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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韓山李公壙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知己였던 李秀珏의 壙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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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溪南公墓誌銘(幷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평생 학문에 매진했던 知己 南萬會를 추모하는 墓誌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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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陽朴氏世葬墓碣銘(幷序)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 관아의 남쪽 60리에 있는 密陽 朴氏의 世葬地에 대한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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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延安李公墓碣銘(幷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吉州로 유배와서 세상을 떠난 李貞攝(1784~1868)을 추모하는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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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父行公忠道都事溪堂柳先生行壯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스승인 柳疇睦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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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金道和가 쓴 저자의 행장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柳道洙의 본관은 豊山이고, 字는 聖源이며, 號는 閩山이다. 高祖는 柳涬, 曾祖는 柳泰春, 할아버지는 柳崧祚, 아버지는 柳進球이고, 어머니는 宣城金氏 金樂生의 따님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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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柳道獻이 행장을 바탕으로 쓴 墓碣銘이다. 내용은 행장과 대동소이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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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도수조카 柳尙榮이 쓴 『閩山集』에 대한 跋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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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옥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경옥집(景玉集) 景玉 李簠의 문집. 木板本, 李寅綱, 1813, 4권 2冊:四周雙邊, 半廓 20.0 ×16.2㎝.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31.0×21.2㎝. 권두에 金㙆의 서가 있다. 卷1에 시 113수, 卷2∼4에 소 1편, 잡저 3편, 서 6편,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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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澗水, 山雲, 寒雀, 有所思, 信師來見呈詩次之, 螢火, 龍眠, 得失, 蛙聲, 鳴蟬, 吠犬, 耕牛, 久早歎, 汲兒歎, 樵兒歎, 折草, 雪後次東坡叉字韻, 原州客舍贈亞使柳以能(世鳴), 次呈成國華文夏), 別金叔方, 題權上舍(縡)桂谷草堂, 鶴城旅舍贈權上舍得初, 題伯氏巖山江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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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光書院三贒請贈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경광서원(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소재)에 모신 栢竹堂 裵尙志(1351~1413)와 慵齋 李宗準(1454~1499)‧敬堂 張興孝(1564~1633) 등 三賢의 관작 추증 및 賜額을 청하는 글이다. 내용을 정리하면 배상지는 고려가 망할 조짐을 보이자 벼슬을 버리고 安東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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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院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서원은 본래 講讀의 기능에서 출발하여 朱子에 이르러 尊賢의 기능이 더해졌는데, 후대로 올수록 존현의 기능이 主가 되고 강독의 기능은 副가 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愼齋 周世鵬(1495∼1554)이 최초의 서원인 白雲洞書院을 세우고 李滉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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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分說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명분이 바로 세워져야 국가의 기강이 올바르게 확립됨을 지적한 글이다. 명분이 바로 세워지지 못하면 백성들의 뜻이 확정되지 않고, 이에 따라 참람한 일들이 일어나고 尊卑貴賤의 질서가 무너지고 예법이 시행되지 않아 결국 국가가 피폐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됨을 지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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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疏說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公論의 중요성과 신중성에 대해 언급한 글이다. 먼저 중국 유생들이 상소를 통해 현인을 구하고 正道를 지키려고 했던 일들을 거론한 뒤, 己卯名賢의 신원, 普雨의 척결, 李彦迪(1491 ∼1553)과 李滉의 辨誣, 五賢의 文廟從祀, 李爾瞻(1560∼1623)의 참수, 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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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仙閣慶壽宴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1707년(숙종 33)에 80세에 이른 義城人 護軍 金履基(1628~1712)에게 2품의 작위를 내리고, 이듬해에 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고 考·祖·曾祖에게도 벼슬을 내리자, 김이기의 아들 月灘 金昌錫(1652~1720)이 9월 8일에 焚黃禮를 거행하고 이튿날에 집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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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山鳳凰樓老人會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안동에서는 예전부터 李浤(1441~1516)의 洛上會와 權暐(1552~1630)의 廣寺會 등의 노인회가 있어 왔는데, 근래에 이런 풍류가 없어 안타까워하던 차에, 1687년 7월 8일에 李命吾의 제안으로 藥山 仙刹寺에서 1차 노인회를 개최한 뒤 7월 그믐에 西嶽寺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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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先生遺集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景出山 아래 景德祠를 짓고 靑溪 金璡(1500~1580)과 다섯 아들 藥峯 金克一(1522~1585)·龜峯 金守一(1528~1583)·雲巖 金明一(1534~1570)·鶴峯 金誠一·南岳 金復一(1541~1591)의 위패를 모신 뒤, 여섯 분의 유고를 모아 모두 5책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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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皋草堂唱酬集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스승이자 재종숙부인 開谷 李爾松이 자신이 지은 洛皐草堂詩와 여러 사람의 화답시를 모아 1책으로 엮었고, 이를 木齋 洪汝河(1621∼1678)에게 보여 주기도 하였다. 