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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述夫(蒁)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妹夫 權蒁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강철처럼 굳고 옥같이 맑은 자질을 타고나 크게 될 인물로 기대하였는데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고 하였다. 10리를 이웃하여 살며 연락이 끊어진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부모를 지성을 다해 모시고, 그 마음으로 사람을 대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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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通卿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通卿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친구가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 영결의 말이 한 마디 없었으니 지하의 친구를 저버렸다고 하였다. 죽은 친구의 자질과 품성, 문장과 그에 따른 명망, 그리고 친구로서의 정리 등을 진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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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故室淑人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부인 김씨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김씨는 豊山金氏로 金偮의 따님이다. 부인이 죽은 지 1년이 지났으나 자신이 유배지에 있기 때문에 한 번도 장례나 소상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이 유배된 6년 동안 부인은 하루같이 가슴을 부여잡고 탄식했다고 하였다. 평생을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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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谷齋菴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1740년(영조 16)에 완공된 岐谷齋舍의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眞寶에서 岐谷으로 집을 옮긴 이후로 선조의 묘소가 失傳되어 世系를 고증할 방법이 없는데, 우연히 壙記가 나옴으로 인해서 300년 전 진보에서 옮겨 왔음이 밝혀졌다고 하였다. 부군 후대로 큰 선비들이 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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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山齋舍上樑時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古山齋舍 上樑 때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선친 李東標가 1690년(숙종 16)에 鼎山 동쪽에 靈泉菴을 짓고 공부하고 휴식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선친이 돌아가시고 저자 자신도 외지로 유배되면서 오랫동안 주인이 없어서 아이들이 기왓장을 떼어가고 서까래가 무너지게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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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祭禮節要跋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1730년(영조 6)에 쓴 것으로 『喪祭禮節要』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禮는 사람에게 있어서 의식과 같은 것이라서 하루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宣川으로 유배된 후 『大戴禮』를 읽어 본 후로 사람의 도리는 예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고, 자신이 이러한 처지에 처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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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同門契帖後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1711년(숙종 37)에 「동문계첩」을 만들고 전말을 적은 글이다. 同門이란 姓氏만 다를 뿐 뜻이 같고, 공부한 것이 같고, 스승이 같은 것을 말한다. 스승이 돌아가신 후 15년이 지나면서 흩어져서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蘭亭의 고사를 따라 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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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犯顔敢諫中當求伏節死義之士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임금의 얼굴을 범하면서 과감히 간언하는 신하 중에 절개를 위해 죽고 의리를 위해 죽을 선비를 구해야 한다는 물음에 대해 답한 글이다. 임금의 노여움과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는 사람은 태평할 때 많이 나타나는데, 임금의 마음은 위에서 바르게 되고 풍속은 아래에서 아름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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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誦詩讀書不知其人可乎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그 사람의 시를 외고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고도 그 사람됨을 알지 못한다면 옳겠는가라는 물음에 답한 글이다. 江文節은 여러 책을 많이 보고도 인물을 평가하는데 투철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데, 주자가 그것을 경계하기를 “책을 읽는 것은 訟事를 듣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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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財聚民散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재물을 모으면 백성이 흩어진다는 물음에 대해 답한 글이다. 재물이 없으면 백성이 궁핍하고 백성이 궁핍하면 나라가 쇠약해진다. 재물을 모으는 것은 백성을 흩어지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백성은 절로 흩어지고, 백성을 흩는 것은 백성을 모으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백성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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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通政大夫行承政院右副承旨懶隱府君家狀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선친 懶隱 李東標의 家狀이다. 字는 君則이며, 본관은 眞寶이다. 11대조 李碩은 고려조에 縣吏로 발신하여 밀직부사에 증직되었으며, 아들 李自脩는 문과에 급제하고 鄭世雲을 도와 홍건적을 물리치고 松安君에 봉해졌다. 후에 왜구를 피해 안동으로 이주하였다. 부군은 164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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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저자를 애도하기 위해 李光庭이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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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萬, 柳聖和, 金景泌, 河瑞龍, 權正始, 權墉, 邊有達, 權蕙, 柳春榮, 權蘊, 丁志恒, 再從兄徵兼 등이 지은 저자를 조문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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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權藼, 李朸, 申命岳, 再從兄義兼, 族姪垕, 從子重光 등이 지은 저자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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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저자의 아들 李重延이 지은 저자의 墓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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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증손 李漢膺이 지은 저자의 家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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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외증손 姜必孝가 지은 저자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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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제겸柳致明이 지은 저자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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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성재집(省齋集) 省齋 權相翊의 문집. 16권 8책. 