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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6251

    與柳聞瑞(鶴祚)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선대의 문집을 교정하는 일을 맡는 것은 분수에 어긋나는 일이나 의리 상 사양할 수 없는 일이라 맡았고 엉성하게 엮었으나 마땅히 후대의 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어떠한가 하고 겸양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52

    答權參判季搆(大肯)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權大肯의 동생이 의성의 수령으로 와서 治聲이 높았다고 하고, 소초의 끝에 미진한 부분을 약간 술회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53

    上族叔硏窩公(宜輔)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일통지』를 攷出하자는 말씀은 이번 달 중에 眞城 使君을 만나 의논해 보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54

    與趙參判(萬元)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자신은 늙어 백발이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고 처음에 자리 잡을 때와는 달리 백성은 가난하고 풍습은 완악하여 오래 있을 곳은 못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55

    又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趙萬元 집안의 경사를 축하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56

    與李安州(在稼)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자신이 기로소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57

    與洪侯(鍾浩)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洪鍾浩에게 보낸 서한으로 백성을 잘 위무할 것을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58

    與元侯(錫周,1837)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흉년이 들었으니 饑民을 구휼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59

    答金上舍(淸進)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金淸進에게 보낸 서한으로 雲寺에서 모임을 한 번 가지자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60

    與洪都正(1816)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영남의 횡액을 당하니 비참하여 그냥 입 다물고 모일 뿐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1

    答金德乘(養駉)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金養駉에게 보낸 답장으로 근자에 소식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내온 편지를 받으니 기쁘고 황홀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집에 자그마한 우환이 있어 같이 나아가 축하해주지 못함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2

    答朴(汝稷)慶佑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朴汝稷에게 보낸 답장으로 뜻밖에 除名을 받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3

    上內舅尹公(1818)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외숙 尹俔에게 올린 서한이다. 집안의 소식을 전하고 천연두가 승함을 전하였다. 한 번 오시겠다는 말씀에 기쁘니 8월 6일 경 더위가 조금 물러간 후 오시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4

    答朴丕卿(復基)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朴復基에게 보낸 답장으로 백씨의 遺文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읽어보니 경륜이 훌륭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5

    答鄭聖養(浩休)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정호휴의 아들이 훌륭함을 칭찬하고 高旆之席에 같이 참석할 수 없음을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6

    答姜芸甫(稷,1849)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자신이 승은을 입어 기로소에 들어가고 아들이 初仕하였으니 분수에 넘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7

    答金敬立(養植,1849)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선대의 문집 정리를 부탁받고 3책을 읽어보니 근대의 名卿의 저술임이 분명하니 마치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8

    答洪(宇正)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洪宇正에게 보낸 답장으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69

    與內弟尹宗範(1827)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외사촌 동생 尹景顥에게 보낸 답장이다. 영월부사로 있을 때 자신의 근황을 전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70

    與內弟尹彛得(1827)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영월부사로 있을 때 외사촌 某에게 보낸 것으로 剡湖의 李君이 과거에 급제하였음을 전하였다. 내제 彛得은 외사촌 尹景頤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66271

    又(1842)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院洞의 李友편으로 온 간찰을 접하고 쓴 것이다. 묘갈명을 부탁한 것은 경황이 없어 쓰지 못하였는데 다시 온 편지를 보고 썼으니 부끄러워 땀이 날 지경이라고 하였다. 외사촌 尹景頤의 부탁을 받고 쓴 花巖 尹弘鳴의 묘갈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66272

    與金壻命裕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멀리서 새로 맞은 사위에게 보낸 서한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73

    上家大人(1790)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사마시를 치기 위하여 한성에 올라갔을 때 부친에게 보낸 편지다
    출처 : 유교넷
  • 366274

    上伯堂叔父(1826)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 집안의 안부를 묻는 서한이다. 영월부사 당시의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75

    與家弟英叔恂如(1822)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동생 李家發‧李恂發에게 보낸 서한이다. 시강원 필선에 임명되어 서연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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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76

    與恂如(1827)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동생 李恂發에게 보낸 서한으로 집안의 일을 잘 처리해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힘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77

    寄兒魯奎魯璧魯翼(1818)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집안 일을 잘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하고 너희 형제들이 과거공부를 할 생각이 없으니 걱정된다고 하였다. 영해부사 당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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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78

    寄兒魯璧(1817)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로 아픈 와중에도 공부를 폐하지 않았으니 기쁘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에 있는 『주서절요』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영해부사 당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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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79

    寄兒魯翼(1817)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집안의 안부를 묻고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0

    寄兒魯勉(1840)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아들 魯勉이 사마시에 합격한 소식을 듣고 보낸 서한이다. 과거에 새로 급제함은 처녀가 처음 시집을 간 것과 마찬가지니 몸조심하라고 하고, 너의 季父가 천망에 올랐다고 하니 기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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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81

    寄孫兒絅在正在維在寅在綸在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손자들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권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82