개곡의 사후, 그의 다섯째아들 道城 李兪吾(1643~1709)가 저자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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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烏草堂詩集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가 大兄으로 섬겼던 月烏隱者의 7언시 2수와 5언시 1수 및 그에 화답한 시를 모아 엮은 책에 대한 서문이다. 「次月烏草堂韻」 참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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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刹寺會集詩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南嶽 李相公이 安東府 屈火縣(臨河縣)의 琴韶驛에 우거할 때, 고을의 耆舊들이 이상공을 모시고 仙刹寺에 모여 3일 동안 유람을 하며 즐겼던 일을 서술하였다. 前府尹 柳公이 참석하였는데, 泰淸樓에서 술을 마시고 天地陰陽의 변화, 經傳子史의 의문점, 출처와 문장 등에 대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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卧龍山精舍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瓢隱 金是榲이 와룡산 아래에 정사를 짓고 은거하던 곳에, 내방객이 머물 수 있는 별도의 집을 마련하면서 지은 글이다. 먼저 정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의 수려한 풍광을 세밀하게 기술한 뒤에, 어부가 여름철에 물고기를 잡는 장면, 표은의 조부가 심었다는 栝子松에 관한 얘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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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仙閣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정언을 지낸 義城人 金昌錫이 湖西에서 귀향한 지 몇 해 지난 뒤에 臨河縣 동쪽 5리쯤에 지은 몽선각에 써준 기문이다. 건물 이름은 김창석이 꿈에 羽化登仙을 노래한 蘇仙(蘇東坡)을 본 것에서 착안하여 명명하였는데, 그는 아버지 金履基를 이곳에 모시고 慶壽宴을 베풀기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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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院重建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고려말 洪柏亭이 창건하고 李穡이 기문을 지었던 藥院을 중수하면서 지은 기문이다. 義城人 金以鉉이 일을 맡아서 주도하여 새롭게 단장한 뒤에 저자에게 기문을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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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玉山庄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가 臨河縣 桂谷里에 우거할 때, 崔姓의 백성에게 땅을 사서 종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는, 추수를 살피러 가면서 보았던 주위의 풍광을 소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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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嶺草堂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벗인 萬嶺 柳益輝(1629~1698)가 萬嶺村 남쪽에 건립한 草堂에 써 준 기문인데, 헛된 이름 드러내기를 구하지 않고 겸양하고자 하는 주인의 덕성을 표창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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巽溪草堂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벗인 洪聖輝가 안동 內林의 巽峴 아래 시냇가에 초당을 짓고, 시내 이름을 巽溪라 하고 堂 이름을 손계초당이라고 지은데 대해 써준 기문이다. 士風과 儒雅를 진흥시키기 위해 마을의 자제들을 교육하는 주인의 공력을 『주역』의 巽卦가 의미하는 風의 덕성을 들어 선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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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皋亭重建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재종숙부인 開谷 李爾松이 창건하였던 정자를, 개곡의 아들 李兪吾가 중건한 내력을 밝힌 기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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沱陽書堂重修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一直縣에 타양서당을 중건한 내력을 기록한 글로, 향리 교육에 대한 저자의 열의를 엿볼 수 있다. 고려조의 명현인 金時彦과 孫洪亮(1287~1379)의 공덕을 기리고자 天啓 연간(1621~1627)에 강학 장소를 마련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퇴락하였고, 갑자년(168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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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鶴亭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벗인 景羲 李靖逸(1635~1700)이 安東 鶴駕山 남쪽에 지은 정자에 써 준 기문이다. 산의 맑음과 학의 맑음과 주인의 맑음이 이 망학정에 함께 깃들였다며 칭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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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江泛舟錄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가 宣陵祭官으로 차출되었을 때 배를 타고 한강을 지나면서 보았던 주변의 풍광을 묘사한 글이다. 이 걸음에는 都事 李溥와 殿中 金壽聃이 함께 했는데, 배를 타고서 楮子島‧報恩寺‧櫻桃村‧湖堂‧狎鷗亭‧濟川亭 등을 거쳐 西冰庫에서 육지에 올라 말로 갈아탔다는 일정을 소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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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金華玉遊金剛山詩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金璍(1644~1718)의 『金剛山記行詩』가 恥齋 洪應吉이 『遊金剛錄』에서 미처 자세하게 언급하지 못했던 금강산의 풍경을 아주 잘 묘사했다며 칭찬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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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孤雲寺稧帖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1673년에 牧使 南公이 고운사에서 모임을 갖고 작성한 계첩에, 남공의 손자 南金冑의 청탁으로 쓴 발문이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24인으로, 그들의 관함과 성명과 나이 및 규약이 갖추어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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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近始齋金先生遺稿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近始齋 金垓(1555~1593)의 유고에 쓴 발문이다. 근시재의 가학 연원과 성품을 서술한 뒤,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맞서다가 불행히도 慶州에서 객사한 일을 안타까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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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節婦安氏傳後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柳大時(1657~1739)가 찬한 烈婦安氏(1666 ~1694)의 傳記를 읽고 나서 그 절개를 찬양한 글이다. 