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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友鄕(相翕)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弟 相翕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달 永陽에 가서 약수를 마시고 한 달이 지났으나 별로 차도가 없었다며, 冲齋 선조의 遺蹟을 정리하니 5책에 이르러 舊本과 합하여 엮으려고 논의를 했으나 지극히 신중을 요하는 일이라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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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致深(穆淵)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叔 穆淵에게 답한 편지이다. 남쪽으로 여행 중인 것은 알지만 거처를 몰라 서신을 보내지 못했다며, 평소 아들에 대한 단속이 전무하였는데 이제 멀리 떠나 타일러줄 사람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警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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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弟正甫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弟 正甫에게 보낸 편지이다. 氣魄이 아직 굳건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喪을 당하여 근심이 크겠지만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程子의 말과 『大學』의 「正心章」을 인용하여 격려를 보냈다. 이어서 최근 오른손이 마비되어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詠懷詩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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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正甫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名理에 대한 토론이 사람들에게 경계하는 바가 지극하니 우리 집안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하며, 깨달음과 학업의 성취는 나이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60 평생의 경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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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子欽(延燮)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 延燮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러 차례 서신을 받고 탁월한 견해와 올바른 지조를 간직하고 있으며, 사리가 雅練하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淳窩公과 같이 학식이 풍부한 분들을 따라 배운다면 더욱 성과가 클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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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允極(中煥)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 中煥에게 답한 편지이다. 최근 세상이 변하여 젊은이들이 대부분 다른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굳건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격앙된 뜻을 지니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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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叔元汝(善淵)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叔 善淵에게 답한 편지이다. 집안의 젊은이들이 약속이 있어서 나들이를 가는데, 함께 간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고 하며, 세상이 험난하니 각별히 경계하여 한가롭게 잡인들과 어울리지 말도록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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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允一(道煥)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 道煥에게 답한 편지이다. 어진 父兄이 있으니 배움에 진보가 클 것이니 세상의 가르침이 옛날과 다르다고 걱정하지 말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탄식하지도 말며, 자신만의 정신을 간직한 채 자신의 道理를 다스려 나간다면 달리 師友가 없더라도 스스로 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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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悳夫(魯燮)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 魯燮에게 답한 편지이다. 가을이 되면서 특별히 일이 많아서 일찍이 결단력 있게 사양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며, 선비의 배움이 반드시 토론을 거칠 필요는 없으니 오로지 송독하고 수시로 마음에 담아두어 도리에 맞게 오래도록 강구한다면 큰 진전이 있을 뿐만 아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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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悳夫別紙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①忌日에 賓客을 사양했으나 굳이 이르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②祧主를 長房의 이름으로 반드시 고쳐야 하는지, ③부모의 상을 당하면 3년 상을 치르고 매년 기일에 슬퍼하는데 자식이 없으면 그 세부절차는 어떻게 하는지, ④부친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모친의 상을 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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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悳夫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스스로 진실 되게 공부한다고 하여 반드시 집을 떠나서 배울 필요는 없다고 하며, 최근 『心經』을 읽고 의혹이 많은 것 같으나 이것은 초학자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마땅히 고인들이 힘써 행하고 경계한 바를 스스로 규명하여 힘쓰되 字句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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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悳夫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보내온 서신의 내용을 보니 스스로 성찰하고자 하는 뜻이 보이기는 하지만 단지 그렇게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오늘 뜻을 두었던 것은 공부를 더하여 다른 날 반드시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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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子思와 孟子는 단지 本然之性을 말하고 氣質之性은 논하지 않았는데 그 후에 程子나 張載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기질지성을 말한 것, 본연지성은 기질 가운데 오직 理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악함이 없는 순수한 善이고 기질지성은 形氣 위에서 理氣가 겸하여 발한 것으로 혼탁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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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姪悳夫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사람은 배움에 있어서 表裏가 하나여야 하고, 어려울 때에도 始終이 한결 같아야 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절대로 겉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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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景郁(寧文)允輅(寧駿)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 寧文과 寧駿에게 답한 편지이다. 