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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張(汶翰)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張汶翰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어진 사람은 하늘이 장수를 누리게 하는데 어찌 이 사람을 이렇게 빨리 데려 가느냐고 하였다. 갑자기 세상을 마치니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웃으면 이야기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이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모친이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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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淑人南氏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淑人 南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가 날 때 쯤 죽는 경우도 있고, 혹은 20세 쯤 요절하는 사람도 있고, 40‧50을 사는 사람은 드물고, 60‧70을 사는 사람은 더욱 드물고, 80을 사는 것은 가장 어렵다고 하였다. 또 슬하에 자녀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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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康僉知(泳)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康泳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는 것은 하늘이며,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이치는 옛날부터 전해졌는데, 지금 공에게만 이치가 어긋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마치니, 양친이 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어도 약을 달여 올릴 이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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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弟整夫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죽은 아우 柳襜(1591~1650)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본관은 豐山, 자는 整夫, 호는 謙勤齋이다. 學行이 있었고 경현사에 배향되었다. 아우가 죽었을 때에는 차마 붓을 들 수가 없어서 한 마디 哀辭도 적지 못했는데, 1년이 지나 제수를 마련하고 제사를 올린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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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友人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벗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누가 죽지 않겠는가마는 그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다면 죽어도 슬플 것이 없다고 하였다. 공이 살아있을 때는 고을에서 효성과 의리가 있다고 칭찬하였고, 공이 죽자 모두 한탄하였으니, 이것은 평소에 자신을 닦아서 남에게 끼친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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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張氏行蹟 27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先妣인 張氏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선비는 성품이 인자하고 어질며 온화하고 후덕하였다. 어릴 적부터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았고 남의 잘못을 보면 덮어 주었다. 17살에 선친에게 시집왔다. 이 때 李夫人이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이들이 집안에 가득하였다. 선비가 집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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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金應祖‧李煥‧權以說‧李渫‧金煃‧金是榲‧金是桷‧權揀‧柳宗之‧權鼈‧朴璿‧金時任‧金煓‧朴廷莢‧李萬榮‧朴廷耆‧金敬一‧李允美‧李成美‧金以道‧李義鴻‧李時馨‧朴而輝‧權釳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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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元之‧李萬榮‧柳宗之‧柳衱‧李成美‧安瑞徵‧柳習之가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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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陰記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元之가 지은 저자의 묘갈명 음기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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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賢祠廟宇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五代孫 柳滦이 지은 것으로 경현사 사당을 짓고 상량식 때의 글이다. 상량한 후에 儒風이 진작되고 文敎가 흥성해지며, 밤낮으로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때에 맞게 제사 지내고, 길이 유지되어 선비들이 의지하고, 후손들이 추모하며, 석학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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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從六代孫 柳尋春이 경현사에 위패를 봉안할 때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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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시와 예의 학문을 익혔고 행실은 겸손하고 신중하였으며, 남긴 은택 길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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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賢祠記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台佐가 敬賢祠를 창건하게 된 경위를 적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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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欽睦(1843~1910)이 쓴 저자의 행장으로 내용은 저자 소개에 자세히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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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川亭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道獻(1835~1909)이 柳川亭 상량식 때 지은 글이다. 상량한 후에 유풍이 크게 변하여 문명의 고을이 되고, 준재들이 배출되어 예의를 아는 풍속이 일어나며, 선조의 뜻을 더럽히지 않고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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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川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류초柳道奭이 柳川亭을 지은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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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北溪 趙光璧의 문집. 2卷 1冊. 石版本. 四周雙邊, 半郭 21.2× 15.7㎝, 有界, 10行18字, 內向2葉花紋魚尾,28.5×20.1㎝. 