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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東巖柳丈 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모종의 상소 건에 대해 조속히 실행에 옮겨지지 않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편지이다. 지난봄에 이미 향론이 결정되었는데 아직도 지지부진하고 진행되지 않는 것은, 유림 사회에서 경중과 완급에 대한 분별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고, 이것이 무슨 공평광대한 일처리 방식인가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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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東巖柳丈(1795) 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류장원에게 저자의 예법상의 실수에 대해 고백하고 가르침을 구한 편지이다. 저자는 한 달 안에 누이의 초상과 부와 조부의 제사가 겹치는 일을 당했는데, 황망한 가운데 예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했으며 뒤늦게나마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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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小山李丈(光靖,1788)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小山 李光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인편에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만년에도 기력을 잃지 않고 학문에 매진함을 칭송했다. 문하에서 공부하는 사람 가운데 멀리서 온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여망이 보이는 사람은 또한 몇이나 되는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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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順庵安丈(鼎福,1785)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順庵 安鼎福에게 보낸 편지이다.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만났을 때는 속마음을 펼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자신의 현황과 속유들의 학풍에 대해 얘기했다. 저자는 요즘 종아리에 부종이 생겨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후세 학자들이 옛날 학자들만 못하여 사적인 일에 몰두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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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順庵安丈(1786) 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나라가 불운하여 세자 자리가 비어 있고 남인들 가운데 장로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칠계 선생까지 운명하니 후생들은 어디에 의탁할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저자는 순암의 문하를 흠모한다고 하면서 敬의 의미에 대해 논의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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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順庵安丈(1787) 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안정복이 학문은 모름지기 시폐를 살펴야 한다는 실학적 견해를 제시한데 대해 저자가 비판적 관점에서 말한 편지이다. 저자는 시폐를 살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한 공부에는 가하지만, 위기지학을 위한 공부에서는 바깥을 의식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성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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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順庵安丈(1788)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김군의 전언에서 저자가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것을 조남명에 비유하여 말한데 대한 저자의 견해를 피력한 편지이다. 저자가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것은 다만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편의를 따랐기 때문이지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남명의 고둔함에 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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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順庵安丈(1790)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申致鳳이 돌아오면서 안정복으로부터 『天學或問』 1책을 받아서 저자에게 전해 주었다고 했다. 의론이 정대하고 내용이 간절하여 족히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 글로 정리해 두었으니 훗날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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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順庵安丈(1791)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異學이 날로 극성을 부리고 斯文의 쇠락이 날로 심해짐을 개탄했다. 愚山子 鄭宗魯가 보낸 편지에서 두 가지 폐단을 언급하여 병통의 근원을 궁구했다고 했다. 고명한 선비들이 평상의 도리를 버리고 신기한 것을 좇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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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舅金素庵(1787)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외삼촌인 素庵 金鎭東에게 보낸 편지이다. 소암공으로부터 훈계를 듣고 스스로를 참회하는 내용이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엄격하게 단속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것이 큰 병통임을 깨달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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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舅金素庵(1790)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저자의 신병에 대해 토로하는 편지이다. 위장에 열이 있으며 이것을 고칠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한 의원의 말을 전했다. 저자 스스로 조양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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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舅(1792)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조정에 올린 상소가 수용되었으며 임금이 내린 비답의 내용이 간절함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삼십 년 묵은 답답한 심정이 조금은 풀렸다고 하면서, 이것은 荀子가 말한 바 “밝은 하늘은 잊지 아니하며 이치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원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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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舅(1796) 1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동암 류장원의 사망을 알리고 그를 애도하는 내용이다. 동암공이 죽고 그 아들마저 연이어 운명하니 애통함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동암공은 저자에게 실로 부모이며 스승과 같은 분이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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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仲舅(1798) 1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진사 柳若文이 巖亭遺事 한 통을 갖고 와서 저자에게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이유를 대며 행장을 부탁했음을 말하고, 거절할 수 없어서 일단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외삼촌 소암공에게 혹시 행장을 작성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 한두 가지 적어달라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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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剛齋(承延,1793)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李承延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승연은 지난 번 올린 상소에 참여했던 인물로서 벼슬을 받아 출사했다. 이 편지는 저자가 이승연의 출사가 부당함을 곡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소청에서 함께 논의할 때 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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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剛齋 1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李承延이 보낸 출처의 도리에 대한 답변이다. 