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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樊巖蔡相公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樊巖 蔡濟恭(1720∼1799)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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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百弗庵崔先生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百弗庵 崔興遠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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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后山李先生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后山 李宗洙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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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芸齋蔡公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芸齋 蔡蓍疇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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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立齋鄭先生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立齋 鄭宗魯(1738∼1816)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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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敬持(義度)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權義度(1764~1804)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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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損齋南公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損齋 南漢朝(1744∼1809)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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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大溪李公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大溪 李周楨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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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聖宗(裕魯)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鄭裕魯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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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一一齋金公(是瓚)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妻兄인 一一齋 金是瓚(1754~1831)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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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廣瀨李公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廣瀨 李野淳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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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姜擎厦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松西 姜橒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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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耳仲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壽靜齋 柳鼎文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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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俛庵先生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종숙부 俛庵 李㙖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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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叔處士府君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종숙부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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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昏日因兒子榮掃告亡室墓文(1840)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저자의 回昏日에, 아들 李秀應(1789~1864)이 생원시에 합격한 영광스러운 일을 어머니의 묘소에 고할 때 지은 글이다. 이수응은 이병운의 初娶 부인인 光州金氏 소생이다. 이병운의 막내아우 李秉遠이 사망한 1840년(헌종 6)에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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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上舍君(秉圭)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族弟인 李秉圭(1784~1815)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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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弟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仲弟인 李秉進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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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弟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막내아우 所庵 李秉遠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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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子婦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둘째며느리(李秀戇의 부인)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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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姪秀悳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조카 李秀悳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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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伯孝墓誌銘(並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이병운과 절친했던 柳鼎文이 아들 伯窩 柳致孝(1798~1836)가 죽자 遺事를 보내어 묘지명을 청탁하였다. 初諱는 致絅이며, 柳致明의 문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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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廬李公墓誌銘(幷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晦齋 李彦迪의 후손인 李鼎基(1759~1836)에 대한 묘지명이다. 본관은 驪州, 자는 士溫, 호는 蒼廬이다. 從祖인 郡守公에게 수학하였으며, 1801년(순조 1)에 上庠에 합격한 뒤로는 벼슬에 대해 뜻을 접고서, 향리에서 從兄인 南廬公과 학문을 연마하며, 문중의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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宜人全州柳氏墓誌銘(幷序)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宜人은 柳通源(1715~1787)과 宣城金氏의 딸로, 이상정의 문인이자 雲川 金涌(1557~1620)의 冑孫인 惺庵 金顯運(1748~1816)의 부인이다. 1747년(영조 23)에 출생하여 1832년(순조 32)에 사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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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學窩徐公墓誌銘(幷序)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靑松에 거주하였던 學窩 徐爾亮(1733~1789)에 대한 묘지명이다. 본관은 達城, 자는 舜輔, 호는 學窩이다. 厚庵 權濂(1701~1781)과 東巖 柳長源 등에게 배웠으며, 『近思錄』을 손수 써서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고, 독서하는데 있어서는 입으로만 떠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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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野李公墓碣銘(幷序)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新野 李仁行(1758~1823)의 묘지명으로, 자는 公宅, 본관은 眞城이다. 1783년(정조 7)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형조좌랑을 역임하였고, 高山縣監에 부임하여 향약을 실시하고 예교를 밝히는 일에 힘을 쏟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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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善大夫兵曹參判葛川金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葛川 金熙周의 행장이다. 자는 公穆, 본관은 義城이다. 權思敏과 李象靖의 문인으로, 1795년(정조 19)에 문과에 급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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邁野徐公行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學窩 徐爾亮의 아들인 邁野 徐活(1761~1838)의 행장이다. 자는 淸如, 본관은 達城이다. 厚庵 權濂과 川沙 金宗德의 문인으로, 方谷 柳洛文(1766~1807)과 도의지교를 맺었다. 향시에는 누차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실패하였고, 평생을 독서와 篤行으로 일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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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司憲府持平竹塢李公行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蔚山에 살던 竹塢 李覲吾(1760∼1834)의 행장이다. 자는 聖應, 본관은 鶴城이다. 活山 南龍萬(1769~1844)의 문하에서 수학, 李鼎揆와 교유를 맺고 학문을 강마하였다. 