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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5251

    答李致道(1783)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집』 간행과 관련하여 李埦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감히 선생의 글에 손댈 입장이 아니지만, 編帙이 너무 커서 損約해야 할 것 같아 약간을 표점하여 보내니, 여러 사람이 會校할 때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하고 있다. 아울러 오탈자나 결문을 바로잡되 반드시 여러 사
    출처 : 유교넷
  • 365252

    與李致道別紙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埦이 보낸 焚黃儀節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힌 편지이다. 저자는 이완의 의절이 丘氏의 견해에 의거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의는 없지만, 남편의 관직이 추증되었을 경우 부인의 신주에 어떤 호칭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다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53

    答李致道(1785)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집』 간행과 관련하여 李埦에게 보낸 답장이다. 저자는 문집의 교정과 간행 방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문집 안에 후생이나 제자의 서신을 첨가하는 것이 합당한가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54

    答李致道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대산집』 간행과 관련하여 李埦에게 보낸 답장이다. 저자는 『대산집』 간행이 義理公共의 뜻에서 나왔지만 현재 일의 추세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불만을 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55

    答李致道別紙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埦이 『중용』에서 의문나는 점을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性과 道, 戒懼와 愼獨이 서로 대구를 이루면서 體用‧動靜의 관계라고 해석한 後山 李宗洙의 견해를 지지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로 인해 확대 해석 내지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계하는 말도 아울러 하고
    출처 : 유교넷
  • 365256

    與李致道別紙(論修道以仁之義)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埦이 ‘修道以仁’의 뜻을 풀이해 보내자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쓴 편지이다. 저자는 ‘仁’을 해석할 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즉 ‘인’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四德을 포괄하고 四端을 관통하는 의미이지만, 道와 대구가 되어 쓰일 때는 단지 본심
    출처 : 유교넷
  • 365257

    與南宗伯(漢朝,1787)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에게 ‘格物物格’의 의미를 설명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원래 위의 격자는 ‘使物之理到盡’, 아래의 격자는 ‘物之理已到盡’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남한조의 편지를 보고, 위는 ‘人格物’이고 아래는 ‘物理格’의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다만 이 역시
    출처 : 유교넷
  • 365258

    答南宗伯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格物物格’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그의 풀이가 매우 훌륭하다는 칭찬과 함께 한번 방문하여 학문을 토론하고 싶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아울러 남한조의 아들이 방문했을 때 동네에 돌림병이 돌아 머물게 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다음
    출처 : 유교넷
  • 365259

    答南宗伯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상례에 대해 물어온 것에 대한 답장이다. 卑忌와 節薦이 겹칠 때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저자는 먼저 비기의 제사를 일찍 행한 다음 節薦을 늦게 행하는 것이 좋으며, 時食이 있다면 비기의 신위에 함께 올려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60

    答南宗伯別紙(1788)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학문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남한조는 格物이 대학의 시작이고 涵養이 격물의 근본이라면, 정자는 왜 發明格物을 敬으로 설명하는지, 『예기』 小註에 會를 合, 束을 收斂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누구의 설인가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저자가 자신
    출처 : 유교넷
  • 365261

    答南宗伯別紙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저자의 답변에 대해 다시 질문하였고, 그에 대해 답장한 것이다. 남한조는 저자의 답신 중 두 번째 조항의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재차 물었고, 아울러 至善의 의미가 理之所極이라면 精微之極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등의 내용으로 반문하였다. 이에 대해 저자가
    출처 : 유교넷
  • 365262

    答南宗伯別紙(1789)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는 『論語集註』의 心之德과 愛之理의 관계, 장자가 죽었을 때의 承重 문제, 緦麻에 澡纓을 사용하는 것, 五服과 관련된 것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心之德과 愛之理를 단순히 體用의 관계로 볼 수 없다는 견해, 장남이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둘째 아들을 장자로
    출처 : 유교넷
  • 365263