지극히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부득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예로부터 출처의 도리는 名利와 分義 두 가지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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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承旨(錫龍,1789)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趙錫龍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건강이 어떠하신 지 안부를 물었다. 서울 가는 행차에 대해 몸의 상태를 잘 가늠하여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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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穆之(楨國,1798)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李楨國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의 신병에 대해 한탄했다. 이정국이 선비의 절도에 대해 언급한데 대해 동의를 표시하고, 따뜻한 날에 한번 만나기를 희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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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威(虎然,1797) 1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趙虎然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호연의 형제가 서원의 금전적인 문제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해 향론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물었다. 돈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받으려고 하면 이익을 도모한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7월 기망의 모임에 참석하고는 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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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威 1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도남서원에서 향음주례를 거행할 때 병 때문에 참석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또 지난 번 강회에서 저자가 강석에 앉았음을 언급하고 사양하고자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오는 봄에 일향에 통고하여 강회를 열고자 한다면서 규모는 을유년 호계서원 정도로 해서 5,6일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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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別紙 1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상례에 관련된 조호연의 질의에 대해 답변한 편지이다. 단계별로 상복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해서 입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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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1798) 1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저자는 여름 동안 신병을 얻어서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했다. 근자에 재주 있는 인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실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강군은 독실하지만 집안에서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큰 선비의 문하에 찾아가 공부하도록 권장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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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1799) 2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대저 피차가 각각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근자의 병폐라고 하면서, 서원에 몇 사람이 머물고 있지만 모두 공령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렇게 착실하게 위기지학에 관한 질문을 받으니 어떻게 답변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申商이라는 사람이 저자의 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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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威(1800) 2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조호연 형제가 함께 공부하는 광경을 언급하고 부럽다고 했다. 눈길을 무릅쓰고 집과 서원을 왕복하지만 옛사람의 공부하는 경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강회는 흉년이 들어 연기되어 왔고 금년은 약간 풍년이지만 연소배들의 기상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에 의욕이 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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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1802) 2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조호연 형제의 공부가 성장함을 찬탄하고, 『주자어류』에 나오는 몇 가지 조목에 대해 언급했다. 저자는 그 의미가 명백하여 이미 전날에 조호연에게 진달한 것이라 하고 재론하지 않고, 피차의 의견이 다를 바가 없는데 쟁론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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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1803) 2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조호연의 학문을 촉구하는 편지를 받고 감동을 언급한 편지이다. 몇 차례 읽었다고 하면서 그의 성의에 감사했다. 대체로 일상적인 공부에 대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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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 2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강회에 관한 내용이다. 강석에 앉을 사람은 사풍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참석자 중에 과연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논어』의 요지는 다만 효제근신에 있을 뿐이며 문의를 해석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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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士威(1805) 2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근자 도내의 사풍이 점점 쇠퇴해가고 있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사림의 분열에 대해 조호연의 지도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한 내용이다. 조호연은 사림의 영수이니 사림의 분열에 대해 보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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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士威(1806) 26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소호(대산 이상정)에 벼슬이 내린 것은 전체 영남의 경사라고 하고 우리 당이 모두 술잔을 들고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남인의 침체에 대해 우려하고 조호연이 침체된 사풍의 회복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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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景蘊(宗發,1809) 2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金宗發에게 보낸 편지이다. 「간보의목」을 받고 취사거취에 대한 의견을 물은 데 대해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했다. 선배들이 찬집한 뜻과 제현들의 刪潤한 공을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고 다만 저자의 의견을 첨부하니 참고하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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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宗魯,1781)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입재 정종로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준 데 대한 고마움과 최근의 동향, 특히 다리에 난 병이 차도가 있는지 물었다. 遊山을 떠나기로 했다가 자형이 오시는 바람에 중간에 되돌아 왔는데, 다시 단풍놀이를 갔다는 얘기 등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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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월초에 소호에 가서 대산 이상정의 고택에 유숙했다는 얘기를 했다. 