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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謝白雲諸伴來訪,玉山呈張旅軒(顯光二首), 蘆洲牧牛圖, 晩翠窩春帖, 戊午八月初六之夜雨大作江水盛漲憶亡子瓔返櫬寫哀,竹下講書, 詠滁州王使君, 送許生, 金生始聲饋酒, 金孝仲(榮祖)携其群弟諸友遊小白余相遇於白雲洞贈一絶, 枯竹束帚寄申來吉, 秋風, 積薪, 菊潭, 詠柏, 盤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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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次枕流亭韻,白雲院贈洪澤遠(霫)施遠(䨜)昆季, 附次韻, 所居山窩之南有深澗夏潦冬冰人皆病涉令人成小橋,次徐士信(亮)韻, 次金秀才孝達(崇祖)韻, 除夜, 李秀才兩君新構茅齋, 次瓔兒韻, 聞載柩回船, 憶李鼇城(恒福)相公, 悔意(二首), 冬日, 諸丱製至樂齋絶句和示公直, 層崖上老松長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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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四韻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送李察訪德薰(汝馪)之碧沙, 黃負暄公(是)在洛差千秋使將赴京貽書索別章,寄全性之(以性)之謫所, 在洛呈荷谷, 安孝子(應一)廬, 寄玉山張正甫(乃範),幽居佳雨次杜草堂韻, 憶雲門寺次友人韻, 丙辰歲除日立春, 輓嚴參奉汝謙,排憫成短律寄瓔,浮石寺次周愼齋(世鵬)韻, 謝權生贈松腴, 辛酉秋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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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四韻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山中, 謝諸伴來訪, 謹次洪侯韻, 山堂詠懷, 次竹西樓韻,聞龜鶴金相公(玏)還授職牒題一律, 敬次李蒼石(埈)韻, 又次蒼石韻, 附元韻, 呈負暄令公新亭(幷序),次題權士英(俊臣)自遠堂, 謝李上舍明伯(晉哲)委訪, 黃視遠(晨)與吾同庚爲索藥物委造其廬被酒信宿而歸, 白雲院壁次趙相國士秀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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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古詩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寄黃靑松(是○二首),玹自眞珠還視日錄題其面,索酒不得俄而一壺不求而至戲題云(二首), 戊辰九月二十五日夜雨, 黃錦溪次杜詩留花門篇贈金巡察秀文謹步其韻,贈任龍潭(屹),與龍潭遊小白山吾則能步龍潭脚弱不能步余先下草菴龍潭宿金堂余寄拙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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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五七言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白雲飮中贈淸風子(鄭允穆),謝求放齋惠詩(任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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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古詩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謝黃廣文汝厚惠斑竹帚, 贈朴都事汝仁(幷序), 謝負暄令公枉駕草廬, 賀金正字孝徵慶席, 仰高臺, 蟠谷老仙歌, 和瓔白鶴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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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長短句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謝李濟美送馬肝石硯, 題廬山騎牛圖, 兒鷄鳴曉, 次愚伏堂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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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排律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負暄令公輓詞, 輓黃員外中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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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吁夫辭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저자의 아들인 吁夫 곽영의 애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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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溪先生哀辭(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풍기지방의 학자 錦溪 黃俊良(1517~1563)의 애사이다. 저자는 이 애사에서 황준량의 才德을 높이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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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誅李爾瞻疏(辛酉爲嶺南儒生作)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21년(광해군 13)에 영남유생을 위해 북인 정권의 핵심인 이이첨을 목벨 것을 청하는 소장이다. 善類를 죽이거나 귀양보내고 소인배를 등용시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이이첨의 죄상을 낱낱이 거론하고 있다. 이이첨이 권력을 농단한 이후, 국법은 파괴되고 민간 풍속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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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論兵制疏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나라의 비상시를 대비하여 兵制를 논하여 올리려고 했던 소장이다. 남쪽의 왜구와 북쪽의 오랑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병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대비책의 일환으로 중국 병제를 본받아 기존의 우리 병제의 폐단을 개혁할 것을 강조하였다. 저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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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夏寒亭朴子澄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夏寒亭 朴漉(1542∼1632)에게 보낸 편지이다. 박록은 嘯皐 朴承任(1517~1586)의 아들이며, 자가 子澄이다. 하한정은 영주 초곡에 있는 정자로 박록이 지은 것이다. 한여름에도 전혀 덥지 않고 오히려 춥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30여 년 전 박록을 찾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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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淸風穆如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淸風子 鄭允穆(1571~1629)에게 준 편지로, 穆如는 그의 자다. 정윤목의 인간됨과 학덕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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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宗丈忘憂堂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宗丈 忘憂堂 郭再祐(1552~1617)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곽재우의 智勇과 忠義를 한나라 때 흉노를 여섯 번 쳐서 큰 공을 세운 霍去病(BC140~BC117)과 당나라 때 천하의 안위를 20여 년 동안 맡은 郭子儀(697~781)에게 비유하여 추앙하였다. 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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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郡侯蒼石公叔平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蒼石 李埈(1560~1635)에게 보낸 편지로, 叔平은 그의 자다. 저자는 이준의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한 시대의 모범이 될 것임을 확신하였으며, 나아가 그의 문장과 덕행이 野史에 기록되고 시인들에 의해 읊조리게 되면 자신의 성명도 그에 힘입어 썩지 않을 것임을 기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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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蒼石 27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창석 이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준을 존모하면서도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과 자신의 현재 삶을 전하고 있다. 