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6851

    大司諫寶白堂金公遺事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寶白堂 金係行(1431~1521)의 유사로, 보백당의 후손 金重望의 청탁으로 지은 글이다. 자는 取斯, 본관은 安東이며, 金三近의 아들이다. 148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부제학·대사간·대사성·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戊午士禍에 金宗直과 교분이 두터웠다는 이유로
    출처 : 유교넷
  • 366852

    栢竹堂裴先生遺事考据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향리의 선비들이 鏡光精舍에 栢竹堂 裵尙志를 비롯하여 이종준·장흥효 등을 幷享하면서 1690년에 三賢의 증직을 청하자, 백죽당에게 자헌대부 병조판서의 증직이 내렸고, 이에 옛 비석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백죽당의 字는 전하지 않고, 본관은 興海이며,
    출처 : 유교넷
  • 366853

    始祖贈奉翊大夫密直使府君遺蹟考證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眞寶李氏의 시조인 李碩의 家系와 묘소 등의 자취를 고증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54

    遺事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저자의 일생을 기록한 遺事로, 손자인 李廷藎(1685~1738)·李廷萬(1691~1732) 등이 함께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6855

    墓碣銘(幷序,1785) 4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저자의 일생을 기록한 墓碣銘으로, 저자의 所后玄孫인 李宗魯의 청탁을 받고서 1785년에 韓山人 小山 李光靖(1714~1789)이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6856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출처 : 유교넷
  • 366857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출처 : 유교넷
  • 366858

    龍巖祠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출처 : 유교넷
  • 366859

    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보
    출처 : 유교넷
  • 366860

    노봉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노봉집(蘆峯集) 蘆峯 金의 문집. 木活字本, 金宗烋, 1863, 4卷2冊:四周雙邊, 半郭 21.8×14.3㎝, 10行20字, 上2葉花紋魚尾;31.5×20.5㎝. 『蘆峯集』은 서문은 없고, 권말에 宗烋의 발문이 있다. 발문에 의하면, 문집간행을 위해 시종 일을 주관
    출처 : 유교넷
  • 36686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至日讀易有感, 早朝霧行, 利川道中(丙子), 宿廣陵復疊前韻, 入峽, 登山, 山行, 茅村, 浮石寺敬次退陶先生廣興韻二首, 有客, 李處士(天相)挽, 簾閣次曾王父松簷韻(幷序), 次權持平(斗紀)韻, 送趙殿中(鳳徵)南歸, 大殿春貼三首(戊子), 世子宮迎祥詩三首(己丑), 次賀黃上舍(
    출처 : 유교넷
  • 366862

    辭掌令疏(1727)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司憲府掌令을사직하는疏이다. 과거에 급제한 지 20년 동안 내직에 있은 것은 고작 1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1723년(경종 3)에 병조정랑에 제수되어 편수관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4년을 하루같이 성심으로 맡은 바의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이제 다시 사헌부장령에 임
    출처 : 유교넷
  • 366863

    辭正言疏(1728)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司諫院正言을 사직하는 疏이다.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할 몸인데, 창의했다는 이유로 크나큰 광영을 베풀어주심은 과분한 일이며, 병이 심해서 직을 수행할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64

    論鞫事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국문하는 일을 논하는 疏이다. 감당할 수 없는 추국하는 일을 담당하여 여러 날 동안 병이 들었지만 의리상 차마 말하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기동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죽음을 무릅쓰고 글을 올리니 하루 빨리 해직시켜 몸을 돌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65

    避嫌啓辭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변고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지 못한 것도 죽을 죄인데, 대관의 직에 복직시켜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말과, 신하로서 당연한 직분의 일환으로 倡義해서 亂賊들을 죄준 것을 가지고 너무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직책을 교체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66

    良役收議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잘못된 良役의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이다. 어린아이도 籍에 편성되고, 백발노인도 伍에 충원되며, 父子가 모두 숫자대로 모두 충원되고, 형제가 비록 많다 해도 모두 다 편성되며, 불치병자도 양역을 면하지 못하고, 죽은 자도 빠지지 않아 白骨에도 징수하며, 도망한 자
    출처 : 유교넷
  • 366867

    上荷塘權公(斗寅)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荷塘 權斗寅(1643~1719)에게 올린 편지이다. 몇 개월 동안 눈병이 나서 찾아뵙지 못했음을 사죄하고 조만간 개최되는 溪院의 모임에는 참석할 것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68

    答權持平叔章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司憲府 持平 權斗紀(1659~1722)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5월 12일 해남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몇 달이 걸쳐 겨우 받아 볼 수 있었음을 전하면서 선배들 중에는 高明같은 이가 없어, 귀머거리 장님 같은 후학들을 누가 인도해 줄 것인가를 염려하고 있다. 권두기의
    출처 : 유교넷
  • 366869

