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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氏蘆厓公行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저자의 仲兄인 柳道源의 행장이다. 본관은 全州, 자는 叔文, 호는 蘆厓이다. 부친은 吏曹參判 升鉉, 모친은 貞夫人 金氏이다. 생부는 刑曹參議 觀鉉, 생모는 淑夫人 金氏이다.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다. 1721년(경종 1)에 태어나 1791년(정조 15)에 졸하였다.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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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考通政大夫刑曹參議府君遺事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저자의 生父인 刑曹參議 柳觀鉉의 遺事를 年譜 형식으로 쓴 글이다. 유관현은 1692년(숙종 18)에 태어나 1764년(영조 40)에 졸하였다. 조실부모하고 伯兄인 慵窩 柳升鉉에게 수학하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매우 깊어 오래도록 분가하지 않고 동거하였다. 1735년(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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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氏范溪公遺事 4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저자의 伯兄인 柳通源의 遺事이다. 자는 叔亨, 호는 范溪이다. 1715년(숙종 41)에 태어나 1778년(정조 2)에 졸하였다. 어려서부터 주변의 곤궁함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한번은 겨울에 가난한 집에 조문을 갔다가 염습한 후에 입힐 옷이 없는 것을 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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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趙述道, 金象鍊, 金道行, 鄭宗魯, 南漢朝, 黃龍漢이 쓴 만사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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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宗洙, 金宗德, 金鎭東, 趙述道, 金㙆, 南漢朝가 쓴 제문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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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南漢朝가 쓴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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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장원李㙖가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저자를 장례지낸 지 12년이 지난 뒤 저자의 조카인 星休가 묘갈을 부탁했으나 거절했다가, 다시 손자인 約文이 南漢朝가 쓴 행장을 들고 와 부탁하자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 쓴다고 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행장과 같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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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릉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두릉집(杜陵集) 杜陵 李濟兼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序文이나 跋文이 없어서 정확한 편찬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卷1에는 55題 78首의 시가 실려 있다. 자질들에게 학문을 권장하는 내용, 명절을 맞이한 감회, 그리고 유배지에서 심정을 술회한 내용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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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示兒五詩幷小序, 淸吟石敬次松齋先祖韻二首, 次四松亭趙舍人韻二首在宣川時, 登大睦寺復用前韻, 淸明, 寒食, 九日六首, 次宋都事逢源韻, 復次前韻寄宋都事藥泉之行, 次宋都事韻, 秋夕主倅送一床饌忘送酒戱贈, 題罷主倅送酒來又用前韻, 次桂萬長韻, 忽憶故山幽事復次前韻, 次尹上舍大濟韻二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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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外舅金公偮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장인인 김집에게 답한 편지이다. 유배지에서 쓴 편지인 듯하다. 건강하게 本家를 찾아 준 것이 기쁘기도 하고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山南일대가 역병에 휩싸여 있으며 안정이 될 때까지 본가에 머물러 주기를 청하였다. 아울러 머물면서 배울 곳이 없는 아들을 독려해 주길 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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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玉川(德鄰,1725)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답한 편지이다. 安邊으로 유배지를 옮긴다는 것을 듣고 위로의 글을 보낸 것이다. 저자 자신은 요행으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외로운 처지이므로 옆에서 모시고 공부하기를 바랐는데, 어긋나게 되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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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玉川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데 북쪽 지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저자 자신은 봉화 杜陵에 새 터를 잡고 작은 집을 짓고 있다고 하였다. 선친 李東標 문집의 편차를 정해주기를 청하고, 아울러 序文을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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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玉川(1729)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답한 편지이다. 멀리서 안부를 묻고 염려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였다. 또한 편지를 받은 후 해가 지났는데 잘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은 거의 1년 동안 설사증을 앓고 있어서 배꼽에 뜸을 뜨고 있는데 증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한다고 하였다. 선친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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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玉川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답한 편지이다. 선친의 遺事를 써준 것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行狀에 구애받지 않고 당시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여 자신이 듣지 못했고, 또한 형용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해 기록한 것을 매우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다만 한두 가지 의심나는 곳에 대해 질문한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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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玉川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친의 行狀을 써준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家狀이 잘못되어 행장에 오류가 생긴 곳이 몇 군데 있다고 하였다. 그 중에 ‘斷指(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키는 일)’는 전에 듣지 못한 일이고, 조카가 남에게 잘못 듣고 기록한 오류이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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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玉川(1732)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德鄰에게 답한 편지이다. 강가에 亭舍를 새로 지었다고 들었는데, 그곳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 저자 자신은 영남에 가까운 곳으로 移配되었다고 하였다. 선친의 묘갈명을 거듭 청하였다. 묘갈명을 청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받지 못하였으니, 죽어서도 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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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濟州(1725)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제주목사를 지낸 김모에게 보낸 편지이다. 음식을 보내 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객지 생활이 고달파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과거에 급제하여 몇 달 지체될 것 같다고 하였다. 죽은 형의 祥日이 지나가려고 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마음이 더욱 절박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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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濟州(1728)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제주목사를 지낸 김모에게 답한 편지이다. 江界로 부임한다고 들었는데, 그대의 평소의 뜻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객지생활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 자신은 구토와 설사증을 앓았고, 고을 수령이 음식을 보내 문안하기 때문에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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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濟州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제주목사를 지낸 김모에게 답한 편지이다. 