말미에는 자신이 지은 작은 서재에 扁號하여 가르침을 내려주기를 희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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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蒼石(時守眞珠) 28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창석 이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준의 아들이 문과에 장원 급제함을 축하하는 동시에, 또한 늘그막에 한번 만나겠다는 宿願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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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都元帥韓相國(浚謙) 28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22년(광해군 14)에 都元帥 韓浚謙(1557~1627)에게 올린 편지이다. 저자는 한준겸이 크게 威德을 떨쳐 사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그로 인해 일국의 생령들이 삶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해줄 것을 소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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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愚伏堂鄭景任(經世) 2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愚伏 鄭經世(1563~1633)에게 보낸 편지로, 景任은 그의 자다. 평소 정경세의 盛德儀範을 경모한 나머지, 만나 뵙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심정과 아들 안현을 통해 안부를 묻는 무례함을 혜량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87222
與尹監司正平(調元) 2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감사 尹調元에게 보낸 편지로, 正平은 그의 자다. 서로간에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저자가 ‘貧老病’ 석자 부적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중에 윤조원이 그의 아우를 통해 나를 찾아준데 감사한 나머지, 그에게 글을 지어 바침으로써 잊지 못하는 심정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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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禮安善承 2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예안현감을 지낸 高仁繼(1564~1647)에게 보낸 편지로, 善承은 그의 자다. 서로간에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특히 養病하기 위해 山園에 은거할 때, 고인계의 자제들을 가르칠 수 없는 이유를 자신의 신상과 관련시켜 정중히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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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鶴沙 30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鶴沙 金應祖(1587~1667)에게 준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에 고마움을 전하는 동시에 김응조 형제들의 근황을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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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秦汝弼 3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秦汝弼에게 준 편지이다. 奇詭한 문자를 짓지 말고 흉중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평탄한 문장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다. 그 모범적인 인물로 구양수와 구준을 들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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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都事汝仁 3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도사 朴汝仁에게 준 편지이다. 慈夫人의 壽筵을 축하하는 시를 올린다는 내용과 근래 詭怪險刻한 문장을 짓는 풍조를 비판하고 典雅明白한 문장을 지을 것을 촉구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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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洪澤遠施遠 32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洪澤遠과 洪施遠에게 준 편지이다. 저자의 문장관이 단적으로 드러난 글이다. 옛날 성현의 글은 도덕이 마음속에 쌓여 문장이 밖으로 드러나 자연히 말과 이치가 부합되었는데, 지금 세상은 奇詭高僻으로 고상함을 삼고 彫刻粉飾으로 일을 삼아, 남의 이목을 현란케 하는 것을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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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判書子中(時讓) 33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판서 荷潭 金時讓(1581~1643)에게 올린 편지로, 子中은 그의 자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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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玹瓔 33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아들 郭玹과 郭瓔에게 부친 글이다. 저자는 두 아들에게 과거공부에 앞서 治心養性을 위주로 하면 문장은 자연히 이루어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곽현의 문장은 艱澁하여 圓熟함이 부족하고, 곽영의 문장은 支漫하여 實趣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면서, 성현의 글을 통해 그 단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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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瓔兒 33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18년(광해군 10)에 아들 곽영에게 부친 글이다. 생사간에 ‘곧을직[直]’자를 지키며 행동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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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禊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24년(인조 2)에 쓴 족계 서문으로, 족계를 만들고 그 규약을 정한다는 내용이다. 고단한 同宗끼리 족계를 통해 九族이 화목하게 지낼 것을 소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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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氏族會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20년(광해군 12)에 쓴 옥산장씨 족회 서문이다. 학가산 보문사에서 성대하게 족회의 모임을 가진 내력을 기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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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文成公廟秋享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문성공 安珦(1243~1306)의 사당에 추향한 일을 적은 서문이다. 초기의 생기발랄한 서원문화가 타락의 징후를 드러내자, 저자는 문성공의 崇道育才의 정신을 본받아 참다운 선비정신을 견지해 달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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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樂齋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지락재’는 蒼石 李埈(1560~1635)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백운동서원 내에 지은 작은 집이다. 