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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子松皐宋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松皐 宋程欽(1839~1883)의 행장이다. 공은 본관이 冶城이고, 字는 敬叔이다. 曾祖는 相天, 祖父는 始煥, 父는 在衡이고, 어머니는 義城金氏 金秉運의 딸이다. 12세에 梅窩 權秉憲에게 취학하여 일과를 부지런히 함은 물론 효제를 실천하는데 힘썼으며, 1860년(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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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沙權公行狀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松沙 權斗緯(1656~1732)의 행장이다. 공은 본관이 安東이고, 字는 仲章이다. 曾祖는 來, 祖父는 碩忠, 父는 濡이고, 어머니는 禮安金氏 金鑒의 딸이다. 15세에 부친을 여의고 24세에 葛庵 선생에게서 수학했다. 네 명의 형제 가운데 형인 斗經과 두 동생인 斗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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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齋李公行狀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恒齋 李翊九(1838~1912)의 행장이다. 공은 본관이 驪州이고, 字는 能伯이다. 曾祖는 輝春, 祖父는 章璞, 父는 鍾極이고, 어머니는 密陽孫氏 孫承圭의 딸이다. 1865년(고종 2) 許傳 선생을 배알했는데, 선생은 공의 자세와 뜻을 칭찬하고는 爲學의 방법을 알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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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史申公行狀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白史 申錫鼎(1818~900)의 행장이다. 공은 본관이 平山이고, 字는 享吾이다. 曾祖는 益釆, 祖父는 兌烈, 父는 在夏이고, 어머니는 永川李氏 李應奎의 딸이다. 공은 여려 차례 과거에 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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叔祖頤齋先生家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頤齋 權璉夏(1813~1896)의 행장이다. 선생은 본관이 安東이고, 字는 可器이다. 曾祖는 思敬, 祖父는 同度, 父는 載德이고, 어머니는 義城金氏 金甲東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남달랐다고 하며, 7‧8세에 이미 “사람은 누가 낳은 것이냐?” 혹은 “사물은 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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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樂山先生遺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企庵 李完(1512~1596)의 유사이다. 선생은 본관이 眞城이고, 字는 子固이다. 曾祖는 繼陽, 祖父는 植, 父는 河이다. 어려서는 季父인 退溪 선생에게서 배웠으며, 영민하고 필법이 뛰어나 노선생이 가장 큰 기대를 하였다고 한다. 15세에는 『論語』를 배웠는데, 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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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按廉使吳先生遺事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吳國華의 유사이다. 선생의 선조는 중국에서 왔으며, 高麗朝에 벼슬을 하였으나 그 내력은 상세하지 않다. 선생이 按廉使로 嶺南에 있을 때 圃隱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3일 동안 통곡한 뒤에 埋印하고 聞韶의 魚鳳山에 은거하여 종신토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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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結先生遺事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百結 朴文良의 유사이다. 父는 新羅 婆娑王의 5세손인 忠烈公 堤上이다. 선생은 玆悲王 때의 名臣이자 거문고의 명수로 왕이 匪人을 많이 등용하여 失政을 하자 글을 올려 諫했으며, 받아들이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나라의 풍속은 장례를 지내기는 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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淳窩權公遺事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淳窩 權道淵(1846~1918)의 유사이다. 공은 본관이 安東이고, 字는 學緖이다. 曾祖는 世彦, 祖父는 宅模, 父는 擎夏이고, 어머니는 豊山柳氏 柳天睦의 딸이다. 공은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기는 했으나 과거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命에 정해져 있는 것으로 힘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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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祖考杞泉府君遺事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杞泉 權承夏(1807~1890)의 유사이다. 공은 본관이 安東이고, 字는 允華이다. 曾祖는 思兼, 祖父는 百度, 父는 載綸이고, 어머니는 眞城李氏 李大淳의 딸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草書에 능했으며, 15세에는 李氣秀의 문하에서 배웠다. 1834년(순조 34) 어머니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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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考處士府君遺事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익權悳夏(1810~1856)의 유사이다. 공은 본관이 安東이고, 字는 希鼎이다. 曾祖는 思兼, 祖父는 百度, 父는 載綸이고, 承夏의 동생이자 璉夏의 형이며, 어머니는 眞城李氏 李大淳의 딸이다. 삼형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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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松巢 權宇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1811년(순조 11) 尙州 山陽에서 7대손 達忠에 의해서 편집‧간행되었다. 遺稿 상태로 보관되어 오던 것을 淸臺 權相一이 2책으로 刪整하였으며, 1799년(정조 23) 경관서원에 剞劂을 부탁하였다. 경광서원에서는 7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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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和隴雲書齋舊題遙呈受業諸君子(庚午), 奉次尹景時二首(辛未), 次題書齋韻, 又次以別, 擬古, 有感(祭酉), 寒食雜詠二首(乙亥), 泮林漫興, 次韻, 過廣津有感, 舟中夜感, 舟中偶閱六臣傳時方過英陵, 睡起, 舟過記見, 贈金北崖(圻), 乙亥孟冬將遊淸凉宿磊田嶺底店舍, 蓮臺寺, 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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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網賦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자신의 은둔사상을 읊은 글이다.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화의 그물(禍網)’에 걸리는 것이라고 하여, 이러한 禍의 그물을 벗어나 숨어 살며 한가로이 지내고자 하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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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回辭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하회의 우뚝한 산과 넘실거리는 물을 노래하면서, 하회의 훈훈한 기운은 자나 깨나 그리움의 대상이며,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의지처로 여기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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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趙月川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월천 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아름다운 자질과 단아한 용모를 지녔으며 마음이 밝고 기질이 화평하여 평소 숭모해왔던 자신의 친구 金三戒가 금년 늦봄에 죽어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음을 전하고 있다. 