강계로 부임하는 노정을 날마다 헤아려보다가 安陵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한 글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임한 곳의 사정이 어떤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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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濟州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제주목사를 지낸 김모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모의 부인상을 위로한 내용이다. 천리 밖에서 부인의 죽음을 맞았으니 더욱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고향의 어린 자식들 때문에 여러 번 사직소를 올렸지만, 변방의 수령은 다른 지역과 달라서 解職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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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丈(良鉉)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金良鉉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번 편지를 몇 달 전에 보냈는데, 받아 보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아들 편에 보낸 편지의 진중한 말씀에 매우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저자 자신은 외지에서 風霜을 겪으면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평소에 『柳柳州集』을 읽을 때, 柳宗元의 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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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參奉(聖和,1728)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柳聖和에게 답한 편지이다. 궁벽한 바닷가에서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으며, 찾아 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였다. 저자 자신은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으나, 풍파를 겪고 병이 들어 거의 70노인의 모양을 하고 있으니 온전한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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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欽若(敬時)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柳敬時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 준 것에 감사하다고 하고, 기거에 만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竹洞의 初喪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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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穉圭(琦)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金琦에게 답한 편지이다. 더위가 물러갔으니 맑은 정취가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자신은 죄는 무거운데 벌이 가벼우니 모두가 임금의 은혜라고 하였다. 변방에서 두 번이나 겨울을 겪은 나머지 병이 들어 모든 일에 마음이 식었다고 하였다. 근래에 『주자전서』를 읽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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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元仲(爾甲)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金爾甲에게 답한 편지이다. 친지들의 소식이 끊긴 지 오래 되었는데,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병이 조금 차도가 있으며 분수에 따라 세월을 보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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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元仲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金爾甲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곳에 온 후 오직 그대의 편지를 받았으니, 골육보다 더 친함이 있다고 하였다. 편지를 받은 지 1년이 지났는데, 기거가 만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조정에서 몇몇이 다시 審理하자는 의논을 올렸다고 들은 것 같지만 어찌 문득 용서를 바라겠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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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一甫(萬,1729)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萬에게 답한 편지이다. 봄에 보낸 편지를 겨울이 되어서 받았다고 하였다. 石浦에 별장을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일이라고 하였다. 세속의 먼지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그곳의 샘물소리, 산의 경치가 상상이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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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一甫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萬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고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고모가 병이 들었을 때도 간호하지 못했고, 장례 때도 참석하지 못했으니 어찌 사람으로 감당할 일인가라고 하였다. 石浦에 별장을 짓는 일은 잘 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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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汝徵(聖久,1730)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柳聖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다가 편지를 받고 근황을 알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이곳에 왔다가 병이 들어 완쾌되지 못했다고 들었으니 염려된다고 하였다. 또 금년에 형의 집이 화재를 만나서 가축이 죽었으니, 이것은 집안의 기운이 좋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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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進士(1724)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進士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왕(경종)의 초상을 당해서 因山날 전에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자 자식의 교육을 부탁하였다. 자식이 본래 뛰어난 재주는 없지만 잘 가르치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비가 되어 집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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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通卿(正泰,1728)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正泰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에서 자신의 근황을 적어 보낸 것이다.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임금의 노여움을 샀으나 죽이지 않고 좋은 땅으로 부처시킨 것이 감사하다고 하였다. 1년이 넘도록 설사증을 앓아서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음식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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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仲久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仲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궁벽한 곳에 있으니 친척들의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었는데, 뜻밖의 편지를 받으니 뛸 듯이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에 설사증을 앓아 거의 죽다가 살아났으며, 객지에서 수발들 자제들이나 종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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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仲久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趙仲久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였다. 아들이 궁벽한 마을에 살면서 학문을 전폐하고 있으니,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엄하게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대의 아들과 함께 산사에 공부하러 보내서 서로 도움이 되면 다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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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任察訪(命台)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任命台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겨울에 아들 편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올렸는데, 잘못하여 아직 이곳에 있다고 하였다. 고상하게 거처하면서 분수에 따라 먹고 마시는 것이 세상의 법망을 건드려 끝없는 낭패를 당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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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白江界(守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강계수령 白守一에게 답한 편지이다. 