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6351

    仲子通德郞魯璧壙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아들 李魯璧(1789~1849)의 무덤에 넣은 壙記다. 이희발의 2자로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입재 정종로의 문인이다. 恭人 밀양박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출처 : 유교넷
  • 366352

    白鹿洞書院上樑文(奉敎製進)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왕명으로 지은 백록동서원 상량문이다. 백록동서원은 주자가 南康軍에 세운 서원이므로 擬文이다. 학교의 설치는 삼대의 遺制라고 전제하고 서원을 세우는 목적은 글로써 모이고 벗을 돕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백록동서원의 위치, 교육기관의 변천 등을 언급하였고 상량이후 儒
    출처 : 유교넷
  • 366353

    神明舍上樑文(奉敎製進)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神明舍는 心을 말하는 것이니 擬文이다. 陰陽化生의 관건이 神이요, 仁義禮智의 문호가 明이라고 풀이하고 天君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초계문신 당시의 저작으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66354

    金絲堂上樑文(奉敎製進)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악기와 음악에 대한 글이다. 음악은 百王의 다스림에 쓰이는 것으로 王化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金絲라고 하는 것은 원해 현악기를 의미하는 것인데 金絲堂이라고 의제함으로써 왕정과 음악과의 관련을 논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55

    蕩蕩平平室上樑文(奉敎製進)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蕩平의 의미를 논한 글이다. 六合에 가득한 것이 蕩이라고 하고 선대의 曠蕩을 준수하여 만세의 승평의 기틀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56

    犬田李先生有墟碑閣上樑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금성대군 옥사 당시 죽은 大田 李甫欽의 충절이 천고에 뛰어났으며, 학문은 泰齋 柳方善의 의발을 이었다고 하였다. 순흥부사로 있다 죽은 것을 애도하였으며, 이전의 비각이 허술하여 무너진 것을 원근의 선비들이 중수하여 비가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57

    藏待書院講堂重修上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장대서원은 의성의 4현인 松隱‧悔堂‧梧峰‧敬亭을 모신 곳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이 쇠락해져 의성의 儒紳들이 중수하고자 하여 백록동서원의 예를 받들어 중건하고 상량문을 올린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58

    伊溪社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伊溪 南先生을 모신 이계사의 상량문이다.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고, 5읍의 치적을 남겼으며, 미수 허목과 졸재 유원지의 지우와 推獎을 입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59

    聚星堂上樑文(在寧越時)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고씨들의 부탁을 받고 지은 聚星堂의 상량문이다. 芝隱 高公은 昭代의 逸士인데 영월에 내려와 정착하였으니 그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春秋로 향화를 올릴 장소가 없어 새로 영건하고자 하였으니 그 후손들이 많은 돈을 내어 건축한 것이다. 이제 堂이 지어졌으니 조상을
    출처 : 유교넷
  • 366360

    鳳山書院砥行堂重建上樑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文灘 孫遴을 모신 봉산서원의 砥行堂을 중건하였을 때의 상량문이다. 孫遴은 한강의 高弟로 학문과 효성으로 이름났다고 하였다. 후손들이 壽城에 있던 건물을 鳳山으로 옮겨 舊制에 따라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봉산서원은 대구에 있는 서원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1

    稷川書院上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守庵 鄭四震은 永川사람으로 장현광의 고제였다. 易說과 經義에 밝았으니 程朱門下의 眞訣을 밝혔다고 하였다. 선생의 후손과 사림들이 힘을 합하여 稷川에 堂宇를 세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62

    本第正寢上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본댁의 정침을 새로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 7대 동안 내려온 집으로 건물이 퇴락하여 중건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선조의 가훈을 이어받아 忠謹하고 節儉하여 가업을 흥왕케 할 것을 기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63

    祈雨社稷壇文(在寧越時)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영월부사로 재직할 당시 사직단에 올린 기우제의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4

    祈雨鯨渚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鯨渚에서 지낸 기우제의 축문이다. 예부터 鯨渚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났으니 비를 흡족히 내려주어 백성이 혜택을 받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5

    祈雨龍塘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龍塘에서 지낸 기우제의 축문이다. 龍德으로 비를 내려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6

    祈雨魚臺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魚臺에서 지낸 기우제의 축문이다. 금년의 가뭄이 심하니 비를 내려주어 民生을 살려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7

    祈雨川邊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川邊에서 지낸 기우제의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8