    答南宗伯別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상례‧혼례와 관련해 물어온 것에 대한 답장이다. 자식이 없이 죽은 형제의 아들과 백숙부의 상에 입는 상복, 고모와 백숙모의 상복, 혼례시 신부와 시부모가 만나는 의절, 冢婦와 舅姑가 만나는 의절 등에 관해 답변하고 있다. 이외에도 大功服인 虔布가 무엇인지,
    출처 : 유교넷
  • 365264

    答南宗伯別紙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朱子書節要』중에서 의문나는 점을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남한조는 「汪尙書에게 보낸 답장」에서, ‘3개월 동안 朝命을 어겼다.’는 표현이 3년의 오기가 아니냐는 것, 「張欽夫의 편지」에서 ‘연변의 제군이 자유롭게 통행했다.’는 표현의 구체적인 의미, 「周丞
    출처 : 유교넷
  • 365265

    答南宗伯(1790)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예제와 관련해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우선 남한조의 장남을 만났는데 몇 가지 문답한 내용이나 눈빛을 보니 학문의 성취가 이전보다 대단하며 앞으로도 더욱 기대된다는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다음으로 『朱子書節要』를 보면, 大夫는 3묘인데 그 중 하나는
    출처 : 유교넷
  • 365266

    答南宗伯別紙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朱子書節要』중에서 의문나는 점을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남한조는 「汪尙書에게 보낸 답장」에서, 彼此라고 표현된 것은 불교와 유교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것, 또 왕씨가 매우 성한데 앞으로 입을 화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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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67

    答南宗伯(1791)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천주교를 공박하는 『天學或問』과 관련한 소식을 보낸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우선 친우인 金宗燮의 부음을 접한 데 따른 비통한 심정을 표하고 있다. 이어 『天學或問』이라는 책제목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천주교를 공박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는 ‘辨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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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68

    答南宗伯別紙(1792)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朱子書節要』 중에서 의문나는 점을 물은 데 대한 답장이다. 「尤延之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씨가 旬彧을 操謀臣으로 평가하면서 劉穆之‧宋齊丘와 다르다고 평가한 데 대해 의견을 구하였고, 저자 역시 남한조의 견해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呂子約에게 보낸 답장」에
    출처 : 유교넷
  • 365269

    答南宗伯別紙 4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朝가 冲漠條와 坤復條, 太極圖 중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남한조의 견해에 동의하기도 하고 자기 견해를 밝히기도 하는 한편, 갈수록 남한조의 학문이 깊어지는 것 같아 축하한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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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0

    答南宗伯 4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남한조가 「仙遊洞序」와 詩를 보내며 차운을 부탁한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건강이 좋지 않고 시상도 메말라 차운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아울러 南漢皜의 학문이 일취월장하므로 기쁜 마음이 없지 않지만, 혹 너무 깊게 천착하다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병통이 없는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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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1

    答南宗伯(1795) 4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남한조가 보낸 服制疑辨說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그의 예설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한편, 한 가지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아버지가 어머니 상중인데 아들이 죽을 경우 嫡孫의 接服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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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2

    答南宗伯(1796) 4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남한조가 금강산 유람 중에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날씨가 더운데 유람 중에 건강을 해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언제 집으로 돌아오는지 등을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73

    答金弘輔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宗燮이 저자의 최근 집필 현황을 물어본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 중 잘못된 부분도 있고, 또 저자의 중형인 유도원으로부터 지적받은 것도 있어서 이러한 부분을 수정한 뒤에 여러 사람의 질정을 받을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5274

    答金弘輔(1787)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宗燮이 自謙說에 대한 견해를 적어 보낸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김종섭이 ‘要自謙者工夫也 自謙者功效也’라고 한 이후 부분에 대해 잘 이해하기 어려우니 상세한 설명을 부탁하고 있다. 또 천학비재하고 사문으로부터 극히 조금 밖에 배우지 못한 자기가 함부로 주장을 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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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5

    與趙立中(得愚,1793)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趙得愚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저자는 조득우가 부탁한 선친의 묘갈명을 어느 정도 썼으나 아무리 봐도 글이 졸렬하므로 능력 있는 다른 이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고 있다. 그리고 진주성에서 김성일과 함께 전사한 柳復立은 일찍이 증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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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6