안씨는 于歸하기도 전에 남편 柳錫井이 갑자기 병을 얻어 죽었는데, 삼년상을 마치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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藏六書堂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安東 桃木村에 건립한 장륙서당에 대한 상량문이다. 臨淵齋 裵三益(1534~1588)이 건립한 이래로 그의 아들 琴易堂 裵龍吉(1556~1609) 등 많은 명현이 배출되었는데, 배용길은 藏六堂이란 호를 쓰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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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皋亭重建上樑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재종숙부인 開谷 李爾松이 창건하였던 낙고정을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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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城書院奉安文(移建時)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안동 청성서원에 松巖 權好文(1532~1587)을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 저자의 부인은 송암의 증손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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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川里社奉安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禮安 烏川里社에 李繼陽(1424~1488)과 金孝盧(1455~1534)를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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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山書院奉安文(在槐山)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槐山에 있는 孤山書院의 봉안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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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慶州府尹柳公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경주부윤을 지낸 乖厓 柳榰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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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金公墓誌銘(幷序)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金邦衡(1618~1699)의 묘지명이다. 자는 士平, 본관은 義城이며, 瓢隱 金是榲과 豊山金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평생 孝友와 愛敬의 실천에 힘썼다. 葛庵 李玄逸에게 묘갈명을 받은 뒤에, 김방형의 아들 適庵 金台重(1649~1711)이 저자에게 묘지명을 청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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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通禮院奉禮權公墓碣銘(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二愚堂 權寏(1580~1652)의 묘갈명이다. 자는 宅甫, 본관은 安東이며, 忍齋 權大器(1523~1587)의 아들이다. 寒岡 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5형제가 모두 사마시에 합격하여 權氏五才子라는 칭송을 받았다. 1610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163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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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南公墓碣銘(幷序)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南振維(1587~1642)의 묘갈명이다. 자는 子張, 본관은 英陽이며, 南祜의 아들이다. 敬堂 張興孝(1564~1633)의 문인이며, 金是榲의 장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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掌令玉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凝溪 玉沽(1385∼1439)의 행장으로, 응계의 후손 玉世寶(1649~?)의 청탁으로 지은 글이다. 자는 待售, 본관은 宜寧이며, 玉斯美의 아들이다. 吉再의 문인이며, 경학과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140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의 박사·전적과 安東府通判 등을 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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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司諫金公行狀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芝村 金邦杰의 행장이다. 자는 士興, 본관은 義城이며, 金是榲의 아들이다. 166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홍문관수찬·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同福으로 귀양가서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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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慶州府尹柳公行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乖厓 柳榰의 행장이다. 자는 重吾, 본관은 全州이며, 柳希潛의 아들이다. 1646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경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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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驪州牧使柳公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空空齋 柳挺輝의 행장이다. 자는 仲謙, 본관은 全州이며, 柳橚의 아들이다. 165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사간원정언·여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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拙庵柳公行狀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百拙庵 柳㮨(1602~1662)의 행장이다. 자는 廷堅, 본관은 全州이며, 柳友潛의 아들이다. 1630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成渾·李珥를 문묘에 배향하려는 논의가 일어나자, 1650년에 영남의 疏首로 추대되어 1,000명의 선비들과 대궐에 나아가서 그 부당함을 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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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父開谷公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저자의 재종숙부이자 스승인 開谷 李爾松의 행장이다. 자는 壽翁, 본관은 眞城이며, 李義遵의 아들이다. 외조부 金應祖의 문인으로, 1635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직강·형조정랑·풍기군수·예빈시정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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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峯金先生遺事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藥峯 金克一의 유사이다. 자는 伯純, 본관은 義城이며, 金璡의 아들이다. 李滉의 문인으로, 154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예천군수·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