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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7351

    祭柳士宜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柳士宜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저자의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공은 ‘선친과 못다한 정의는 아들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였는데 이제 그대가 돌아갔으니 내가 누구와 힘쓰겠는가 하고 애통해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2

    祭姑夫朴公(海寧)幷姑母文(改葬時)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고모부 朴海寧과 고모의 묘소를 이장할 때 지은 제문이다. 묏자리가 불길하다 하여 吉地로 옮기니 혼령께서 편안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3

    祭梅隱先生趙公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趙承洙는 본관이 豊壤, 호는 梅隱, 상주에 거주하였다. 鄭宗魯의 門人으로 학문과 재주가 뛰어났으며, 理氣의 辯論은 앞 세대의 학설을 따랐다. 『十善箴圖』‧『朱書撖要』‧『痛悔錄』 등을 저술하였다. 재주와 학문이 뛰어났지만 평생 곤궁하게 살았으며, 노년에는 10년동안 병
    출처 : 유교넷
  • 387354

    祭金禹文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金禹文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金禹文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선대의 덕을 이어 받았으며, 훌륭한 재주는 功名사업에 내달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는데,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마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5

    祭再從姪履煥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재종질 權履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權履煥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애통해하며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원통해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6

    祭族兄(鼎相)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족형 權鼎相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형이 돌아가신 후로 문을 나서도 갈 곳이 없고 홀로 외롭다고 하였다. 평소의 풍모를 볼 수 없고 고상한 말씀도 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7

    祭族叔(進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족숙 權進佑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족숙께서 돌아가시니 어린 아이들은 보호를 잃었고, 나 또한 보답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족숙의 소원이던 「대동운부군옥」을 꼭 간행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58

    祭室人眞城李氏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부인 진성이씨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부부간의 애틋한 정을 표현하였다. 부인이 먼저 죽고 완악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한 시라도 슬프지 않은 때가 없었고 집안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고 아침이면 슬퍼하고 저녁에도 슬퍼한다고 하였다. 문을 나서며 슬퍼하고 문을 들어서며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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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59

    祭季父府君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季父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선친의 형제 중에 장수한 사람이 없어서, 계부만 홀로 남았다가 이제 돌아가시니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0

    祭弟(顥相)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아우 權顥相(?~1838)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자는 淳夫, 호는 蓮皐이며, 1825년(순조 25) 式年試 生員에 합격하였다. 친아우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제사지내는 오늘 저녁 홀로 남은 자신이 비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1

    祭三從叔(進裕)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삼종숙 權進裕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숙질간이지만 나이가 비슷하여 붕우처럼 지내며 서로 의지하다가 홀로 남게 되어 애달프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2

    祭聽澗公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權玉相(1774~1838)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본관은 醴泉, 자는 周琢, 호는 聽澗이다. 鄭宗魯와 南漢朝의 門人이다. 형의 죽음으로 세 가지 탄식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공적으로 탄식하고, 둘째는 가문을 위해서 탄식하고, 셋째는 개인적으로 탄식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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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63

    柳大圭(奎祚)哀辭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柳奎祚의 죽음을 위로한 글이다. 柳奎祚같은 재주는 옥당이나 승정원의 고관을 지내기에 충분한데도 일찍 세상 마친 것을 애석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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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64

    申烈婦眞城李氏哀辭(代人作)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저자 딸이 열부의 고모가 된다고 하였다. 열부의 죽음에 남들은 열부라고 칭찬을 하지만 자신은 그러한 특이한 행실을 하는 것보다 보통사람처럼 살았으면 차라리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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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65

    權士黙(道運)哀辭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權道運이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예천권씨의 성이 안동권씨에서 나왔으니 서로 다른 형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분은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하였다. 공은 문채보다 바탕이 질박하고 진실함을 지키는 것은 남들과 같지만 남들과 다른 점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6

    族弟(雨相)哀辭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족제 權雨相의 죽음 애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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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67

    金善元(斗鎭)哀辭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金斗鎭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겨우 20여 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것을 슬퍼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8

    牛橋金丈士應(商運)哀辭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金商運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金禹文과 부자간으로 양대가 모두 일찍 세상을 마친 것을 애통해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369

    行狀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李敦禹(1807~?1884)가 쓴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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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0

    墓碣銘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柳致明이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뒤에 손자 煥이 쓴 후기가 붙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371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鄭象履‧李秉夏‧柳致球‧朴箕寧‧金重夏‧黃中琯‧朴弼寧‧權秉瓚‧金會銖‧權人夏‧柳泰永‧權進學 등 쓴 만사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372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권현상
    朴箕寧의 제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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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3

    성극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省克堂 金弘微의 문집. 4卷 2冊. 1933. 木活字本. 四周雙邊, 半郭 16.5 ×21㎝, 有界, 10行18字, 上向花紋魚尾, 上下白口, 31.3×20.5㎝. 김홍미의 후손인 金仁植과 金元喆 등이 편집‧간행한 것이다. 서두에는 宋浚弼의 서문이 실려 있다. 卷1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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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遠志亭賦(西厓先生亭), 吊文丞相賦, 活處觀理賦, 釋賦, 哭秦庭賦, 鳳鳴朝陽賦, 烏程鶴賦, 鳳鳥不至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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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存養省察吟(二絶), 秋夜有感(丁丑), 夜坐 次友人韻 送伯氏沙潭公赴洛(戊寅), 陪伯氏, 遊龜潭, 次尹晦甫韻. (三絶) 送人遊金剛山(二首), 發堤川留別友人 琴塘次李克孝韻(二絶), 敬次周易校正廳賜宴韻(己丑), 獨坐 流頭日卽事 賡進御製李提督(如松)平壤功德碑詩(二首), 西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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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6

