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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黃景愚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黃景愚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이들에게 古文을 낭송하게 하고서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 보기도 하지만 유배 기간 동안 공부를 성취함으로써 얻는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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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舜可(秉薰)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趙秉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까지 방문해주고 편지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고향의 田畓이 재해를 많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속수무책인 것에 대해 처참한 심정을 토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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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大將(奎遠)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御營大將 李奎遠(1833~1901)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를 떠나올 때 인사를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고향의 벗들을 등용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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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吉州(奎鶴)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吉州에서 吉州 목사 李奎鶴에게 보낸 편지이다. 고향 소식을 들었는데 상심스러운 것은 많고 위안이 되는 것은 적다며 괴로워하였다. 또 많은 선물을 보내준 이규학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죄인의 몸이어서 직접 관청으로 가서 사례하지 못하는 사정을 헤아려 달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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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吉州(奎稷)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吉州에서 吉州 목사 韓奎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화를 창문 앞에 심어두고 歲寒을 기약했는데 며칠 전 싸락눈을 맞고 태반이 말라버린 것을 애통해 하는 심정을 담았다. 또 흉년을 만나 수심이 많을 한규직을 위로하면서도 새로운 陣法을 훈련하려고 하는 한규직의 시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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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吉州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 목사 韓奎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軍政이 무너진 상황을 우려하면서 한규직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큰 방향에서 동조를 표하였다. 陣法과 관련하여 한규직이 구한 자문에 대하여 자신이 『兵經』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통하다고 자부하면서 최선을 다해 응하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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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吉州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 목사 韓奎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에서 먹는 국화꽃도 고향에서 먹던 것과 같은 맛이라며 한규직에게도 10여 송이를 보내면서 음미해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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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吉州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韓奎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길주에서 탈없이 유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 한규직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배되면서 서울을 지날 때 高宗을 향한 깊은 충정을 느꼈다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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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吉州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韓奎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이 한규직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지 물은 뒤, 3년 동안 가까이 모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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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可直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南孝源에게 보낸 답장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참기 어려운데, 마침 국화가 피어서 그 향기를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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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可直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南孝源에게 보낸 답장이다. 음력 9월이 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져서 참기 힘들다고 하였다. 또 지난번에 아들이 왔을 때 흉년 든 얘기를 나누었다면서 괴로워하였다. 南孝源이 보내온 시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것에 대한 화답의 시를 늦게 보내게 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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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極彦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權極彦에게 보낸 편지이다. 며칠 동안 함께 勝景을 구경다녔던 권극언에게 자신이 지었던 시를 보내면서, 화답하는 시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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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元平海(世昌)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平海에서 平海 군수 元世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6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근심을 잊어버리는’ 공부를 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원세창이 요구한 글을 보내면서 남에게는 보이지 말라는 당부도 곁들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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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安善吾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平海에서 安善吾에게 보낸 편지이다. 흉년이 든 고향집 생각으로 번민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어 文烈公 趙憲(1544~1592)과 文敬公 金集(1574~1656)이 1883년에 문묘에 배향된 것을 반기면서도 영남의 선현이 배향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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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公善(翼煥)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鄭翼煥에게 보낸 편지이다. 새해 들어 두 눈이 침침해져서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어 울적함을 달랠 길이 없다고 괴로워하였다. 訂翁이 세상을 떠난 것과 관련하여, 두 집안이 대대로 가까웠고 오랫동안 교류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유일한 知己로 기록하는 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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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周用(中杰)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에서 고향 친구인 李中杰에게 보낸 답장이다. 유배지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고향의 편지를 받지 못했는데 이중걸이 편지를 보내주어서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鄭南容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것을 애통해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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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僉使(信根)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 근처 鎭의 僉使로 부임한 朴信根에게 보낸 답장이다. 고향 친구인 박신근이 유배지 근처로 부임해 와서 든든해졌다고 하면서, 날씨가 좋아지면 한번 찾아가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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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僉使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朴信根을 만나고 온 뒤 편지를 받고 쓴 것이다. 朴信根이 文會를 열기로 했다가 다시 취소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박신근이 보낸 시를 높이 평가하면서 천리 밖 유배 생활을 잊게 해준다고 고마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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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泰弼(道奭)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친족 동생인 柳道奭에게 보낸 답장이다. 고향 자제들의 학문 성취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였고, 유배 생활의 고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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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章一(道夔)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친족 동생 柳道夔에게 보낸 답장이다. 독서에 전심할 것을 당부하였다. 만인소를 올린 것이 조금 경솔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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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姪位汝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친족 조카 柳位汝에게 보낸 답장이다. 막내 조카의 사망을 애도하는 한편, 유배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고 친척들도 더러 찾아와서 지낼 만하지만 풀려날 기약이 없어 괴롭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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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道源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리고 유배된 李學洙에게 보낸 답장이다. 함께 산수 유람을 하고 싶은데 유배에서 풀려날 기약이 없어 안타깝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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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國賢(承基)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리고 유배된 趙承基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지에서 목격한 흉년의 참상에 대해 언급하고, 李學洙 등 같이 유배되었던 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애통해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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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聖養(章浩)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리고 유배된 李章浩에게 보낸 답장이다. 