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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澗年譜後識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松澗 李庭柏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이전의 인물이다. 공과 관련된 사적은 碑誌와 墓碣 등에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지만 후인들이 소홀하게 다루어 누락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12대 손인 李承杰이 평소에 여러 자료를 정리하여 年譜를 편집하였으며, 處士 李中業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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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新定五服圖後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朱子家禮』의 首卷에는 五服圖가 있어서 服述을 연구하는 자들은 一目瞭然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親屬行第의 排列이 심히 窄狹하고, 그 변화의 절목이 자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보완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어서 服制의 경중에 따라 그림을 그린 다음 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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畏巖申公遺集跋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후손인 申洪鎰과 傍孫인 申義圭가 선조인 畏巖公이 세상을 떠난 지 200여 년이 지나 그 遺文을 蒐整하고 후인들의 글을 첨가하여 펴낸 문집에 실린 발문이다. 공은 당호를 ‘順俟’라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畏翁’이라 하였으니 스스로 그 命을 기다리고 스스로 수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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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族姪性厚石泉雜詠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어려서부터 詩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여 평소 시에 대한 식견이 어둡기는 했지만 族姪인 性厚의 시를 보면 늘 흡족해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근자에 함께 述懷詩 10首와 石泉雜詠 22首를 지었는데, 다소 부족한 면은 있지만 七絶 등 일부 시는 흡족해 할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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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顧堂集重編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花原君 權喜學의 遺文인 『感顧堂集』은 먼저 御製 여러 편과 後賢들의 논술을 합하여 12권으로 엮은 것을 族弟와 傍系 후손인 基淵이 修整을 청하여 안타깝지만 미비한 부분을 刪去하고 4책 8권으로 편집하였다. 공은 신하로서의 節義를 다하고 법도에 맞는 행동으로 엄격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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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林續集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鶴林 權訪의 유집은 1844년(헌종 10)에 11권으로 간행되었으나 후손들이 뒤에 공의 詩‧疏‧序‧記‧雜著 등을 모아 한 권으로 만들고, 다시 당대의 諸賢들이 撰한 공의 行狀‧墓銘‧祭文 등을 모아 한 권을 더 만들어서 權在中이 考整을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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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警齋先生實紀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警齋 郭先生의 實紀 발문이다. 후손인 郭成業이 蘇齋 盧선생과 荷塘 權斗寅이 撰한 誌狀과 諸賢들이 논술한 것을 모아 實紀를 만들었다. 공의 遺文은 그다지 많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편집이 완성된 뒤에 곽성업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게 와서 보여주며 跋文을 청하였다.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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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野人柳公自序後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柳志亨이 자신의 王父가 스스로 ‘野人’이라 칭한 것과 관련하여 글을 청하여 朱子의 「雲谷」시 등 자료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공의 거처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竹潭과 雲汀 사이에 거했다고 하니 그 즐거움을 가히 짐작할만하며, 이제 그 遺文을 보니 더욱 상상이 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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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晶山公贈杞翁帖後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집안의 曾祖로 돌아가신 參判 晶山公 權載大가 王考인 杞泉府君 權承夏에게 唐詩를 抄寫하여 주었는데, 識文 중에 ‘孟吉’이라는 두 글자는 杞泉翁의 小字가 되었고, ‘汝車’라는 두 글자는 정산공의 表德이 되었다. 두 분 모두 필법이 뛰어나셨으니 남기신 『唐詩正音』 한 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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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族人泰海謄譜帖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臨瀛에 살고 있는 族人 權泰海와 權五進 등이 찾아와 處士公 權正翕의 후손이라고 하여 족보를 찾아보니 처사공에게는 아들이 세 명이 있었다. 그 가운데 막내인 權思休가 配位도 없이 字가 甲之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어려서 고향을 떠났으며, 권태해 등이 그 후손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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冠禮儀抄跋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邊公이 아들인 邊鎬廸의 冠禮에 三加의 儀式을 행하고는 나에게 말하기를 “고금의 예가 지나치게 번잡하거나 간소화 되었으니 이에 절충하여 규정을 정하여 후인들이 따르도록 하고자 한다.”고 하면서 跋文을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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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日箴(1883)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자신의 過失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을까 스스로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1883년(고종 20) 至日에 지어서 西山 金興洛 선생께 보이니 선생께서 “箴의 뜻이 매우 좋으니 이에 의거하여 工夫를 하되 더욱 무르익게 하라.”