    與金修撰(世欽)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전 弘文館 修撰 金世欽(1649~1720)에게 보낸 편지이다. 풍토병이 있다고 꺼려하는 제주가 극심한 흉년에 허덕이는 해남보다 더 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호남 營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啓를 올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김세흠의 자는
    출처 : 유교넷
  • 366870

    與金修撰(世欽)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金世欽(1649~1720)에게 보낸 편지이다.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풍토병이 있으니 산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당부와 함께 자신은 한 달 전에 西氷庫別提에 제수되어 산수와 더불어 한가롭게 지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1

    答李金化(秉淵)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김화 군수 李秉淵(1671∼1751)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편지와 시를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시 구절에서 ‘何曾窺’ 세 글자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병연의 자는 一源, 호는 槎川‧白嶽下, 본관은 韓山이다. 山甫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涑이며 秉成의 형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72

    與申善仲別紙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姊兄 申善仲에게 보내는 별지이다. 상을 당한 누님 또한 후사가 없고, 친족 중에는 후사를 삼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獨子로 후사를 이어 뒷날 백부모와 생부모를 함께 제사지내도록 함이 좋다고 제언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3

    與申進士仲游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姊兄의 형 申仲游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자형에게 보낸 별지를 참고하여 자형의 후사를 빨리 세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74

    答黃再叟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白樺齋 黃翼再(1682~1747)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자신과 뜻이 같음에 기쁜 마음을 전하면서 아울러 황익재의 警句와 箴言에 감복하였다는 것과 민정을 살피느라 너무 고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5

    答隣倅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이웃 수령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관아 謄錄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수령의 복식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麻帶로는 衰服을 입을 때 하며, 布帶로는 평상복을 입을 때 하는 것임을 언급하면서 公服과 燕服에는 다른 제도가 있으니, 해당 曹에서 명백한 절목이 내려질 때까지
    출처 : 유교넷
  • 366876

    與金光岳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獨坐窩 金光岳(1694~1759)에게 보낸 편지이다. 林川 具友盛을 통해 자세한 소식을 알게 되어 놀라게 되었으며, 빨리 만나보고 싶은 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7

    答具胤鴻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具胤鴻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大阮을 통해 그대의 글과 시를 읽어보니 매우 훌륭하니 계속 노력하여 가문을 빛내라고 하면서 자신은 오래된 눈병 때문에 글 쓰는 것조차 힘들다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8

    與金振伯(聖鐸)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이다. 從孫은 才行이 있으나 자식 없이 일찍 죽어 애통하다는 말과 오랜 눈병이 이제야 조금 나아졌음을 언급하면서 崇重을 더욱 더 가해 朝野의 바람에 부응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79

    與鄭參判(來周)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병조참판 東溪 鄭來周(1680~?)에게 보낸 편지이다. 8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편지를 받으니 너무 기쁘다는 말과 자신은 임기가 찼는데도 濟州의 바쁜 공무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80

    上堂兄無是翁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당형인 無是翁에게 올린 편지이다. 바다와 산의 뛰어난 경치와 더불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와 함께 한라산에서 가져온 마른 오동나무로 거문고 두 개를 만들어 그 하나를 보내니 생각날 때 타보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81

    與堂姪瑞趾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당질 瑞趾에게 보낸 편지이다. 천연두 때문에 칩거하고 있어서 조카의 관례와 초례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편지로나마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덕을 쌓아 가풍을 진작시켜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82

    答長子瑞節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맏아들 瑞節(1695~1745)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퇴계선생도 자제들에게 젊어서 山寺의 업을 닦도록 했으니 너희들도 山寺의 업을 닦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면서 趙君과 宋君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66883

    寄長子(1723)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저자의 나이 54세 때 옥천 郡齋에 있으면서 맏아들에게 부친 편지이다. 범중엄이 자식들에게 전달한 ‘내가 가난할 때 너의 어머니와 함께 내 어버이를 봉양함에 너의 어머니가 몸소 밥을 지어 봉양했지만, 항상 충분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후한 봉록을 받아 어버
    출처 : 유교넷
  • 366884

    與勳上人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上人 勳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나치게 편벽되고 기이함이 없이, 고요하고 맑게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은 오직 부석사의 스님들만 이 모두를 겸비하고 있었는데, 선사께서도 일찍이 두루 유람하여 이런 것들을 마음속에 두었으니, 자신도 조만간 절에 가 수양할
    출처 : 유교넷
  • 366885

    遊曦陽說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曦陽山을 유람하고서 아름다운 경치와 웅장한 모습에 경도되어 지은 글이다. 세상에는 有名有實한 것과 無名有實한 것이 있는데, 금강산은 有名有實한 산이고 曦陽山은 無名有實한 산으로,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너무 빼어났음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86

    敎諭一島民人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濟州 백성들을 敎諭하는 글이다. 백성들을 깨우치는 글들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愚夫愚婦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고 벅찬 것이어서, 思齋 金正國(1485~1541)이 지은 警民編의 요긴한 節目만을 한글로 영인하여 누구나 널리 이해하도록 하였으니 백
    출처 : 유교넷
  • 366887

