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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6501

    國朝明經試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나라에서 명경시를 설치한 것은 經術을 강의하게 하여 세상에 쓰이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단순히 외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 그 뜻을 궁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의 중엽에는 名碩之士들이 명경으로 진출하여 서로 우러렀으니 그 때는 講製를 겸하게 하였고 외우게 만은
    출처 : 유교넷
  • 366502

    觀象監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국가에서 관상감을 설치한 이유는 옛날의 昊天이 사람에게 時를 내려주던 遺法이다. 옛날 조종조에는 천문을 공부한 문신에게 관상감의 領事를 맡도록 하였으나 중간에 어느 때인가 그것이 폐지되었다. 지금의 領事는 제조가 例兼하는 것이니 문신 중에 선발하여 강습하도록 하여 古
    출처 : 유교넷
  • 366503

    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저자의 휘는 羲發이고 자는 又文이다. 초휘는 英發인데 翼宗의 휘를 피하여 고쳤으며 雲谷은 자호이다. 본관은 영천으로 선조 牛庵 世憲이 진사로 학행이 있었고 陰崖 李耔가 천거하였으나 기묘사화를 보고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사림이 제사를 지냈다. 牛庵
    출처 : 유교넷
  • 366504

    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定齋 柳致明(1777~1861)이 쓴 행장으로 손자 李維在가 쓴 遺事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유사의 내용을 약간 줄인 것이다. 李羲發의 선대 계보를 앞에 서술하고 어릴 때의 행적은 많이 생략하였다. 13세 때 남와 정동필의 문하에 들어 수업하였음을 서술하였고, 이희
    출처 : 유교넷
  • 366505

    神道碑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손자 李維在의 부탁을 받고 洪佑順이 쓴 것이다. 遺事‧行狀과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4朝의 舊臣으로 洪明周가 항상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洪佑順은 홍명주의 아들이다. 이희발의 世系를 적고 正祖의 지우를 받았음을 강조하였다. 1854년에 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506

    墓誌銘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李明迪이 쓴 것으로 앞부분에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어 이기의 선후와 費隱의 體用을 논하는데 정밀하였으며, 정조의 恩遇를 받았다고 하였다. 나머지의 내용은 행장의 것과 거의 같다. 1854년에 쓴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66507

    諡狀 54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權大肯이 쓴 것으로 천하의 達尊은 세 가지가 있는데 爵‧齒‧德이 그것이다. 雲谷 李공은 이를 모두 갖춘 인물로 초야에서 발탁되어 정조의 융숭한 대우를 받았으며, 헌종대에 八座에 올랐다고 하였다. 이어 이희발의 세계와 평생, 立朝事實을 서술하였다. 이희발이 孝友에 뛰어
    출처 : 유교넷
  • 366508

    延諡告由文 60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판심에는 56丈으로 되어 있으나 60丈이 맞다. 李彙載가 쓴 것으로 시호가 내려지고 난 다음 고유한 것이니 1872년의 것이다. 李彙載는 李羲發이 一代의 醇儒로 5朝의 耆德이라고 하였으며 선왕의 총애를 받았고 벼슬은 八座에 올랐으며 기로소에 들어갔음을 칭송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509

    耆社帖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참판 鄭鴻慶이 썼다. 천하의 達尊은 3으로 爵‧齒‧德이 그것이다. 이를 겸하기는 어려운데 운공 이공은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여 규장각에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으며 高世之志를 품고 있었다고 하고 물러나서는 의성의 고향에서 경사를 벗삼았다고 하였다. 이제 성상께서 정조대의
    출처 : 유교넷
  • 366510

    畵像讚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鄭鴻慶이 쓴 것이다. 학과 같이 높은 산에 서 있고 90의 나이에 강녕하니 신선과 같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511

    聯和諸什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이희발이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는 시로 韓益相‧姜時永‧徐俊輔‧洪敬謨‧金熙華‧洪鍾英‧兪致崇‧楊廷彬과 아우 李家發‧恂發 및 족제 李志發, 族姪 魯均 등 모두 12인이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6512

    輓辭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이희발의 죽음을 추도한 만사는 柳致明,鄭鴻慶, 洪佑順, 趙㯖, 李秀應, 李亨秀, 金達銖, 朴宗喬, 姜哲欽, 鄭虁弼, 琴詩述, 金正銖, 金憲壽, 申宅京, 金在信, 辛志鼎, 朴在魯, 姜稷, 族姪 李魯宣, 族孫 李芝在 등 20인이 지었으며 36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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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13

    賜祭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철종이 예조정랑 吉鎭五를 보내어 李羲發을 제사지낸 제문이다. 정조의 시종신으로 활동하였음을 밝혔고, 벼슬이 八座에 올랐음을 말하였다. 또한 醇儒로 학문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무책을 올려 나라의 보탬이 되었음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514