고 하셨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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除夕帖(1922)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60세의 歲暮를 맞이하는 마음을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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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朝帖(1923)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정진하려는 뜻을 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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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齋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나는 性氣가 懦弱하고 工夫가 粗淺하여 사특한 생각과 망령된 행동이 있어도 능히 猛烈하게 반성하고 고치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名譽를 毁損함이 지극함에 이르러도 그 움직이는 바가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이에 감히 ‘省’으로 齋의 이름을 삼고, 銘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여 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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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窩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寢郞 朴世鉉이 거처를 素窩라고 한 뜻을 자세히 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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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泉齋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宗人인 重沔이 先君의 유지를 받들어 山泉齋를 짓고 토지와 재물을 마련하여 족친들의 吉凶을 구휼하고자 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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杖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지팡이를 갖게 된 경위와 지팡이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하여 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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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塘精舍上梁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渚谷里에 있는 野翁公의 別墅는 3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舊址를 확충하여 작은 정자를 짓고 ‘圓塘’이라 하였다. 산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다. 동쪽으로는 내가 흐르고 내 주변에는 꽃과 버드나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차밭으로 가는 길과 대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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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亭重建上梁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沖齋 權橃의 2남인 石亭府君이 卯谷 十畝의 園林에 창건하였는데, 주변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정자를 둘러싸고 있으며 앞에는 확 트인 시야가 남달랐다. 세월이 오래 되어 棟宇는 비바람에 잠기기도 하고, 새와 쥐의 侵囓을 받기도 하여 근심하던 차에 중지를 모아 중건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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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李先生墓道改碣告由文(代本孫作)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艮齋 李德弘의 묘에 改碣을 한 뒤에 후손들을 대신하여 고유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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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冲齋先生墓道改碣時告由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先祖인 冲齋 權橃 先生의 묘에 改碣을 할 때에 쓴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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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代祖考成均生員府君墓道安石告由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七代祖考인 成均生員府君의 묘에 安石하고 지은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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槐潭裵公不祧告由文(代本孫作)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槐潭 裵相說의 不祧에 즈음하여 후손들을 대신하여 고유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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巷南權公贈職焚黃告由文(代本孫作)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巷南 權思晦의 贈職에 즈음하여 후손들을 대신하여 고유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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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先祖司正公墓道改碣告由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從先祖인 司正公의 묘에 改碣을 하고 쓴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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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謙庵柳先生文(緬襄時,代三漢儒生作)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謙庵 柳雲龍의 묘를 옮기고 다시 장사지내는 緬禮를 행하면서 儒生들을 대신하여 지은 제문이다. 공은 退溪 선생이 陶山에서 서당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고, 여러 해 동안 왕래하며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선생으로부터 많은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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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西山金先生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스승인 西山 金興洛의 제문이다. 선생의 道는 奇特하거나 高遠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敬’과 ‘誠’ 두 가지였으며, 이것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일 따름이었다. 