    重爲告諭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제주 백성들을 위해 거듭 告諭하는 글이다. 흉년 때문에 허기를 채우느라 급급했기 때문에 警民編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것을 이해한다는 말과 이제 큰 고비도 넘겼고 새해가 되어 양식을 방출하였으니 다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警民編을 익히고 외워 실천하기를 바라며, 농
    출처 : 유교넷
  • 366888

    示眮校院諸生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校院의 여러 유생들에게 보이는 글이다. 張橫渠의 “낡은 생각을 씻어버리고 새로워지려는 생각을 불러와야 한다(濯去舊見, 以來新念).”는 말을 인용하면서 낡은 구습은 버리고 변화하려는 새로운 생각을 갖도록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89

    送李雲擧(華翼)序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莫逆之友였던 李華翼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준 서문이다. 떠나는 사람은 행보가 수고롭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마음이 고달픔을 언급하면서 오늘의 고된 행보가 뒷날 편안함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말로 이화익의 고된 행보를 위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90

    送咸關人序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咸關 사람 崔萬章(1693~?)을 전송하는 서문이다. 전쟁 때문에 대대로 전해오던 譜牒을 잃어버려 7대조 이전의 조상들에 대한 기록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본관인 월성으로 직접 내려와서 이곳에서 같은 성씨를 두루 탐문하여 조상들의 사적을 직접 기록해 가려는 정성
    출처 : 유교넷
  • 366891

    壽梧陰成公晬日序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1720년 저자의 스승인 梧陰 成文夏(1638 ~1726)의 생일을 축수하는 서문이다. 83세의 생신을 맞은 스승 成文夏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으며, 문과에 급제한 이는 아들 世頊(1677~?)과 손자 起寅(1674~1737), 그리고 자신뿐임을 언급하면서 오래도록
    출처 : 유교넷
  • 366892

    尊敬閣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尊經閣 서문이다. 궁궐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텅빈 건물일지라도 임금이 앉아 있는 것처럼 여겨 그곳을 지나거나 들어 올 때는 항상 임금을 대하듯 삼가고 조심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93

    重修振衣臺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1719년 梧溪의 振衣臺를 중수하면서 지은 기문이다. 어려서부터 梧溪마을에 安訓導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 왔었는데, 伊山書院에 들렀다가 우연히 『榮州誌』에 “安아무개는 梧溪사람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고 후생을 가르치기에 부지런하였으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다가 어
    출처 : 유교넷
  • 366894

    外方臺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外方은 『주역』 「坤卦‧文言傳」에 나오는 ‘義以方外’에서 취한 말이다. 義山書院에 40길이나 되는 나무가 둥글지 않고 모가 나 있으며, 그 위에 좁을 길이 나 있는데 이곳에 작은 누대를 쌓고는 서원의 명칭과 부합되게 ‘外方臺’라 이름 붙였다. 곧 안을 바르게 하지 않
    출처 : 유교넷
  • 366895

    願當幽居記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願當’은 陶沙居士가 30년 동안 밖에서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옛날 살던 ‘院塘谷’에 가서 집을 짓고는 옛날의 칭호와 六願과 三當의 뜻을 차용해서 ‘願當’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六願은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사람 알기를 좋아하고, 일 만들기를 좋아하고, 아들 낳기를
    출처 : 유교넷
  • 366896

    享儀室記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書經‧周書』 「洛誥篇」의 周公이 成王에게 “향례는 예의가 많으니 예의가 물건에 미치지 못하면 불향이라고 합니다(享多儀 儀不及物 惟曰不享).”라고 한 말과 『孟子』 「盡心篇」의 “공경하 마음은 폐백을 바치기 이전부터 이미 있는 것이다(恭敬者, 幣之未將者也).”의 말을
    출처 : 유교넷
  • 366897

    柳亭詩帖跋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1717년(숙종 43) 冬至에 지은 것으로, 咸寧人 金始音의 부탁으로 그의 8대조 金季文의 시첩인 『柳亭詩帖』에 대한 발문이다. 『柳亭詩帖』은 景泰年間에 金季文이 竹溪 道村에 위치한 柳亭에서 여러 선비들과 수창한 시를 묶어 놓은 것이다. 저자는 『柳亭詩帖』에 周世鵬‧
    출처 : 유교넷
  • 366898

    中藏屛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紗羅峯은 한라산에서 오다가 바다에 이르러 서쪽으로 휘돌며 州城의 동북 모서리에 들어와 우뚝하게 절벽이 솟았다가 다시 세 가닥으로 나뉘었는데, 가운데가 中藏屛, 왼쪽이 龍鱗屛, 오른쪽이 虎斑屛임을 기술하고 있다. 중장병의 象을 주역의 蒙卦에 비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899

    龍鱗屛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용린병을 咸卦에 비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6900

    虎班屛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정
    때때로 변하는 호반병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