김삼계는 친구들과 신의가 두터웠으며 남의 단점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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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趙月川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월천 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고향에 역병이 돌고 있는 탓에 一家가 사방으로 흩어져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여 매우 걱정스럽다는 내용과, 지난달 아무런 까닭 없이 붙잡혀 갔던 金垓가 성은을 입어 돌아왔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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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西厓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서애 유성룡에게 답한 편지이다. 遺集을 수집함에 있어 우선 저술한 것을 문자로 만들고 나머지 상소류와 잡저는 다시 수집‧정리하여 진상할 예정이며, 그때 通錄 한 질도 함께 진상하겠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廬江의 판본은 南義仲(南致利)과 더불어 살펴보니 잘못된 곳이 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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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西厓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서애 유성룡에게 보낸 편지이다. 南致利의 묘갈명을 짓도록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都事인 자신에게 행장을 부탁하기에 초고를 작성하였으며, 南致利의 世系와 그의 先考의 묘지명을 李德弘‧金垓와 함께 상의하여 繕寫해서 보내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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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宏仲南義仲(致利)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艮齋 李德弘(1541~1596)과 賁趾 南致利(1543∼1580)에게 보낸 편지이다. 『中庸』 27장과 32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이덕홍과 남치리에게 고칠 것을 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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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宏仲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1578년(선조 11) 이덕홍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의 구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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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宏仲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이덕홍에게 답한 편지이다. 가르침을 주신 은혜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한두 가지 의심나는 곳을 적어 보내니 편지로나 혹은 직접 만나게 되면 알려 달라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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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宏仲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이덕홍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덕홍이 ‘存養省察’을 ‘知行’에 分屬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 말에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성현들의 말을 인용하여 의견이 다름을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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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宏仲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이덕홍에게 답한 편지이다. 눈병이 나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서로 간에 의견을 달리하는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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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宏仲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이덕홍에게 답한 편지이다. 남치리가 답한 편지에서 “七情은 人心에 속해서는 안 된다.”고 한 대목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생각하는 바를 알려 달라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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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致利,1575)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덕홍이 보내온 편지에서 禹임금과 鯀의 治水에 관한 부분과 修己에 대한 부분은 의견을 달리 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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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성현들의 글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으니 조만간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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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1579)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근 의심나는 것이 몇 개 있어서 宏仲(이덕홍)에게 물었는데, 宏仲이 답장을 보내왔기에 그 내용을 다시 보내니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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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義仲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주신 편지 덕택에 의심난 곳이 풀렸음을 언급하고 있다. 아울러 致知의 先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즉 ‘知思未發’을 存養할 때의 절목으로 여기면서 이것이 ‘靜’이 되니 ‘致知의 前’이고, ‘知思旣發’은 ‘應用’할 때의 절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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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연이은 슬픔을 당했지만 일과 눈병 때문에 찾아가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최근 宏仲이 보내온 편지에 이전에 이야기한 것을 고치지 않고 詩와 함께 다시 보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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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긴 여름날 더위와 폭염 때문에 초가을에 눈병이 나서 벌써 2,3달 동안 黑白도 분별하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지난달부터 차도가 있어 失明은 면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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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南義仲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南致利에게 보낸 편지이다. 합장할 때는 반드시 祖考와 祖妣를 함께 해야 하지만, 宗子의 妻일 경우는 曾祖妣와 합장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장례지낼 때 翣扇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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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彦海(春蘭)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權春蘭(1539~1617)에게 답한 편지이다. 조정에서 祥祭 때 白笠을 쓰도록 명한 것에 대해 각종 문헌을 증거자료로 들면서 옳은지 그른지를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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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達遠(垓)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垓에게 보낸 편지이다. 