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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7151

    與鄭伯兪(允諧)書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정윤해에게 보낸 편지로, 하룻밤 묵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趙得和가 상을 당하였으니 함께 위문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정윤해의 자는 伯兪, 호는 鋤歸子, 본관은 청주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52

    答丘景仰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구경임에게 답한 편지이다. 인사가 다단하여 숙원에 응할 수 없어 유감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53

    答宋敬甫(浚吉)書(附宋同春答)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송준길에게 답한 편지이다. 저자의 물음에 송준길이 답한 편지가 첨부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54

    與李敬叔(齊閔)書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이제민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 용양이 初試를 보러 한양에 가는 길에 인사를 올릴 것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55

    權判官死義碑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1591년(선조 24)에 상주판관으로 부임하여 임진왜란 때 순절한 權吉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는 비문이다. 권길의 자는 應善으로, 순변사 李鎰과 함께 병사를 주둔시켜 싸우다가 이일은 패주하고 그는 북천가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실을 간략하게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56

    樂志亭焚黃祭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저자의 외증조부인 樂志亭 朴彦誠이 독실한 효행으로 추증을 받았다. 이에 분황제를 지내며 올린 제문이다. 박언성의 자는 眞卿, 본관은 밀양이다. 연악서원에 배향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87157

    祭宋豊基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豊基 宋某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58

    祭金汝遇(光斗)文(二)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처지가 비슷하여 형제처럼 지내던 동년생 벗인 김광두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汝遇 金光斗(1562~1607)는 본관은 상주, 호는 一默齋이다. 류성룡의 문인으로 함창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
    출처 : 유교넷
  • 387159

    祭宋愚谷先生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우곡 송량선생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0

    祭表從金大鼎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표종인 김대정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1

    祭趙令(光璉)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조광휘에게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2

    金慕齋題樂志亭朴先生詩後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진사 박언성은 저자의 외증조부이다. 김안국이 낙지정을 방문하여 절구 한 수를 남겼는데 그 시를 새겨 둔 판각본이 난리 중에 타버렸다. 저자가 다시 써서 걸어둔다는 내용의 後識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3

    樂志亭朴先生行蹟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박언성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김안국이 잠시 머무르며 “효자의 높은 풍모 내 뜻 일으키니, 길 가다가 수레 멈춰 잠깐 머물도다.”라는 절구 한 수를 남길 정도로 효행이 지극했음을 기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64

    送冬至使鄭景任序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동지사에 파견된 정경세를 위해 옥성서사에서 축하하며 전별할 적에 쓴 서문이다. 聖上이 현인을 알아보았으니 직임을 다하고 돌아올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65

    送河汝淨(澂)洪叔景(鎬)赴京師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두 벗인 하징과 홍호가 京師로 부임하여 갈 적에 써 준 서문이다. 뜻은 세울 때 귀하고, 일은 성취할 때 귀한 법이니 무사히 임무를 마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6

    呈巡察使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순찰사에게 올린 정문이다. 상주는 영남의 요충지인데 임난 뒤에 풍족할 기반이 없으니 구호 기반을 선처해 달라는 요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7

    書堂呈文(代儒生作) 2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서당에 올린 정문으로, 유생들을 대신해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87168

    呈體府從事文(代鄕人作) 2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鄕人들을 대신하여 짓고 체찰사에게 올린 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6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遊淵嶽洞贈南溪翁(二首, 金一默齋(光斗),洪芝溪(霶)), 次金后溪咏淵嶽韻贈南溪翁(洪芝溪(霶)), 溪翁壽席占口(李蒼石(埈)), 南溪壽席卽事(三首), 江山風月四大字詩(盧守愼, 鄭大成), 次金慕齋韻題南溪亭(二首)
    출처 : 유교넷
  • 387170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류주목이 찬한 행장이다. 류주목의 호는 溪堂, 본관은 풍산이다. 상주에서 저서와 강학으로 일생을 마쳤다.
    출처 : 유교넷
  • 387171

    墓碣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대사헌 이원정이 찬한 묘갈명이다. 내용은 행장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387172

    淵嶽書院上樑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현감 全命三이 쓴 연악서원 상량문이다. 地靈과 人傑을 갖춘 상주지방 서원을 세울만한 조건을 갖추었고, 남계 선생의 효행과 문장, 향촌활동 등의 생평을 덧붙여 연악서원에 배향하게 된 경위를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73

    奉安祭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全五益이 올린 제문이다. 호는 繼菴이고, 본관은 축산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74

    又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朴世杰이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75

    常享祝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전오익이 지은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76

    祭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옥성서원에서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77