또한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그치지 않으면 근본이 바로 서게 되고 道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뿐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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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王考靜齋趙公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外王考인 靜齋 趙性玉의 제문이다. 府君께서는 천부적으로 溫雅한 자태를 지니셨으며, 체격이 단아하시고 말씀하시거나 웃으실 때에도 법도가 있으셨다. 때문에 부군께서 한 마디라도 말씀을 하시면, 다른 사람들이 다른 말로 아니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鞠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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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上舍丈(炳商)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上舍 李炳商의 제문이다. 고인은 이미 멀리 떠나고 보이지 않으니 그립구나! 생각이 나는구나!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이 개탄스럽다. 내가 늦게 태어났으나 다행히 그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덕을 겸하여 참으로 아름다웠고, 온화한 용모를 가지셨으며, 莊重하고 淸厚하셨다. 뿐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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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直齋先生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향산 이만도의 제문이다. 세상에는 글로써 죽은 자를 제사지낼 때에 그 事行에 대한 칭찬을 열거하기에만 힘을 쓰니 죽은 자로 하여금 부끄러운 기색을 갖게 한다. 이것은 선생께서 평소에 심히 경계하신 바이며, 나도 역시 부끄럽게 여기는 바였다. 오늘 선생의 죽음을 맞이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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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上舍(悳永)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上舍 金悳永의 제문이다. 공의 淸修莊重하고 봉황이나 학과 같은 矯峙함은 士君子들의 儀表가 되었고, 恬泊寬厚하고 激하지도 隨하지 않음은 士君子들의 心法이 되었으며, 重內輕外하고 劑古酌今함은 士君子들의 行識이 되었으니 이는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것으로 진실로 다른 사람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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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母眞城李氏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再從叔母인 眞城李氏의 제문이다. 종숙모께서는 내가 어릴 적에 은혜를 베풀어 어루만져 주시고 거두어 주셨으며, 내 아이와 서로 연배가 비슷하니 형제처럼 영원히 의지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도 하셨는데, 평소에 서로 더불어 막역하게 지내고 하루 종일 같이 놀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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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朴公(世翼)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外舅인 朴世翼의 제문이다. 장인의 삶에 나타난 가족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에 대하여 기술하고, 평소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관심과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상을 당하여 슬픈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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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君受伯(錫九)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權錫九의 제문이다. “옛날 그대의 高王考께서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나의 조부께서 제문을 지으셨고, 그대의 조부께서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나의 先君께서 제문을 지으셨으며, 그대의 선군께서 요절하였을 때에는 내가 제문을 지었는데, 그 문장들이 모두 하늘을 원망하는 커다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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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汝衡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叔인 汝衡의 제문이다. 세상이 변하여 선비들의 자세가 옛날과는 사뭇 달라져 지나치게 교만하거나 영리를 밝히는 등 儒者의 법도와는 위배됨이 심하였다고 하면서 守株窮居하여 능히 넓게 세상의 선비들과 사귀지는 못했지만 鄕黨과 종족 가운데 선비다운 자질을 갖추고 평생 동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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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大父(中夏)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大父인 中夏의 제문이다. 공은 魁頎한 자세와 坦慤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덕을 관대하게 베풀어 주셨다. 뿐만 아니라 宗黨의 후손 가운데서도 자세와 의지가 모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공께서는 가르침을 받을 만하다고 여기시고 끝까지 나를 眷戀하셨으니 상을 당하여 크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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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郭晦窩先生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晦窩 郭先生의 제문이다. 선생께서 갑자기 세상을 버리시니 우리나라는 장차 어찌하며, 우리 士林은 또 어찌 하겠는가? 선생은 친히 隴畝를 경작하며 廊廟의 중책을 맡기도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학문을 持養하는 깊이와 見理造道의 견실함은 물론 역량과 자질의 광대함 또한 儒家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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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相重)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兄인 晶沙 權相重의 제문이다. 공은 수려한 자태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맑고 두터운 덕을 함께 간직하고 있었으며, 勤敏한 재주를 품고 있으면서 그 뜻을 펴는데 힘썼다. 