卷首에는 鄭宗魯가 지은 序文과 目錄이 있고, 卷1에는 10여 수의 詩를 비롯하여 10여 수의 輓詞 및 10여 수의 書‧雜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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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淵嶽文會與諸友分韻各賦, 聯句(時主倅趙玄洲纘韓來會), 南來詠懷, 次風詠亭韻(亭在光州), 排悶, 寄雪山倅閔(善繼), 題郵亭, 詠物自慰, 次錦城倅吳(竣)留別韻, 觀漲, 擬贈羅牧具(鳳瑞),觀鶴詠懷,次金止淵(遠振), 憶巖齋淸遊, 棄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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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輓李蒼石(埈○1635),輓李石潭(潤雨), 輓族從黔澗(靖)(二首)(1636), 輓呂鑑湖(大老○1619), 輓贈參議全(緈), 輓康南溪(應哲○二首○1635),輓宋愚谷(亮○1618), 輓黃晩悟窩(緬)(二首),輓金愚淵(知復)(二首○1636), 輓金止淵, 輓盧榮川(大海)夫人廣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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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宋中甫(以鎭,1582)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中甫 宋以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져 소식을 알지 못했다고 전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禍가 발생하여 분통하기 그지없으나 어찌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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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克明)宋(德溥)蔡(克稽)(諸公在配)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配所에 있는 蔡克明‧宋德溥‧蔡克稽 등에게 답한 편지이다. 먼 곳에서 전해온 소식은 크게 위로가 되었다고 전하면서 渙釋의 鴻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고 무엇인가 전하고 싶지만 단지 마음뿐이라고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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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是商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金是商에게 보낸 편지이다. 公事로 인하여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는 내용을 담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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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長兒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子婦의 산후조리가 늘 염려된다고 전하면 李進士에게 한 달 동안 열심히 배워서 돌아와 익힌 것을 풀이하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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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1618)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역병이 만연하여 26일의 제사를 집에서 올릴 수가 없다고 전하면서 피해온 곳에서 제사를 올리려고 하니 이곳으로 와서 제사에 참석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黃進士의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참석하고자 하지만 鄕校 明倫堂의 成造에는 아마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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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말에서 넘어져 다친 일을 전하면서 李進士에게 『孟子』를 열심히 배워서 돌아와 익힌 것을 풀이하라고 전하라 하고, 사람들과 더불어 어울려 遊浪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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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一家가 모두 평안한지를 물으면서 몸은 이곳에 있으나 마음은 그곳에 있으니 집에 들려 며칠 머물면서 喪禮를 처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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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一家가 모두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위안이 되고, 17일에 출발한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고 하면서 『家禮』와 『小學』을 열심히 정독하라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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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竨가 돌아와 떠도는 말이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때 기뻐하였으나 말을 전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니 지금은 어떠하냐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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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腫病이 어떠한지를 묻고 늘 걱정이 되니 조심하라고 전하면서 咸昌에서 돌아와 전하는 소식에 행군할 수가 없어서 化寧에 머물러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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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최근 날씨가 매우 추워졌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전하면서 이곳은 별다른 일이 없지만 宣傳官의 말을 들으니 적들이 이미 安州에 이르러 이후의 일을 예측할 수가 없으니 유념하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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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三兒竬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편지를 받고 너희들이 모두 무사하다고 하니 먼 곳에 있는 나도 위로가 된다고 전하면서 너희들이 나의 뜻을 저버리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나 않을까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四書』와 『小學』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史記』와 經書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라고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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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腫病이 차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소 안심이 되었으나 걱정이 되어 다시 한 번 가서 살펴보려고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전하면서 적들과의 대치 상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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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輩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一家가 모두 평안한 지를 묻고 집안의 모든 일은 반드시 檢勅해야 한다고 전하면서 전장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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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二兒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두 명의 奴僕이 와서 소식을 전하여 너희들이 