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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6001

    祭權松巖(好文)文(1589)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松巖 權好文(1532~1587)의 大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고아한 도량과 높은 지조를 기리고 있으며 1586년(선조 19) 봄에 자신이 西征 갈 때 써준 편지는 잊을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002

    祭金惟一齋(彦璣)文(1588)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惟一齋 金彦璣(1520~1588)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평소 자신의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음을 언급하면서 선친이 별세(1587)하기 1년 전에 구봉령이 숨을 거두었고(1586), 이후 休庵公과 권호문이 세상을 떴는데(1587), 또 1년 만에 公이 돌아가시니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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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03

    黃混元(有一)哀詞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1586년(선조 19) 가을에 자신이 서쪽으로부터 풀려 나왔을 때 국화주로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일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영원히 이별하게 되어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004

    諸說辨解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心에 대해 未發之心과 已發之心으로 나누어 논하고, 『論語』‧『近思錄』‧『心經』‧『大學』 및 선유의 말을 인용하여 存養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특히 性에 대해 ‘氣質之性’으로 간주한 『논어』의 주석과 ‘得於天’으로 여긴 『近思錄』의 주석을 예로 들면서 스승인 월천
    출처 : 유교넷
  • 366005

    遊淸凉山錄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청량산 근처에서 태어났지만 한 번도 청량산을 유람해 본 적이 없었다. 성장하면서부터 질병이 많아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1575년(선조 8) 10월 22일에 청량산 유람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1월 30일까지 한 달 남짓 동안의 여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006

    燭影論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중국 송나라의 역사기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송 태조가 어머니 杜太后의 명령으로 장차 자신이 죽으면 그의 동생(匡義 : 태종)에게 帝位를 물려줄 것을 趙普를 시켜 글로 쓰게 하였다. 그러나 두 태후가 죽자 궁궐에는 宋后의 무리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 궁궐 안의 비밀
    출처 : 유교넷
  • 366007

    策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大學』에서 주자가 정이천의 학설에 순응하지 않고 의문을 가진 후에 ‘補亡章’을 보충해 넣은 것은 『대학』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기 위함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뜻만 터득하고 대학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학문을 배웠다고 할 수 없음을 피력하면
    출처 : 유교넷
  • 366008

    自警說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하늘이 자신을 병들게 하면서도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한 것은 退守하면서 進取를 가볍게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며, 눈병이 생겼지만 맹인이 되지 않은 것은 외물을 바라봄에 있어 절제를 가지도록 한 것이며, 자신을 가난하게 한 것은 不能한 것을 구하도록 하기 위함이니,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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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09

    講會條約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1587년(선조 20) 2월 16일에 汝直(李庭栢)과 益亨이 찾아와서 講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록한 글이다. 선배들이 폐학한 것을 다시 이어야 한다는 뜻을 모았다. 1588년(선조 21) 3월부터 5일마다 한 번씩 강회를 개최하되, 우선 실학부터 시작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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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10

    賁趾南公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賁趾 南致利의 생애‧가계‧교유활동‧인물평에 대해 기술한 행장이다. 남치리의 자는 義仲, 호는 賁趾, 본관은 英陽이며, 安東 출생이다. 淸苦한 품성에 정신은 단아하며, 입지는 독실하였고 강직하여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30세 이후로는 학문에 더욱 매진하였으며, 어버
    출처 : 유교넷
  • 366011

    先君行錄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저자 권우의 先親인 權大器(1523~1587)의 행적에 관해 기록한 글이다. 권대기는 어려서부터 과거 공부를 시작하여 1552년(명종 7)에 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문과시험에 3번 낙방한 이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오직 위기지학에만 힘썼다. 권대기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출처 : 유교넷
  • 366012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花川 副正 壽鵬이 지은 輓詞이다. 기이한 재주와 고상한 행실은 세상에 모범이 되었지만 3년이라는 짧은 벼슬생활 끝에 주검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니 오열하여 눈물이 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013

    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玏(1540~1616)이 지은 輓詞이다. 평소 우애 있게 지내면서 서로 방문하기를 자주하였으며,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을 지닌 그대가 벼슬한 지 2년 만에 먼 타향에서 영혼이 되어 돌아오니 눈물이 쏟아진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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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14

    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琴蘭秀(1530~1604)가 지은 輓詞이다. 賈誼의 「鵩鳥賦」를 인용하여 불행함을 드러내면서 요절한 顔子를 끌어 안타까운 심정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광해군의 왕세자 시절 스승이었음을 부각시켜 권우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015

    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安克孝가 지은 輓詞이다. 그대의 죽음에 통곡하며 우리의 道가 다하게 되었음을 거듭 탄식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일찍 눈을 감은 賈誼를 등장시켜 슬픔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016

    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澤龍(1547~1627)이 지은 輓詞이다. 淸明한 도량과 穎脫한 재주는 남들보다 뛰어났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다시는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니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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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17