    又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月澗 李㙉(1588~1648)이 지은 제문이다. 자는 叔載, 호는 월간이며, 본관은 흥양이다. 류성룡의 문인으로, 동생은 창석 이준이다. 저서로는 『월간집』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78

    又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문인인 金好哲, 鄭憲世가 지은 제문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79

    又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李身圭가 지은 제문이다. 자는 用賓, 호는 酉溪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0

    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李德圭가 지은 제문이다. 자는 汝潤, 호는 午谷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1

    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문인인 金逈이 지은 제문이다. 자는 叔明, 호는 鳴巖處士이고, 본관은 광주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2

    又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尹應淓‧문하생 金堡가 지은 제문과 鄕射堂에서 올린 제문이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183

    輓詞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월간 李㙉이 지은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4

    又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강원도관찰사 崔睍(1563~1640)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季昇, 호는 認齋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시호는 定簡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5

    又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金墂가 지은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86

    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대사간 洪鎬(1586~1646)가 지은 만사이다. 자는 叔京, 호는 無住이며, 본관은 부계이다. 대제학 貴達의 후손이며, 彦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景參이고, 아버지는 德祿이며, 어머니는 柳承善의 딸이다. 정경세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출처 : 유교넷
  • 387187

    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趙靖(1555~1636)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安中, 호는 黔澗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金誠一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1605년 좌랑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鄭逑와 교유하였으며, 經述과 문장에 뛰어났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상
    출처 : 유교넷
  • 387188

    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沙西 全湜(1563~1642)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淨遠, 호는 사서이며, 본관은 옥천이다. 시호는 忠簡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汝霖이며, 어머니는 月城李氏로 참봉 信의 딸이다. 류성룡·張顯光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적을 토벌해 많은 전과를
    출처 : 유교넷
  • 387189

    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金知復, 金寭가 지은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90

    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趙光璧(1566~1642)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汝完, 호는 北溪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아버지는 壽福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春億의 딸이다. 류성룡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함창에서 정경세 등과 함께 창의하였다. 연악서원에 배향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87191

    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정헌세가 지은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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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192

    又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高仁繼(1564∼1647)가 지은 만사이다. 자는 善承, 호는 月峯이며 본관은 개성이다. 아버지는 慶雲이며, 어머니는 安東金氏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學諭 및 박사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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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193

    又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郭龍伯, 金是樞 등이 지은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94

    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曺希仁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汝善, 호는 黙溪, 본관은 창녕이다.
    출처 : 유교넷
  • 387195

    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鄭彦宏(1569~1640)이 지은 만사이다. 자는 汝廓, 호는 西溪, 본관은 동래이다. 아버지는 承祖이며, 어머니는 咸寧金氏로 恬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맹세를 하였다는 소식
    출처 : 유교넷
  • 387196

    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金秋任‧金遠振‧金是權‧盧峻命‧康喬年‧趙又新‧全以性‧金是杠‧趙光‧康在山‧全克恒‧李烱‧李煥‧金濤‧李廷立‧李燦‧문하생 宋德立‧金應澤‧金克誠‧金應兌‧문하생 宋德隆‧黃廷幹‧金克恬‧洪復見‧許翀龍‧金好哲‧成汝松‧申弘發‧宋以鎭‧韓瑺‧宋德溥‧金逈‧金基‧金堡‧李覺民‧孫胤業‧蔡得海‧黃河
    출처 : 유교넷
  • 387197

    垈村世德祠事蹟附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응철
    대촌리에 소재한 세덕사의 사적을 기술하고 있다.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의 제향기능이 중단되면서 남계 선생을 배향한 연악서원도 금지령을 어길 수는 없다. 그러나 후손으로서 報本의 도리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서원 밖에 별도로 세덕사를 지어 봉향한다는 내용이다. 趙虎然이 쓴
    출처 : 유교넷
  • 387198

    단곡집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
    단곡집(丹谷集) 丹谷 郭의 문집, 6卷 3冊, 1786,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18.4 × 14.6㎝,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30.4 × 24.3㎝. 6세손 郭師林이 丁範祖(1723~1801)의 서문(1775)과 李光靖(1714~17
    출처 : 유교넷
  • 387199

    白雲洞賦 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
    임진왜란과 파당정국으로 인해 서원문화의 타락성을 경계시키면서, 출사보다는 학문을 통한 인격수양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200

    猫賦 2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
    고양이를 소재로 하여 당시 정국상황을 우의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고양이는 直臣에, 교활한 쥐는 간교한 소인에, 힘없는 병아리는 선량한 백성에 비유하였다. 교활한 쥐를 잡는 것이 고양이의 본분임에도 도리어 힘없는 병아리를 잡는 현실을 개탄하고, 나아가 직신으로서의 고양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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