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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87401

    與韓柳川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한익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명나라 조정에 謝意를 표하는 공문서를 작성하였고 그것을 상전에 보고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자신의 병이 깊어져서 염증과 風症을 치료하는 약을 얻기를
    출처 : 유교넷
  • 387402

    答韓柳川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川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보내준 편지를 받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먼저 전하면서, 한익지가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봐준 덕분에 자신이 그나마 하루하루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安東
    출처 : 유교넷
  • 387403

    答韓柳川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韓益之에게 보낸 답장편지이다. 생각지도 못한 편지를 받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고 이야기하면서, 저자 자신은 두통과 천식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고 근황을 전한다.
    출처 : 유교넷
  • 387404

    答韓柳川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韓益之에게 보낸 답장편지이다. 수개월 내에 몇 통의 편지를 연이어 보내준 것에 감사해 하면서, 자신은 고질병이 갈수록 깊어지는데다 설사병까지 겹쳐서 대단히 힘들다고 근황을 전한다. 아울러 한익지가 약재를 보내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안동부의 파발마를
    출처 : 유교넷
  • 387405

    答韓柳川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韓益之에게 보낸 답장편지이다. 간단한 안부와 긴 여행의 여비 마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06

    與韓柳川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韓益之에게 보낸 편지이다. 화창한 봄기운처럼 한익지의 생활도 편안하기를 기원하면서, 고질병에 시달리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번 한익지가 고을을 순찰하면서 민심을 도탑게 얻은 덕에 지금까지 백성들이 한익지를 칭송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백성을
    출처 : 유교넷
  • 387407

    答天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명나라의 대장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왜란 때 대장군이 우리 백성들을 잘 보호해준 덕분에 백성들은 지금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대장군의 덕망을 칭송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봄이 된 이래 안찰사와 제독이 민력을 동원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이 조금 피폐해질까 걱
    출처 : 유교넷
  • 387408

    答李孝彥(好閔)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五峰 李好閔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작년 겨울 멀리서 보내준 편지를 받아 대단히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고 감사해한다. 그리고 청운의 꿈을 가진 이호민과 오래된 교유를 하는 저자 자신이 이호민의 앞날에 도움이 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저자 자신은 섭생을 잘하지 못하
    출처 : 유교넷
  • 387409

    答李孝彥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五峰 李好閔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이다. 새 봄에 보내준 편지에 큰 위안을 받았다고 감사해하면서, 지난날 이호민이 안동에 방문했을 때 신병이 깊어 함께 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0

    答李叔平(埈)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蒼石 李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이준은 저자와 류성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이준과의 우애를 나타내면서 마음을 함께 하여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1

    答康明之(復誠)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1550∼1634)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이다. 강복성은 저자와 함께 류성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이 임금의 은총을 받아 관직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나라의 위기를 좌시하고만 있는 반면, 강복성은 굳건한 마음으로 위태로운
    출처 : 유교넷
  • 387412

    答康明之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에 감사해하며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자기 신세를 전하고 있다. 또 명나라 원조 군대가 곧 조선에 도착하여 兵火를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강복성이 종이와 생선을 선물해준 세심한 배려에 감사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3

    與康明之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를 받고 즐거웠다고 말하면서 무더운 날씨에 안부를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4

    與康明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조정의 謁聖試가 今月 26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강복성에 한 번 응시하여 청운의 꿈을 펼치기를 권하고 있다. 다만 강복성이 과거에 뜻이 없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터라 이런 권유가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고 덧붙인
    출처 : 유교넷
  • 387415

    答康明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뜻밖의 편지를 받아서 기뻤다는 이야기와 함께 고질병이 심해져 고생하고 있다는 자기 안부를 전한다. 아울러 멀리 떨어져 있어 동문수학한 동지끼리 만나보지 못하는 상황을 아쉬워하고 있다. 또 자기의 갓이 다 헤졌으니 새 갓을 하나 만들어
    출처 : 유교넷
  • 387416

    答康明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강복성이 보내준 편지를 서너 번 반복해 읽으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몸은 병들고 집안은 가난하며 나라는 국난에 처해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스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7

    答康明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강복성이 편지와 함께 보내준 새 갓이 너무도 좋다고 감사해하고 있다. 아울러 관찰사가 강복성을 높이 칭찬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은 몸이 아파서 걱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18

    答康明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竹澗 康復誠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혹염의 날씨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곧 備問使의 자격으로 만리 길을 가야 하는데, 본래 타고난 재질이 용렬한데다 기력 또한 쇠미하여 어떻게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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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19