연활자본. 本集 16권 8책은 族姪 明燮이 편집하고 간행하였으며, 族姪 中煥이 편집하고 간행한 續集 12권 6책과 『德谷答問錄』 1책이 전하고 있다. 본집의 卷1~2에는 詩가 수록되어 있고, 卷3~6은 書가 수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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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宿江榭, 周王山歌, 次李表廣初(中業)記夢詩十韻, 訪邊國衡(台均)呼酒賞荷臨別以惜別二字分韻得惜字, 廣初有臺寺同捿之約竟孤渴望吟成二絶以叙懷, 余夙有心痞之憂試藥不能己醫言疏湮 鬱導天和不可以刀圭爲也宜風乎溟海之上窮覽以自廣往年余東遊白巖越松間吊蹈海舊跡望울陵窺扶桑以歸固有敍神養氣之效醫之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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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壬子夏校溪村先生遺集與李元哉(濟相)繼文(承宇)拈集中韻以志感, 早春野行, 雲圃金公(景洛)挽, 挽洪丈(哲厚), 文山歸路訪金汝玉(載珪), 幽居述懷, 過鳳城舊郡, 次寄金建弼(澤鉉)晩樵幽捿韻, 挽金景賓(輝國), 上元夜滯雪箭溪與張禹明(奎夏)話感, 次桂山書齋韻, 挽族弟舜協(相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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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스승인 西山 金興洛(1827~1899)에게 올린 편지이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門下에 받아주시기를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다. 1882년(고종 19)에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였으니 대략 그 시기에 쓴 편지인 듯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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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山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지난겨울 靜山寺에서 토론이 있은 이후에 『中庸』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이 있는 것을 정리하여 올린 편지이다. 氣質의 측면에서 사람과 만물의 道가 절대로 같지 않다는 것과 이를 미루어 사람의 본성과 만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하는 南塘 韓元震의 주장은 氣를 性으로 인식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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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山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歲暮가 되어 선생께 안부를 전하면서 가세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근검절약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사전에 준비가 부족하여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매번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이러한 까닭으로 공부가 게을러지고 근본을 배양하는 일에 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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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山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定齋 柳致明(1777~1861) 선생의 행장이 초고는 완성되었지만 병환으로 누웠을 때 자제들에게 당부하신 내용이나 慎庵 李晩慤이 옆에서 간호를 하며, 斯文의 책임을 맡을 사람에 대하여 나눈 이야기 등 직접 보았거나 알고는 있지만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모두 採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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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直齋李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響山 李晩燾(1842~1910)에게 보낸 편지이다. 科擧에 대해서는 外物을 탓할 수 없는 것이며, 자신은 자질이 부족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과거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나 선비가 따를만한 것이 아니었으며, 지위를 얻은 후에 道를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古人들이 外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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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直齋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조부의 3년 喪을 치르고 다시 弔文을 받은 뒤에 보낸 편지이다. 『中庸』에 대하여 공부한 일과 『易經』의 繫辭를 통독하고 “천하의 일은 戒愼보다 좋은 것이 없다. 나는 『易經』에서 커다란 뜻을 얻었는데, 단지 ‘戒愼’ 두 글자뿐이었다. 장차 이 두 글자를 일생동안 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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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直齋先生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道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언급하고 어떤 사람이 커다란 안목과 역량으로 올바른 학문을 바로 세워서 금수와 같은 夷狄들의 손에 넘어가게 하지 않을지 근심스럽다고 하고, 자신도 자제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함과 능히 시대에 俯仰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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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西坡柳丈(必永)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西坡 柳必永(1841~1924)에게 보낸 편지이다. 평소 체증이 심한데도 치료를 하지 않은 것도 두렵지만 반평생동안 심히 어긋나서 父兄이나 師友들의 희망에 부합되지 못한 것이 더욱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하며, 朱子가 말한 ‘節飮食’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많은 병이 ‘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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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晦窩郭丈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晦窩 郭선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근 국내에서 탁월한 필력을 가진 사람은 선생뿐인데, 선생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선생의 글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며, 實踐躬行하는 삶을 살아온 祖父의 銘을 부탁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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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晦窩郭丈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많이 그릇되고 스스로 지나친 바가 있다는 것을 주지하고 있는 바이니 別紙로 보내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기를 청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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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晦窩郭丈別紙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朱子가 南軒이 ‘仁’에 대하여 논한 것에 답장을 보내어 “이 仁이라고 하는 것에 만약 天地萬物이 없다면, 이 理 역시 부족함이 있다.”고 한 것에 대하여 九思堂 金樂行과 大山 李象靖이 언급한 내용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으나 최근 친구의 집에서 唐本 『朱子全書』를 보고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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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曉菴李丈(中轍)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曉菴 李中轍(1848~1937)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스로 자질이 미약하고 뜻이 유약할 뿐만 아니라 병도 잦아서 끝내는 어른들께 죄인이 될 것 같다고 하며, 여름부터 더위를 피하고 調養하기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아왔으나 이곳 역시 賓友들의 잦은 내방으로 조용하지 못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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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進士(鎬相)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進士 金鎬相에게 답한 편지이다. 