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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葛川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남쪽 바다의 여러 섬을 두루 보고 돌아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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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大溪(周楨)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1805년(순조 5)에 結城縣監으로 부임해 있던 大溪 李周楨(1750~1818)의 안부를 묻고, 柳甥이 그 아버지의 분함을 통쾌하게 천명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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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大溪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古今島로 유배를 갔던 종숙부 李㙖가 사면을 받아 돌아온 뒤의 기쁨을 토로한 뒤에, 종숙부를 전송하러 고금도에 갔다가 감자를 처음 보고서 밭에 길러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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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北亭(宗周)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北亭 李宗周(1753~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도산서원에 致祭토록 하는 일이 주상으로부터 윤허가 내렸는데, 그 일자가 8월 20일 이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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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燁如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姊兄인 柳晦文(1758~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朱書講錄刊補』는 조부가 평생을 두고 공을 쏟았던 부분인데, 지금 교정하는 일이 지지부진하여 민망하다. 『대산집』 간행도 한두 자손의 손으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온갖 일을 제쳐두고 한두 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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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燁如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초명인 永運이 秉運으로 바뀌었는데, 선조의 문집에 ‘因名改題’에 관한 禮文이 있기에 바뀐 이름으로 改題를 하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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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耳仲(鼎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壽靜齋 柳鼎文(1782~1839)에게 답한 편지이다. 집의 아이가 文會에 참석하기 위해 갔는데 마침 비가 와서 행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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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耳仲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喪을 당하여 下棺할 적당한 장소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을 위로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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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耳仲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敎兄의 죽음을 애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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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聖立(定秀)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高山書院에서의 모임과 道院의 일에 대한 경과를 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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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聖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혈기가 未定한 청년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베풀어줄 것을 당부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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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甥誠伯(致明)仲車(致任)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생질인 定齋 柳致明과 起軒 柳致任(1805~1876)에게 보낸 글이다. 뜻하지 않게 벼슬을 받게 되었는데 ‘사양하지 말고 부임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권유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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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誠伯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유치명이 지방관으로 나가 있던 때의 답서로 보이는데, 三政의 시행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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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誠伯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白首의 몸으로 관리가 되어 이리저리 신경을 써야 하니, 산속에서 죽을 먹으며 지내는 것이 마음에 더 편할 것이라는 심정을 피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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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誠伯仲車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實心誠力으로 백성을 다스릴 것을 당부하는 말과 함께, 고산서원을 건립하는 일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벼슬하고 있는 곳의 산천과 風謠 등에 대해서도 기록한 것이 있을 테니 유치임이 돌아오는 편에 보여주기를 희망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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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任方仲(直坤)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士林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는 錦淵 刊事를 임직곤과 자신이 함께 주관하고 있는데,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낭패를 보게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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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忠立(秉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信菴 李秉夏(1780~1852)가 보내온 시를 보고서 화답시를 적어 보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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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忠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둘 다 늙어가는 처지에다 또 멀리 떨어져있어 쉽게 만날 수가 없으니 눈물만 흐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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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忠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주옥같은 시를 보고서 보잘 것 없지만 화답시를 적어 보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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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忠立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형제친척 간에 함께 모여 즐길 기회가 없어 아쉽다. 봄 이래로 태반이나 길을 떠돌다가 근래에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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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忠立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이병하가 질문한 四七說에 대해 이상정의 학설을 가지고 답변한 내용으로, 心統性情圖의 中圖는 本然之性이요 下圖는 氣質之性이며, 理氣互發說은 朱子와 退溪 이후의 定論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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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弟退可季弟愼可(1797)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惠陵參奉으로 재직하던 1797년에 고향에 남은 두 아우 李秉進과 所庵 李秉遠(1774~1840)에게 모친을 잘 봉양하도록 부탁하는 내용이다. 한가한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에 틈을 보아 매일 朱子書를 읽고 있지만, 따뜻한 방에서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니 어머니 생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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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弟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아우 이병진에게 보낸 편지이다. 온갖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점을 고민하면서 어머니의 속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아우를 따끔하게 질책하고 나서, 이 편지를 남의 눈에 띄게 하지 말고 은밀한 곳에 두었다가 고민이 될 때 한 번씩 꺼내보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충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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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季弟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永陵令 시절인 1800년 무렵의 편지이다. 正祖가 갑자기 승하한 뒤 新王 純祖가 喪禮를 당하여 모든 관료를 감동시킬 정도로 지극정성을 다하고 또 민심을 잘 어루만지고 있으며, 정조의 능이 顯隆園 경내에 정해졌다는 소식을 알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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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仲季弟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조부의 문집 寫役에 대한 진행 정도를 묻고, 명년 봄에는 刊役을 시작할 수 있는지 확인하였다. 