우리 집안에 이 같은 後生들이 있다는 것이 기쁠 뿐만 아니라 직접 만나서 토론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하며, 학업을 닦음에 있어서 반드시 스승을 구할 필요는 없으니 자신의 마음을 嚴師로 삼아 정진하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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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子東煥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아들 東煥에게 보낸 편지이다. 며칠 동안 瘇患이 있었다고 하니 따뜻한 곳에서 쉬면서 찬바람을 접촉하거나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며, 이곳은 집에 있을 때보다 음식이나 거처가 편안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혹시 拂亂이 있더라도 인내하여 부딪치지 말고 祥和의 도를 따라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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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東煥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집안의 안부와 학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묻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인들의 역할과 논밭의 일 등 집안을 두루 살피라고 하면서 고인들은 詩에서 ‘집에서는 항상 일찍 일어나 나라를 걱정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말들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무한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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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與南軒論仁書誤字證辨(1905)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먼저 朱子가 南軒 張栻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仁에 대하여 논한 자료를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若無天地萬物 此理亦有虧欠’이라는 구절이 의심스러워 선인들이 논한 바를 살펴보았으나 풀리지 않았으며, 스스로 주자와 남헌의 인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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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說對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童蒙의 “‘心’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니 상세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心學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본 바는 없지만 대략 들은 바를 밝힌다고 전제하면서 “心은 오장의 하나로 血肉의 마음이며, 혈육이 있는 臟이므로 理와 氣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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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李星湖心說及心統性情圖說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心은 性을 싣고 있는 것으로 성은 理이고, 심은 氣이다.’라고 하는 星湖의 「心說」과 ‘心에는 血肉의 심과 神明의 심이 있다.’라고 하는 성호의 「心統性情圖說」에 대하여 견해를 밝혔다. 성호는 성은 이고 심은 기라고 하면서 기의 精英을 운운했지만, 마음이 이와 무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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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李星湖心統性情解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星湖의 心統性情에 대한 다섯 가지 풀이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퇴계 선생이 올린 『聖學十圖』 가운데 心統性情을 논하면서 “그 가운데 갖추어진 것은 性이고, 성으로부터 發하여 쓰인 것은 情이다.”라고 한 뒤에 스스로 未盡하다고 여겼는데, 그 미진한 까닭을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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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疑隨錄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苴絰‧葛絰‧深衣‧宗子之母服‧宗子之妻服‧爲長子斬衰者笠綱‧祧遷祖改葬服‧師服‧朋友服‧無服者麻‧初虞祝‧祔祭祝‧吉祭告新主祝辭‧墓祭祝‧行贈職先後‧孤子遭祖喪而曾祖在者服重與否 등 각종 예와 관련된 의문점들을 풀이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제례에 있어서 焚香과 降神의 의미를 기록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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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孫爲五代祖承重當否辨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東巖 선생의 五代孫이 五代祖의 뒤를 이어 承重할 수 있느냐고 하는 의문에 대해서 大山 선생이 不許한다고 답변한 내용을 제시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간직하고 있던 작자는 선현들의 말씀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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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重孫婦姑在從服當否辨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지아비가 曾高祖의 뒤를 이어 承重할 때에 그 모친이나 祖母가 생존해 있을 경우 妻가 從服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愚伏‧葛庵‧大山 등은 모두 부당하다고 하고, 蘭谷만이 승중과 종복은 서로 다른 일이니 합당하다고 설명한 것과 西山 선생이 “감히 가볍게 말할 것은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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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中禫祭行不行辨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禫祭를 찬성하는 退溪‧旅軒 등의 의견과 담제를 반대하는 沙溪‧存齋‧大山 등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東巖通攷』에 기록되지 않은 퇴계 선생과 여헌의 의견은 무시되고, 사계‧존재‧대산 등 반대하는 의견을 중시하는 풍조를 지적하였으며, 더 나아가 반대를 주장한 사람들의 견해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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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盡祖長房遷奉當否辨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長房遷奉의 禮는 『朱子家禮』로부터 시작되어 후세에 통행되는 규범이 되었지만 이것은 주자가 아직 이론으로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서신을 근거로 후세에 확정한 것이니 올바른 