    賜祭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禮官 禮曹正郞 琴愷가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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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18

    祭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저자의 스승인 月川 趙穆이 지은 제문이다. 淸淑한 기품에 耿介한 절조와 순정한 학문을 바탕으로 확고한 자세로 위기지학을 실천했지만, 불혹의 나이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니 매우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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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19

    又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權春蘭(1539~1617)이 지은 제문이다. 일찍이 그대의 手札을 보니 말과 뜻이 丁寧하였는데, 지금 불우하게 질병에 걸려 주검이 되어 돌아오니 통곡스럽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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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0

    又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琴應壎이 지은 제문이다. 氷玉같은 맑은 정신에 松栢같은 절조를 지녔고, 어려서 유학을 배워 高明한 경지까지 이르렀으며, 왕자사부가 되어 仁義로써 輔翼하더니 하루아침에 질병에 걸려 눈을 감으니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021

    又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垓가 지은 제문이다. 고려 말부터 전해온 儒學이 퇴계 선생에게서 크게 창도되었는데, 兄이 약관의 어린 나이에 그 본뜻을 깨우쳐 후인들에게 전수한 공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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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2

    又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그대가 죽은 뒤로는 순수하고 독실한 행실을 소유했거나, 뛰어난 재주를 지닌 이가 없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023

    又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저자의 大祥을 맞아 同志‧同年‧同姓‧同鄕인 權暐가 지은 제문이다. 죽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학문의 연원이 끊어져 사우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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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4

    又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裵龍吉(1556~1609)이 지은 제문이다.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天道를 저버리고 肝膽相照하던 그대가 죽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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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5

    又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澤龍(1547~1627)이 지은 제문이다. 함께 金蘭之交를 맺어 趙穆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그대가 세상을 떠나 애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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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6

    又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저자의 小祥을 맞아 鄭士信이 지은 제문이다. 애통한 심정을 말이나 글로 다 나타낼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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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7

    又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申之悌(1562~1624)가 지은 제문이다. 만나지 못한 채 風儀만을 듣고 있다가 서울에서 벼슬할 적에 한 번 만났으나 온화한 인상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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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8

    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權暐(1552~1630)가 지은 저자 權宇의 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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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29

    墓碣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저자 권우의 묘갈명으로 鶴沙 金應祖가 지었다. 1590년(선조 23) 痘疾 때문에 京師에서 숨을 거두자 西厓 柳成龍과 藥圃 鄭琢이 동향의 여러 公들과 함께 護喪하여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서 그해 5월 鶴駕山 龍泉 부친의 무덤 곁에 장사지냈으며, 19년 뒤인 16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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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0

    魯林書院奉安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李玄紀가 權宇를 노림서원에 봉안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성리학을 창도하신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의리지학과 문장에 힘써 이름을 드높였으며, 上庠에 올랐어도 자신의 영화만을 위하지 않고 위기지학에 힘써 사림의 본보기가 되었기에 노림서원에 봉안하여 제사를 받들 것임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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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1

    常享祝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斯道를 擁衛하고 輔翼하여 후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어 영원토록 잊지 못하겠기에 제사를 올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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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2

    鏡光書院復享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李象靖이 權宇를 경광서원에 봉안하면서 올린 제문이다. 耿介한 품성으로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山林의 道長으로 사림의 추앙을 받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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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3

    常享祝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純正한 학문과 확고한 지조를 지녔으며, 남기신 遺風에 절로 공경심이 일어나고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를 지냄에 싫증남이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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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4

    跋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1637년(인조 15) 여름 張顯光(1554~1637)이 지은 글이다. 才藝로 이름을 드높인 권우는 弱冠에 이미 上庠에 올랐지만 퇴계 문하에서 性理說을 듣고는 儒者의 본의를 깨달아 과거를 포기하고 위기지학에 힘썼음을 언급하고 있다. 퇴계 사후에도 항상 퇴계의 가르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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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5

    又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李埈(1560~1635)이 지은 글이다. 평소 권우의 才氣가 豪邁하여 붓을 들면 문장을 자유자재로 지어 마치 조물주가 내려와서 상응한 것 같았다고 나타내고 있다. 자신이 안동 와룡 佳邱에 있을 때 권우의 아우인 仁甫氏(權宏, 1575~1652)가 형의 遺稿를 갖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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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6

    又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得硏(1555~1637)이 지은 글이다. 권우와는 친구사이로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 살면서 道義之交를 맺었음을 밝히고 있다. 권우의 학문은 精深하며 문장은 典雅하여 일찍부터 欽服하고 愛慕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권우의 뛰어난 문장력과 시적 재능은 불세출의 英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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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7

    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1658년(효종 9) 중추절에 金應祖(1587~ 1667)가 지은 글이다. 권우는 宣祖시대 文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을 하고 제현들과 교유하면서부터 위기지학에 침잠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독서에만 열중한 몇 해 만에 스스로 道를 깨달아 다른 후학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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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8