    寄從子獻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조카 金獻에게 보내는 안부편지이다. 저자의 형수와 조카 김헌이 혹염의 날씨에 무고한지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있다. 또 폭염이 지난 다음 홍수가 나서 많은 백성이 물난리에 죽게 된 것을 한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헌의 아버지이자 저자의 형인 金洪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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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20

    答人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미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5년 만에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공무를 잘 수행하는지 안부를 묻고 있다. 또 저자 자신은 깊은 산속 후미진 곳에 깃들어 어렵게 살고 있는데다 큰딸이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해 걱정
    출처 : 유교넷
  • 387421

    與人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미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오래간만에 편지를 받게 되어 기뻤다는 소식과 함께 저자 자신은 병이 들어 고생하고 있다는 안부를 전한다.
    출처 : 유교넷
  • 387422

    答人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미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오래간만에 뜻하지 않은 편지를 받아보니, 마치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 감회가 깊다고 하면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 손을 맞잡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저자의 형인 金洪敏의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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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23

    無極二字出於老子論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중국 南宋시대의 사상가인 朱子와 陸象山의 「無極太極論爭」에 대해 저자가 주자의 이론이 정확하다고 변호하는 논문이다. 周濂溪는 『太極圖說』에서 “無極이면서 太極”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는 태극은 우주의 최고 원리로 어떠한 形而下學的 형태를 띠지 않는 것이
    출처 : 유교넷
  • 387424

    溫公念中論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북송시대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인 司馬光에 대해 비평한 글이다. 사마광은 『資治通鑑』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中庸』에서 말하는 인간 내면의 본질인 中을 파악하기 위해 정좌하여 中의 상태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사마광의 수양이 오류라는 점을 증명한 논문이
    출처 : 유교넷
  • 387425

    制勝守邊策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쓴 과거 시험 답안으로 對策文이다. 시험 문제는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오랑캐들과 대치하고 있어서 늘 침범의 위협에 휩싸여 있는데 어떻게 이들을 막아내어 변방을 지킬 수 있겠는가?”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詩經』의 한 구절로부터 문제를 풀고 있다. 周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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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26

    送泂上人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泂이라는 승려를 전송하면서 지은 시집의 서문이다. 이글에서 저자는 먼저 유학과 불교의 차별점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뚜렷한 윤리 준칙이 있다고 보는 반면, 불교에서는 인간 마음이 텅빈 空일 뿐이라고 여겨서 삼강오륜의 질서를 무시
    출처 : 유교넷
  • 387427

    性浩詩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가 性浩라는 승려의 시집에 써준 서문이다. 저자가 남쪽에 처음 왔을 때 묵묵히 염주를 굴리며 묵상하는 성호를 보고 교유하게 되었는데, 훗날 그가 먼 길을 찾아와서 저자에게 시집 서문을 부탁하였다. 저자는 그가 찾아온 정성을 거절할 수 없어서 이에 시집의 서문을 써
    출처 : 유교넷
  • 387428

    山澤亭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山澤亭이라는 정자의 이름을 짓게 된 연유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주인이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지어달라고 저자에게 부탁했는데, 저자가 山澤亭이라고 지어주려 하자 주인이 약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저자는 山澤이라는 말은 『주역』에 근거한 것으로 “성냄을 징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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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29

    書濯纓集後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濯纓 金馹孫(1464∼1498)의 문집 말미에 붙인 저자의 跋文이다. 김일손은 金宗直의 제자로 여러 관직을 거쳐 史官에 있었는데, 당시 스승 김종직이 쓴 「弔義帝文」을 史草에 올렸다는 이유로 능지처참 당하게 되었다. 이 발문에서 저자는 김일손의 올곧은 성품과 우국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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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30

    祭外舅謙庵柳先生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謙庵 柳雲龍(1539∼1601)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류운룡은 류성룡의 친형으로 퇴계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이 제문에서 저자는 류운룡이 어려서부터 자신을 친자식처럼 대하며 가르쳐준 은혜를 회고하면서 류운룡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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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31

    祭南冥曺先生文(代人作)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南冥 曺植(1501∼1572)을 위해 지은 제문으로 저자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쓴 것이다. 저자는 류성룡의 제자이자 조식의 문하생이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 저자는 조식의 죽음을 공자의 죽음에 견주면서 그 덕을 찬양하고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32

    大駕南征時製進山川告祝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임금이 남쪽 지방에 순례차 와서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 지은 제사 축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87433

    龍壇祈雨祝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기우제를 지낼 때 올린 축문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비를 관장하는 용의 힘에 의탁하여 백성들의 농토에 단비가 내려주길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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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34