무사한 것을 알고는 위로가 된다고 전하면서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정세를 보아 慶山으로 가고자 하는 뜻을 알렸으며, 그밖에 간단한 정세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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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中山에 도착하였으나 집안 식구들을 돌보지 못하여 날로 걱정이 된다고 전하면서 方伯에게 청하여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갈 것이니 동생들을 거느리고 일을 잘 처리하기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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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관리의 임용에 대하여 ‘朝除夕遷’하는 실태를 말하고, 內外의 관직이 각각 필요로 하는 자질이 있겠지만, 지나치게 조급하게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 먼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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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巖日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1637년(인조 15) 靑巖道 察訪을 제수받고 윤4월 2일 임지로 출발하면서부터 다음해 2월 27일 벼슬을 그만둘 때까지의 일기가 실려 있다. 누구와 동행하고 누구를 방문했다는 등 대부분 간략한 쪽지와 같은 형식으로 적은 것으로 매일 기록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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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西厓柳先生文(與及門諸公聯名) 26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柳成龍(1542~1607)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而見이고, 호는 西厓이며, 본관은 豐山이다. 雲龍의 동생이자 李滉의 門人으로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壬辰倭亂 때에 都體察使로 군무를 총괄하고, 領議政이 되어 왕을 扈從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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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愚伏鄭先生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鄭經世(1563~1633)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景任이고, 호는 愚伏이며, 본관은 晉州이다. 부친은 汝寬이며, 어머니는 陜川李氏이다. 柳成龍의 문인으로 1586년(선조 19) 알성문과에 급제한 뒤 承文院副正字‧檢閱‧奉敎 등을 거쳐 賜暇讀書를 했다. 1592년(선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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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修巖柳公(袗)文(與全湜諸公聯名) 28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柳袗(1582~1635)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季華이고, 호는 修巖이며, 본관은 豐山이다. 父親은 成龍이다. 부친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 金直哉의 誣獄 사건에 화를 입어 5개월 동안 옥고를 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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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公酬唱韻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吳竹南(竣)元韻, 金止淵(遠振)元韻, 徐東皐(思選)次韻(幷序), 又和趙北溪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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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黃嶺寺倡義大將李逢上招諭使鶴峯金檄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咸昌의 黃嶺寺에서 倡義하여 李逢을 大將으로 삼고 招諭使 鶴峯 金誠一에게 올린 檄文이다. 鄭經世를 尙州 召募官으로 삼고 權景虎를 함창 소모관으로 삼았으며, 姜霔를 龍宮 소모관으로 삼고 申譚을 聞慶 소모관으로 삼았다는 내용과 그밖에 여러 직책을 맡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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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軒張先生師門從遊錄(申懶齋悅道)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懶齋 申悅道가 지은 從遊錄이다. 1634년(인조 12) 7월 5일부터 9일까지 金烏書院에서 旅軒 張顯光을 배알하고 함께 했던 孝悌와 忠信에 대한 강론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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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伏先生書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병세가 위중하고 차도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추위를 무릎 쓰고 두 차례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처지를 언급하면서 몸이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니 당일 새벽에 哭禮로 대신할 것 등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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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金知復의 서신을 보고 비로소 微意가 있음을 알았다고 전하면서 병이 위중하면 달려 나가 약을 구하는 것이 지극한 情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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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城主께서 近日에 곧 길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방문하여 함께 밤을 보냈다고 전하면서 前日에 말씀드린 翎毛畵 8폭을 전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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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西全公書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通文을 받은 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成均館에서 이미 疏를 올려 사헌부와 사간원을 통해 임금도 이미 洞察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憤惋한 마음이 극에 이르러 내가 비록 倡義하지 않으려고 하여도 사람들이 창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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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오래된 병이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고 전하면서 다음날 떠나려고 하던 차에 汝欽 趙光玉臺가 다시 어려운 소임을 맡은 일로 찾아온 일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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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獐子島를 搗巢로 삼으려는 계획에 대하여 이러한 거동이 있다면 마땅히 합세하여 勦滅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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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광벽高月峯(仁繼), 徐東皐(思選), 趙白潭(又新), 金松窩(基), 李鉏谷(元圭), 李龍宮(大圭), 李進士(光圭), 金竹軒(克諴) 등이 쓴 輓詞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