    御賜書帖後跋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우
    金邦杰이 지은 글이다. 왕자의 스승으로 제수된 기축년에 宣祖가 경서의 의심나는 뜻을 꺼내어 왕자로 하여금 어렵게 질문하면 權宇는 조목조목 매우 자세하게 대답하였다. 이에 선조가 가상히 여겨 친히 17폭으로 된 古詩를 써서 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권우가 죽고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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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39

    수오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수오재집(守吾齋集) 守吾齋 安敏修의 문집. 4권 2책. 목판본. 발문은 없고 권두에는 1800년(정조 24)에 쓴 豊山 柳의 서문이 있다. 문집의 간행도 대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문집 안에서 집안이 영쇠함을 여러 차례 토로한 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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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0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敬次屛谷先生時習齋韻, 新居雜詠(並小序), 廢塘(二絶), 古井(二絶), 守吾齋韻(並小序), 治圃有感, 梅(三絶), 菊(三絶), 松(二絶), 碧梧(二絶), 柳(柳名渭城), 碧桃, 桃李, 閒中答問(二絶), 閒中四伴, 花評, 竹醉日始取種叢竹於東塢箇不過五六, 六友軒詠, 月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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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1

    上樹谷權公(䋠,1762) 1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수곡 權䋠에게 보낸 편지이다. 權䋠는 저자의 스승인 병곡 권구에게 조카가 된다. 일전에 商山에서 김의원을 모셔다가 진맥을 받고 약을 지었다고 하면서 병고로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저자는 권보로부터 『퇴계문집』을 빌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병으로 제대로 보지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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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2

    與權子淵(明佑,1762) 3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權明佑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명우 역시 스승인 병곡 권구의 조카이며 저자의 평생에 걸친 도반이다. 저자는 눈병이 날로 심하여 문밖 출입을 못한 것이 벌써 수 삭이 되었다고 했다. 앞을 못 보게 되면 권명우를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부지불식간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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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3

    答李行觀(1764) 5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李行觀(孝瞻)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행관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답장을 썼다. 눈이 먼 자신의 처지가 가소로우며 집안의 우환이 자꾸 생겨나서 더욱 걱정이라 했다. 저자는 즐거운 일이 없지만 그러나 피할 수도 없어 담담히 임할 뿐이라고 했다. 이행관이 물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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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4

    答金克夫(1777) 6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金克夫(弼衡)에게 보낸 편지이다. 두 통의 편지를 연이어 수록했다. 김필형이 필첩을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대산의 시문과 아울러 저자의 글을 부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산 선생의 시문은 요구한대로 부쳤다고 했다. 다만 저자의 시문을 아울러 부탁한 것에 대해서는 참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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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5

    與金克夫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김필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원에서 문회가 있었다는 언급과 함께 당시 논의되고 있던 상소 행차에 참여하는 문제에 관해 언급했다. 저자는 김필형이 상소 행차에 참여할 것이라는 데 대해 조정에서 비답이 내리기 전에 먼저 글을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일단 관망하면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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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6

    答權伯審(應度,1779)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權應度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이다. 저자의 손자가 권응도의 집안에 장가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가 혼인을 반가워하면서 손자의 재주 없음을 말하고 다행히 군자의 집안에 장가들어 기쁘다고 했다. 권응도가 손자를 칭찬한 것에 대해 사양의 말을 했고, 신부가 현숙하여 빈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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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7

    與權希聖(思九,1782)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權思九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울로 상소 행차에 떠난 권사구에게 일기가 불리하니 포기하고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떠난 후에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노경에 몸이 상하기 쉬운데 이렇게 심한 바람과 추위를 무릅쓰고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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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8

    與權進士(正欽,1784) 9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진사 權正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정흠의 집안에 손이 귀한 것을 걱정했는데 근자에 와서 많이 좋아졌음을 언급했다. 또 천연두가 만연하여 민심이 흉흉하다는 것과 기근이 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특히 골짜기로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서 이것이 자손을 얻는 데 장애가 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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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49

    與洪誨仲(獻吉,1781) 10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洪獻吉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헌길의 집안에 자식이 죽는 참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린 자식이 크기도 전에 죽었으니 하늘의 도리가 어찌 이런가라고 했다. 아이가 죽을 때 홍헌길은 출타하여 돌아오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했음을 특히 애통해 했다. 저자는 새로운 병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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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050

    答柳秀夫(1782) 11 / 기록자료>고도서 / 안민수
    柳秀夫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규에게서 빌려온 『병곡선생문집』에 관해 언급했다. 빌려온 책은 오래 갖고 있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유규가 책을 보려고 할 때 돌려주려고 했는데 신병으로 인하여 뜻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연평서는 아직 보지 못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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