또한 겨울 안에 經書 한 질을 외우고, 여가에 朱子封事와 蘇文對策 등을 익숙하게 讀誦할 것이며, 과거시험을 그만둘 수 없다면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할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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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季弟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서울에서 벼슬살이 중인 막내아우 이병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우의 견해와 행동이 명확하기는 하지만 편벽되고 막히는 기질이 있으니 잘 헤아려서 처신하도록 당부하였고, 道內에서 疏를 올리는 일은 수십 년간이나 지속된 것이지만 시대와 운명의 한계가 있어 그 성공 여부를 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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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征日錄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1796년(정조 20) 2월 8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3월 21일에 안동으로 돌아오기까지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의 명승고적을 유람하며 보고 느꼈던 내용을 기록한 旅行記이다. 어려서부터 關東의 산수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듣고 유람하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조부 이상정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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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弊私議(1837,李侯㙽莅府時)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李㙽이 安東 고을을 다스리던 1837년에 지은 글이다. 흉년을 당한 즈음에 고을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다섯 가지의 폐단을 낱낱이 지적한 뒤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개진하였다. 첫째는 火田에 매기는 세금인 火稅의 폐단, 둘째는 군역에 종사할 장정을 軍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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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得錄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독서와 성찰을 통하여 떠오른 단상들을 63조목에 걸쳐 짤막하게 정리한 글이다. 주요 내용은, 자신의 마음에 거슬리는 말이 있으면 도리에 비추어 반성하고 자신의 마음에 솔깃한 말이 있으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인지 살필 것, 利에 앞서 義를 먼저 따질 것, 陰陽과 理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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諭一鄕士民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釋菜禮를 행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고을의 지도층으로서의 모범적인 행실을 권고하는 글이다. 집에 거처할 때는 孝悌의 도리를 다하고 향리에 있을 때는 敦睦의 도리를 닦아 禮讓의 풍속이 이루어지도록 당부하고, 자신도 미력하나마 誠心과 直道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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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亭詩後小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北亭은 癡軒 李宗周(1753~1818)가 1802년(순조 2)에 터를 닦아서 지은 뒤 은거하던 곳이다. 1840년(헌종 6)에 후손들이 보수하고 여러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四韻 近體詩를 지었다. 이곳은 시내와 가까운 곳이지만 그윽한 산 속에 있으니, 이종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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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李君汝明寓永陽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자신의 아우에게 40년 동안 글을 배운 뒤에 永陽으로 南下하여 鄭致章에게 의탁하기 위해 떠나는 李汝明을 전송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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嶠南拾遺記序(1827)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경상도관찰사 趙庭和(1779~?)가 閭巷에 사는 서민들의 숨은 懿行과 卓節을 모아 편찬한 『嶠南拾遺記』에 쓴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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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州李氏族譜序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李宗海의 청탁을 받고 쓴 여주이씨의 족보 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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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飮酒禮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경상도관찰사 盤湖 尹光顔(1757~1815)이 1807년에 감영의 觀德堂에서 고을의 선비들을 모아 향음주례를 시행하였고, 그 때에 참가한 선비들이 지은 문집의 서문으로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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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節閣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聞韶(현재 의성군) 氷溪에 살던 朴孝子와 李烈婦 내외의 旌閭閣에 쓴 기문이다. 박효자는 편모 봉양에 지극하였는데, 1788년(정조 12) 갑작스러운 화재에 모친을 구할 길이 없자 불길 속에 몸을 던졌다. 부인 이씨도 품안의 자식을 땅바닥에 내려 두고서 남편을 따라 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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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文成公墓壇碑陰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1797년에 所陽 周德山에 完山崔氏의 鼻祖인 文成公 崔阿의 壇所를 마련하여 매해 3월 3일에 墓祭를 지낸 일과 1820년에 表石과 神門을 세운 일을 기록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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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林權公墓碣銘後敘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世祖의 왕위 찬탈 뒤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던 竹林 權山海(1403~1456)의 묘갈명 後敘이다. 1784년에 저자의 종조부 이광정에 의해 묘갈명이 지어지고, 1789년에 官爵이 회복되고, 1791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고, 1825년에 왕명을 追記하는 과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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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書節要跋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이상정이 퇴계의 『朱子書節要』를 본떠 退溪書 중에서 주요한 부분만을 추려서 편찬한 『退溪先生書節要』에 대한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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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鄭君夔一(致章)家藏古簡帖後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사위 鄭致章의 집에서 간직해온 선현들의 편지글 모음에 쓴 발문이다. 이는 정치장의 선조인 涵溪 鄭碩達이 李玄逸(5첩)‧權斗寅(4첩)‧李栽(4첩)‧權斗經(2첩)‧權斗紀(1첩)‧曺善長(2첩)‧李衡祥(1첩)‧鄭萬陽‧鄭葵陽(2첩) 등과 왕복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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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金君以命(養巽)家高山七曲圖後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김양손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高山七曲圖」의 발문이다. 이상정은 학문을 연마하면서 高山의 풍광 중 七曲을 정하고, 朱子의 「武夷九曲歌」를 본떠 七曲詩를 지은 일이 있었다. 「고산칠곡도」는 이상정의 문인 苟齋 金宗敬이 주도하여 고산칠곡의 정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것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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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徐幼祥所藏王考書帖後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梧山處士가 조부 이상정과 주고받았던 서찰을, 오산처사의 從孫인 徐幼祥이 粧帖하여 발문을 요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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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湖移安時告由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明湖書院을 보수하고 위패를 移安할 때의 고유문이다. 명호서원은 安東 亭上洞에 있으며, 固城人 容軒 李原(1368~1429)과 忘軒 李冑(?~1504)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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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巖陞號時告三賢文(代士林作)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鶴巖里社가 鶴巖書院으로 승격되어 세 현인에게 그 사유를 아뢴 고유문이다. 세 현인은 芝軒 鄭士誠(1545~1607), 梅窓 鄭士信(1558~1619), 湖陽 權益昌(1562~1645)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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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稷祈雨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社稷壇에 기우제를 지낼 때 고한 기우문이다. 이 글을 포함한 아래의 기우문은 모두 함창현감으로 재직할 때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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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池祈雨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龍池에 기우제를 지낼 때 고한 기우문이다. 1814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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宰嶽山祈雨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宰嶽山에 기우제를 지낼 때 고한 기우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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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儉湖祈雨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恭儉湖에 기우제를 지낼 때 고한 기우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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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川沙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川沙 金宗德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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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東巖柳先生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東巖 柳長源(1724~1796)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