유배 생활을 참고 잘 견디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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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升老(昊壽)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朴昊壽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배된 뒤로 상황이 좋아졌지만 초췌한 육신만 남아 슬프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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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穉九(範鱗)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黃範鱗에게 보낸 답장이다. 식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한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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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穉九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平海로 이배된 뒤에 黃範鱗에게 보낸 답장이다. 高宗에 대한 충정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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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先達(基宣)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리고 유배된 趙基宣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 생활을 잘 참고 견디자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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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上舍允吉(相喆)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吉州에서 李相喆에게 보낸 답장이다. 맏아들을 잃은 것을 애통해 하면서 근래에 상을 당한 이상철을 조문하였다. 또 利原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곳 관리들에게 고마움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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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聚五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吉州에서 시에 대해 토론했던 韓聚五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취오가 영남 학자들의 시를 칭송하는 것에 대해 겸양을 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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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進士季成(珀)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李珀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 생활의 고충에 대해 얘기하고, 나라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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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圭甫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鄭南容에게 보낸 답장이다. 유배 생활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면서 잘 참아내자고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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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洪而受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에서 洪而受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이수가 백두산을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소감을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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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汝見(準)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權準에게 보낸 답장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것을 大義가 무너진 것으로 규정하고 애통해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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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僉使(鎭稷)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 근처 鎭의 僉使였던 韓鎭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머물면서 한진직의 안부를 묻고, 같이 유배되었던 이들이 태반이나 세상을 떠난 것을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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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致深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에서 풀려난 뒤 여전히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李致深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족들이 번갈아 병이 들고 책도 읽기 어려운 데에다, 옛 친구들도 태반이나 세상을 떠나 비통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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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司諫公積(鐘善)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金鐘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종선의 고을에 유배와 있는 세 사람은 모두 영남의 큰 선비이니 틈나는 대로 찾아봐 달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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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欽(秉儒)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에서 趙秉儒에게 보낸 편지이다. 좋은 保授主人을 만난 데다, 길주 지역 선현의 문집을 입수해서 읽을 수도 있고 시인들과 함께 시를 주고받을 수도 있어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시절이 좋지 못하니 출세에 관심을 두지 말고 讀書에 전념하라는 당부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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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欽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趙秉儒에게 보낸 답장이다. 근래 『周易』을 읽고 있다고 하면서, 조병유의 집안 사정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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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禹卿(璿鉉)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朴璿鉉에게 보낸 답장이다. 여름철 유배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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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平海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 平海에서 군수로 부임한 金養善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 생활을 배려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평해에 흉년이 든 것을 걱정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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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震伯(中鱗)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같이 만인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李中鱗에게 보낸 답장이다. 學禁을 당한 상황은 아니니 학문에 힘쓰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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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緖禹(敦裕)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에서 李敦裕에게 보낸 답장이다. 맏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돈유에게 손자가 슬픔을 잘 추스릴 수 있도록 타일러 달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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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上舍士晉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李士晉에게 보낸 편지이다. 식구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이사진에게 식구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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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士晉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李士晉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 생활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심성을 수련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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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士晉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에서 풀려난 뒤, 유배된 李士晉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 생활을 견디기 위해서는 곤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말들을 자주 외워 마음을 편하게 하거나 講學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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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叔樂三(寅睦)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친족 아저씨 柳寅睦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배를 떠날 때 『近思錄』을 선물로 준 것을 고마워하면서, 학업에 힘써서 家學을 이어가 달라는 내용을 잇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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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公彦(翼世)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유배지에서 鄭翼世에게 보낸 편지이다. 흉년을 만난 고향의 가족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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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韓捕將(圭卨)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右捕盜大將 韓圭卨(1848~1930)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규설의 형 忠壯公 韓圭稷(1845∼1884, 『閩山集』에서는 ‘韓奎稷’으로 되어 있다.)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吉州에서 한규직과 함께 兵法에 대해 논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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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景雍(相鎬)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靑海로 유배된 李相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뜻을 굽히지 말고 학문을 쌓아서 원대한 성취를 이루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