    答內弟金子長(元善)士豪(洛善)(1786)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의 內弟인 金元善과 洛善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저자는 상을 당한 그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한편, 김낙선이 退陶書를 읽는다는 소식에 매우 잘한 일이라면서 열심히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天命圖」의 七情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그렇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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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7

    答金士豪問目(1773)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洛善이 상례와 관련해 의문나는 사항을 질문한 데 대한 답장이다. 김낙선은 ① 易服 후 띠는 대가 무엇이며, 여자의 상에 신는 鞋가 가죽으로 만든 것인지, ② 質殺에 대해 퇴계 선생은 구씨의 설을 따르라고 했는데, 구씨의 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③ 신위에 까는 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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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8

    答金晦彦(顯運)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顯運의 안부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가 임하를 방문하였을 때 찾아보고자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로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자신은 늙어 학문에 진척이 없지만 김현운은 연부역강하므로 더욱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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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79

    答金美伯(宅運)問目(1788)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宅運이 ①免喪 후 일이 있어 改題하지 못했는데 孝孫이라고 해도 되는지, ② 喪家와 祖廟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신주를 상가로 내와도 되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효는 칭해도 되며, 별거할 경우 아무리 가까워도 신주를 내와서는 안 되고 紙牓을 사용하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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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0

    答李季升(宇級)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宇級이 저자와 만났다 헤어진 뒤로 거듭 편지를 보내오자 감사해하며 보낸 답장이다. 저자는 학문하는 요체에 대해 사소한 것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다 보면 오히려 대체를 놓치는 수가 있는 점을 명심하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사서와 『심경』‧『근사록』‧『주자서절요』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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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1

    別紙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宇級이 『詩傳』의 주 중에 의문나는 것에 대해 묻자 답한 것이다. 이우급은 ① 「周南章」의 下註에서는 修身만 말하고, 「召南章」에서는 能正心 3자가 추가된 이유, ② 「伐檀章」에 나오는 億이 10만인지 만만인지, ③ 毛傳과 鄭箋의 차이에 대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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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2

    答李季升別紙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李宇級이 상례에 관해 물어본 것에 답하는 글이다. 이우급은 종형의 상을 당해 자신은 小功으로 降服하고, 자신의 매제는 再降하여 緦麻로 하는 것이 옳은지 물으면서, 자신의 생각에 再降은 맞지 않은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初終 중에는 관을 쓰지 않는데 언제부터 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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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3

    答琴亨之(養蒙,1774)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琴養蒙이 사문의 예를 갖추고 편지까지 보내자 보낸 답장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런 과분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겸양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84

    答琴亨之問目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琴養蒙이 저자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 이해되지 않거나 의문나는 부분을 질문한 데 대한 답장이다. 금양몽은 ① 『朱子書節要』중 「中和 제4서」에서 未發과 已發에 대한 개념, 「제6서」에서 復見天地之心이라 한 것의 의미, ② 「陸子靜에게 보낸 답장」에서 태극과 음양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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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5

    答琴亨之(1789)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琴養蒙이 入峽한 이후 만나기 어려웠는데 갑자기 편지를 보내자 반가워하며 보낸 답장이다. 금양몽의 학문에 진도가 있음을 축하하는 한편, 친한 벗의 부고에 가슴 아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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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6

    答南自汝(景祖,1790)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景祖가 평소 저자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고 또 학문적으로 의심이 날 때마다 물어오는 것에 감사해하며 보낸 답장이다. 또 李敬直의 부음에 가슴 아프다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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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7

    答南自汝中庸問目(1791)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景祖가 『中庸』에서 의문나는 부분을 물어온 것에 대한 답장이다. 남경조는 ① 偏과 倚의 각각 다른 의미가 있고 또 先後가 있지 않냐는 것, ② 16장이 유독 앞뒤와 달리 天地造化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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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8

    答南自汝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景祖가 여름에 두 번 편지를 보낸데 대한 답장이다. 이 편지는 두 차례에 걸쳐 작성되었다. 처음 작성된 것에서 저자는 중형인 유도원의 상을 당한데다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을 전하는 한편 남경조를 만난 지 1년이 넘었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종의 책망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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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89