예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古禮는 종손이 親盡하면 長房孫은 친진하지 않았더라도 곧 祧埋하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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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衣制度攷辨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客의 深衣와 관련된 질문에 대하여 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衣裳을 서로 이은 續袵과 裳의 양변을 鉤合한 鉤邊‧겨드랑이의 솔기를 규정한 袼의 高下, 소매의 둥근 부분에 대한 袂圓應規‧방자형의 옷깃에 대한 曲袷如矩 등 부분의 접합 부분에 대한 負繩, 고름을 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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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飮酒禮圖笏辨證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鄕飮酒禮는 古禮로 그 문장은 儀禮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문장이 간결하고 節目이 복잡하여 후인들이 익히기 쉽지 않다고 전제하고, 族弟인 相用과 相經, 그리고 族姪인 命燮과 晋燮 등이 뜻이 있어 이에 여러 자료를 근거로 고증하여 정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鄕飮酒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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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疑義隨錄(1889)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中庸章句』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되는 바를 기록하고, 그 의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 문장이다. 제1장에서는 ‘天命謂性‧率性謂道‧修道謂敎’라고 하지 않고, ‘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敎’라고 한 까닭은 그때까지 性‧道‧敎 등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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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卑說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바다에서 보면 천하가 지극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낮게 여기는 겸손이야말로 가장 상서로운 것이며, 聖人의 배움도 灑掃應對와 같이 卑近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至高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낮게 여기는 것은 진실로 큰 것이라고 하며, 族兄인 汝用이 낮은 곳에 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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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姪良燮養克字說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冠禮에 즈음하여 字를 지어주는 것은 成人의 책임으로 중요한 일이며, 남자의 생에 있어서 뜻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함부로 자를 지어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甫’자를 자에 넣어 칭하는 등 더욱 크고 무거운 의미의 글자를 더하여 자의 진정한 의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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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周汝字說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晋山姜氏 直卿의 아들인 의 字를 周汝라고 하였는데, 夫子가 顔淵의 물음에 답하면서 모두 三代의 제도를 折衷했지만 冕服에 있어서만은 특별히 周禮를 취했다고 하는 문장에 근거하여 이름을 면이라 하고 자에는 ‘周’자를 넣은 것이라고 전제하고, 聖人들은 면의 不靡하고 不奢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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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羲卿人瑞字說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永陽李氏 周八의 아들인 羲卿이 冠禮를 치르게 되어 字를 人瑞라고 하였는데, 靈芝와 甘露가 생겨나거나 麒麟과 鳳凰 등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사물의 ‘稀瑞’와 治理를 넓히고 人道를 밝히는 ‘人瑞’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뜻에 충실하도록 힘쓰기를 기대한다는 의미가 크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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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二月書示東煥(1923)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回甲을 맞이한 작자가 아들인 東煥에게 써서 보여준 글로서 모두 9가지 일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첫째, 先考와 先妣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했으며, 祖考와 祖妣의 생신이나 忌日을 맞이하여도 늘 집안이 빈궁하여 情事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한으로 여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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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贈夫伯深(根晦)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耽羅에 거하는 伯深 夫根晦는 간절히 벗을 얻어 학업을 익히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 바다와 육지를 지나 수 천리나 떨어진 嶺南에 와서 몇 날을 토론한 뒤에 다시 떠나면서 반드시 한 마디 말을 일러주기를 원했다. 내가 부족하여 백심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충해 줄 수는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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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贈齋居諸君兼示東煥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李羲頊과 金正洙, 그리고 族叔인 權善淵이 나를 쫓아 학업을 익히다가 歲暮에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 나에게 勸勉할 만한 말을 청하였으나 자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십여 년 동안을 병에 시달리고 빈궁한 생활을 도모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였으며, 부친과 조부의 상을 당하여 되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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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贈李舜敷兼示族叔仲剛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老子가 말하기를 “재물이 있는 자는 재물을 보내고, 어진 자는 말씀을 보낸다.”라고 하였으나 나는 舜敷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재물은 없으니 보내고자 하여도 미치지 않을 것이나 인에 관련된 말은 다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순부와 族叔인 仲剛은 함께 山齋에 거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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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贈李表姪宗欽(1924)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表姪인 李宗欽에게 써서 보낸 글이다. 