    祭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희발
    이희발의 영전에 올린 제문으로 제문을 올린 사람은 氷溪儒生 吳載光‧朴文表, 藏待儒生 金養敎, 伊山儒生 南德煥‧南處强‧南萬亨, 蓮桂堂儒生 金驥雲, 梧陽儒生 李謙在‧李德在, 柳致明, 崔孝述, 金建銖, 李亨秀, 趙述立, 李芝運, 金羲裕, 柳致儉, 柳進璜, 尹璿黙, 柳宇睦,
    출처 : 유교넷
  • 366515

    전긍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서일
    전긍재집(戰兢齋集) 戰兢齋 金瑞一의 문집. 4권 2책. 목판본. 1868년(고종 5) 작성된 柳疇睦의 서문으로 보아 이 때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卷1에 약 200수의 시가 실려 있고, 卷2에는 「與屛山洞主」, 「答虎溪士林」 등 사림 간에 주고받은 서간을 수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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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16

    포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덕수
    포헌집(逋軒集) 逋軒 權德秀의 시문집. 5권 3책. 목판본. 1778년(정조 2)에 간행되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李象靖의 발문이 있다. 卷1은 詩와 挽辭를 담고 있고, 卷2에는 조정에 올린 상소와 친지와 벗들에게 보내 편지글이 실려 있는데, 자식과 손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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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17

    면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면재집(俛齋集) 俛齋 李秉運의 문집. 木板本, 金重明, 1896, 5卷3冊:四周雙邊 半郭 18.7×15.6㎝, 有界, 10行20字, 上下向二葉花紋魚尾:30.0×19.2㎝. 卷1에는 詩 66題 111首와 疏 1편과 書 20편이 실려 있으며, 卷2에는 書 37편과 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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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高山講堂落成伏次王考集中韻, 晩塢亭伏次王考集中韻以志其成, 至月卄五日盆梅始開五六朶冷蕊踈英淡艶可喜伏次先集中與小山從祖詠園梅韻寄晩塢, 俗離山淸溪寺, 次鄭叔顒(象觀)寄示韻, 輓晩谷趙公(述道), 輓金聖圭(宗錫), 輓濟庵金公(宗燮), 壬子正月十七日曉夢與意中諸長少呼韻覺後只記一句云詩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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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19

    應旨陳民瘼疏(己巳任咸昌時,1809)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함창현감으로 부임한 지 석 달 뒤에 지은 5,000여 글자에 달하는 장문의 疏이다. 純祖가 3월 2일에 각 고을 수령들에게 명을 하달하여 ‘백성들이 처한 어려움과 정치의 폐해를 고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보고하라’고 하자, 이에 응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진술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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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0

    上川沙先生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스승인 川沙 金宗德에게 올린 안부 편지이다. 戚王父의 일에 대해 한두 가지 의문점이 있으니, 훗날을 기다려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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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1

    上川沙先生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或問』을 읽고서 의문점을 조목별로 기록하여 질의한다.
    출처 : 유교넷
  • 366522

    上川沙先生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蓬萊山에 들어가 수천리 길을 주유하고서 막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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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3

    上川沙先生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금강산 유람을 적은 『東征日錄』을 淨寫하여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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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4

    上川沙先生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열흘 남짓 가르침을 받아 감사하며, 빌려온 책을 읽으면서 실천궁행의 자료로 삼도록 하겠다.
    출처 : 유교넷
  • 366525

    上川沙先生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遺集의 大意와 관련하여 가르침을 주어 감사하다. 그 중에서 상고할 내용은 다시 상고하고 잘못된 부분은 산삭하며 확정할 수 없는 부분을 그대로 남겨두겠다. 李象靖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과 관련된 언급으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66526

    上川沙先生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혜릉참봉을 제수받은 1797년의 글로 보인다. 뜻밖에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길에 나왔으나 체질에 맞지 않아 고민스러우니, 종신토록 간직할 만한 가르침을 내려주기를 부탁한다. 한양에서 어버이의 忌日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런 때에 제찬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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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7

    上川沙先生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혜릉참봉 때에 올린 안부 편지이다. 먼 길을 떠나와 객지에서 참봉직을 수행하자니 기질에 맞지 않는 점이 많아 민망하다. 活字 문제(『대산집』 간행)와 관련하여 李尙書와 상의한 적이 있는데, 문자를 정돈하는 것이 지금의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혹 기일을 정해서 만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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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8

    與金容淵(宗發)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아들 李秀應(1789~1864)의 字를 嘉會라 하였는데, 이름의 ‘應’ 자와 서로 부합하는지? 별도로 字說을 지어 가르침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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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29

    答金濟菴(宗燮)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지만 景慕宮의 忌日 등이 있는지라 뜻대로 행동할 수 없는 곤란한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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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0