1790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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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權大度‧權載大‧李羲發‧鄭象履‧李定秀‧鄭之洛‧李亨秀‧權載綸‧李五秀‧金道壽‧李淵祥‧金鎭坤‧金邁銖‧金庭瑞‧琴詩述‧柳致皜‧李秉殷‧李秀學 등 18인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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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陀陽儒生 南始發과 臨川儒生 金驥壽 등 2인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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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初諱는 永運이며, 자는 際可, 호는 俛齋, 본관은 韓山이다. 睡隱 李弘祚가 외조부인 柳成龍을 따라 안동 一直의 蘇湖里로 入鄕하였고, 조부 李象靖은 퇴계학파의 宗匠으로서 前哲을 이어 統緖를 드리웠고, 부친 李埦은 家學을 이어 독실하게 행하였고 문과 급제 후 홍문관교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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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병운西山 金興洛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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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민산집(閩山集) 閩山 柳道洙의 문집. 木板本, 柳宙榮, 8卷3冊:四周雙邊, 半郭 20.5 ×17.7㎝,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31.7×21.7㎝. 柳道洙의 아들 宙榮이 詩文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손자 哲佑가 門生 몇 명과 함께 정리하여 7권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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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述懷次晦齋先生西征韻(幷小序), 敬次林居諸詠, 早春, 暮春, 初夏, 秋聲, 冬初, 感物, 無爲, 觀物, 溪亭, 獨樂, 觀心, 存養, 秋葵, 秋日偶吟, 溪堂感吟, 六月小晦夜夢拜先生於愚川舊第歡然賜顔啓告諄諄因以玉風簪一枚贈之寄意與平昔無異而覺來直一夢竊謂此乃老者整冠之物可反省於衰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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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輓止庵金丈(健壽), 輓奇山金丈(奭裕), 輓族姪稺成(奎榮), 玉淵亭次王考谷口公韻(付原韻), 輓友軒李丈(海鷹), 輓族叔孚吉(進鶴), 贈申養直, 陪族祖洛坡相公厚祚遊河上朱亭, 次愚川居然齋韻, 輓上舍李戚兄(庭赫), 謹次族祖豊安君(相祚)延諡韻, 與族姪花山伯仲雍(芝榮)遊西岳寺,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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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九九同金平海養善登三聖峯, 半月山, 讀洪(在鶴)疏有感, 次贈李學世(孝淵), 次南姑叔(泰煥)太虛亭韻, 族弟賢民道獻遠訪其歸拈韻相贈, 春日栽菊羇牕前擬()秋英及蒙宥將還猶覺愴然, 臨行答湖隱贈詩, 歸路追述仙淵亭舊遊贈主人, 出都門口占, 到新院偶感從先祖終南山色故依然之句敬次, 輓李道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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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坡相公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1868년(고종 5) 우의정 洛坡 柳厚祚(1798~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재상의 임무는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身心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전일하게 하여 당대의 인재들을 폭넓게 등용하고 그들과 함께 절차탁마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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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坡相公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후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후조가 은퇴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결단에 존경을 표현한 내용이다. 지난 날 유후조에게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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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坡相公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후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교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단이 그 틈을 타고 유포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유후조가 향교와 서원에 유교 경전을 읽도록 권장한 것을 다시 한번 칭송하면서, 士風이 진작되지 못하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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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坡相公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후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주자의 封事들을 읽고 얻은 정치에 대한 견해를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몇 년간 조정을 떠나 있던 유후조가 새로운 정국을 맞아 재등용되어 훌륭한 정치를 펼칠 것을 기대하면서, 혹시라도 出仕를 망설이지 않도록 충언을 올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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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坡相公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후조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후조가 古書를 많이 읽도록 권유했었는데, 고서를 읽고 비록 큰 성취는 없지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 유후조가 아들도 불러서 함께 공부하라고 권했는데, 형편상 어렵다고 답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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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溪堂先生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溪堂 柳疇睦(1813~1872)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전에 堯舜 이하 唐宋까지 역대 재상의 事蹟을 정리한 『相鑑博議』을 유주목에게 바쳐 대신 그 부친인 유후조에게 바치도록 부탁했었는데, 그 의의에 대해 다시 설명하였다. 또 아들이 유주목에게 배울 수 있게 된 것을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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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溪堂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주목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주목에게 배운 뒤로 아들의 학업이 진척된 것을 기뻐한 내용이다. 또 유주목이 『相鑑博議』을 첨삭해 주고 장려해 준 것에 감사하고, 서문도 지어주기로 한 것에 대해 감격한 마음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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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溪堂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주목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가을 유주목을 모시고 山行을 했던 즐거움에 대해 언급하면서, 찾아 뵙고 배울 기회가 적어서 학문에 진척이 없는 점을 아쉬워하였다. 시력이 감퇴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면서 책을 읽어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며 답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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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朴侯(最壽)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郡守 朴最壽에게 보낸 편지이다. 박최수가 가까이 두고 자문을 구하려고 한 것에 대해 사양하는 내용이다. 고을 백성이 수시로 官門을 드나들며 군수를 만나는 것은 지방행정을 혼탁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고 충언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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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上舍金戚叔(養範)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金養範에게 보낸 편지이다. 고향 학자들의 학문 발전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古書를 읽는 일도 시력이 약해지면서 여의치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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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丈(秀珏)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李秀珏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 惠州에서 맏아들 宇榮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애통한 심정을 토로하고 멀리서 위문의 뜻을 보내준 데 대하여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손자들이 무탈하도록 하늘에 기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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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丈(秀瑩)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李秀塋에게 보낸 편지이다. 『朱子書節要』를 간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유도수의 집안이 70여년간 李秀塋의 집안과 대립했던 것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을 기뻐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도수의 선조들이 『朱子書節要』 간행을 지연시킨 것처럼 보였던 것은 상의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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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戚叔(靖夏)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權靖夏에게 보낸 편지이다. 경기도 양주의 直谷으로 은거한 대원군을 奉還하기 위한 만인소를 준비하면서, 그와 관련한 문제 제기들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영남의 여론이 통일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았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