    乞解職省墳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의 분묘를 돌보며 살기를 청원하는 상소문이다. 저자는 10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가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키웠으나, 그간 관직 생활에 매어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묘를 돌보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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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7

    乞遞備問使疏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備問使에 임명되었을 때, 자신의 능력으로 그 관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고 아뢰며 임명을 거두어 달라고 청원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나라의 상황이 위급할 때 몸 마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신하된 도리이지만, 비문사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일
    출처 : 유교넷
  • 387378

    辭吏曹參議啓(戊戌七月)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吏曹參議에 제수되었을 때, 건강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그 관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고 아뢰며 사직을 청원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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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79

    辭備邊司堂上啓(同年八月)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備邊司堂에 제수되었을 때 사직을 청원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 졸박한데다 건강도 좋지 않아 이 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사직을 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380

    辭大司諫啓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大司諫에 제수되었을 때 사직을 청원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천성이 졸렬하기 때문에, 임금에게 충언하는 대사간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아뢰면서 사직을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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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81

    再啓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다시 한 번 대사간에서 사직하기를 청원하는 상소문이다. 나라의 형세가 위급하지만 자신은 편두통과 기침이 심하여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 사직을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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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82

    因事進諫啓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대사간의 벼슬에 있을 때, 丁氏가 임금을 현혹하여 정사를 소홀하게 만들고 있다고 직언하는 상소문이다. 임금은 종묘사직과 조정을 돌보면서 정치의 실무에 힘써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임금에게 남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힘쓸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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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83

    以備問使在遼東時啓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비문사의 자격으로 명나라 조정에 가던 중 遼東에서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저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외교사절단으로 갔었는데, 이때 명나라 조정의 관료와 조선의 전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원군을 요청하고 있다. 이 상소문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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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84

    大殿上尊號賀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大殿(임금)에게 尊號를 바치고 경하하면서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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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85

    中殿上尊號賀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中殿(왕비)에게 尊號를 바치고 경하하면서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87386

    冬至賀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冬至日에 임금의 덕을 칭송하면서 올린 글이다. 동지 때부터 새로운 양기가 서서히 회복되는 것처럼 임금의 덕이 새롭게 피어나길 바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87387

    誕日賀箋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임금의 생일을 축하하며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87388

    正朝賀箋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설날 아침에 임금에게 올린 축원문이다. 새해 임금의 덕과 나라의 운이 계속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87389

    誕日賀箋(代府伯作)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府伯을 대신하여 임금의 생일을 축하하며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87390

    正朝賀箋(代人作)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설날 아침에 府伯을 대신하여 임금에게 올린 축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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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1

    謝許致仕箋(代藥圃鄭相公作)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藥圃 鄭琢(1526∼1605)이 연로했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한 것에 대해 임금이 허락하자, 저자가 정탁을 대신하여 감사드리며 지어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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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2

    賀扈聖宣武淸難三功臣會盟箋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扈聖, 宣武, 淸難의 칭호를 받은 3명의 공신들의 회맹을 축하하며 지은 글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세 공신들의 위업과 임금의 덕을 경하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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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3

    上西厓先生(1603)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스승 류성룡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서두에는 날씨와 농사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무더운 날씨 중에도 옛 책을 읽으며 더위를 잊고 있다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그리고 五峰 李好閔(1553∼1634)이 공문서를 잘못 기록한 일에 대해 류성룡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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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4

    答西厓先生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스승 류성룡에게 보낸 답신이다. 류성룡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아뢰고 있다. 류성룡이 보내준 문집을 전심하여 읽지 못한 것을 죄송스러워하면서 곧 늙게 될 텐데 허송세월만 하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겸사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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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5

    上鄭藥圃相公(琢)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藥圃 鄭琢에게 올리는 편지글이다. 정탁은 임금이 자신의 致仕를 허락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글을 써달라고 저자에게 요청하였다. 저자는 權英俊이 가져온 정탁의 편지를 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부족한 글 솜씨로 임금께 올리는 글을 썼는데 이것이 정탁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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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6

    與鄭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藥圃 鄭琢에게 올리는 편지글이다. 서두에는 정탁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날이 더워서 누워서 신음하며 허송세월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탁이 자신의 치사를 허락해준 임금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글을 써달라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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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397

    答韓柳川益之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한익지의 안부를 묻고, 저자 자신은 건강이 안 좋아 몹시 고생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한다. 또한 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가 포로를 처리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398

    與韓柳川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저자는 백성을 평안하게 해주어야 하는 위정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의 피해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399

    與韓柳川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작년 여름 조카를 통해 편지와 약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건강이 갈수록 나빠져서 그저 신음하며 드러누워 있을 뿐이라고 근황을 전한다.
    출처 : 유교넷
  • 387400

    與韓柳川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한익지의 안부를 묻고, 신병이 심해져서 더욱 괴롭게 지낸다고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에서도 위정자와 백성이 일심단결하여 민생의 터전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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