이상정의 아들이 학질에 걸려 손님을 응접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오래 유숙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내년 봄에 유람을 떠날 때 함께 가는 것이 어떨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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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1782) 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편지를 잘 받았다는 얘기와 저자는 삼동을 지나면서 혹문 한 권을 읽었을 뿐이라는 얘기를 했다. 자신의 게으름을 말하고 대산선생이 작고하고 나서 귀의할 곳이 없어졌음을 더욱 절감했다고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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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別紙(論乾卦九三爻,1784) 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주역』 건괘에 나오는 구삼 효의 해석에 대해 말했다. 두 가지로 구분해서 언급했는데, 먼저 爻義를 가지고 해석했고, 다음으로 卦體의 측면에서 해석했다. 주자와 정자의 해석이 다른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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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1785) 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신년을 맞이하여 새로 지은 시를 보내고 각오를 다지는 내용이다. 저자는 40년을 보내면서 이렇다 할 만한 일을 이룬 것이 없다고 했다. 정종로가 보낸 당부는 저자에게 너무 지나쳐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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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1786)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지금 짓고 있는 서숙의 규모와 목적에 대해 얘기한 편지이다. 소년배들의 독서 장소로 사용할 계획이며, 집 북쪽의 산과 마주보는 위치에 6칸으로 짓는다고 했다. 중간에 2칸은 당으로 하고 좌우 2칸은 방으로 만들며 22일에 상량을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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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편지를 받고 그 간에 멀리 유람을 다녀오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동쪽으로 단산으로 나와서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촌에 들려 여러 벗들과 대산 선생의 문자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고 하니, 이처럼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다. 기문 두 편을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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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別紙 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사욕을 마음속에 잠복해 있는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없애도록 공부하는 것이 옳은지, 그것이 밖으로 발할 때를 기다려 징치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인 편지이다. 저자는 근본적 방법을 주장한 정종로의 주장을 존중하면서도, 본래 공자의 방법은 시청언동에서 벗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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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別紙 7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서 논한 별지이다. 저자는 무극과 태극이 체용 관계로 볼 수 있는 측면과 볼 수 없는 측면을 자세히 예를 들어가면서 논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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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1791)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아들 皜가 편지를 가져와서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들이 기질이 매우 편벽되어 있고 교정하기가 쉽지 않는데, 정종로는 아들에게 칭찬의 말은 많이 하면서도 엄히 꾸중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그것은 제자를 채찍질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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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정종로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상생활에서의 문제점을 세세히 지적해 준 데 감사함을 표시했다. 작은 것을 궁구하는 것은 크고 미세한 것을 축적하는 것은 드러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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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저자의 요즘 공부가 위기지학에 철저하지 못하고 입과 귀로 하는 학문에 머물고 있음을 부끄러워했다. 정종로가 지어서 보내준 대산 선생에 대한 제문의 내용을 들어가면서 그 뛰어남을 칭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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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1792)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정종로가 근자에 많은 글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문제점을 우려한 내용이다. 근자에 지은 2편의 글을 읽었는데, 글의 구성은 아름답지만 장식이 혹 지나치다고 했다. 저자는 문장을 짓는 이유에 대해, 이치에 있어서는 밝힌 바가 있으면 짓고 일에 있어서는 전할 만한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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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도산에서 돌아오니 오랜 전에 편지가 와 있었다고 했다. 편지에 가득 담긴 가르침이 절절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케 한다고 했다. 금년 봄에 경치 좋은 날에 한 열흘 동안 유람을 떠날 생각인데 그 쪽 형편이 어떤 지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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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1794)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지난번에 저자가 언급했던 유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담은 편지이다. 저자는 약간의 양식과 동자, 그리고 열흘간의 틈만 내면 된다고 하고, 화양동이나 속리산을 유람하는 것이 평생의 숙원이었는데 과연 이룰 수 있을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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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1795)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가을 경치가 좋음을 말하고 회포를 서술했다. 저자는 지난번 文瑞라는 인물과 호계서원에서 함께 숙박했는데, 거기에는 박씨 성을 가진 친구도 합류했다고 하면서, 호계서원 주변의 절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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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13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鄭象觀과 달포가량 함께 기거하면서 『주역』 십여 괘를 공부했다고 하면서, 남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 사람은 쉽게 설명하더라고 했다. 비로소 그의 재주가 남들을 뛰어넘음을 알겠더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의 병통은 재주는 뛰어난데 수렴할 줄 모르는 데 있다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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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士仰(1797)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저자의 제자인 정재 류치명이 오래지 않아 돌아갔다고 했다. 그 사람은 후배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니, 그에게 일러 다시 돌아오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사람의 자상함과 정상관의 명석함을 겸할 수 있다면, 정말 완전한 사람이 되겠는데 서로 합치기 어려우니 어떻게 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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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세상일에 번잡하게 얽매일 때는 많고, 조용하게 완상하는 때는 적다고 하면서 잡사에 시달리는 처지를 호소한 편지이다. 『주서절요』 가운데 진부중에게 답한 편지가 도움이 된다고 하여, 바쁘게 사는 가운데 틈을 내어 존양의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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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士仰(1799) 15 / 기록자료>고도서 / 남한조정종로에게서 자신의 허물을 구제하라는 충고를 받고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니 가소롭다고 했다. 사람이 남과 교제함에 있어서 실제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게 되니 모두 중도출처 : 유교넷