    貞敬夫人金氏墓誌銘(幷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柳仲郢(1515∼1573)의 부인인 金氏를 위해 지은 묘비명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김씨 부인의 가문 내력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다. 또 남편을 잘 보필하고 자식을 잘 키운 덕에, 류운룡‧류성룡과 같은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었을 뿐 아니라 김씨 부인 자신도 貞敬夫人의 영
    출처 : 유교넷
  • 387435

    先考徵士府君家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부친인 金範(1512~1566)을 위해서 쓴 家狀이다. 김범은 자가 德容이고, 호가 后溪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진사시에 장원하였다. 玉果 현감을 지냈고, 曺植과 함께 明宗에게 학문과 정치에 관해 진언하였다. 만년에 주자학에 전심하여 많은 후진을 가르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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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36

    先妣宜人行蹟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어머니인 宜人 曺氏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조씨는 본관이 창녕이고, 曺漢臣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반듯한 여인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김씨 집안에 시집온 뒤로는 총명한 두뇌로 부친을 잘 보필하고 반듯한 몸가짐으로 자녀들을 잘 키웠다. 저자
    출처 : 유교넷
  • 387437

    저자의 친형인 金弘敏의 행장이다. 김홍민은 자가 任父, 호가 沙潭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翰林院과 三司를 거쳐 이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忠報軍이라는 의병을 규합하여 상주지역을 사수하였다. 이 덕분에 적군은 호서지역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만년에 김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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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38

    謙庵柳先生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謙庵 柳雲龍을 위해 지은 행장이다. 류운룡은 류중영의 아들이자 류성룡의 형으로, 어려서부터 재질이 남달라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장성하여 관계에 들어간 뒤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만년에는 퇴계의 四七說을 더욱 정묘하게 탐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87439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蒼石 李埈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87440

    墓誌銘(幷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愚伏 鄭經世가 지은 저자의 묘지명이다. 앞의 행장에 비해 저자의 학문 활동과 수양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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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1

    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谿谷 張維가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 앞의 묘지명에 비해 저자의 가문 내력과 사승 관계, 관직 활동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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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2

    輓詞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지인들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류성룡, 金玏 , 李埈(3수), 정경세, 盧景任 등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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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3

    祭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지인들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류성룡‧정경세 등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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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4

    敬書編校後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홍미
    저자의 후손인 金直源과 金元喆이 지은 발문이다. 저자의 冑孫인 仁植과 光植의 노고로 저자의 문집이 출간되었음을 기뻐하면서 마지막 교감 후의 감회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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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5

    손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損齋 南漢朝의 시문집. 15卷 8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0.6×16.6㎝, 有界, 10行18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32.5×21.5㎝.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또한 저자의 行狀을 비롯한 전기 기사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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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夏日訪愚山, 自劍潭至淸巖三絶, 宿道南書院, 除夜書懷寄愚山子(鄭士仰宗魯), 宿竹門, 春日, 過道院, 陜川, 靈源庵步溪邊濯足, 次愚山子用杜集中韻, 棲黃嶺寺復寄愚山子二絶, 過陽山寺, 和柳熙甫(榮春)次濂溪先生大林寺韻, 代人輓伴鷗亭主人, 登德峯望愚山栗里, 次愚山子白雲詞四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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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7

    與東巖柳丈(長源,1787)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동암 류장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평소 공부의 어려움과 저자의 자식 교육을 류장원에게 맡겨 놓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화평한 기운을 잃지 않는 것과 화평한 가운데서도 긴절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저자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공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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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8

    與東巖柳丈(1791) 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스승인 대산 이상정의 유문을 간행하는 일에 관해 의논한 편지이다. 류장원도 대산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의논한 것이다. 당시 유림들 간에 『대산문집』을 간행하는 일을 발의해 놓고 모종의 문제에 부딪혀 중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임을 회피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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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49

    與東巖柳丈 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류장원이 보내준 두 편의 기문을 잘 받았음을 말하고 그 언사의 기묘함을 찬탄했다. 저자는 근자 仙洞에 정자를 경영하는 일에 몰두해 있다고 하면서 그 경치의 빼어남을 말했다. 김농암의 시와 류장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를 보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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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7450

    與東巖柳丈(1794) 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
    『맹자』에 나오는 측은지심에 대한 당시 유림들 사이에 논란을 빚고 있던 문제들을 질의한 내용이다. 저자는 ‘不忍人’ 세 글자를 측은지심이 몸 안에 가득 차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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