서두에 ‘萬方補養皆虛僞 惟有操心是要規’라고 하는 許魯齋의 시를 싣고, 마음을 바로잡아 스스로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마음을 다스려 병도 치료하고 덕도 가까이 하라고 전하며, 만사를 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내외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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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示李婿國瑞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사위인 李國瑞에게 보낸 글이다. 분노, 東萊 呂선생의 고사, 嬌艶한 유혹, 金庾信의 斬馬에 대한 고사, 年輩가 대등한 諸父들에 대한 태도, 늦게 일어나는 습관 등 모두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경계할 것을 당부하고, 실제로 이러한 病痛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깨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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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權相翊의 長子인 東煥의 婚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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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志說贈李君學純(正敎)兼示李聖用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孔子‧孟子‧程子‧朱子 등 聖賢들의 말씀과 退溪가 李宏仲과 趙士敬에게 답한 편지의 내용 가운데 立志와 관련된 내용을 싣고,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기는 하지만 유일하게 굳건한 자질이 조금 부족한 李學純이 입지를 돈독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전하면서 그의 族叔인 聖用에게도 알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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駱村集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駱村 朴文景의 문집 서문이다. 공은 큰 덕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冢宰 겸 文衡이었다. 어려서는 齋奇 선생께 배우고 만년에는 퇴계 선생과 더불어 교류하였으니 그의 성취는 근본이 있었으며, 장자인 灌園도 당시의 명신으로 文章이 성하였으나 병란으로 소실되고 남은 것은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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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齋實記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淸齋 朴審問의 實記 서문이다. 공은 癸酉靖難으로 金宗瑞 등이 살해되자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成三問‧河緯地 등과 端宗復位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質正官으로 明나라에 다녀오던 중 義州에서 사육신들이 참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하였다. 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忠貞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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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軒安先生實紀重編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重編한 晦軒 安珦 선생의 實紀 서문이다. 공은 공자와 주자를 받들어 동방 理學의 길을 열어놓은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 책은 元陵 癸未를 전후하여 발간되었으나 보충할 부분이 있어서 후손 淳煥이 도모하여 그 編第를 정리하고 煩猥한 것을 刪去하였으며, 선생의 수묵과 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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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溪金公遺卷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玉溪 金命欽의 문집 서문이다. 공은 부모를 극진하게 받들어 향리와 宗黨에서 효자라는 칭찬이 자자하였다. 일찍이 玉川 趙德隣을 스승으로 받들었고, 스승이 원방으로 유배되자 눈물을 흘리며 신원하기에 고심했다. 또한 식량을 보내어 가족의 생계를 도왔고, 죽은 후에는 후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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炳燭齋鄭公遺卷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炳燭齋 鄭之鏶의 문집 서문이다. 공의 문장은 理順辭達하고 平易撲直하며, 실용을 중시하였으니 菽粟이나 絲麻처럼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龍浦 李濰에게 수학하였으며, 실천을 중시하여 나이가 들어도 태만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인들이 늙어서 학문을 좋아하는 것은 촛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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澹月聯芳稿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宜寧余氏 余忍拙과 余庸窩의 문장을 모은 『澹月聯芳稿』의 서문이다. 옛 선인들 가운데는 훌륭한 덕이 있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수양이 士類들의 推重을 받는다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인물들의 훌륭한 덕이 줄어드는 것은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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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父星臺公慶壽讌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1895년(고종 32) 민비시해사건으로 畿湖와 영남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안동의 柳止浩와 金興洛 등은 의병을 일으키고 星臺 權世淵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공은 여러 차례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며 단에 올라 격문을 발표하여 민심을 크게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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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錄後叙(1914)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遯庵 權敦淵이 太廟에 들어 三盛을 배알하고 그 顚末을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일과 관련된 것은 수록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전후의 일기와 감회를 첨부하여 『己亥錄』이라고 이름 하였다. 기록된 내용 가운데 盛典을 칭송한 것과 뛰어난 계책을 찬양한 것은 응당 館閣과 大雅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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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厓權公實紀後叙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洛厓 權崇立의 實紀 後叙이다. 공은 丙子胡亂 때에 재종숙 慶中‧종숙 日巖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공의 동생인 權訓正과 아들 權湜도 의병에 참가하여 雙嶺 좌병사 許完의 휘하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부자와 형제가 충절을 행한 것은 실로 공의 인도와 권장으로 인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