원생들이 ‘지락’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이준이 대답한 내용을 저자가 기문에 옮겨 적은 것이다. ‘지극한 즐거움’은 성현이 남긴 글을 부지런히 읽는 것만한 것이 없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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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竹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13년(광해군 5)에 자신이 심은 대나무에 대한 느낌을 적은 기록이다. 1605년에 백운동서원의 동주가 되어 강당 뜰가에 烏竹을 심어놓은 후, 6,7년 뒤에 다시 서원의 동주로 와서 그 오죽이 무성하게 자란 것을 보고 감회를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대나무를 심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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媚學齋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18년(광해군 10)에 쓴 媚學齋 기문이다. 저자는 ‘媚學’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면서 학문에 진력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 학문은 다름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한 爲人之學이 아니라 성현의 글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爲己之學임을 천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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炎亭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저자의 벗 李汝純의 정자인 避炎亭에 대한 기문이다. ‘避炎’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운데, 진취에 뜻을 접고 林泉에 은거하여 문적을 自娛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여순의 삶의 태도를 긍정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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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齋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正字벼슬을 한 樗巖 李公의 祠宇에 ‘追齋’라는 편액을 단 연유를 쓴 기문이다. 저자는 저암과 그 아들의 삶의 자세를 긍정하는 가운데 ‘追’자의 의미를 부연 설명하고, ‘추’자의 의미는 결국 증자의 “愼終追遠 民德歸厚”의 정신을 본받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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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誠之旌閣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20년(광해군 12)에 尹欽信‧尹欽道(1567~ ?) 형제가 정려를 받은 내력을 적은 기문이다. 임진난 때 윤흠신‧윤흠도 형제가 柳宗介(1558~ 1592), 任 屹(1557~1620)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춘양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다. 그 뒤 방백이 조정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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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谷草廬重修記(辛未冬)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1631년(인조 9)에 단곡에 있는 초려를 중수한 사실을 적은 기문이다. 1601년에 지은 초려가 30여 년 동안 비바람에 의해 허물어져 사람이 거쳐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초려를 중수하면서 초려에 사는 주인의 소박한 삶의 태도까지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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甁庵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선성[예안]의 처사 南丈의 「甁庵說」에 대한 저자의 뜻을 부친 기문이다. 저자는 남장의 「병암설」이 옛날 성현의 설과 부합됨을 강조하면서, 先正의 ‘守口如甁’의 의미와 甁이 술을 담아두는 그릇임을 상기시키면서 말의 신중함을 일깨우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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枕流亭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순흥에 있는 枕流亭에 대한 기문이다. 저자는 정자의 뛰어난 주위경관을 설명한 뒤, ‘枕流’의 의미에 대해 주인과 客의 대화를 통해 밝히고 있다. 知者樂水, 觀水有術의 성현의 말씀을 인용한 뒤, 시냇물의 흐름을 취해 마음의 덕을 기를 것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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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陽南氏世乘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南鵕慶이 가지고 온 영양남씨 言行錄에 대해 읽고 소감을 적은 글이다. 영양남씨 집안 인물의 懿德茂行을 말하는 가운데 賁趾 南致利(1543~1580)에 대해 특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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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老契軸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五老契軸의 전말을 기록한 후지이다. 오로계축은 1494년(성종 25)에 耆英堂의 五老들을 위해 圖形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위에 전서가 없고 아래에 名錄이 빠졌다. 그래서 1607년(선조 40)에 李植이 소장한 축을 모방하여 名號와 官爵을 列書하였다. 글씨는 李徽音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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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柳子厚先友記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당나라 柳宗元(773~819)의 「先友記」에 대해 비판한 글이다. 유종원이 아버지의 碑文 뒷면에 67명의 아버지 친우의 이름을 기재하고, 포폄을 가한 행위에 대해 이는 진정한 효자의 도리가 아님을 지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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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張魏公傳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송나라 어진 재상 張浚의 전기를 읽고 느낌을 적은 글이다. 장준의 훌륭한 행적을 당시 李綱과의 비교를 통해 논하면서, 어진 재상의 조건으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밝을 것을 강조하였다. 장준은 張栻(호는 南軒)의 아버지며, 자는 德遠이고, 효종 때 魏國公에 봉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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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夷杖銘(幷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남에게 얻은 멋진 대나무 지팡이를 화재로 잃고 나서, 나뭇꾼이 베어다 준 못생기고 왜소한 신이목을 지팡이로 사용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신이목 지팡이를 예찬한 글이다. 재야에 버려져 등용되지 못한 처사로서의 불우함을 신이목이라는 보잘 것 없는 나무에 비유함으로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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側柏枕銘 25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측백향 일 매를 얻어 세 개의 베개를 만들어, 하나는 자신이 하고 둘은 아들에게 주면서 그 베개 밑에 명을 지어 경계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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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壺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벗이 술병을 보내왔는데 매우 작아 장난삼아 병의 앞면에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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瓢子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곽진표주박에 대해 쓴 명으로, 공자의 제자 안연의 簞食瓢飮의 삶의 지향을 기리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