나는 공보다 9살이나 적으면서도 평소에 함부로 대하거나 번거롭게 하기도 하였으나 宗黨의 모임에서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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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表弟李廣初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響山 李晩燾의 아들인 起巖 李中業의 제문이다. 癸亥年에 태어난 동갑으로 어렸을 때에는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였으며, 같이 遊하기도 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성장한 뒤에나 나이가 든 후에는 책을 좋아하고 옛 것을 사모하는 것도 같았으며, 時俗에 어둡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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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自憲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叔인 自憲의 제문이다. 공은 젊은 시절부터 옛 것을 사모하고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일용을 절약하여 조금도 規矱을 벋어나지 않았다. 평소 儒門을 받치는 역할을 하셨으며, 신체가 건강하고 기운이 왕성하였는데, 병으로 갑자기 宗黨을 버리고 떠나시니 그 큰 슬픔으로 인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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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泰叔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李泰叔의 제문이다. 공은 타고난 품성이 莊重하고 성실하였으며, 財物을 輕視하고 義를 重視하였다. 뿐만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고 서책을 가까이 하였으며, 넓은 장소를 마련하여 賓客과 벗들이 모이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공의 병이 이미 깊어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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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敬誠(永燮)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族姪인 敬誠 永燮의 제문이다. 天理는 측량할 수 없고, 人事는 알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뛰어난 인품과 덕성을 지니고 일찍부터 宗事의 기둥이었던 사람이 병으로 생을 마치니 이는 우리 宗中의 불행이 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나는 장차 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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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舅趙公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外叔인 趙公의 제문이다. 공은 칠십 평생을 克幹하고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았으며, 그 품성은 온화하고 강건하였다. 또한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 친구사이에 우애가 깊었으며, 宗黨과 관련된 일을 성실히 하여 子弟를 가르치거나 집안에 임해서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를 모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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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全星七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全星七의 제문이다. 평소 서로 기쁨을 함께 나누었는데, 잠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이것이 과연 어찌된 理致인가? 옛날 공의 집은 사대가 함께 화목하게 살았는데, 이렇게 떠나다니 정말 人事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로다. 나는 박복하게도 갑자기 평생의 벗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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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賛叔誄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친구인 李賛叔이 1929년 12월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하며 지은 글이다. 眞城李氏 집안의 수십 대 宗嫡으로 수 많은 族黨을 신의로 조절하였으며,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歡心을 얻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나니 宗黨과 벗들의 슬픔이 어찌 깊다고 하지 않겠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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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李景龜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李景龜가 33세의 나이로 1923년에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지은 글이다.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깊이 슬퍼하여 絰帶도 풀지 않았고, 아무리 덥거나 눈이 쌓여도 반드시 아침 일찍 묘소를 찾아 절을 올렸으며, 諸父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이 하였을 뿐만 아니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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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孟厚(奎洛)哀辭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沃川全氏 孟厚 全奎洛이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며 지은 글이다. 무리 중에서도 뛰어난 인물로 매우 강건한 인물이었으며, 예의범절을 고루 갖추고 있었으나 갑자기 병을 얻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을 원통해 하였다. 文尾에 輓歌를 실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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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兵曹參判吾軒朴公墓誌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吾軒 朴齊淵의 묘지명이다. 공은 본관이 潘南이고 字는 聖源이다. 曾祖는 時晋, 祖父는 成榦, 父는 在純이고, 어머니는 安東權氏 處士 權師善의 딸이다. 西山 선생이 行狀을 짓고 響山 선생이 碣銘을 지었으나 誌를 갖추지 못하여 공의 曾孫인 朴興緖가 著述과 기록된 자료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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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憲府掌令槐軒金公墓誌銘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槐軒 金瑩(1765~1840)의 묘지명이다. 공은 본관이 延安이고, 字는 義兼이다. 曾祖는 光世, 祖父는 㵓, 父는 慶集이고, 어머니는 鳳城琴氏 僉樞 琴瑞鳳의 딸이다. 공은 德性이 宏厚하고 거동이 峻整하였으며, 특히 독서를 좋아하여 四書六經에 뛰어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