새로 부임하여 정사를 돌볼 겨를이 없을 터인데 먼저 궁벽한 곳에 있는 사람을 염려해 주는 마음이 친척과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임금의 은혜로 죽지 않고 변방에서 3년을 보냈으나 온갖 귀신이 속이고 능멸하니 조물주의 처분만 기다릴 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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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汝咸(熙績,1732)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洪熙績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해에 보낸 편지를 이제야 받아 보게 되었고, 가르침과 꾸짖음이 모두 자세하여 친구의 도리를 다했다고 할 만하니 감사하다고 하였다. 丹山으로 이사 한다고 들었는데 그곳의 산수가 좋아서 은거하려 한 것이겠지만 행여 자신이 살아서 고향으로 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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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上舍(時儁,171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金時儁에게 답한 편지이다. 어느덧 小祥이 지났지만 효자의 마음은 초상을 당했을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당신의 조카가 왔을 때 상중의 근황을 물으려 하였는데, 뜻밖에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 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이사한 곳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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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壻知遠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居喪 중에 있는 사위 李知遠에게 답한 편지이다. 1년 동안 소식이 막혔다가 종이 가져온 두 통의 편지를 받아보니, 마음을 다 쏟아 적은 글을 읽고 또 읽어 마음이 더욱 슬프다고 하였다. 喪을 당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치대로 잘 견디고 몸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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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兄汝集休仲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 형인 李汝集에게 답한 편지이다. 1년 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는데 종편에 두 통의 편지를 받고 편안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移葬하는 일은 잘 치렀는지 물었다. 자신은 큰 병도 없이 주인에게 의탁하고 있으나 보답할 길이 없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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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兄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형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와 며칠을 함께 이야기 나눈 것은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 후 소식이 막혔다가 뜻밖에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보리농사를 그르쳐서 가을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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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再從兄(1733)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친의 家狀은 대충 두서를 이루었으나 總論은 세상에 늦게 태어나서 영향에 대해서 어둡다고 하였다. 집에 있을 때, 고을에서 처신할 때, 사람을 만나거나 친족을 대할 때, 날마다 수작하는 사이에 반드시 훌륭한 말씀이나 선한 행실이 있을 터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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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再從兄(1735)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형에 보낸 편지이다. 뜻밖에 남쪽으로 내려와 집안의 음식을 먹게 해 주니 황공하다고 하였다. 성묘하는 일이 급해서 빨리 돌아가니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였다. 조카의 과거 행자는 언제 떠나는지 말과 인편을 구했는지 물었다. 자신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宿病이 아직 완쾌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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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兄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형에 답한 편지이다. 조카 埏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보니, 자질이 보통 사람과 다르고 공부한 것도 비록 가르친 것에 부합하지 는 못해도 1년 동안에 5편의 策文을 지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埏이 스스로도 작년보다 文理나 안목이 발전했다고 하니 기쁜 일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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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弟宅安(仁兼)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6촌동생인 李仁兼에게 답한 편지이다. 15편의 책문을 지은 것은 대단한 공부이니 빨리 탈고해서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여러 가지 세상일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책문에만 전념하라고 하였다. 책문을 지을 때는 뜻을 긴밀하게 하고, 범범하게 지어서는 소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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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從姪堉塾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종질 李堉塾에게 답한 편지이다. 溫惠宗家 祠堂 중창의 어려움을 전한 내용이다. 벌목을 했지만 필요한 숫자에 모자라고, 또한 기와는 부식되고 깨어졌기 때문에 지붕에 다시 덮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도와 달라는 글을 酒村의 일가들에게 보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듯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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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重光姪(1730)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조카 李重光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수의 병환에 대한 염려와 行狀에 관한 일, 그리고 조카들의 학업을 당부한 글이다. 형수의 병이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이제 조금 좋아졌다고 하나 숙병이 쌓여서 생긴 것이니 힘을 다해 간호하라고 하였다. 사당을 이건하는 일은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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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重光姪重延兒(1731)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조카 李重光과 아들 李重延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일 돌보는 것과 학업에 힘쓸 것을 당부한 글이다. 금년에 흉년이 들었으니, 장례와 제사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제사는 집안의 형편에 맞게 하고 제수를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오직 정성을 다해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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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答仲兒重實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둘째 아들 李重實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들의 학업이 부진한 것을 질책한 내용이다. 나이가 20이 되었는데 文筆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4,5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헛되이 놀지 말고 經書를 읽고 外傳을 읽으라고 하였다. 이후로 읽은 책을 모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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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玉川趙公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玉川 趙德鄰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수십 년 간 스승으로 모셨던 자신과의 정리를 열거하며 조덕린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공은 마음을 다스림이 엄정하였고, 자신을 단속하기를 깨끗하게 하였다. 말은 강직하였고 매사에 결단성이 있었다. 말세의 모범이 되었으며, 스승으로 모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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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金公(偮)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장인 金偮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장인과의 평소 정리를 열거하며 애도하였다. 거의 90살 이 되었지만 기력이 쇠하지 않고 정신도 왕성하였는데 갑자기 세상을 마쳤다고 하였다. 공은 영남의 명문인 豊山金氏의 후손이라는 점, 일찍 과거를 포기하고 詩酒로 자적한 점, 40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