일생동안 힘을 다해서 『大學』에 대한 講解를 하여 그 精微함과 깊이는 학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각 장의 마지막에 서술한 것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異見이 있을 수 있으며, 범례의 의미나 文字의 용법과 字句의 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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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內舅(赫奎)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외숙인 趙赫奎에게 답한 편지이다. 부친의 상을 당하여 경황이 없으면서도 집의 아이와 외숙모의 喪에도 가보지 못한 것을 자책하였는데, 갑자기 외사촌도 뒤를 따랐다는 소식을 들으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며, 청하신 墓銘은 올리겠으나 萬의 하나라도 表揚할 수 없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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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梅巖(鐓)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梅巖 姜鐓에게 답한 편지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從兄과 더불어 의지하며 살았는데, 집안에 다시 이렇게 슬픈 일이 발생하여 섣달 그믐에도 守燈하고 있으니 슬픔이 매우 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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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君奭(㙽)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金奭(㙽)에게 보낸 편지이다. 太古公의 碣文에 대한 도움을 청하고, 이제부터는 여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글을 그대 같은 사람들이 지어야할 것이라고 하며, 취사선택의 자료로 삼기 위하여 의심나는 부분을 몇 곳 표시해 두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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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進士(康鎬)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進士 李康鎬에게 답한 편지이다. 『陶山全書』를 살펴보면서 紅‧白‧黃 등 세 가지 색깔로 표시를 한 것은 자세히 살피고자 한 뜻으로 후세들이 모범으로 삼아 좇을 것이기 때문에 대략 살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10개월 이내에 凈本을 쓴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어려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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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星五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朴星五에게 보낸 편지이다. 말미에 朱子의 ‘森桂坊事’를 인용하여 결말을 짓고는 우리에게 자세히 검토하여 완성하라고 한 記文이 겨울동안 하나도 진척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전하면서 아들을 보내니 本草를 잠시 빌려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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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範初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金範初에게 보낸 편지이다. 항상 스스로를 헤아려 鄭重하지 않음이 없고, 감히 함부로 하지 않으며, 끝까지 능히 自持하지 않는 까닭은 師門에 누를 끼칠까 두려워서라고 전하면서 사적인 것을 일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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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盧致八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盧致八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洙泗言仁』과 『五服圖』에 誤字와 闕略된 부분이 있어서 별지에 기록하여 보내니 살펴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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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洙泗言仁』의 「南軒篇」에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나 本集이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 「仲弓問仁章」에서는 朱子가 말한 부분의 ‘欲’자가 ‘意’자의 오자라고 하였으며, 「子貢曰管仲非仁者章」에서는 ‘多’자가 ‘加’자를 잘못 표기한 것 같다고 하였다. 『五服圖』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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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汝涵(翊模)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汝涵 金翊模에게 답한 편지이다. 부탁한 글을 보내면서 자세히 살펴서 수정하고 정리하여 모두가 瘡疣가 없다고 판단한 연후에 出手하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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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國卿(中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國卿 李中均에게 답한 편지이다. 부탁한 序文을 이미 여러 차례 수정을 하였으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며, 선인의 徽蹟을 모두 갖추지 못하였으나 시일이 촉박하여 대략 완성된 것을 보내니 잘못된 부분은 修削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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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伊弼(敎殷)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伊弼 李敎殷에게 보낸 편지이다. 六旬을 맞이하여 직접 찾아가서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날씨가 여의치 않아 뜻대로 할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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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應夏(淵龜)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應夏 柳淵龜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呂卿에 대한 행장을 보고, 특히 子婦인 朴부인에 대한 부분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족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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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葵馨)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姜葵馨에게 답한 편지이다. 癯翁의 遺編을 후대에게 전하고자 정리하면서 부탁한 일에 대하여 회답한 것이다. 朝野의 여러 사람들의 글이 刪節됨이 없어서 조금 번잡스러울 뿐만 아니라 謄寫할 때에 잘못되거나 탈락된 부분 등을 지적하며, 연내에 완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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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聖循(翰模)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聖循 權翰模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낼만한 곳에 건물을 짓는 것과 관련하여 涴亭의 벽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지나친 염려인 것 같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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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寬汝別紙(論四禮要式)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金寬汝에게 보낸 別紙로 四禮要式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冠禮‧婚禮‧喪禮‧祭禮 등에 대하여 논하였으며, 특히 혼례의 合卺과 상례의 設奠‧成殯‧成服, 그리고 제례의 小祥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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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國賢(斗翼)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國賢 朴斗翼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번 달 보름쯤에 친구들과 丹山을 유하면서 島潭과 石門 등을 둘러보고 왔지만 총망하여 글로 남기지는 못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