    寄孫兒正在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손자 正在에게 보낸 서한으로 主家에 가서 너무 오래 머무름을 책망하고 공부에 힘쓸 것을 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3

    寄維在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손자 維在가 학문에 힘씀을 격려하고 내년에 증광시가 있을 것이니 준비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4

    又(1846)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사마시에 합격한 維在에게 보낸 서한으로 과거에 새로 급제함은 처녀가 처음 시집을 간 것과 마찬가지니 몸가짐에 조심하고 더욱 힘쓰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5

    寄孫兒心在(1843)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자식을 순산한 손자에게 보낸 서한으로 자식을 낳은 것과 조부인 자신이 陞秩한 것이 우연이 아니니 학문에 힘쓰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6

    大學演義序(奉敎製進)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丘濬(1418~1495)의 『大學演義補』를 간행하면서 왕명에 의해 지은 序다. 『大學演義補』의 가치를 의학서인 孫思邈의 『千金方』에 비길 정도로 『대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책이라고 강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7

    奎章閣講製節目序(奉敎製進)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규장각 초계문신의 『講製節目』의 序다. 抄啓文臣제도는 군주가 君師의 지위에서 右文의 정책을 펴기 위하여 마련한 제도로 그 규모가 조리있고 燦然하게 구비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88

    偶感自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41세 때(1808년) 살아온 날을 회고하면서 지은 것이다. 공자는 40, 50세 때까지 명성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제 나이 41세가 되어도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취생몽사 중에 살고 있다고 하고, 50이 그다지 멀지 않으므로 앞으로의 9년
    출처 : 유교넷
  • 366289

    臨汝齋集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臨汝齋 柳(1730~1808)의 문집 서문이다. 임여재의 학문적 계통이 서애 유성룡‧졸재 유원지로 부터 나왔다고 하고 일찍 과거를 폐하고 四書, 『심경』, 『근사록』, 주자서 및 퇴계의 諸書를 연구하였다고 하였다. 손자 柳鶴祚의 부탁을 받고 쓴 글이다. 『臨汝齋集』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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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0

    後松齋遺稿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後松齋 金士貞의 문집 서문이다. 이황을 사숙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만년에 소나무를 심어 호로 삼았고, 「戒家八條」를 지어 자손을 훈계하였다. 퇴계의 예설을 모아 『溪門禮說』을 편찬하였다. 후손 金驥善의 부탁을 받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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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1

    養拙齋實記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한강의 문인 養拙齋 鄭錘(1573~1612)의 문집 서문이다. 학문에 뛰어났으나 일찍 사망함을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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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2

    鋤齋集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鋤齋 都汝兪(1574~1640)의 문집 서문이다. 도여유는 한강의 문인으로 효성이 지극했고, 강우의 명현들과 도의로 교유했다. 후손의 부탁을 받고 지은 것이다. 도여유는 대구 鋤齋에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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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3

    松石遺稿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松石 朴履坦의 문집 서문이다. 朴履坦은 일찍이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중년이후 繹山아래 서실을 지어놓고 학문에 침잠하였다. 朴履坦의 아우 朴履基의 부탁을 받고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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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4

    慶州金氏族譜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경주김씨는 김알지로부터 시작하여 역사가 유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하여 문적이 없어져 簪纓顯閥이라도 그 譜牒을 온전히 하기 힘든데 月城에 사는 한 집에서 草譜 1권을 소장하고 있어 시조부터 세계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고 후손 金鼎潤이 족보를 만들 뜻이 있어 수십 년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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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295

    密陽孫氏族譜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밀양손씨는 신라 6부의 대성으로 孫順을 鼻祖로 하고 현감 孫乙相을 중시조로 한다. 후손 孫倫錫이 세계도와 『충효록』을 가지고 와 족보의 서문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296

    鄕飮酒記(承命製進)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鄕黨과 州里는 조정의 근본이고 鄕飮酒는 옛날 성왕이 예로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시초가 되는 것으로 예의 시작은 음식과 술로 행하였다. 지금 주상이 예로 교화하고자 ‘鄕飮酒儀禮, 鄕約條式’을 반포하여 준행하라고 하셨다. 향음주의 一飮‧一食‧一拜‧一坐‧一降‧一揖은 敎가
    출처 : 유교넷
  • 366297

    定齋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자신이 지은 정자의 기문이다. 定자의 의미를 풀이하고 方寸의 땅이라도 酬接함에 어지럽지 않도록 하여 마음이 정해짐을 얻고자 한다고 하였다. 1828년의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98

    大田李先生有墟碑閣重修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대전 李甫欽의 유허비각을 중수할 때의 것이다. 이보흠의 傍孫이 유허비각을 중수하고 기문을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299

    烈婦申氏旌閭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李益修의 妻 烈婦 鵝洲申氏의 旌閭記文이다. 아주신씨는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00

    越州養士齋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이희발이 영월부사로 재임할 때 세운 養士齋의 기문이다. 자신이 약간의 봉급을 보태고 읍의 문사들의 도움을 받아 건축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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