    祈雨竹島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竹島에서 지낸 기우제의 축문이다. 바다도 이 읍의 터전인데 금년은 봄부터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꼴을 베어먹을 지경이니 귀신이 감림하여 비를 내려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69

    道峰書院奉安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某를 도봉서원에 尸享할 때의 봉안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공이 컸음을 말하였고, 물러가서는 학문에 힘쓰고 남전향약을 시행하였다고 하였다. 도봉서원에 봉안된 某는 김명윤이 아닌가 한다. 도봉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운 인물은 김명윤이 유
    출처 : 유교넷
  • 366370

    道峰書院常香祝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스승을 따라 도를 배웠고 난을 당해서는 적을 막았으며, 一方의 유풍을 떨쳤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71

    南谷權公焚黃告由文(代本孫作)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南谷 權公에게 贈爵이 내렸을 때의 고유문이다. 어린나이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사림의 중망을 입었는데 병자호란 당시 창의하였다고 하였다. 南谷은 權相吉일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2

    烈婦鵝洲申氏旌閭告由文(代本孫作)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李益修의 妻 烈婦 鵝洲申氏에게 정려가 내렸을 때의 고유문이다. 권7에 「烈婦申氏旌閭記」가 있다. 아주신씨는 남편이 죽자 뒤따라 자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73

    雲谷書堂開基告由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운곡에 서당을 세우고 고유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4

    祭南窩先生鄭公文(襄禮時)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南窩 鄭東弼(1740~1820)의 襄禮 時에 올린 제문이다. 百弗庵 崔興遠‧大山 李象靖의 문인으로 昭代의 儒宗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75

    又(大祥時)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南窩 鄭東弼(1740~1820)의 大祥 時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6

    祭三從大父臥雲齋(命天)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三從祖인 臥雲齋 李命天에게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7

    祭外舅李公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장인 李龜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8

    祭柳判書爾卿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柳相祚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학서 유이좌와 더불어 가문을 빛냈다고 하였다. 유상조는 서애 유성룡의 종손이고 유이좌는 유상조의 사촌이다
    출처 : 유교넷
  • 366379

    祭金葛川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葛川 金熙周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김희주가 정조‧순조의 지우를 받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0

    祭柳鶴棲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鶴棲 柳台佐(1763~1837)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서애의 후손으로 儒門의 적전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1

    祭洪判書(命周)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洪命周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故家의 주손으로 주상의 知遇을 받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2

    祭魯宇鄭公(忠弼)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魯宇 鄭忠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학문이 정밀하고 孝友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3

    祭李參判來卿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草草庵 李泰淳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퇴계의 후손으로 가학을 잘 계승하였으며, 4朝의 지우를 받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4

    祭申承旨成之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申冕周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經綸과 詞章이 모두 뛰어났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5

    祭李俛齋際可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俛齋 李秉運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가학을 계승하여 세상에 있는 76년 동안 道義로 행동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6

    祭柳士能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柳奭祚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어릴 때부터 절친하였고, 과거공부도 같이 하였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7

    祭李校理惠之(東迪)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校理 李東迪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영남의 명가 출신으로 醇儒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8

    祭族叔父硏窩公(宜輔)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族叔 硏窩 李宜輔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林野에 은거한 淸修한 선비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89

    祭三從叔在山公(宜白)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三從叔 在山 李宜白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孝友에 뛰어났고, 詩禮에 뛰어났으며, 옥천 조덕린의 문인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0

    祭堂叔父(宜謙)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堂叔父 李宜謙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90세까지 강녕하였으니 지상의 신선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1

    祭金栗如(是瓘)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金是瓘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교남의 명가출신으로 가업을 잘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2

    祭李齊老(崇延)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李崇延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어릴 때부터 친하여 교분을 나눈 것이 46년이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3

    祭朴禮溪(慶協)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禮溪 朴慶協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품성이 精剛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4

    祭伯從兄(時發)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從兄 李時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49세의 나이에 죽은 종형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5

    祭四從兄遜庵公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四從兄 遜庵 李祥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학문에 힘썼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6

    祭三從兄(榮發)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三從兄 李榮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아버지 宜明과 2살 차이로 절친하였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7

    祭朴文伯(愚郁)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朴愚郁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朴愚郁은 德山에 살고 자신은 雲谷에 살아 만나고 난 다음에는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8

    祭四從兄(知發)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사종형 李知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399

    祭宗兄(元發)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宗兄 李元發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성품이 단아하고 온후하였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400

    祭堂叔父(宜浩)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堂叔 李宜浩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아버지 宜明과 형제처럼 지내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