    上方伯 4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함창현감으로 재직할 때에 올린 글이다. 극심한 가뭄을 당하여 현감으로서 조처할 대책은 없고 그저 좌시하고 있을 뿐이다. 백성들이 簽丁과 徵布의 부담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이런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여 세금을 감면 또는 연기하는 조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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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1

    上方伯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함창은 이웃 고을인 聞慶과 비교할 때 戶數와 年分과 民力 등에서 모두 상대할 상황이 되지 못하는데도 문경과 똑같이 곡식을 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또 三江으로 곡식을 운반하라는 명은 함창이 처한 흉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실행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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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2

    上方伯 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함창 고을 백성들의 고통을 감안하여 收稅를 감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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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3

    與壺谷柳公(範休) 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壺谷 柳範休(1744~1823)가 고성군수로 나가 있던 시기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누이동생의 혼례가 있었으며, 胤兄의 공부가 쌓이지 못했고 기상이 沈重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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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4

    與壺谷柳公 5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금강산 유람을 하는 도중의 간략한 느낌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알린다.
    출처 : 유교넷
  • 366535

    與壺谷柳公 5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몇 달 간의 금강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으며, 南文丈과 柳姊兄이 또 關東으로 길을 떠났다.
    출처 : 유교넷
  • 366536

    答壺谷柳公 5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혜릉참봉을 제수받았는데, 처신을 신중하게 하라는 말씀을 명심하여 잊지 않겠다.
    출처 : 유교넷
  • 366537

    答壺谷柳公 5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혜릉참봉으로 떠날 무렵에 쓴 답서이다. 『대산집』 교정하는 일이 9월에 시작되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문자를 정리하는 일에서는 의리에 합당한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며 사사로운 입장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유교넷
  • 366538

    答壺谷柳公 5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板材를 丹陽에서 이미 700板을 보내왔고, 그 나머지 300~400판은 靑松의 사림에게 부탁하였는데 아마 모아졌을 것이다. 당장 소용되는 비용이 적지 않은 터에 재물을 보내주어 매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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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39

    答壺谷柳公 5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思悼世子의 신원을 청하는 疏를 올린 일에 연루되어 1805년(순조 5)에 古今島로 귀양을 가는 종숙부 俛庵 李㙖(1739~1810)를 전송하고 왔다. 고금도의 지리나 습속을 볼 때 크게 염려할 부분은 없을 듯하지만, 오래도록 머물게 되면 또 어떻게 될 지 장담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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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40

    答李廣瀨(野淳)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廣瀨 李野淳(1755~1831)에게 답한 편지이다. 도산서원과 관련한 상소문의 초안을 보았는데, 내용 중에 작자의 의중을 오해할 대목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541

    答李廣瀨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도산서원에 致祭하는 일과 관련하여 해당 부서에서는 登筵에서 아뢴 뒤에 거행하자고 하였는데, 일의 형세로 볼 때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 1792년(정조 16) 즈음의 일로 보인다.
    출처 : 유교넷
  • 366542

    答李廣瀨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위의 상소문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논의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의리에 혐의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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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43

    答李廣瀨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대산집』 편집과 관련하여 질정하지 못한 점이 한스러우며, 부친 李埦의 『痛慕錄』 跋文은 초고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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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6544

    答李廣瀨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조부의 문집 중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준 편지가 逸稿에 있기에 등사하여 보낸다.
    출처 : 유교넷
  • 366545

    與李廣瀨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높은 연세에다 風雪이 심한 이 겨울에 멀고 험한 東海로 여행을 떠나 안위가 걱정된다.
    출처 : 유교넷
  • 366546

    與金仲紹(海進)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練祭를 지내려고 하는데 喪을 당한 경우에 어떻게 조처해야 하는지 질의하면서, 종조부 小山 李光靖(1714~1789)의 설을 소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547

    答崔淸彦(湜)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부친 李埦이 벼슬할 때에 보낸 편지이다. 崔湜이 조부 百弗庵 崔興遠(1705∼1786)의 상중에 있던 시기이다. 季祖가 최흥원의 行狀 초고를 완성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6548

    答崔淸彦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선조의 행적을 정리하여 문집을 편찬하는데 있어서, 편입시킬 부분과 다시 고려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다.
    출처 : 유교넷
  • 366549

    與姜擎厦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松西 姜橒(1773~1834)에게 보낸 편지로, 바다와 玉溪의 풍광에 대한 논의이다.
    출처 : 유교넷
  • 366550

    答金葛川(熙周)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
    葛川 金熙周(1760~1830)에게 답한 편지이다. 당시 영남 유림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壬亂初 晋州城 三壯士에 관한 언급이다. 李象靖과 后山 李宗洙(1722~1797)의 논의를 살핀 결과, 松巖 李魯(1544∼1598)를 삼장사의 한 분으로 포함시킴이 옳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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