    答南自汝論語問目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景祖가 『論語』에서 의문나는 부분을 물어온 것에 대한 답장이다. 남경조는 ① 冉求가 季氏의 가신이 되었는데도 공자는 聚斂한 죄만 묻고 그의 신하가 된 것을 비난하지 않은 이유, ② 子路가 위나라의 신하가 되었던 것을 책하지 않은 이유, ③ 「子罕 16장」의 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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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0

    答金鼎吉(象鉉,1787)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象鉉이 상례에 관해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김상현은 服制圖를 다양한 설에 의거하여 고칠 것을 문의하였으나, 저자는 종전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남의 양자가 되었으면 생부모의 상주가 되기는 미안하므로, 모친상의 경우 신주에 顯姑라고 쓰고 旁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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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1

    答權聖臣(木仁)問目(1788)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權木仁이 상례에 관해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권목인은 ① 부친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조모상을 당했는데 長兄이 어떤 복을 입어야 하며, ② 상중에 죽은 자에 대해서는 장례 전에는 素饌, 우제를 지낸 다음에야 고기를 올릴 수 있다고 하는데 부친상의 경우 어떻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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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2

    答權聖臣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權木仁이 봄에 학문적인 질문을 하는 편지를 했고, 저자는 바로 답장을 보냈었다. 그런데 5월에 다시 편지를 보내 답장이 없음을 책하자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비록 답장이 늦어 이미 상례를 치른 뒤이지만, 후일을 위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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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3

    與金穆之(熙命,1793)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熙命이 새집으로 이사한 것을 축하하는 한편, 큰 흉년이 든 때에 자신은 이웃 사람을 구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자기 몸만 보전할 생각하니 가소롭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김희명의 학문하는 자세가 너무 빨리 성과를 보고자 하는 폐단이 있으니 명심하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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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4

    答金南爲(鵬運)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鵬運의 편지에 반가워하며 보낸 답장이다. 김붕운이 학문적 자질과 노력이 있어 대성할 것이라는 것, 자신은 재주가 없으나 사문의 말단에라도 넣어주면 고맙겠다는 것, 자주 만날 수 없어 한탄스럽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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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5

    別紙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鵬運이 상례에 대해 물어본 데 대한 답장이다. 김붕운은 移葬할 때의 상례에 대해 묻고 있다. ①조부모 묘를 이장하는데 주인이 병들어 일을 주관하지 못하면 숙부와 동생 중 누가 주관하며, 그때의 축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②贈玄纁의 절차는 섭행하더라도 拜禮는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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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6

    答金孟厚(坤壽,1792)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金坤壽의 편지에 반가워하며 보낸 답장이다. 저자는 김곤수의 병세가 어떤지 물은 다음, 학자는 친우와 학문적인 토론을 기꺼워해야 하며, 또 지엽말단적인 것을 묻거나 서로의 견해가 같은가를 확인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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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5297

    答李養元(頤延,1789)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저자는 질녀가 가져온 李頤延의 편지가 매우 반가웠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저자 형제는 동암에서 서로 의지하고 자연을 소요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있으며, 머지않아 하산하여 유낙문‧유약문 형제와 주역을 읽을 계획이라면서, 아쉬운 것은 이이연과 함께 그럴 기회
    출처 : 유교넷
  • 365298

    答南子皜(漢皜,1787)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皜의 편지에 반가워하며 보낸 답장이다. 다만 남한호가 지나치게 공순한 것에 좀 부담스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가 일전에 유범휴에게 보낸 편지와 다른 辯論했던 글들을 교정하고자 하는데 제대로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5299

    答南子皜問目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皜가 格物致知와 正心章에 대해 의문나는 것을 물어오자,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밝힌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5300

    答南子皜問目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
    南漢皜는 明明德 訓誥에 나오는 ‘虛靈不昧’ 4자의 의미를 主氣로 파악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主理로 해석한다고 하면서 저자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남한호가 오해한 것이라며, 자신이 주리라고 했던 것은 明德이 주리이며, 허령불매를 주리로 해석한 것은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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