁인 仁說에 대한 해석을 두고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김진동은 『주자서절요』에 나와 있는 편지는 원래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을 상단 수십자를 삭제하고 실음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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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金鎭東이 仁說에 대해 의견을 구하자 답하는 편지이다. 김진동은 인설에 관련된 내용 중, 刊補한 내용이 오히려 원래의 문장보다 좋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자와 장식 중 주자의 입장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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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1790)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金鎭東이 주자와 장식 사이에 이루어진 논쟁인 仁說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한편, 『대산집』 교감으로 바쁘기 때문에 상세한 답을 하지 못한다는 점과 학문을 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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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1791)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이 자주 학문과 상례에 대해 물어오는 편지를 보냈으나, 병중인 데다가 책들이 모두 동암에 있어 참고하기 어려운 점, 家兄도 병환중이라 겨를이 없었던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못했음을 사죄하는 편지이다. 아울러 立人‧達人의 개념, 정사의 개념, 先滿先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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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편지이다. 김진동은 『鄕本大全』을 보면, 『절요』 13편에 있는 ‘유중승의 편지에 대한 답장’ 중의 일부에 두주가 달려 있는데 이를 간과한 이유, ‘정자상의 6번째 편지에 대한 답장’에 대한 설명 중 裏와 虛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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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편지이다. 김진동은 18권의 ‘여정보의 문목에 대한 답변’에서 이모와 외삼촌이 모두 緦麻를 입는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는 가례와 설명이 다르다는 것, ‘호남의 여러 사람에게 보낸 중화를 논하는 편지’에서는 中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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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과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받은 편지이다. 김진동은 ‘장경부의 문목에 답하는 편지’에서는 ‘腔子外尋覓’이라고 하고, ‘임택지의 14번째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는 ‘腔子外是甚底’라고 하여 서로 모순되는 표현이 나오는데 혹 임택지의 학문이 장경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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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1793)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이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주자의 서신 내용 중 의문을 갖고 있던 것을 물어오자 그에 답하는 편지이다. 김진동은 주자와 편지를 나눈 何叔京‧蔡季通 등의 성리설이 잘못되었거나 오탈자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고, 이에 대해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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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이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주자의 서신 내용 중 의문을 갖고 있던 것을 물어오자 그에 답하는 편지이다. 김진동은 妾母를 제사지내는 것에 대해 주자가 別廟를 세워도 된다고 한 것이 춘추 등과 맞지 않은 이유, 제후는 再娶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人心道心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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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別紙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이 『朱子書節要』 간행과 관련하여 주자의 서신 내용 중 의문을 갖고 있던 것을 물어오자 그에 답하는 편지이다. 김진동은 주자가 「答陳明中書」에서 心喪 3년에 대해 설명한 것이 『논어』나 『맹자』에서 설명한 것과 맞지 않다는 것, 襴襆과 禫服에 대한 주자의 언급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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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定之(1794)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이 초여름에 보낸 편지와 그 이후에 부탁한 것에 대해 답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김진동은 초여름 두 차례에 걸쳐 질문을 해왔고, 저자는 즉시 그에 대한 답글을 써서 책갈피에 두었다. 그런데 둘이 만났을 때 그 글을 찾지 못했는데 이제 찾아서 보낸다는 것, 또 槐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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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鎭東에게 보낸 답장이다. 저자가 현재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 晉陽 兩世의 문고를 정리해 달라는 청을 거듭 거절하기 어려워서 작업은 시작했지만 혼자 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일간 한 번 만나 좋은 방안을 토론했으면 한다는 것, 김진동은 저자에게 의문나는 점을 묻곤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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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定之(1796)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김진동이 지난번 보낸 서신에 답장도 못했는데 또 편지를 보내오자 미안해하며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 『文峯散稿袈』 거의 완성되어 斯文의 행운인데 그 안에 師門의 答辭를 실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것, 지난번에 조개젓을 보내줘 감사한데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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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德夫(相權,1788)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相權이 상례와 관련해 질문한 것에 답하는 편지이다. 김상권은 집안 동생이 양자로 들어간 집의 사당은 멀고 생가의 가묘는 가깝기 때문에 생가의 가묘에만 朝祖의 예를 행하는 것이 예에 맞는지 여부, 상중에 죽은 자가 있으면 장사를 지내기 전까지 고기를 올리지 않느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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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君遇(駿行,1784)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駿行에게 立后 문제, 그리고 신주에 쓸 문자와 관련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남의 집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관여할 입장은 아니라고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의 평소 지론을 서술하고 있다. 