居仁과 18일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趙에게 보여 주었는데, 趙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明瑞(裵龍吉)가 子明(鄭士誠)에게 알려 子明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만약 子明과 함께 가면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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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達遠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垓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祖母 산소를 移葬하여 조부의 산소와 합장함에 있어 절차와 儀式에 대해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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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達遠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垓에게 보낸 편지이다. 늙으신 부모님의 강요 때문에 할 수 없이 조정에서 녹을 받고 있음을 전하면서, 최근 물러나려고 했으나 다시 녹봉을 가해 주시니 갑작스럽게 물러날 수는 없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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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達遠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垓에게 답한 편지이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을 전하고 있다. 최근 조정의 風色이 날로 달라지고 간극이 생기는 등 波浪이 일어나고 있어 이미 조정에 들어온 자들이 매우 난처한 입장인데, 柳成龍과 金宇顒 같은 이도 매우 낭패를 겪고 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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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德凝(惺)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朴惺(1549~1606)에게 보낸 편지이다. 高明(奇大升)과 교유한 지 10년이 되었으며, 그는 결코 불충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니 너그럽게 봐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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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德凝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朴惺에게 보낸 편지이다. ‘敬’이란 ‘一心을 主宰’하는 것으로 ‘主敬而養制’가 ‘敬’의 일이 된다. ‘主宰’와 ‘工夫’는 같지 않으며, ‘主宰’는 管攝의 뜻이고 ‘工夫’는 做作의 뜻이니, ‘敬’으로써 ‘制養工夫’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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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閔伯嚮(應箕)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閔應箕에게 답한 편지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 먼 길을 갈 수 없으며 억지로라도 가보려 했으나 병이 심하여 조정의 명까지 어기게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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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而靜(就礪)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就礪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추절에 산을 벗어나 陶山에 머물 예정인데, 혹 지나는 길에 집에 들러주시면 매우 기쁠 것이며 10년 동안 교유해온 우정답게 못다 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눠보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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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或人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평소 講究한 문자의 공부는 정밀하지 못하지만 氷壺秋月처럼 맑은 마음을 함양하는 공부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자리를 함께 하면서 논의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 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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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或人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병이 들어 헛된 세월만 보낸 것이 6,7년이 되었음을 언급하면서, 군자는 ‘推己及人’이라 했으니, 자신보다 한 수 높은 足下에게 군자의 덕을 가르쳐 달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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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退溪李先生文(1571)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1571년(선조 4) 퇴계 이황의 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유학의 정종을 얻어 우리나라에 창도하신 선생님을 오래도록 받들고 모시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운명하시니 너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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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戒之文(1575)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1575년(선조 8) 金戒之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20살 된 아내와 7개월 된 자식을 남겨둔 채 눈을 감은 친구를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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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戒之葬時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金戒之의 장례 때 지은 제문이다. 빼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短命하여 뜻을 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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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南義仲文(1580)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1580년(선조 13) 賁趾 南致利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자질이 아름답고 학문에 대한 뜻이 돈독하여 타인의 본보기가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伯由丈(趙宗道)과 함께 묘지명‧묘갈명에 대해 의논하였고 서애 유성룡도 허락하였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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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義仲立石文(1581)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1581년(선조 14) 南致利의 무덤에 비석을 세울 때 지은 제문이다. 당시 안기찰방으로 있던 趙宗道와 함께 立石을 논의하여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행하게 되었는데, 西厓 柳成龍이 묘갈명을 썼고 達遠 金垓가 隸書를 작성한 바, 자신과 남치리의 생질인 명서 裵龍吉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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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具栢潭(鳳齡)文(1586)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柏潭 具鳳齡(1526~1586)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조정에서나 향리에서나 항상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음을 전하면서 자신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음을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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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蒙齋(安道)文(1584)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蒙齋 李安道(1541~1584)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퇴계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 15년 동안 孫子인 李安道가 正學을 이어오다가 눈을 감으니 애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