망자가 생전에 이미 입후할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양자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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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士濬(崇黙,1780)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崇黙이 보낸 편지를 읽고 해직된 것에 불만이 있는 것 같다는 것, 동네에 전염병이 돌아 저자 형제가 위태롭다는 것, 『霽山集』의 교감이 끝났으나 詩篇이 만족스럽지 않아 이상정에게 부탁하였으니 잘 마무리 되리라는 것, 김종묵이 서신과 함께 보냈던 竹杖 중 한 개를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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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敬胤(祖範,1769)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祖範이 상례에 관해 두 가지 질문을 한 데 대한 답장이다. 이조범은 적자가 상례를 마치기 전에 죽을 경우 적손이 입어야 하는 상복은 무엇인가 하는 것과 초상이 겹쳤을 때 前喪의 祥祭를 뒤로 물려 거행할 경우 상복을 바꿔 입는 것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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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元卿(燧)問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權燧가 상례에 관해 질문을 한 데 대한 답장이다. 권수는 부친의 大祥 날짜가 兩喪의 장례를 지내기 전이라서 장례를 마친 뒤에 행하고자 하는데 그때 直領布綱을 입어도 되느냐는 질문 하나와 조모의 장례를 치르고 바로 졸곡을 하고자 하는데 신당에 사는 어르신이 졸곡은 길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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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如天(思溥)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權思溥가 상례에 관해 질문을 한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초상이 났는데 상주가 없으면 里尹이나 이웃집 사람이 주관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남편과 同堂의 친척이 주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다. 다만 신주에는 從嫂라고 쓰고 傍註는 비워둘 것이며, 권사보가 보낸 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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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表姪李魯望(龜蒙)問(父喪中遷母合葬之儀)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저자의 表姪인 李龜蒙이 아버지의 상중에 어머니의 묘를 옮겨 합장할 때의 절차에 대해 묻자 답한 편지이다. 모친의 봉분을 열 때 祝辭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장하는 것을 사당에 고할 때 어떤 복을 입어야 할 것인지, 啓墓 때 緦服을 입을 것인지, 告辭는 어떻게 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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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內姪金聖希(有臣)問目(1772)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저자의 內姪인 金有臣이 改葬을 앞두고 그 절차를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김유신은 ①개장할 때 소복에 緇帶‧緇笠의 착용 여부, ②丘儀가 ‘나머지는 모두 素服布巾을 한다.’고 했을 때, 나머지의 범위가 諸孫과 曾孫인지 아니면 五服의 친족을 모두 일컫는 것인지, ③개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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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聖希中庸問目(1774)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有臣이 『중용』에서 의문나는 부분에 대해 묻자 답하는 편지이다. 김유신은 ①『중용』에서 요순‧공자 등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한 부분이 무엇인가, ②天命을 性이라고 할 때 經文에서는 理만을 얘기했는데 章句에서는 氣도 함께 말한 뜻이 무엇인가, ③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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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幼聞(重祖)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重祖가 편지로 부탁한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자신이 병이 깊고 능력도 안 되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 또 편지 내용 중에 몇 가지 문구가 맘에 들지 않으므로 다음번 편지에는 그런 문구는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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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昌汝(啓運)問 3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金啓運이 移葬과 관련해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김계운은 이장한 다음 구묘에 또 고유제를 지낼 필요가 없고 다만 破墓할 때 고유제를 지내면 되지 않으냐고 물었고, 저자 역시 그래도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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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喪人(尙暉)問目(1780) 4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南尙暉가 어머니를 장례지낼 때 부친묘를 이장해서 합장하고자 하여 그 절차를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① 합장하면서 부친의 신주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 ② 모친과 부친의 几筵을 각각 설치해야 하는지, ③ 부친과 모친에게 각각 孝와 孤哀라고 칭해야 하는지, ④ 부친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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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㙖,1790)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㙖가 상례에 대해 묻자 답한 글이다. 이우는 小祥 때 絞帶를 布로 할 것인지, 葛로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부탁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김장생의 견해를 언급하며 葛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편지에 저자에게 ‘丈席道體’와 같은 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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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別紙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㙖가 상례에 대해 물어온 것을 조목별로 답변한 편지이다. 發靷할 때 先忌를 당하면 上食과 遣奠을 달리 해야 하는가, 발인 시에 先塋 아래를 지나갈 때의 절차, 선영 옆에 부장할 때 朝祖의 의절 등을 문답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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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穉春(1792)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이우가 상례에 대해 물어온 것에 답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답장이 늦어 미안하고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으로 서두를 열고 있다. 이어 부친을 장례지내기 전에 모친을 이장하여 합장할 때는 부친의 虞祭는 장례일에 反哭한 다음에 지내며, 그 다음날 모친의 우제를 묘소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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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道(埦,1782)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埦이 상을 당한 이후 건강을 해쳤다는 소문을 듣고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완에게 執奠을 잠시 장남에게 대행하게 하고 조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이완이 부탁한 행장은 대강 초고는 썼으나 아무래도 여러 가지 기록이 미비하니 김종덕‧이광정 등이 갖고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